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 (姜健ㆍ강신태(姜信泰ㆍ1945년 개명)ㆍ1918~1950.09.08ㆍ32세)"은 "김일성"의 핵심 측근으로, 조선인민군의 초대 총참모장이다. "제1군관학교"를 개명한 평양의 "강건 종합군관학교"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강건"이 전사한 후, "김일성ㆍ박헌영"이 장례식에서 직접 관을 운구했다.
1. 강 건 (姜健ㆍ강신태 (姜信泰ㆍ1945년 개명)ㆍ1918~1950.09.08ㆍ향년 32세)
공산주의 항일 운동가ㆍ북조선 군인ㆍ정치인ㆍ인민군 전선사령부 사령관ㆍ중국 공산당 예하의 동북항인연군 "주보중(周保中)"의 비서로 활동)
• 출 생 : 일제강점기 경북 상주군 • 사 망 : 경북 안동 • 사 인 : 전사 (지뢰 폭발 사고로 전사)
• 본 명 : 강신태 (姜信泰) 1945년 "강건"으로 개명 • 가 족 : 아들 – 강창주 (군인) • 수 상 : 공화국 영웅
• 경 력 : 1935~ 1950 : 동북항일연군ㆍ소련군ㆍ조선인민군 • 계 급 : 조선인민군 중장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2. 평양서 생산된 최초의 따발총 수여식 (최용건ㆍ김책ㆍ김일 ㆍ김일성ㆍ강건)
"경북 상주" 출신으로, 일제의 착취를 피해 1928년(10살), 부모를 따라 "만주의 길림성(吉林省) 영안현(寧安縣)"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1933년(15살)부터, "영안현 팔도하자(八道河子)"에서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시작하였다. "영안유격대"는 "영안" 일대에 "유격구"를 확보하고, "반일회ㆍ청년단ㆍ아동단ㆍ자위대" 등을 조직했다. 1934년 가을에는 "길동 유격대"로, 1935.01월 "동북반일연합군 제5군"으로 발전했다.
1935년(17살), 중국인 "주보중(周保中)"이 지휘하는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에서 활동하였다. "어학 실력"이 뛰어나고, "유격전"에도 재능을 보여, 어린 나이에 매우 빠른 승진을 했다. "유격대" 내에서 어린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아, 1936년(18세)에 이미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 제3사 9단 정치위원"이 되었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유격대"가 "일제의 대토벌"을 피해, "소련 영내"로 이동해 가서, 결성한 "동북항일연군 교도려(敎導旅ㆍ일명 88여단ㆍ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국제여단)"에서도 "제2영 정치위원"을 거쳐, "제4영 영장"이 되는 등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여기에서 "김일성"과 가까이 지내면서, 핵심 측근이 되었다.
1945년(27살), "광복" 후 조국으로 귀환하지 않고, "조선족"이 집중 거주하고 있던 "동만지구(東滿地區)"의 해방사업을 위해서, 1945.09월에 "김창봉ㆍ최광" 등을 인솔하고, "연변지방"으로 갔다. "연변"에서 "중국공산당 연변위원회 서기ㆍ동북민주연군 길동군구(吉東軍區) 사령원" 등으로 활약하다가, 1946년 여름에 귀국하여, "나남"에 소재하고 있던 "인민군 제2사단 사단장"이 되었다. 1948.02월(30살), "조선인민군"이 창군되면서, "총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1948.03월, "북조선노동당 제2차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50년(32살), "한국 전쟁"에 "총참모장"으로 참전했다가, 고향과 멀지 않은 "경북 안동"에서 "지뢰 폭발 사고"로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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