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 (1938~ )"은 "고아 출신"으로, 16살 때부터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시작하여, 1982년 이전까지 11차례나 붙잡혀 감옥살이를 한 전력이 있었다. 훔친 물건 중에 "장영자"가 소유한 막대한 가격의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있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 조세형 (1938~ ㆍ전북 전주ㆍ고아 출신)
절도범(1970~ 80)ㆍ강도범ㆍ목사ㆍ전과 16범ㆍ별명 : 대도(大盜, 큰 도둑)ㆍ의도(義盜, 의로운 도둑)ㆍ한국의 장발장ㆍ괴도 루팡ㆍ빠삐용 / 그가 훔친 물건 중에 "장영자"가 소유한 막대한 가격의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있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때 "김준성(전 경제부총리)ㆍ장영자ㆍ국회의원ㆍ부유층" 등 유명인사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만 골라서 털었으며, "김준성(전 경제부총리)" 자택에서 "권총 3정ㆍ실탄 200여 발"을 훔쳐 나와, "장충동파출소"에 몰래 갖다 놓은 일도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도둑질을 당한 몇몇 집은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쉬쉬했다는 발언을 했으며, 사과 박스 등의 뇌물같이 불법으로 얻은 돈 때문에 그랬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훔친 돈의 일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 등, 자신만의 절도 원칙을 분명히 한 도둑으로 유명하다. 2차 공판에서 밝힌 5원칙은 다음과 같으며, ①번째와 ③번째는 지켜지지 않았다.
① 나라 망신을 시키지 않기 위해, 외국인의 집은 털지 않는다 ② 다른 절도범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판ㆍ검사 집은 들어갔다가도 그냥 나온다 ③ 연장사용금지 ④ 가난한 사람의 돈은 훔치지 않는다 ⑤ 훔친 돈의 30~40%는 헐벗은 사람을 위해 사용한다.
당시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 있었던 상황이라, 주로 부유층을 털었던 그를 "영웅ㆍ의적" 등으로 미화하는 풍조가 퍼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1982.11월에 체포된 그는 1983.04월에 자신이 갇힌 법원 구치감에서 탈출하여, 5박 6일간 피신하다가 주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의 추격을 받았다.
그는 지붕을 건너고 담을 넘어, 경찰을 따돌리며 재빨리 도주하다, 결국 어느 가정집 욕실에서 경찰관과 대치했고, 결국 경찰관의 권총에 피격당한 채 검거된다. 이후 "징역 15년ㆍ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고, 흉악범 수용으로 이름난 "청송교도소"의 1평짜리 독방에서 15년 내내 무릎을 꿇고 수갑을 찬 채, "엄정 독거 수용"을 당했다. 그는 자신이 부유층을 골라서 털어서 "괘씸죄"로 무거운 벌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했고, 세간에서도 그가 출소할 시 부유층이 입막음 조로 중형을 내리도록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상습 범죄자였고, 워낙 도둑질한 돈이 많았던 만큼, 그리 불합리한 판결인 것은 아니다. 수감 중이던 1990년에 기독교에 귀의했고, 형기가 끝나가던 1998.04월에 "보호감호 7년"이 적용되어"청송 보호감호소"로 옮겨지게 되자, "보호감호 재심 처분"을 들고 일어났으나, 1심에서 법원이 재범의 우려가 있는 데다 수감기간 동안 기술을 익히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그가 패소했지만. 이후 항소심에서 "종교적 귀의는 진실되며, 15년의 수감 생활을 통해 쇠약해진 몸에 이미 50대에 이르러 재범 가능성은 작다."며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고, 1998.11.26일에 마침내 출소했다.
2. "대도 본색"이 드러난 것 역시, "물방울 다이아"와 관련돼 있다.
