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문명 (Cradle of Civilization) "이란, 인류 문명의 원류를 "중국ㆍ인도ㆍ이집트ㆍ메소포타미아"의 4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으로, 중국 청나라 말기 변법자강운동 사상가인 "량치차오 (梁啓超ㆍ양계초ㆍ1873~1929ㆍ56세ㆍ중화민국 정치가ㆍ언론인ㆍ저술가)"가 1900년 자신의 저서 "20세기 태평양가 (二十世紀太平洋歌)"에서 언급한 이후, 일본의 고고학자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등이 사용하면서 주로 동양을 중심으로 확산된 개념이다.
1.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명을 발달시킨 "메소포타미아ㆍ인더스ㆍ이집트ㆍ황하" 문명
• 문명의 성립 요소 : 일반적으로 국가ㆍ청동기ㆍ문자의 성립 등
• 문명 발생지의 특징 : "북반구"에 위치ㆍ대부분이 기후가 온화ㆍ모두 큰 "강"을 끼고 있어, 기름진 토지를 지닌 지역→ 4대 강을 끼고 있어, 기후ㆍ교통ㆍ토지 등 "고대 농업 발달"에 유리
• 메소포타미아 : BC 4000~ BC 600년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 : 유프라테스 강ㆍ티그리스 강의 주변 (이라크)ㆍ수메르인(Sumer) 문명
• 인더스 문명 : BC 3300~ BC 1900년 : 인더스 강ㆍ가가하크라 강(파키스탄) 사이ㆍ갠지스 강
• 이집트 문명 : BC 4000~ BC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 나일 강 하류
• 황하 문명 (황허 문명) : BC 2000 ~ : 황허강 중하류 지역ㆍ동아시아 문명의 주춧돌
2. 이집트 문명 : BC 4000~ BC 332년(알렉산드로스 대왕) - 나일 강 하류
• 이집트는 "원조 수로 제국"으로서, "관개 산업"에 의존하였던 문명이다.
• "나일 강 하류"에서 번성한 문명이었으며, 최전성기인 BC 15C에는 "나일 강 삼각주"에서 "제벨 바르카"까지 세력을 뻗쳤으며, 이 시기에는 "에티오피아"와도 교류하기까지 했다. BC 3200~ BC 332년까지, 3,000년 동안 존재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으로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 "고대 이집트 문명"은 흔히 "상 이집트ㆍ하 이집트"로 나뉜다. 이 강은 "석기 시대"와 "나카다 문화시대"로부터 근근이 이어져온 "이집트 문화의 동맥"이다. 때문에,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를 "나일 강의 선물"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 "나일 강"은 남쪽에서부터, "지중해"를 향해 북쪽을 향해 흐른다.
"나일 계곡"은 "에티오피아의 고원"에서부터 그 물줄기가 갈라져, 내려온다. "나일 계곡" 외곽의 사막 지대는 "지중해"에서 남쪽으로, "수단 중북부의 앗바라"까지 펼쳐져 있는데, 대부분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으며, 간간이 생기는 "오아시스" 주변을 빼고는 식물이 전혀 자라지 않는다. 해마다 겪게 되는 "나일강의 범람"은 상류의 비옥한 퇴적물을 운반하는 작용을 하였으므로, "나일강변"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홍수는 규칙적으로 일어나서 미리 예측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농사의 시기를 조절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범람 때문에 "태양력ㆍ기하학ㆍ건축술ㆍ천문학"이 발달하였다.
