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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ㆍ조폭ㆍ기생ㆍ연예인

주먹 : 잇폰 김두한 ② 우미관 (優美館)

by 당대 제일 2022.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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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12월,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우미관 (優美館)"은 "김두한"이 "우미관"을 중심으로 활약하면서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2002.07~2003.09)"에서는 "구마적 (이원종 분)"이 아지트로 삼아 활동하고 있었지만"우미관" 마당에서 "구마적"을 깬 "김두한 (안재모 분)"이 이곳을 차지하면서 "김두한 패"의 주요 아지트가 되는 것으로 그려졌다.

 

1. 김두한의 우미관 (優美館)

일제강점기 내내, "단성사조선극장" 등과 더불어 "경성"의 유명 극장으로 이름을 날렸다1912.12, 일본인 "하야시다 긴지로(林田金次郞)시바타 미요지(紫田三代治)"가 세운 "조선인 전용 영화관"이었다. 흔히 "처음에는 경성고등연예관(京城高等演藝館) 이름으로 개관했다가, 후에 우미관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2곳은 별개인 곳이다.

우미관

1912, 개관당시 극장은 2층 벽돌 건물에 1,000명 가량이 관람할 수 있는 긴 나무의자가 마련되어 있었으나, 항상 2,000명이 넘는 관람객으로 들어찼다고 한다개관 당시, "무성영화"라서 내용을 설명해주는 "변사"가 있었다.

1916.12,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특약을 체결하여, 조선에서 "유니버설 영화"를 독점 상영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러면서 "우미관"은 조선인들 사이에서 명소가 되었고, "우미관 구경 안하고, 서울 다녀왔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전국에 알려졌다"황금광 시대(찰리 채플린)"를 비롯해서, "카추샤몬테크리스토 백작파우스트" 등의 유명한 서양 영화들을 대거 상영하여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했다.

1918, "단성사"가 영화 전용관이 되기 전까지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서울 내의 유일한 영화관이었다1928, 한국 최초로 "유성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2. 관철동 우미관 (優美館

시간이 지나면서 위상은 많이 떨어졌는데, "단성사조선극장" 등 새로 생긴 영화관들과 경쟁해야했는데 시설 수준이 비교적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관람료를 대폭 낮추어, 1930년대 중반에는 조선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찾는 영화관이 되었다.

관람료가 낮은 건 "종로 5"에 있던 "제일극장"도 마찬가지였지만, 사람들은 "우미관"을 많이 았는데, "우미관"이 있던 "관철동" 주변에는 영화를 보고 나온 조선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선술집 등이 많아 영화보고 난 뒤, 가볍게 술 한잔하기 편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1939.09월에 1차례 고쳐지었고, 1959건물 전체를 화재로 잃은 뒤, "장안빌딩 뒤(화신백화점 뒤)"로 자리를 옮기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여, 1960년부터는 "소규모 2 재개봉극장"으로 명맥만 유지되다가 여러 차례의 영업정지 등으로 인해 적자 운영에 시달려, 1982.11월에 폐업하였고, 폐업 후 건물을 허물고, 상가 건물이 세워졌다

현재 원래 "우미관 터"에는 "우미관 호텔홍길동 중고서점", 이전했던 "우미관 터"에는 "파노라마 뷔페식당"이 들어서있다. "종로 2KFC" 앞 인근에 "우미관 터였음"을 알리는 팻말이 작게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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