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시민 (1959~ ) , 그는 누구인가?
베스트셀러 작가ㆍ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가로 활동했으며, 이후 "이해찬(1952~ㆍ돌베개출판사 설립)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제16ㆍ17대 국회의원ㆍ보건복지부 장관(44대) 지냈다. 장관직 퇴임 이후에도 정치 활동을 하였으나,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다. 저서에는 "돌베개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많은데, "돌베개"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1988년, "창작과 비평(출판사)"에 중편소설 "달"로 등단했으며, 작가로 활동하면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 등을 저술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유지수"라는 필명으로, MBC 드라마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의 극본을 쓰기도 했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사망 이후, "친노의 대표주자"로서 큰 인기를 얻어, 민주당계 정당에서 유력 대선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정계 은퇴 이후, 이전부터 "거꾸로 읽는 세계사" 등으로 베스트셀러 경험이 있었던 것을 바탕으로 작가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국가란 무엇인가ㆍ어떻게 살 것인가ㆍ유시민의 글쓰기 특강ㆍ역사의 역사" 등 베스트셀러들을 다수 발간했다. 이러한 작가로서의 경력과 본인의 정치 경력ㆍ지식 등을 바탕으로 "썰전ㆍ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ㆍ유시민의 알릴레오ㆍ정치합시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현재는 작가 겸 방송인을 전업으로 하고 있다.
1985년에 제출된 "항소이유서"는, "유시민"이 약 14시간에 걸쳐, 퇴고 없이 1번에 쓰인 이 글은, 훗날 그의 저서인 "아침으로 가는 길"에 실렸다. 200자 원고지 100여 장(A4지 12장)에 달하는 매우 긴 문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약 14시간에 걸쳐, 퇴고 없이 1번에 쓰인 글이다.
• 1978 : 대구 심인고교 → 1991 : 서울대 (경제학 학사) → 1997 : 마인츠 대 (경제학 석사)
• 저서 : 거꾸로 읽는 세계사 (1989)ㆍ후불제 민주주의 (1989)ㆍ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2002)ㆍ국가란 무엇인가 (2011)ㆍ어떻게 살 것인가 (2013)ㆍ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 (2013)ㆍ나의 한국현대사 (2014ㆍ태어난 1959~ 2014년까지 현대사)ㆍ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2015)ㆍ유시민의 논술 특강 (2015)
2. 서울대 입학ㆍ정치 역정
1959년, "경북 경주시"에서 2남 4녀 중 5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사, 어머니는 구멍가게를 하는 평범한 집안이었다. 저서 "나의 한국 현대사"에서 이 시절을 회고하길, 자기 집은 그래도 밥은 꼬박 먹었는데, 학교에서 주는 탈지 분유와 옥수수 죽을 받아서 먹는 친구들을 보고, 가난이 뭔지 그 차이에 대해 어린 마음에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을 "프티부르주아 리버럴 (자유주의적 소시민계급)" 태생이라고 말한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자식들에게 각종 어린이 신문을 구독하게 하였고, 식사시간에는 자주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한 주제를 두고 자식들과 진지하게 토론했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보건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 작가 겸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다,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을 따라,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 이 과정에서 16ㆍ17대 "국회의원"과 참여정부의 "보건복지부장관 (44대)"을 역임했다. 후임 정권인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노무현 대통령" 정신 계승을 표방하는 "국민참여당"의 대표, "진보좌파통합 정당"을 표방하며, 출범한 "통합진보당"의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하지만, "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심상정 후보"와의 막판 단일화에도 불구,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패배하였고, 자신이 주도했던 "김해시 을 재보궐선거"에서도 패배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크게 약화되었다. 이후,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하여 공동대표가 되었으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으로 "통합진보당"에서 "진보정의당 (현, 정의당)"으로 당적을 바꾸고, 얼마 뒤인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정계 은퇴 이후에도 "정의당" 평당원 신분은 유지했으나, 2018년 작가 활동 전념을 밝히며, "정의당"을 탈당하며, 완전히 정치적 "무소속"이 되었다.
