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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서양

메소포타미아 : 길가메시 ① 서사시 요약 (BC 2600년경ㆍ노아방주?)

by 당대 제일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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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Gilgamesh Epoth)"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보다 1500년가량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스의 "호메로스  (호머ㆍHomerosㆍBC 800?~ 750ㆍ고대 그리스)"가 쓴 "오디세이아"에 비할 만하다.

 

1. 길가메시 서사시 ( Gilgamesh EpothㆍThe Epic of Gilgamesh )

"수메르 신화" 속 영웅 "길가메시 이야기"를 담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 일부가 새겨진 약 3,500년 된 점토판 (가로 (15) x 세로 (12)

BC 1,600년경의 것으로 확인된 "수메르어"로 기록된 "점토판""워싱턴 DC 성경박물관" 전시 목적으로 20 원에 구매하였으며, "길가메시 서사시"의 일부분이 기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길가메시 서사시

•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의 무훈담을 노래한 "길가메시 서사시"는 BC 2000년대에 "점토판"에 적혀 있다 :  구약성서의 "노아의 홍수"의 원형을 포함하고 있고, 반신반인의 영웅 "길가메시"의 위업과 불로초를 구하는 이야기이다. (대홍수와 방주의 건조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 BC 2000년경 발표된, "고대 메소포타미아 인"이 쓴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신화(서사시) , BC 2000년경에 이룩된 것이라 하는데, 각기 다른 시대의 별도의 이야기들을 "길가메시" 한사람에게 통일시킨 것이다.

• "길가메시 서사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보다 1500년가량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  호메로스 (호머ㆍHomerosㆍBC 800?~ 750ㆍ고대 그리스) : 유럽 문학 최고최대의 서사시 "일리아스오디세이아"의 작자. 두 서사시는 "고대 그리스의 국민적 서사시"로 그 후의 문학교육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주인공 "길가메시""수메르바빌로니아" 등 고대 동양 여러 민족 사이에 알려진 전설적 영웅으로, "수메르" 자료에 의하면, "우루크 제1왕조" 이었으나, 뒤에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부조(浮彫) 원통(圓筒)인장(印章) 등의 미술작품에도 가끔 나타나고 있다.

19C, "서남아시아 지방"을 탐사하던 고고학자들이 "수메르"의 고대 도시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견,  주로 BC 7C "니네베의 아슈르바니팔 왕궁 서고(書庫)"에서 출토된, "12개의 점토서판"이 그 전거(典據) 되는데, 1862년 영국의 "조지 스미스"가 이 서판의 내용을 공표함으로써,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2. 길가메시 (재위 BC 2600년경, 126년간 재위)

"고대 메소포타미아(바빌로니아바빌론이라크) 수메르" 남부 도시국가인 "루크"전설적인 ( 시대인 "루크 1왕조")으로 수많은 신화사시에 등장하는 영웅이다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서사시에서 그는 "루가루반다""닌순"사이의 아들로서, "그의 2/3은 신, 1/3 사람"이라고 "반신반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오늘날에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이다.

3. 주요 내용

① "길가메시"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영웅으로, 폭군이 되어 있다.

여신 "아루루"가 괴물 "엔키두"를 보냈지만, 두 사람은 싸움 끝에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숲 속의 괴물 훔바바"를 치러 함께 떠나 이를 무찌른다 다음에 "엔키두""하늘의 황소"까지 죽여 버리는데, 그 죄과로 하늘로부터 죽음의 벌을 받는다. 친구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길가메시"는 죽지 않는 비결을 찾아 헤맨다.

드디어 멀리 성자(聖者)의 섬에 사는 "우트나피시팀(바빌로니아의 노아)"을 만난다 이곳에서 "우트나피시팀"은 옛날 신이 일으켰던 대홍수(구약성서 중 노아의 대홍수 이야기와 거의 동일하지만, 근원설화라고 하기에는 논란이 되고 있다)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도 죽지 않는 비결은 알지 못하고 다만 불로초를 바다에서 캐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길가메시"는 이 풀을 캐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잠시 쉬고 있는 사이 뱀이 이 불로초를 먹어 버려 빈손으로 슬픔에 잠겨 "우루크 성()"으로 돌아온다.