• 왕조 : 고대 이집트 제1왕조~ 제19왕조 • 문자 : 신성문자ㆍ신관문자ㆍ민중문자
• 유명 : 피라미드ㆍ스핑크스ㆍ네페르타리의 흉상ㆍ클레오파트라 7세
① 기자 ("카이로 서쪽 연안"의 지명인데, 보통 서쪽 10km의 유적지)
"제4왕조의 파라오"인 "쿠푸ㆍ카프라ㆍ멘카우라"의 피라미드가 서 있고, 주변에 신전과 "스핑크스"와 귀족의 묘지인 "마스타바"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오스트리아ㆍ미국ㆍ아랍연합" 등이 이를 조사하였다. "기자 묘의 부조"는 "사카라의 부조"보다 떨어지나, "카이로"에서의 교통이 편리하여,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② 사카라 ("카이로" 남방 25km 지점에 있는 지명)
"초기 왕조의 왕 묘"을 비롯하여, "제세르 왕(제3왕조)의 계단 피라미드ㆍ우니스 왕(제5왕조)의 피라미드(피라미드 텍스트가 있음)ㆍ부조의 정수(精髓)라는 티(제5왕조)ㆍ메렐카(제6왕조)의 마스타바ㆍ성우(聖牛)의 묘 세라페움" 등이 있다. "나일강" 쪽으로 고 왕국시대의 수도 "멤피스"의 유적이 있고, 야자수 사이사이에 "라메스 2세"가 세운 "프타흐 신전의 옛터"와 그의 "거상(巨像)"이 있다.
③ 아비도스 (Abydosㆍ"카이로" 남방 550km 지점에 있는 지명)
"초기 왕조의 왕 묘ㆍ신전"이 있고, "고 왕국시대"에는 "오시리스 신(神)" 신앙의 중심지였으며, "신 왕국시대" 말기에 걸쳐, "이집트" 각지로부터 성지(聖地) 순례자가 모여들어, "오시리스 신"에게 바치는 "신전ㆍ개인의 묘"가 구축되어, 신의 가호를 기원하는 "스테레(石碑)"가 세워졌다. "신전"에는 특히 유명한 "세티 1세(제19왕조)의 아름다운 부조와 채색이 잘 보존되어 있다. 여기에서 출토된 "석비ㆍ우샤브티" 등은 방대한 수에 이른다.
④ 테베 (Thebesㆍ 현재의 "룩소르" 일대의 옛 이름)
"제11왕조ㆍ제18왕조" 이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나일강"을 끼고, 동ㆍ서로 나뉘어, 동쪽은 국가 수호신이 된 "아멘 신"의 신전과 시민을 중심으로 하였고, 서쪽은 "왕ㆍ왕족의 능ㆍ묘ㆍ장제전(葬祭殿)ㆍ귀족의 묘"와 같은 사후의 세계가 중심이 되었다.
"아멘 신전"은 "카르나크"가 "본전"이고, "룩소르"가 "부전"인데, 역대의 왕이 계속 덧붙여 건축하였기 때문에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 서쪽 "왕가의 계곡ㆍ왕비의 계곡"은 "신 왕국시대" 왕족의 "영원한 집"으로 계획된 것인데 대개의 것은 즉시 도굴 당하였다.
"데르 엘 바하리(하트솁수트 여왕)ㆍ메디네트 하부(라메스 3세)"의 신전은 각각 개성이 있는 대표적 건축이다. "귀족의 묘"는 미려한 벽면으로 애호가를 매혹시키고 있다.
⑤ 누비아 (Nubiaㆍ아스완부터 제 4카타락트 부근까지의 지역)
: 고대로 "아프리카 내륙부"와 중개무역을 하는 사람이 많았고, 또 이 지방은 "금"의 다량 산출로 역대 이집트 국왕은 "누비아"를 자기 세력 하에 두었으며, 여러 곳에 "신전ㆍ성채"를 구축하였다.
"아부심벨 신전ㆍ부헨 성"이 그 대표적 유적이고, "북 누비아"의 전 유적지가 "아스완 댐"의 건설로 수몰되기 때문에, 유네스코가 중심이 되어, 세계 40개국의 협력을 받아, 해체 이동 등을 하여, 구제되었다.
