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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서양

고대 문명 (아메리카) ③ 잉카 문명 (Incaㆍ마추픽추) : 황금기 1438~1533

by 당대 제일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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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잉카 (Inca)"라는 이름은 지금의 "페루 쿠스코" 부근에 있던 종족의 이름으로, 이 종족을 지배하던 왕족 칭호 역시 "잉카 (Inca)"였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잉카 문명 (Inca) : 1438~ 1533 (황금기)

 "왕조"를 세운 "망코 카팍"이 부족을 이끌고, "쿠스코"에 정착한 이래, "쿠스코"는 "잉카"의 수도가 되었다. 12C "쿠스코"를 수도로 하여, "잉카 족"이 세운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지방"에 번영했던 제국으로, "잉카 문명(타완틴수유ㆍ4개 지역 연합)"은 1438~ 1533년에 걸쳐 번성하였고, 현재 "페루 영토"에 주로 자리 잡고 있었다.

• 1533년, "사파 잉카"라 불리는 "아타왈파(마지막 황제)"는 점령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명령에 의해, 살해당했다.  "잉카 제국"은 기술ㆍ건축이 발달해 있었고, "제국 전역"에 광대한 2개의 "남북 종단로"로 도로망을 건설했는데,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도로망" 때문에 "에스파냐"는 "잉카 제국"을 아주 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

잉카

"안데스" 지방에는 BC 1000년경부터 수준 높은 농경문화가 발달하였다. 13C , "쿠스코 계곡"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잉카족"이 그 전통을 이어받아 독자적인 문명을 이룩하였다

"잉카"최고신은 "태양신 인티"였으며, "잉카""4개의 수유(suyu)"로 나뉘어, (잉카 신화에 의하면) "수유"의 모서리는 "세계의 배꼽(Qusqu)" 로 맞닿아, 곳에 "수도 쿠스코"가 설립되었다.

제국의 공식 언어는 "케추아 어"였으나, 몇 백 개가 넘는 지역 언어가 통용되었다.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잉카 왕조시대""비라코차 잉카"의 아들 "파차쿠티 잉카 유판키"가 형 "잉카 우르콘"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1438년부터이다.

1438년부터 1533년에 걸쳐 번성한 기간 동안, "잉카 인"들은 점령평화적인 합방을 통해, "안데스 산" 주축으로 하는 "남아메리카 서부"의 주요 영토를 제국의 일부로 편입했다.

"파차쿠티 잉카 유판키(1438~1471)"는 남쪽으로 "티카카 호" 주변 저지대까지, 북쪽으로는 지금의 "키토"까지 정복했으며, 막강한 "창카스 족케추아 족" "치무 왕국"을 지배했다그러나 "왕위 계승"을 위한 싸움은 "에스파냐 인"들이 "페루"에 도착한 1532년까지 계속되었다.

1533, "사파 잉카"라 불리는 "아타왈파(마지막 황제)" 점령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명령에 의해, 살해당하고, "잉카 제국"의 멸망과 동시에 "에스파냐" 지배가 시작되면서, 마침내 "제국"은 무너지고 말았다"잉카 제국"은 정치 조직사회 제도가 매우 발달되어 있었으며, 건축 토목 기술이 아주 우수하였다.

곳곳에 남아있는 신전요새관개 수로 등은 당시의 건축 기술이 우수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대규모의 관개 시설을 농업의 바탕으로 삼고, "감자호박땅콩옥수수목화" 등 여러 가지 작물을 재배했으며, 지금의 "페루 쿠스코 지방"에 남아 있는 거대한 성채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시 계획에 바탕을 둔 대규모의 석조 건물과 도로망을 가지고 있었다또한 에스파냐 인의 무자비한 약탈로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금은 세공품토기직물 등의 독특한 공예품이 뛰어난 공예 기술을 보여 준다.

※  피사로 : 스페인ㆍ1471 (1476)~ 1541 (70세)ㆍFrancisco Pizarro González"잉카 제국"을 정복하였으며, 현재 "리마 (페루의 수도)"의 건설자이다.

"사생아 출신"이며, "아스텍 제국"을 멸망시킨 "에르난 코르테스"와 친척이다"스페인의 에스트레마두라의 트루히요"에서 태어났으며, 출생년도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잉카 제국"을 정복하고, 현재 "리마(페루의 수도)"를 건설했으며, 마지막 생애 2년간을 "리마"에서 보냈다.

동료인 "디에고 데 알마그로""칠레 원정"에 실패한 뒤, "피사로"의 형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절당하자, "피사로의 형제들"을 가둔 사건이 있었는데, "피사로"는 이를 구실로 "알마그로" 처형했다.

이에 1541.06.26, "알마그로"의 아들과 친구들이 "피사로의 궁"을 공격해, 칼로 "피사로"의 목을 찔러 살해했으며, "피사로"는 죽을 때, 목에서 나온 피로 "십자가"를 그린 다음, 십자가에 입을 맞추고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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