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1 • 2차 세계 대전 • 독일 • 일본

레닌그라드 (상트페테르부르크)ㆍ표트르 대제ㆍ겨울궁전ㆍ여름궁전

by 당대 제일 2022. 12. 18.
반응형

 

"레닌그라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많은 건축물 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 "바실리에프스키 섬"에 세워진 "겨울 궁전"인데, 이 궁전은 그 예술적인 중요성은 물론 러시아 역사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인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중 하나이다. "겨울 궁전"은 현재 "국립 에르미타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소장된 작품이 자그마치 270만 점이 넘는다. 수 세기에 걸쳐, "러시아 왕가"에서 수집한 "그림과 조각, 보석" 등이 전시되고 있는데 "바티칸ㆍ루브르ㆍ대영 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이 가득하다.

 

1.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표트르 대제 (1672~1725ㆍ53세ㆍ근대 러시아의 아버지)

"표트르대제"는 210cm를 자랑하는 키에 왕의 첩의 아들, 즉 "서자"였는데, 어릴 때부터 매우 똑똑해서 첫째 딸인 "소피아"가 멍청한 자기의 친동생을 제치고 왕이 될까봐, "표트르" 앞에서 어머니의 죄를 물어 "표트르" 대신 그의 어머니의 목을 쳤다고 한다. 그 때부터 "표트르"는 "왕이 될 생각이 절대 없다"고 하며, 왕궁을 나와 무리와 어울리며, 전쟁놀이를 하고(하는 척하면서 군대를 모은 것) 기회를 엿보다가, 멍청한 형이 왕이 되었을 때, 공동 왕으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여왕이 될 수 없는 법을 가진 "러시아"여서, 똑똑하고 기골이 장대한 "소피아"는 왕이 되지 못하고, 공동 왕으로 추대되었을 때, 형에게 "형을 밀어 줄테니, 소피아 누나를 정계에서 빼자"고 하는데 이를 들은 "소피아"는 군대를 일으키나, "표트르 대제"에게 패하여, 완전히 왕권이 넘어가게 된다.

"러시아 국가"를 "제국"으로 명명하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면서, "네바 강변"에 새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 계획을 반대했다. 국경 바깥에 그것도 "늪지대"에 이전하겠다는 말은 그렇게 생각하기 충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네바 강"이 지니는 "전략적 요충지(전쟁 상대인 스웨덴을 제압할 수 있는)임"과 동시에 "유럽"으로 가기 위한 통로였고, 서구를 향한 "표트르 대제"의 열망이 담겨있다.

"표트르 대제"는 황제가 된 후, 유럽에 직접 가서 문화를 배우고 직접 공부하고 오고, "네덜란드"에서 선박 기술도 배우고, 예술도 배우는 등 "러시아"의 현재 상황을 개탄하였다. 실제로 그 이전에는 "동양문화"에 가까웠다고 하는데(실제로도 샤머니즘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음)," 표트르 대제" 이후, 완전 "서양문화"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늪지대"에 세웠기 때문에, 엄청난 희생자를 낳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서구화ㆍ근대화"의 길을 위해, "핀란드 만"과 "네바 강"어귀의 늪지대 위에 건설한 거대한 계획, 문화도시이다.

어쨌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다른 서구에서 몇 백 년 만에 일어난 발전을 50년 만에 이루고, 10년 만에 늪지의 한가운데 건물 35,000채가 들어섰다. 늪지대 전체를 돌로 메운 대공사는 다른 지역에서 돌을 옮겨야만 했으므로, 궁정의 "대리석"은 "이탈리아ㆍ우랄ㆍ중동"에서, "반려암"은 "스웨덴"에서 들어왔으며, "조립 현무암ㆍ석판암"은 "오네가 호수", "사암"은 "폴란드ㆍ독일", "건축용 석회"는 "이탈리아", "타일"은 "베네룩스ㆍ뤠베크"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이처럼 돌을 옮기는 작업에는 분명 매우 많은 희생자가 따랐을 것이다.

2. 에르메따쥐 박물관ㆍ겨울 궁전 (Winter Palace) :  상트페테르부르크

"엘리자베타 여제"가 가장 총애하던 궁정 건축가가 여제를 위해 지은 궁전으로, 방의 개수가 1,000개가 넘는 유럽에서 가장 큰 궁전 가운데 하나이다.  (양식 : 러시안 "바로크" / 재료 : 벽돌석고)

① 위 치 :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바실리에프스키" 섬"에르미타쥬 미술관(State Hermitage Museum)"의 복합단지 내          ② 시 기 : 1754~ 1762 (8년), 1838~ 1839 재건, 예카테리나 1세가 1번째 주인          사 유 : 제정 러시아 군주의 겨울을 위한 것          초안자 : 프란체스코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Bartolomeo Rastrelli)          특 징 : "러시아의 2월 혁명" 이후, "겨울 궁전""러시아 임시 정부 청사"로도 쓰였다 "볼셰비키 정권"의 "겨울궁전 급습"은 "10월 혁명"의 발단이 되기도 하였다.