② 우루크의 지배자 "길가메시"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왕으로 2/3는 신, 1/3은 인간인 초인(超人)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그의 압제에 불만을 터뜨리자, 천신(天神) "아누(Anu,수메르어로는 안)모신(母神) 아루루(Aruru)""길가메시"의 힘을 낮추기 위해, "엔키두"라는 힘센 야만인을 만든다 "길가메시" "엔키두"가 싸우고, 예상 외로 "길가메시"가 이기자, 둘은 친구가 된다. 둘은 삼나무 숲의 괴물 파수꾼 "훔바바"를 정벌하는 모험에 떠나, 그를 죽이고 우루크에 돌아온다.

"길가메""여신 이슈타르(Ishtar, 수메르어로는 이나나)"의 유혹을 뿌리치자, "이슈타르"는 아버지인 "아누"에게 "길가메시"를 징벌하기 위해, "하늘의 황소"를 내릴 것을 요청한다. "길가메시엔키두""하늘의 황소"를 죽인다 신들은 "엔키두""훔바바하늘의 황소"를 죽인 데 대해 분노하고, "엔키두"를 죽인다.

친구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길가메시"는 영생의 비밀을 듣기 위해, 죽지 않는 유일한 인간인 "우트나피시팀"과 그의 아내를 찾아 나선다. 고생 끝에 "우트나피시팀"을 만나 "대홍수"에 대해 전해 듣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2번 얻지만 모두 실패하고, "우루크"에 돌아온다.

4. "성경 (노아의 홍수 이야기)" 와의 유사성

"홍수" 설화

성경에서 ""은 사악해진 인간들을 벌하기 위해, "홍수"를 일으킨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포함된 "우트나피시팀"의 이야기에서 ""은 그 수가 너무 많아지고, 소란스러워진 인간들을 벌하려 한다. 이 두 이야기는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은 홍수를 일으켜 세상의 모든 남자들, 여자들, 아기들, 동물들을 멸망시키려 한다.

()은 정직한 인물 한 명을 선택한다. 그 인물은 처음에는 그 ""에 대해 불평을 표한다 ()은 그 인물에게 여러 층으로 된 "나무 방주"를 만들도록 명한다 "방주"는 피치로 틈이 봉해지고, 많은 선실이 있으며, 문은 하나이고, 최소한 하나의 창이 있어야 한다 그 인물은 방주를 만들고, 다른 몇 명의 사람들과 각 종류의 동물들로 "방주"를 채운다.

거대한 홍수가 범람한다. 최초의 산들은 물에 잠긴다 그 인물은 주기적으로 ""를 보내, 근처에 육지가 있는지 살핀다 처음 보낸 2마리의 새는 방주로 돌아오고, 3번째 새는 육지를 찾았는지 "방주"로 돌아오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처음 보낸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고(먹을 시체가 물위에 널렸기 때문에) 중간에 날려 보낸 비둘기만 돌아오고, 마지막 비둘기는 육지를 찾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인물과 가족은 "방주"를 떠나, 동물 한 마리를 살생하는 의식을 치르고 그 동물을 희생양으로 바친다 ()은 희생양을 구울 때, 나는 냄새를 맡는다. 그 인물은 축복을 받는다 ()"홍수"에 대해서 유감을 표시한다.

"성경"과의 유사성

대홍수와 관련된 상징이나 서사 구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이집트 신화"가 보여주는 상징이나 서사 구조인 "인간 삶을 여정으로 보는 것사후 세계의 인정신적 인간의 유한한 생명과 부활동물혼의 묘사신적 존재와의 감응(그리스 신화도 그러하지만)" 등의 유사성은, 기독교 성경과의 비교를 도리어 무색하게 하므로, 여러 고대 종교들이 기록한 "대 홍수기"를 별도의 주제로 설정하고 비교하는 것이 보다 유의미할 것이다.

5. 기원

"수메르 왕 명부"에 따르면, "길가메시" BC 28C "우루크"126년 동안 지배한 왕이었다고 한다.

이 기록에서 이미 "길가메시의 일생"이 신비스럽게 꾸며진 것을 알 수 있다그의 일생에 관한 전설은, 구전되어 ""로 불렸는데, BC 21C , "우르 왕 슐기" , "길가메시" 대한 많은 시들이 지어진 듯하다BC 18C 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길가메시에 관한 시(5)"의 일부가 현재 전해지는데, 이들은 "슐기 왕" 시대에 기록된 시들의 사본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BC 18C "함무라비 왕""고대 바빌로니아 왕국""메소포타미아"의 지배자로 등장하며, "아카드어" 사용하는 "바빌로니아인"들도 "길가메시"에 대한 전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주요 "아카드어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한 구절을 따서 "모든 다른 왕들을 능가하는(Surpassing all other kings)"로 불리는데, "함무라비 왕의 재위" 때에 기록되었다BC 1300년과 1000년 사이에 시인 "-레케-운니니(Sin-leqe-unnini)"그때까지 전해지던 "가메시" 전설을 하나의 서사시로 편집했다고 하는데, "아카드어 판본"을 오늘날 표준판이라 한다

