"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ㆍ1483~1546ㆍ63세ㆍ독일)"는 1543년에 발표한 "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 (Die Juden und ihre Lügen)"이라는 글에서 "유대인의 회당을 불 지르고, 그들을 죽이고, 매장하고, 회당을 무너뜨리고, 탈무드를 빼앗으라."고 주장하며, 갑자기 "유대인 탄압"을 선동한다.
1. "마르틴 루터"의 "반유대주의"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ㆍ1483~1546ㆍ63세ㆍ독일) 종교 개혁자ㆍ성직자ㆍ신학자ㆍ사제(司祭ㆍ1507)ㆍ신학박사(1512)ㆍ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10곳을 감독(1515)
"루터"의 이런 주장은 19C 초,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독일에서 "기독교 사회노동당" 대표인 "아돌프 슈퇴커(Adolf Stoecker)"에 의해 널리 퍼져 나갔고, "나치"에게 파급되었다. 또한 "루터"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협박까지 해 가면서, "유대인"들에 대해 인도주의를 제공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 귄터 한스 (프라이부르크 대학 인종학 교수): 나치가 인종주의를 표방하는데, 철학적 기초를 제공
※ 우생학 :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할 수 있다는 학문. 나치는 타 민족을 학살하는데, 이 학문을 근거로 사용한다.

2. 동기ㆍ이유
① 인종 선별작업 (국수주의 표방)
"히틀러"의 "나치스 당" 집권 정강정책에, 우수한 "아리안 인종"에 대한 선호ㆍ우수성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일종의 "민족주의"를 내걸어, 집권 문제의 대중 지지를 위해 자행. 저서 "나의 투쟁 (1925/1927)"에서, 반유대주의자가 된 과정 묘사ㆍ정치사상ㆍ미래 독일을 위한 윤곽을 보여 준다.
② 주민경제 피폐
"나치스" 집권 후, "유태인"의 독일 내 시장경제의 장악범위가 생각보다 심각함을 인식되어, 제도적으로 이를 막기 시작하였고, 과도한 세금부과ㆍ영역제한 등 소극적 방식을 채택하였다. 전쟁 발발과 동시에, 전비 지원ㆍ후원차원에서 "징발" 하기 시작.
③ 인력 동원
"나치스"는 전쟁 시, 소요되는 "인력 동원"을 "유태인"에서 해결하려 했으나, 그들의 종교적 의식과 이념에 배치된다하여 극구 입대를 반대하자, "전시 노무자"로 대체하게 되어, 남성을 전쟁노무자로, 여성을 공장근로자로 차출.
④ 유태인의 영국 지원
전쟁 중, "유태인 민족대표(벤구리온ㆍ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이 "영국"과 협상하여, 전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건국"을 약속받게 되었고, 이에 "유대민족"은 "영국"에 전쟁비용을 지원해주는 조건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히틀러"는 "정치 보복적 학살"을 감행하게 되었고, 전쟁비용 일부가 "독일계 은행"인 "스위스 하노버 뱅크"에서 인출된 "금괴"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 발악적 학살을 감행.
3. 다른 관점에서 본, 동기ㆍ이유
① "2차 대전 직후"까지, "독일"은 "유대인"에 대해 관대했다.
"유태인 박해"는 다른 유럽 국가들이 심했으며, "독일"은 오히려 관대했다. 그래서, 많은 유태인들이 "2차 대전" 전에는 "독일"에 가장 많이 거주 했다. 독일계 유태인 금융 재벌인 "막스바르부르크"는 "히틀러"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걸로 유명하다.
② "독일"은 "유태인"들에 대해 차별을 별로 하지 않았다.
"독일 유태인"들은 다른 유럽국에 비해, 출세ㆍ사업을 하기 쉬웠고, 이들은 학계ㆍ법조계ㆍ의학계ㆍ금융계ㆍ언론계 등 "독일" 사회 전 분야를 장악할 수 있었지만, "유태인"들은 "독일 사회"와 화합하려 하지 않았고, 나중에 "독일 국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는 원인이 된다. (1992년 LA 폭동 때, 빈민폭도들이 자수성가한 한인교포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약탈한 것과, 인도네시아 폭동 때, 중국 교포들이 원주민들에게 당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③ "독일"은 "유태인"의 독립국가 형성에 신경을 썼다.