⑥ 아부심벨 신전 (아스완의 남방 300km 지점에 만든 암굴 신전(岩窟神殿))
"라메스 2세(제19왕조)"가 만든 "암굴 신전(岩窟神殿)"으로 "누비아"에서 최고의 유적이다. "대신전"은 "태양신 라하라크티" 등에, 또 "소신전"은 "하트홀 여신"에게 바친 것이었다.
특히 "대신전" 전면에 있는 "왕의 거상(巨像)"은 높이가 20m 이상이나 되고, 내부의 벽면에는 "카데시 전투" 등의 부조가 있다. "아스완 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되게 되는 것을 세계 각국의 협력에 의해, 약 3,600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구제하였다.
⑦ 투탕카멘 왕의 보물 (테베, 왕가의 계곡)
1922년, "왕가의 계곡" 에서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가 발견한 그의 "왕 묘"에서 부장품으로 나온 것이다. 그의 재위 기간(BC 1354~1345)이 짧았으나, 묘는 완전히 보존된 유일한 것이기도 하였다. 이 보물은 공예적 가치가 높고, 금을 대량으로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특히 귀금속 공예(미라의 마스크 등)ㆍ보석류 세공ㆍ목공예(침대ㆍ의자)ㆍ상아 세공ㆍ석제 용기 등이 주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귀금속 공예는 "중 왕국시대"의 것이 더 우수한 것도 있다.
3. 황하 문명ㆍ황허 문명 (BC 2000~ ) : 황하 중하류 지역ㆍ동아시아 문명의 주춧돌
• 중국의 "황하 중하류 지역"에 성립한 옛 문명의 총칭이다.
예전에는 "세계 4대 문명"으로 분류되었지만, 현재는 "장강 문명" 등 다양한 문명이 중국 각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4대 문명"에 "황하 문명"만을 채택하지는 않으며, "황하 및 장강 문명"이라 한다.
• "선사시대"에 "황하 유역지대"의 산기슭에 있는 물이 솟아나는 지대에 많으며, 수해를 피하기 위하여 "단구(段丘)" 위에 거주했다.
"나일 강ㆍ인더스 강" 유역에서는, 하천의 정기적인 범람으로 인한 비옥한 흙의 퇴적을 이용한 "관개 농업"이 성립했으나, 이 점은 중국 농업의 성립 조건과는 다르다.
"황토"는 잿빛이 나는 "황색의 석영(石英)ㆍ장석(長石)"등의 미립(微粒)의 퇴적으로서, 빗물 속의 석회질을 모아, 땅이 비옥하고 부드러워서, 농경 생활을 하기에는 아주 적합했다. 이 "황토 지대"에서 농업 생산력의 발전을 기초로 문명은 성립된 것이다.
"장강 유역"에 고문명이 성립하지 않은 이유는, 고온다습(高溫多濕)하기 때문에 초목이 무성하여, "철기시대" 이전에는 개간이 곤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장강 중ㆍ하 유역"의 문화 유적의 발굴 조사가 진척중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 신석기 시대 (양사오 문화ㆍ룽산 문화)→ 청동기 문명 (은나라ㆍ주나라)으로 발전
- 남장두 문화 (南莊頭遺址ㆍBC 8700?~ 7500?) - 페이리강 문화 (裴李崗文化ㆍBC 7000?~ 5000?)
- 라오관타이 문화 (老官台文化ㆍBC 6000?~ 5000?) - 베이신 문화 (北辛文化 ㆍBC 6000?~ 5000?)
- 츠산 문화 (磁山文化 ㆍBC 6000?~ 5000?) - 양사오 문화 (仰韶文化 ㆍBC 4800?~ 2500?)
- 허우강 문화 (後岡文化 ㆍBC 5000?~ 4000?) - 다원커우 문화 (大漢口文化ㆍBC 4300?~ 2400?)
- 룽산 문화 (龍山文化 ㆍBC 2500?~ 2000?) - 얼리터우 문화 (二里頭文化ㆍBC 200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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