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공산주의 (남로당ㆍ빨치산ㆍ연안파ㆍ소련파)

파- 빨치산 : 김일 (1910)ㆍ김일성의 오른팔ㆍ국가 부주석

by 당대 제일 2022. 11. 2.
반응형

 

"김일 (金一 ㆍ박덕산(朴德山)ㆍ1910~1984ㆍ74세)"은 일제강점기, "동만주 일대"에서 "김일성"과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북조선 내각 총리(2대)ㆍ국가 부주석"으로, "김일성"의 오른팔이었으며,  "오른팔"이란 표현은 "김일성"이 직접 언급한 말이다.

 

1. 김 일 (金一 박덕산(朴德山)1910~1984향년 74)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 운동가(만주 빨치산)소비에트 연방 군인사회주의운동가조선 군인정치인ㆍ"내각 제1부수상(1959.01~1972.12)"으로 "김일성(내각 수상)"을 보좌하였고, 시종일관 "김일성최용건"에 이어, 권력서열 3위의 자리를 지켰다.

•  출 생 : 함북 경성군 어랑      •  사 망 : 평양      •  사 인 : 병사 (대성산 혁명열사릉)

•  별 칭 : 김덕산      •  본 명 : 박덕산(朴德山)   "김일"의 본명은 "박덕산"으로, "김일성"이 해방 직후, 그에게 어준 이름이다. 해방 직후, "김일성" "본명을 나밖에 모른다." 뜻으로, 하사한 이름이 "김일(金一)"이다.

김 일

"함북"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1932, "지하당 및 대중단체사업"을 벌였으며, 1935.10"항일무장 대오"에 들어선 후, 주요 군사 정치 간부로 많은 활동을 했다광복 후, 북한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북조선공산당 평북 당비서(1945.11)북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 겸 정치위원(1946.04) 등을 지냈으며, 1946.09, "1사단 문화부사단장인민군사령부 문화부사령관민족보위성 부상"으로 "인민군 강화"에 노력했다.

1950"한국전쟁" , "민족보위성 부상내무성 정치국장전선사령부 군사위원"으로서 "군의 정치 사상분야"를 담당하였으나, 1950.12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3차 전원회의"에서 군의 정치공작사업 실패를 이유로 비판을 받고, 파면 당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던 그는 곧 재기하여, 전후에는 줄곧 정권기관에서 "김일성" 보필하였고, 1953.06, "박헌영" 등 남로당계 지도인사들이 당에서 축출되는 과정에서,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되었다특히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할 때는 대부분 참석했던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의 그의 외교적 위치를 짐작할 수 있으며, 1979"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직을 맡으면서 대남 관계에도 앞장섰다.

2. 항일유격대 출신

1931, "동 만주"에서 "반제동맹"에 참가하였고, 1935.01, "공산청년동맹"을 지냈다1935.10, "항일유격대"에 참가하였다1938.11, "항일연군 제1로군"의 조직재편이 단행되어, "김일성"이 이끄는 "6""2 방면군"으로 개편될 당시, "2 방면군 제8단 정치위원"이 되었다1940년 이후, "일제의 대토벌"을 피해, "소련" 영내로 이동해 간 후, 1941"블라디보스토크" 근처에 있던 "항일유격대의 남야영(南野營)" 당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소련"으로 이동해 간 뒤에도, 소부대를 이끌고, "만주"로 돌아가 "왕청현(汪淸縣)" 일대에서 지하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1942.07, 결성된 "동북항일연군 교도려(敎導旅)"에서 "김일성"이 영장이었던 "1영의 당서기"가 되었고, "항일유격대" 출신인 "허창숙"과 결혼하였다.

광복 직후, 북한으로 돌아온 뒤, 초기에는 당과 군사 분야에서 활동하였다1945.11,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평북도당 위원장"이 되었다1946.04, "북조선공산당 중앙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1946.08, 신설된 "보안간부훈련대대부 문화부사령관"에 취임하는 한편, "북조선노동당"이 창립되면서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다1948,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된 이래, 사망 시까지 계속 당선되었다1948.02, "조선인민군" 창군 시, "문화부사령관"에 취임하였다.

1953.08,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뽑혔다1954.03, "내각 부수상"에 기용되었다1954.03, "내각 부수상 겸 농업상"의 직책에 있으면서, 전후 복구시설과 사회주의 기초건설에 관한 당의 노선과 정책을 진행시켰다1959.01, 북한의 "내각 제1부수상"으로 승격되었으며, 1966.10월에는 "조선노동당 정치위원회 상무위원 겸 비서"가 되었다1972.12, 새로이 제정된 "헌법"에 따라 만들어진 "정무원의 총리"가 되었다1976.04, "국가 부주석"으로 선임되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