이 판본은 첫 행을 따서, "깊은 곳을 본 이(He who saw the deep)"라고 불린다그 후에 발견되는 여러 판본은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이 표준판을 기초로 한 것으로 생각된다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판본은 "니네베"에 있는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재위 BC 668~ 627) 서고에서 발견된 "12개의 점토판"에 기록된 것이다그러나 이것도 완전치 않아, 학자들은 부분적으로 전해지는 여러 판본으로부터 그 전체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6. "길가메시" 서사시의 발견ㆍ연구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문화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잊어버려졌다18C에 이르러서, "설형문자(메소포타미아 인들이 쓰던 문자)를 독해하기 시작하면서 되살아났다.

다시 "3개 언어"(고대 페르샤어바빌로니아어에라므어)"설형문자"에 의하여, 병기되어 있는 "다레이오스 ""베히스툰 각문(刻文The Behistun Incription)""헨리 크로스위크 로린손(1810~1895)"에 의하여, 채집연구된 것으로, "바빌로니아어(신서체 설형문자)"의 해독이 진행되었다그리고 이것이 "앗시리아 어"의 해독으로 이어져간다.

1845, 프랑스의 "파울 에밀 보타""쿠르사바드"에서 "앗시리아 왕 사루곤 2"의 성터를 발굴한 것을 시작으로, 영국의 "헨리 오스틴 레야드(1817~1894)" "니네베(Nineveh)님루드(Nimrud)앗슈르(Assur)" 차례차례로 발굴하여, 발굴 유물을 자기 나라로 가져갔다.

이때 "설형문자"로 덮인 "점토편"이 대량 발견되었다.

"이것이 앗시리아 어 설형문자인 듯하다"하여, 학자들이 일제히 해독에 달려들었다"바빌로니아 어""앗시리아 어"는 같은 "셈어족"에 속하므로, 해독은 용이했다1858, 마침내 "아카드어(Akkadian바빌로니아어나 앗시리아어 등 오리엔트 권에서 사용된 셈어계 언어) 해독되었다.

1872, "조지 스미스(1840~1876)""대영박물관"에서 "앗시리아 어"의 유물 수리를 하고 있었다.

"앗시리아 학"에 매우 흥미가 있어서, "설형문자"도 박물관에서 일하는 동안에 꽤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그 날도 "니네베"에서 발굴된 "앗슈르바니팔(Ashurbanipal) 왕궁도서관""점토판" 문서의 단편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그는 기묘한 단편을 발견하였다. 그 단편은 반으로 깨어져 있었는데, 원래는 "6개의 난"을 가지고 있던 "점토판"이라고 생각되었다3란에 이렇게 적혀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방주가 니실산에 표착하였다... 나는 비둘기를 날렸다. 비둘기는 날아갔는데 되돌아왔다 쉴 장소를 찾지 못하고 되돌아온 것이다..."

"스미스"는 이것이 "노아의 홍수"의 일부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해 12, "스미스"는 이 발견을 학회에 발표하고, 그것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서판"은 불완전했으므로 그 앞은 알 수 없었으나, "더 데일리 텔레그래프"지가 자금을 제공하여, "스미" 익년 "니네베"에 가서, 다행히 "결락부분 17"의 점토판을 발견하였다그는 3번이나 "니네베"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 흥미 깊은 "문서의 해독"이 시작되었다주인공의 이름은 최초에는 "니므롯"이라 불렀다"구약성서 창세기 10"에 있는 "사냥꾼 니므롯"이라는 영웅에 비정된 것이다당시의 인명은 "표의 문자"로 나타내고 있었으므로, 바른 독음은 알기 어렵다당초에는 "이즈도우바르기슈디바르" 등으로 읽었다.

1891년에 "핀체스"에 의하여, "길가메시"라고 읽게 되어, 이후에는 이것이 바른 것으로 되었다.

또 위에서 말한 "앗시리아어 판" 만이 아니라, 그것보다 일찍이 성립된 "고바빌로니아어 판슈메르어 판힛타이트어 판후리어 판" 등의 단편이 다른 곳에서 속속 발견되었다이것에 의해, "앗시리아어 판"의 결락부분이 보완됨과 동시에, 시대에 따른 내용의 변천 등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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