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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서양

고대 문명 ⑥ 바빌로니아 (Babylonia) 문명ㆍBC 1800년 경ㆍ이라크

by 당대 제일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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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로니아 (Babylonia)"는 "수메르ㆍ아카드ㆍ우르 제3왕조"에 이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석권한 고대 국가로, 수도인 "바빌론"은 한때 "세계의 수도"로 불렸다. "함무라비" 사후 점차 약화되었고, 결국 B.C 1595년에 인근 "히타이트 왕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다. "함무라비 법전ㆍ이슈타르의 문ㆍ바빌론의 공중정원ㆍ바벨탑"이 유명하다.

 

◆ 바빌로니아  (Babylonia) : BC 1800년 경

수메르 인 (인류 최초 도시국가건설)→ 아카드 인→ 아무르 인 (바빌로니아 왕국 건설)ㆍBC 18C 함무라비 때 전성기

"메소포타미아 남동쪽"의 고대 왕국인 "바빌로니아"의 이름은 수도인 "바빌론(Babylon)"에서 유래하였다. 

"바빌로니아 신화"는 "수메르 문명"의 뒤를 이어 생겨난 것이다.  이곳은 "수메르 인ㆍ아카아르 인"의 대립이 끊임없이 존재했던 곳이다.  BC 4000년경, "수메르 인"의 도시국가가 기원이 되었으며, 이후 BC 2350년경에 "사르곤 1세"의 침략을 시작으로, "수메르 인ㆍ아카아르 인"의 대립을 계속했다 : 그러다가 BC 1800년경, "바빌론 제1왕조"가 수립되고, 6대째의 왕 "함무라비"가 대제국을 건설한다.

바빌로니아

정치적으로 우세해진 "바빌론"은 상업적으로도 중심지로 부상했고, "부흥의 시대"를 걷게 된다.

"도시 국가들"을 연합하여, "중앙 집권제도"를 확립하였고, "함무라비 법전"의 공포로 제도를 정비했다"마르두크 신"을 중심으로 "종교"를 재편하였는데, 이는 "바빌론 사람들"의 신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각종 기술이 발전하여, 농기구운송수단 등이 개발되었으며, 새로운 건축양식이 발전되었고, "운하도로" 등이 재정비되었다. 이 시기 찬란한 문물의 발전을 이루었다학문예술도 발전하여, 미술음악 분야에서도 새로운 양식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문화적 발전은 서양문명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이 당시의 유물은 당시의 번영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나, "점토판"의 기록조각품프레스코화 등으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②  "바빌론"은 여러 국가와 무역을 했고, "이신엘람" 등의 도시국가를 정복하기도 했으나, "함무라비 왕" 이후에는 각지의 반란과 "히타이트 인"의 침입으로 인해, 점차 몰락한다.

그러나 BC 1595, "히타이트 족의 무르실 1""바빌로니아 왕"을 몰아내고 세운, "카시테 왕조" 또한 "아시리아엘람"의 공격으로 무너지고, "2왕조"가 성립된다이때 "네부카드네자르 1"는 계속되는 "아시리아엘람"인의 침공을 막고, 안정기를 가져오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금 "아시리아엘람"등이 "바빌로니아"를 두고, 전쟁을 계속한다.

주로 "아시리아 인""바빌론 왕조"를 지배한 이 시기를 "신 바빌로니아"라고 일컫기도 한다이 시기의 "네부카드네자르 2(BC 605~562)""바빌론"을 다시 "대제국"으로 일으키는 데에 성공했다"마르두크 신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팔레스타인"을 점령하기도 했다.

③  그러나 BC 539, "나보니두스 왕""페르시아 제국""키루스 왕"에게 패하고 만다"키루스 왕""나보니두스 왕""마르두크 신을 제대로 섬기고 있지 않다"는 명목으로, "바빌론"을 침공한 것이다. 여기에 평소에 박해받던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에 힘을 실어 주었다.

"나보니두스 왕""수도 바빌론"으로 도망쳤으나, 결국 항복하고, "페르시아(키루스 왕)"에 굴복하게 된다이후, "바빌론""페르시아"의 지배 하에 있게 되며, 사실상 "독립적인 바빌로니아 왕국" 와해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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