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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ㆍ2차 세계 대전ㆍ독일ㆍ일본

인물 : 괴벨스ㆍ나치당의 뇌ㆍ절름발이 악마ㆍ선전장관 (대중계몽)

by 당대 제일 202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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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 (Goebbelsㆍ1897~1945.05.01ㆍ48세)"는 나치 독일 대중계몽 선전장관 (교묘한 선동정치의 1인자)ㆍ나치당의 뇌ㆍ절름발이 악마로 불렸으며, "나치"를 "볼세비키"에 대항하는 "십자군"이라 선전했고, 이 생각은 "로마 가톨릭 교황"과 일치했다.

 

1. 괴벨스 (요제프Paul Joseph Goebbels1897~1945.05.01향년 48)

출 생 : 프로이센 왕국 라이트(Rheydt)          사 망 : 독일 베를린           사 인 : 자살           별 칭 : 나치당의 뇌절름발이 악마           학 력 : 본 대학교뷔르츠베르크 대학교프라이부르크 대학교ㆍ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종 교 : 가톨릭           정 당 :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           자 녀 : 6(아들- 1- 5)

 경 력 : 1926.11~1945.05 : 나치독일 베를린 대관구지휘자 1933.03~1945.04 : 대중계몽 선전장관 (히틀러 내각) 1945.04.30~05.01 : 나치 독일 국가수상 (괴벨스 내각)

"나치 독일"에서 "국민 계몽 선전부 장관"의 자리에서, 나치 선전미화를 책임졌던 인물이다"히틀러"의 최측근으로, 독일 국민들이 "나치 정권"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주로 그의 헌신 때문인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나치당의 뇌"라고 불릴 만큼, "나치당의 지식인"이었던 그는 나치당의 제복 대신 양복을 주로 입었다

"선전 방법" 뿐만 아니라, 유창한 "말 솜씨"를 가지고 있었고, 그는 사람들을 선전하여, 광신적인 사람들로 만들었는데, 특히 "라디오TV"를 통해 정치선전을 했는데. "정기적인 TV방송"으로 선전을 한 것은 그가 세계 최초였다그의 선전 방송을 들은 당시 "독일 국민들"은 패전의 상황에서도 승리를 확신했다고 한다"그는 결코 성급하지 않았다. 주도면밀하고 냉철했다. 얼음처럼 차가웠고 악마적이었다."고 한다.

2. 최 후

1945.05.01, "괴벨스""베를린"의 포위된 벙커 안에서, 초창기 나치 지도자들 가운데, 유일한 심복으로 "히틀러"를 보좌하고 있었다재능 있는 "나치의 무대감독""괴벨스"1945.04.30"히틀러"가 죽은 후, 1일 후 포위된 벙커 안에서 "아내아이들(6)"을 데리고, 동반자살을 함으로써, 가장 소름끼치는 잔혹극의 연출을 마쳤다

1일 동안, 불과 몇 M2의 공간 속에서 그는 그렇게 "비스마르크"의 마지막 후계자가 되었다04.30"히틀러"가 자살한 후, "히틀러"의 뜻에 따라, "제국의 총리"로 임명되었으나, 다음날 "총리 관저의 대피호"에서, "6명의 아이들(아들- 1- 5)"에게 독약을 먹여 살해하고, "아내(마그다 괴벨스)" 같이 자살하였다그리하여 전쟁 후에 남은 유일한 가족은 "하랄트 크반트(Harald Quandt)"였다"하랄트 크반트""아내(마그다 괴벨스)"가 전 남편 "크반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는데, 1944전쟁 중, "공군 중위""이탈리아"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부상을 당해, 적에게 포로로 붙잡혔기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3. 생 애

"괴벨스"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 "폐렴"을 앓아,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폐렴"으로부터 살아났으나, 대신 몸이 허약해졌고, "골수염"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었다가족은 그를 치료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수술 또한 실패로 돌아갔고, 그의 다리는 ""처럼 굽어졌으며, 굽어진 다리 때문에 친구들은 그를 놀렸고, "괴벨스"는 자기 자신을 열등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고, 성격도 내성적으로 변했다"1차 세계대전" , "괴벨스"는 다리가 굽었기 때문에 병역에서 면제되었는데, 훗날 그의 정적들은 이것을 절뚝이는 걸음걸이를 "악마의 갈라진 발톱" 비유하기도 했다.

