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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서양

고대 문명 ③ 페니키아 (BC 1200~650)ㆍ알파벳 문자(22개) 창조

by 당대 제일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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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는 "고대 가나안"의 북쪽에 근거지를 둔 고대 문명으로, 중심 지역은 "레바논ㆍ시리아ㆍ이스라엘 북부"로 이어지는 해안에 있었다. "알파벳 문자(22개)"를 만들었고, 후에 현대 "서양 알파벳"이 되었다.

 

◆ 고대 페니키아 (BC 1,200~  BC 650)

"알파벳 문자(22개)"를 만들었고, 후에 현대 "서양 알파벳"이 되었다. "페니키아인"들은 BC 3,000 경에 이 지역에 정착했을 것이며, BC 16C에 광범위한 교역이 이루어졌다.

"이집트아시리아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BC 64년에는 "로마"에 통합되었지만 "아라두스 시돈티레"는 자치 시로 남아 있었다"페니키아"는 최초로 "갤리선"을 사용한 문명으로 이들은 "갤리선"을 이용한 무역으로 번성하였다.

해양 무역업식민지 개척자로서 삼나무소나무아마포자수제품채색 도기소금 등을 수출했고 중계 무역도 담당했다. 상아세공목각장식이 특산품이었고, 금세공사금속세공품도 널리 알려졌다.

 수 도 : 가나안(BC 900년경)티레(BC 700년경)

 주요 도시 : 티레시돈주바일사이다베이루트

 형 태 : 도시 국가

 공용어 : 페니키아 알파벳

"페니키아"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 되고 중요한 작품은 "비블로스의 아히람 석회암 석관"이다. "레반트" 지역의 "티레ㆍ시돈" "페니키아"의 가장 강력한 도시였다. 고대의 경계가 변동하긴 했지만, 도시의 문화 중심은 최남단으로 도시 "티레"로 여겨진다. "페니키아" 본토의 도시 가운데 "시돈" "티레" 사이에 있는 "사렙타"는 가장 완벽하게 발굴된 도시이다

페니키아

"페니키아"는 최초로 "알파벳"을 사용한 문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그들이 사용한 "카나니테-페니키안 알파벳"으로부터 후대의 여러 "알파벳"이 나왔다.

"페니키아인"들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셈어파"에 속하는 "페니키아어"를 사용하였다"페니키아"는 해양 무역을 통해 자신들의 "알파벳""북아프리카유럽"에 전파하였고, 이로부터 "그리스어의 알파벳"이 만들어졌다이는 후일 다시 "에트루리아 문자""로마자"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문명은 BC 1,200~ 900년경까지 지중해를 가로질러 퍼져나간 진취적인 해상 무역 문화를 가졌다고 과거의 고대사엔 수록되어 있지만. 최근의 고고학 발굴로 페니키아 문명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BC 40C"기시 문명(Gish)""지중해 문명과 메소포타미아"를 연계하는 문명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이 "기시 문명"이 아프리카의 "쿠마 문화(Kuma)", 나일 강 유역의 "쿠시 문화(Kush)"와 연결고리가 있으며, 그 관계를 연구 중이라 한다연구된 바에 의하면, 북아프리카의 "튀니지(고대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알제리리비아" 등 북아프리카권역의 국가와 무역으로 이탈리아의 중남부도시에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며, "리베리아(현 스페인)" 항구도시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다는 것은 "이집트 기록"에 의한 것이다.

"페니키아 문명"이 단일한 민족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와 같이 도시 국가를 이루었으며, 각각의 도시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독립돼 있었다. "페니키아"의 도시 국가들은 서로 동맹을 맺고 협력하기도 하였으나, 도시 간에 갈등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레반트" 지역의 "티레시돈""페니키아"의 가장 강력한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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