3. 서울대 프락치 사건ㆍ항소이유서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네크라소프의 시구 (러시아 시인ㆍ1821~1878)
1980년대 "서울대 총학생회 복학생 협의회" 간부로 활동했으며, 무고한 민간인을 "안기부 프락치"로 몰아서 감금ㆍ고문(물고문ㆍ각목으로 구타하는 것 등)을 했던 1985년 "서울대 민간인 감금ㆍ폭행ㆍ고문 사건"의 주모자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1심에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 형사지방법원 항소 제5부"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약 14시간에 걸쳐, 퇴고 없이 1번에 쓰인 이 글은, 훗날 그의 저서인 "아침으로 가는 길"에 실렸다. 200자 원고지 100여 장(A4지 12장)에 달하는 매우 긴 문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약 14시간에 걸쳐, 퇴고 없이 1번에 쓰인 이 글은 1번에 3장의 서류(교도소 보관용ㆍ법원 제출용ㆍ검찰 제출용)를 써야 하는데 복사기를 쓸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일일이 먹지를 대고 써야 했기 때문에 퇴고 자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프락치 (러시아어) : 원래는 당파ㆍ파벌ㆍ집단 등을 뜻하는 단어이나 한국에서는 어떤 목적을 위해 신분을 숨기고 다른 단체에 들어가 활동하는 사람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 이후로 널리 사용ㆍ1980년대 전후, 국가가 대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투입시킨 가짜 대학생들)
4.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
① 저는 뼛속까지 친노죠.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니까 < 2016.03.17일, JTBC 썰전1부 중, "전원책 변호사"가 "친노냐"고 묻자 >
②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교체" 이야기가 나오자,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했던 멘트
재야 출신 선배들이 노무현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저는 좀 우스워요. 이 사람은 이른바 경제 전문가들과도 얼마든지 토론을 그 레벨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또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하고 만날 때는 그 레벨에서 그 수준에서 또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근데 왜 노무현을 사람들이 평가해주지 않는가? 전 굉장히 서운해요.
특히,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는 386 의원들조차도 그런 기색을 보이는 것. 이런 것은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는 거예요. 만일, 노무현씨가 일정 정도 수준의 대학을 다녔고 거기서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과 일정 정도의 연관을 맺은 상태에서 오늘까지 왔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나 노무현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운하고 이건 역시 운동권 출신들의 오만이다, 이거는 그렇게 보고 제가 이렇게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정서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얘길 들은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서 확실히 기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의사가 있다. 이걸 난 보여주고 싶어요. 노무현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또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왜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가... 그 점에 대해서 저는 운동권도 주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운동권도 주류다, 오만이다. 그렇게 보는 거고...
그리고 오늘의 이 사태에 노무현이 가는 데마다 왕따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받고, 그렇게 해서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들판 위에 나무 위에 혼자 매달려가지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등가적으로 정치인들 사이의 정쟁 혹은 세력다툼으로 보면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것을 보려 하지 않는... 이 지식인들... 한번 좀 다시 좀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가, 그 점이 진짜 안타까워요..
③ 그가 말하는 "노무현ㆍ유시민의 차이"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을 못 나오셨죠? 저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제일 좋다는 대학을 나왔습니다. 제일 좋은 대학이 아니라는 것은 거의 확실해요.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에서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고, 지방에서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을 하셨지만, 저는 서울에서 학생운동을 했잖아요. 저는 기득권층에 완전히 걸치고 있는 사람이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수성가해서 자기 힘으로 변호사가 됐지만, 그걸로 자기 생을 살았던 분은 또 아닙니다.
철처하게 비주류의 삶을 살았던 분이고, 우리 대한민국에서 정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1등 아니고도, 한때 1등이 아니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정당하게 경쟁해서 1등이 될 수 있다. 이런 희망을, 가능성을 보여 준 분 아니에요.
그분의 삶에는 감동이 진하게 있죠. 그렇지만 제 삶에는 그런 게 별로 없잖아요. 그것도 굉장히 큰 차이죠.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좀 깔보는 사람은 많았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어요. 저는 미워하는 사람은 많지만 깔보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5. 김문수 (1951~ ㆍ운동권의 전설ㆍ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ㆍ국회의원 (3선)ㆍ경기도지사ㆍ고용노동부장관)이 말하는 "유시민"과의 기구한 인연
(유시민 후보)는 제가 어려울 때, 가장 어려울 때, 저의 옥바라지도 해주시고, 도와주신 분입니다. 또, 제가 특히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유시민 후보의 동생 "유시주 (1961~ ㆍ서울대 국어교육학과ㆍ번역가ㆍ희망제작소 이사)"라고 있습니다.
그때는 처녀지만, 지금 결혼했습니다만, "유시주"씨가 저 때문에 참 옥고도 치르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또, "유시민 후보" 누님, "유시춘 (1951~ ㆍ고려대 국어국문학과ㆍ소설가ㆍEBS 이사장)" 누님께서는 사실상 참, 저희가 구속됐을 때, 그 "구속자 가족협의회" 총무를 맡으셔서, 굉장히 참 고생 많이 하셨어요.
제가 생각한다면, 평생동안 제가 가장 어려울 때,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유시민 후보"에 대해서 정말, 늘 이렇게 "마음의 부채" 같은 걸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또, 혼자만이 아니라, "유시주" 동생이든지, 다들 온 가족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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