이런 결함은 그에게 강렬한 보상심리를 유발함으로써, 불운한 인생의 불씨가 되었다하지만 이런 신체적인 결함을 지식으로 만회하려고 했기 때문에 후에 그가 지식인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벨스"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은 공부였으며, 특히 학창시절, "독일어"를 다루는 실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차 세계대전" 독일 패전이후, 어려운 "독일 경제" 속에서, "벨스"신체적 장애에다가, 진로도 막막하였으며, 애인에게도 차인 상태라, 정말 최악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은 "박사학위 취득"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결국 "박사"에 성공하였다그는 "가톨릭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본 대학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는 자기 자신을 항상 "박사"라고 불렀다고 한다그러나 수입이라고는 과외나, 언론사 기고논문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23"뮌헨 폭동(맥주 홀 폭동)"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히틀러"에 대한 호감이 켜졌고, 친구를 통해 "나치당"에 일하게 된다"괴벨스""히틀러" 눈에 띄어, 당내에서 활동하면서 "히틀러"를 이어, "나치당" 내 최고 연설가가 되었고, 소수 정당에 불과했던 "나치당" 지지세가 엄청 올라가게 되면서, "나치당 중앙 선전국장" 직위에 오르게 되었으며,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나치 정권"의 악행에 앞장섰고, 전쟁 중에도 "침락 전쟁"을 미화하였다.

"독일군""스탈린그라드아프리카"에서 패배하여 전세가 역전되면서, 그는 절정기를 맞게 된다비로소 그는 패배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선전의 대가"로서 진면목을 보일 수 있었다

"괴벨스"가 당시 "상황을 왜곡 선전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오히려 그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신문라디오"를 통한 선전활동에 주력했던 것은 "대중의 희망을 불일으키는 일"이었다그 방편으로 "괴벨스"는 역사적인 예를 들고, 여러 사례들을 비교했으며, 소위 "불변의 역사 법칙"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최후 수단으로 어떤 종류의 "비밀 병기들"을 언급하기까지 했다유력한 "나치 간부들""벙커요새"로 숨어버린 한참 뒤에도, "괴벨스"는 대중 앞에 끊임없이 다가서는 용기를 보였다이때 보여준 의연한 모습은 그때까지 극히 부정적이었던 그의 이미지를 크게 개선시켰다.

그의 활동은 특히 "후방 전력"을 강화하는데 효과적이었으며, 바야흐로 "총력전의 주창자"가 되었다1944.07.20, 감행된 "히틀러 암살미수사건""히틀러""괴벨스"를 자기 곁으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1944.08.25, "괴벨스""총력전"을 위한 "3제국 전권위원"이 되었으나, 그가 곧 탄식했듯이 모든 것이 너무 늦게 왔다.

4. 괴벨스 어록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소.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하겠다고 하는 걸 해왔을 뿐. 그리고 단 한 번도 그걸 숨긴 적이 없어 그걸 알면서도 우리를 뽑은 것은 바로 저자들이야. 그리고 이제 그들이 그 대가를 치룰 차례지.          우리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 아니면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 정치란 불가능의 기적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 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대중은 속아 넘어간다.          거짓말도 100번 말하면 진실이 된다. 거짓말도 매일하면 진실이 된다.          99가지의 거짓과 1개의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거리를 정복하면 군중을 장악할 수 있고, 군중을 장악하면 국가를 장악할 수 있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피에 굶주리고 복수에 목마른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대중들의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

대중은 여자와 같아, 자신을 지배해 줄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 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청중은 내가 명령만 한다면, 건물의 옥상에서라도 뛰어내리겠지.          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 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생각 이라는 것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한말을 그대로 반복해서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국민들에게 낙관적 전망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서 긴장을 해소하고 유쾌함을 주는 오락 영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영화야말로 일급의 민족 교육 수단인 만큼, 모든 영화는 면밀히 구성되고 조직되어야 한다.          민들에게 무조건 불쾌한 뉴스를 숨기는 것은 심각한 실수이다. 적당한 낙관주의를 기본 태도로 삼아야 하지만, 모든 부문에서 좀 더 현실적으로 변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를 능히 소화해낼 수 있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선전의 비결이라 함은, 목표하는 인물을 본인이 그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선전의 이념에 빠지게 하는 것에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선전에는 목표가 있다. 허나 이 목표를 빈틈없이 감추지 않으면 안 된다.          목적을 달성할 인물이 선동 당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 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더욱 더 좋은 통치를 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좋은 선전이 필요하다.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로 통치 없는 선전이 무의미 하듯이 선전이 없는 통치도 있을 수 없다.           선전의 본질은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하나의 예술이다. 그리고 선전담당자는 정말 진실한 의미로 대중심리의 예술가이다 그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매일 매시간 대중의 심장에 귀를 기울여, 그 고동소리를 듣고 그 고동의 맞추어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승부를 하는 사람만이 세계의 본질을 의식할 수 있다.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          영속성도 궁극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있는 것은 변동뿐이다.          여론조사라는 것은 대상을 누구로 잡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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