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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서양

쿠르드 족 (Kurdsㆍ이란계)ㆍ아라랏 산 (노아의 방주 도착지?)

by 당대 제일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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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  (Kurdsㆍ이란계)""튀르키예의 아나톨리아 반도 동남부이란이라크시리아c 등이 접경을 이루는 약 30만 km2의산악지대인 "쿠르디스탄"에 주로 거주하는 "이란계 민족"이다. 인구는 약 3,800만 명으로 독립된 나라를 갖지 못하고, 중동 곳곳에 흩어져 사는 세계 최대 유랑 민족으로 "중동의 집시 (Gypsy)"로 불리기도 한다.

 

1. 아라랏 산 (Mount Araratㆍ해발고도 5,137m)

"구약성서"에서 대홍수가 끝난 후 "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다고 알려진 터키의 최고봉, 도우베야즛 시내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

특히 "도우베야즛" 근처에 있는 봉우리가 "아라랏 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아으르 다으"라고 부른다.  "아으르 다으"는 터키어로 "아픔의 산"이라는 뜻이다시내에서 "아라랏 산"을 바라보면, 2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오른쪽이 해발고도가 3,896m에 달하는 "큐축 아라랏 산(작은 아라랏 산)"이고, 왼편의 봉우리가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뷔윅 아라랏 산(큰 아라랏 산)"이다"아라랏 산" 정상에는 언제나 만년설이 덮여 있어있다.

2.  쿠르드 족 (Kurdsㆍ이란계)  :  스스로  "노아의 후예"라고 믿는 민족

 터키의 아나톨리아 반도 동남부이란이라크시리아 등이 접경을 이루는 약 30 km²의 산악지대인 쿠르디스탄에 주로 거주하는 민족.  "터키이란이라크" 인접지역인 "쿠르디스탄" "시리아러시아"등에 거주하는 "아리안 계열"의 유목민.  유전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싸움에 그들은 언제나 쓰고 버려지는 소모품 취급을 받았다

험난한 자연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단련된 "쿠르드 족" 남자들은 당대 "최고의 용병"으로 통했다. 이들의 군사적인 용맹성은 널리 알려져, 많은 군대에서 용병으로 활약했다서구에 가장 널리 알려진 "쿠르드 족" 출신의 전사인 "살라딘"은 군사적인 명성을 상징한다.

 "이슬람" 역사 속에는 수많은 "칼리프ㆍ술탄ㆍ아미르 (이슬람 군주)"들이 명멸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을 단 한 사람만 꼽으라면, 단연코 "살라딘 (Saladin1138~1193(55)이집트)"이 될 것이다.  "살라딘"은 "십자군"에게 점령되었던 "예루살렘"을 1C만에 탈환한 인물이다 (십자군의 유명 인물은 "영국 리처드 왕사자 왕)

쿠르드족

 쿠르드족의 거주지인 쿠르디스탄은 중세부터 근대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유지한 "오스만 제국" 있었지만, "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전한 후, "영국" "프랑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의적인 국경선에 의해 분리되어, 쿠르드족 전체 인구의 45% "터키", 24% "이란", 18% "이라크", 6% "시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거 주 : 대부분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땅이라는 뜻)" 이나, "이란" 북동부의 "호라산" 지역

쿠르디스탄 =  이란이라크터키 인접지역

 언어 : 쿠르드어  ("쿠르드족" "파르시어파슈토어"와 관련이 있는 "서부 이란어(쿠르드어)"를 쓴다.)

 인구 :  3,000~ 3,300만 명의 나라 없는 민족

(독자적인 국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민족 중에서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종교 : 대다수 - 이슬람교 수니파(7세기 이후) / 소 수 - 야지디교조로아스터교기독교이신론불가지론

 100년 전 강대국 배신에 독립실패 / IS 격퇴에 공헌했지만,  등 돌려 / 쿠르드족은 산외에 친구가 없다.

① 오스만 제국 안 (Ottoman Enpire) 

19C 중엽까지만 해도 "오스만제국" 안의 "쿠르디스탄(Kurdistan) 주" 안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었다. 독립 국가는 아니었으나, 오스만제국 안에서 "쿠르디스탄(Kurdistan)"은 자치권이 보장되어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특징)

② 영국의 배신

1차 세계대전 당시, 중동을 장악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중동의 석유가 필요했던 영국이 "쿠르드 족"을 전쟁으로 끌어들인다. 영국의 제안 - "이기면 쿠르드 족의 나라를 만들어 주겠다."고, 독립을 약속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약속을 지키지 않고, 쿠르드 족을 버린다. 거기서부터 서구에 의해, 끊임없이 배신을 당하는 역사가 시작된다.