1933~ 1941년까지, "독일"은 "유태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고 (독일의 밀텐슈타인이 유대인 이주를, 하인리히 히믈러(SS사령관)은 시온주의자의 대 아랍 지하군사 조직인 "하가나"의 활동을 도왔다), 1942년, "요제프 괴벨스"의 본격적인 "유태인 박해 주장"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히틀러"는 "유태인 학살" 보다는 그들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보내, 그들만의 국가를 형성시키고, 나중에 "독일의 우방"으로 삼으려 했다.
④ "독일"의 등에 칼을 꽃은 "유태인"
"독일"이 "친 영국 성향의 유태인"들을 국외로 추방하려하자, 당시 "독일 경제"를 잡고 있던 "유태인"들은 "독일"을 굴복시키기 위해, "독일"의 수출을 분쇄시키고, 전 세계적인 "독일 상품 불매운동"을 벌인다. 그리고, 이 활동을 "신성한 전쟁"이라고 하면서, "운터마이어(세계 유태인 경제연합회 회장)"이 앞장을 선다.
뿐만 아니라, 전쟁 중, 일부 "유태인"이 "연합군"과 결탁하여, 연합군의 폭격을 유도하는 신호등을 장착하는 등 "밀정 행위"를 하자, "히틀러"는 모든 "유태인"을 수용소에 감금시킨다. "유대인"의 행위는 "국가반역죄"에 해당되며, "국가반역죄"는 어느 나라에서나 사형에 해당된다.
⑤ 결국, 사고가 터진다.
"시온의 칙훈서(유태인의 세계경영 지침서)"가 발견되어 알려지고, "공산당" 활동에 "유태인"들이 간접 협조한 혐의와 1936년, "프랑스 주재 독일외교관"을 암살하자, "반 유대 감정"으로 독일이 들끓기 시작했고, "크리스탈 학살사건"으로 유태인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유태인이 학살당하지 않도록, 2만 명의 유태인을 강제로 "수용소"에서 수용하게 된다.
부연해서, "세계 1차 대전"시, "독일"을 패하게 만든 배후에는 "바질 자하로프(유대인 전쟁무기상)"은 "영국 군수" 재벌인 "빅커스 사의 영업이사"로써, 친독적인 "그리스 국왕"을 추방하여 "세계대전"의 장기화를 획책했다고 한다. 특히, "독일"의 군사기밀을,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으로 빼돌린 사실 하나만으로도, "독일"이 유대인을 증오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영국군"이 사용한 수류탄은 "독일 기술"로 만들어진 수류탄으로써, 이 성능 좋은 "독일제 수류탄"이 "독일군"을 죽이는 촌극까지 벌어지게 된다.
4. "영국" 등 연합군, "유태인 학살"을 알고도 숨겨온 정황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이 촬영한 유럽 대륙 및 독일군의 만행을 보여주는 사진 500만장이 인터넷에 공개될 예정이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영국 킬리 대학에 있는 영국 국가문서보관소가 인터넷상에 전쟁 당시 영국공군 정찰기가 독일과 다른 나라 상공에서 찍은 첩보사진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될 사진은 우선 500만장이나 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전쟁의 참상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벌써부터 유럽대륙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진 공개를 통해, 전쟁 중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이 "유태인 학살" 같은 반인륜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공개를 기획한 "앤런 윌리암스 교수(킬리 대학)"은 "사진 자료가운데는 지난 1943년ㆍ1944년 폴란드에 있는 유태인학살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상공에서 찍은 것이 다수 포함돼 있다"며, "이 사진에는 시체소각로에서 나오는 연기와 유태인들이 점호를 받기 위해, 수용소 앞마당에 줄지어 서 있는 장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윌리암스"는 "지금까지 영국 측은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해방시킨 1944년 말과 1945년 미군과 영국군이 베르젠ㆍ다하우 같은 독일 내에 있던 수용소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유태인학살에 대해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전쟁초기부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윌리암스"는 "1943~ 1944년 사이, 1년 동안 아우슈비츠에서만 유태인 43만 명이 숨졌는데, 연합군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이들을 구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물론, "영국"이 이런 비극적인 학살사례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견은 지금까지 수없이 제기됐다. 특히, "폴란드 망명정부"의 외교관인 "얀 카르스키"는 "지난 1939년 영국과 미국 측에 유태인학살과 게토에 대한 정보를 넘겨줬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어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사진공개를 통해, "카르스키"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미국ㆍ영국"은 "유태인학살"을 알면서도 무시한, 도덕적 비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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