• "연두 빛"의 색조를 띤다.      • 1,786개의 문과 1,945개의 창문이 있다.       궁전은 현재 회화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박물관이기도 한 "에르미타쥬 미술관(State Hermitage Museum)"의 복합단지에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의 일부로서 1,057개의 홀과 방이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다 1826년, 군사 갤러리가 문을 열어, 332개의 국방계 인사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1711년, "표트르 대제"가 "겨울 궁전"을 처음 지어졌을 때는 지금의 모습과 좀 달랐다. 검소하고 실용적인 "네덜란드"의 건축물과 생활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은 "표트르 대제"는 철저하게 "실용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처음 지어진 궁전은 조금 평범해 보였다. 

"겨울 궁전"을 오늘의 모습으로 바꾼 것은 "표트르 대제"의 딸인 "엘리자베타 여제"였다. "엘리자베타 여제"는 크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을 짓고 싶어했다. "바로크"란 "포르투갈 어"로 "비뚤어진 모양을 한 기묘한 진주"라는 뜻을 갖고 있다. 후기 르네상스 뒤에 나타난 문예 사조로, "거대한 장식ㆍ곡선의 활용ㆍ자유롭고 유연한 연결"이 특징이다. 10년에 걸친 공사 끝에 모습을 드러낸 "겨울 궁전"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크고 화려했다. 

건물의 둘레만도 2km나 되고, 실내는 1,050개에 달하는 방과 120개나 되는 계단, 1,100개에 이르는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양각색의 "대리석과 금으로 도금된 천장과 벽, 고급 목재를 이용한 바닥, 화려한 샹들리에"는 보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하다. 다양한 장식을 3개 층에 걸쳐, 풍부하게 사용한 "러시아 바로크식" 외관만이 건축 당시 그대로 남아 있다.

1837.12월 화재로 인해 소실되고, 그 후 2년에 걸쳐 재건되었다. 비용을 아끼지 않은 이 공사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라스트렐리"가 설계한 대로 복원될 수 있었던 실내는 "조르단 층계"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바실리 스타소프ㆍ알렉산드르 브리울로프ㆍ오귀스트 몽페랑" 등 여러 건축가들에 의해, "바로크 복고ㆍ신고전주의ㆍ고딕 복고"가 뒤범벅이 되었다. 공공 공간은 넓고 웅장하지만, 비교적 작은 개인 공간들은 "부르주아식 편안함"의 집약이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점점 늘어가는 자신의 예술 컬렉션을 보관하기 위해, 궁전 북쪽에 건물을 덧붙였다. "유리 펠텐ㆍ쟝-바티스트 발랭 드 라 모트의 소(小)에르미타슈 미술관ㆍ펠텐이 설계한 구(舊)에르미타슈ㆍ자코모 콰렝기의 작품인 에르미타슈 극장"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니콜라이 1세"가 "레오 폰 클렌체"로 하여금, 황실 가족은 물론 궁정 인들을 위한 대부분의 접대 공간과 방들을 "갤러리"로 개조하게 한, "신(新)에르미타쥬 미술관"이 추가되었다.

"에르미타슈 미술관"에 보관된 작품을 다 감상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지금부터 미술관을 방문한다고 해도 족히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너무 많아서, 전시장에 모두 전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매년 바꿔가면서 전시를 하기 때문이다.

2. 여름 궁전 (Summer Palace)  상트페테르부르크

검소한 실용주의를 추구했던 "표트르 대제"가 건설한 건축물 가운데 유일하게 호화로운 건축물이다.

① 위 치 :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 약 30㎞ 떨어진 "핀란드 만" 해변가          시 기 : 1714~ 1723 (9) - 실제로는 150년이나 지난 후에야 공사가 끝이 났다.           사 유 : "표트르 대제"가 여름을 보내고, 파티 장소로 쓰기 위해 만든 것. 러시아 제국의 위엄과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          별 칭 : 북부(러시아)"베르사유 궁전"

"표트르 대제"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베르사유 궁전"에 버금가는 거대한 궁전을 건축하도록 지시했다. "여름 궁전"은 규모는 물론이고, "건물ㆍ조형물ㆍ산책로"등 대부분이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과 비슷하다. "표트르 대제"가 유럽을 방문했을 때, "베르사유 궁전"을 둘러보고, "러시아 왕가"의 위용을 과시할 목적으로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 넓은 궁전을 건설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유럽 최고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이 총동원되어, 20여 개의 궁전과 140개의 화려한 분수, 7개의 아름다운 공원이 만들어졌다.

7층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폭포, 64개의 분수, 금으로 도금한 조각과 장식품으로 꾸며 놓은 궁전은 그 면적이 800만m2가 넘는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여름궁전 1층"에는 "표트르 대제"의 "응접실ㆍ서재ㆍ침실" 등이 있으며, 2층에는 "왕실 대대로 내려오는 가구ㆍ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