③  "영국ㆍ프랑스"의 쿠르드 족의 분리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ㆍ프랑스"가 이 지역을 "4개 나라(터키ㆍ이란ㆍ이라크ㆍ시리아)"로 나눈다. 그래서 쿠르드인은 "4개 국가"로 갈라지고, 강제로 분리된 쿠르드 족은 자신이 소속된 국가로부터 온갖 수난을 겪는다. → 민족 고유의 성씨와 언어를 쓰지 못하게 탄압을 당한다.(창씨개명) → 서구 열강의 박해에 저항을 시작하는 "쿠르드 족의 독립운동"이 개시된다. (박해는 4개 각 나라에서 벌어졌는데, 제일 잔인하고, 유혈사태가 있었던 나라는 "이라크"였다) 

당시 "이라크"는 "영국"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처칠 수상"은 "문명화되지 못한 부족에 독가스 사용을 나는 강력히 지지한다."고 말하는데, "처칠"은 최대 수만 명의 쿠르드 족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탄압의 이유는 쿠르드 인이 사는 "이라크 북부"의 "석유" 때문이었다.

④ 미국의  배신  ( 1차 )

1972년, "국경분쟁" 발발 (친미 이란 vs 친소 이라크)→ 미국 (헨리 키신저)의 제안 → "이라크" 내에서 독립을 꿈꾸며, "미국" 지원으로 "쿠르드 족"은 대리전쟁을 치른다 → "이란 vs 이라크 분쟁"이 종료되자, "쿠르드 족"을 배신. 미국은 이라크 인들에게 공격당하던 쿠르드 족들의 정치적 망명요청을 외면한다. ( 이라크 내의 쿠르드 지도자들과 유력한 쿠르드 족을 죽이거나, 교도소에 보내서 고문 )

⑤ 미국의  배신  ( 2차 )

1980년대, "이란"이 "친 소련정책"을 펼치자, 미국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을 지원 → 이라크 내에서 분리 독립하려는 쿠르드 족에 대해 학살 시작 (쿠르드 족의 독립의지를 말살) → "사담 후세인"이 지시한 일명 "안팔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무차별 폭격과 독가스가 살포된다. 대학살에 "화학무기 재료"를 미국회사에서 제공한다. 

8개월간 희생된 쿠르드 족은 18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룻밤에 "할라브자 지역"에서만 8,000명을 화학무기로 학살- 아이ㆍ할머니ㆍ여자 등)  2006.08월, "사담 후세인"은 "쿠르드 학살 혐의"로 법정에 선다 → 하지만 법정에서 "사담 후세인"은 "화학무기"사용을 전면 부인한다  → "사담 후세인"의 주장을 근거로 "미국은 화학무기 사용과 무관함"을 주장한다.

⑥ 분리 독립 시도

2014, "IS" 발발당시, 최전선에 또다시 뛰어든 쿠르드 족 쿠르드 족은 유일하게 "IS"를 후퇴 시킨 일등공신이 된다2017, 쿠르드 족이 독립 주민투표를 했으나, "미국"은 승인하지 않는다

2017.10.25, "이라크 내 쿠르드 자치정부""분리-독립 찬반 주민투표 결과"의 동결을 선언 "이라크 정부"에 백기를 들며, 사실상 독립이 무산됐다. "마수드 바르자니"(이라크 내 쿠르드 자치정부의 수장무스타파의 아들"우리한테 언제 잃어버릴까봐 걱정할 정도의 안정과 안전을 보장받은 적이 있습니까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저 우리를 막을 구실을 찾고 있을 뿐입니다."

3.  국가를 이루지 못한 민족으로는 가장 인구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적으로 "메소포타미아 평원터키이란의 고지대"에서 양염소를 치는 유목생활을 했으나, 대에 들어 유목생활을 포기하고, 부락을 이뤄 정착 농경생활을 시작했다.

대부분 "수니파 이슬람교도"이지만, "시아파 이슬람교도"도 많으며 오랫동안 특정 지역에서 살아왔지만, 민족국가를 이룬 적은 없었다현대에 들어 거주하는 나라에서 민족갈등이 일어나면서 민족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단일 민족으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가장 큰 종족이다내부적으로도 분열되어 있어, 1번도 "통일된 공동체"를 가져본 적이 없다.

"PKK(극렬 독립파)"와 반대로 "KDP(자치를 주장하는 파)" 등으로 분열되어 있다"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이라크의 쿠르드족", "이라크""이란의 쿠르드족"을 지원해 갈등 관계에 빠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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