"장영자"의 "물방울 다이아 반지"를 찾아준 "강남경찰서 형사강력반" 전원이 파면당한 지, 5개월 만인 1982.11월. "서울 동대문경찰서 형사대"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둑, "조세형"을 체포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가 훔쳐 처분한 "다이아몬드" 뒤를 캐다가, "반포 집"을 찾아냈고, 오토바이로 달아나는 것을, "포니 차"로 뒤쫓아, "국립묘지 앞"에서 격투 끝에 체포한 것이다. "절도전과 11범"인 그는 당시 검찰과 경찰이 알고 있는 한, "서울 장안의 가장 큰 손 도둑"이었다.
1982년 체포 당시, 경찰이 그의 집에서 압수한 보석류ㆍ고급시계는 "마대자루 2개 분량"이었다. "물방울 다이아"를 포함, "루비ㆍ사파이어 반지"는 물론, 이름도 생소한 "파텍 필립ㆍ피아제ㆍ카르티에 시계" 등이 수두룩했다. "동대문서"는 압수품 진열을 위해, 대형 책상 4개를 이어붙이고, 그 위에 차곡차곡 물건을 쌓아 보도진에 공개했다. "웬만한 금은방 하나는 차릴만한 분량"이었다.
"압수품" 중, 가장 주목받은 게, 바로 "물방울 모양ㆍ보트 모양"으로 절삭한 "다이아 2개"였다.
각각 "5.75캐럿ㆍ5.6캐럿". 당시엔 "라운드 컷 0.3캐럿 다이아가 75만원ㆍ0.5캐럿이 160만원"이었고, "2캐럿 이상"짜리는 시중 보석상에서 구할 수도 없었다. 경찰은 혹시라도 진열 중, 물건을 잃을 수 있다고 걱정했는지, "다이아 실물"을 내놓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명예를 고려한다며, 실명 대신 가명을 쓰거나, 일반인이 잘 모르는 부인의 이름만 공개했다.
3. "거대한 다이아몬드", 도난당하고도 신고하지 못한 이유?
5개월 전, "장영자"의 "물방울 다이아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무엇보다, "장영자"가 "한국엔 하나밖에 없다"고 자랑했던 "3캐럿 물방울 다이아"는 저리 가랄 정도로 큰 "5캐럿짜리"를 가진 부호가 더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걸 알아내 물건을 훔친 도둑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물론 "보통사람은 보기는커녕, 이름조차 못 들어본 보석을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는 " 적개심과 호기심도 보였다.
이들 "거대 다이아"의 소유주는 "재벌가 K병원 원장 J씨ㆍS전 국회의원"이었다. 이들 집에서는 "최소 2천만 원"을 호가한다는 "보석 테를 두른 시계"도 함께 도난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까 각각 "1억 원어치"가 훨씬 넘는 금품을 털렸고, 그러면서도 잃어버린 사실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쉬쉬해왔다는 얘기였다. 이들 외에도 "장관급 고위관리"가 "조세형"의 범죄 타깃이 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경찰은 확인해주지 않았다. 누가 됐든 "보석류"를 손에 넣는 과정에 구린 데가 있다는 얘기였다.
4. "조세형"은 잡혔지만, "보석류 소유주" 어떻게 되었나?
언론이 바로 그런 부분을 지적하며, 이슈화를 꾀해도, 경찰은 교묘하게 "예봉"을 피해 갔다. "조세형의 범죄수법"만 세밀히 공개해, 검거의 공은 놓치지 않으면서, 피해자 신원을 알 수 있는 쪽으로 얘기가 번지는 걸 피했다. 대신 조금씩 흥미 위주로 흘려보냈다.
"조세형은 언제나 낮 근무시간에 범행하며, 절대 흉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드라이버 하나면, 무엇이든 딸 수 있고, 사람을 해친 적이 없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사실을 철저히 이용해, 주택가 큰집을 골라 범행했다"
결국 그 해는 그렇게 넘어갔다. 만약 이듬해 "조세형"이 법원에서 전대미문의 "탈주극"을 벌이지 않았다면, 그가 훔쳤던 "물방울 다이아" 문제는 다시 거론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또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물방울 다이아로 대표되는, 냄새나는 축재를 한 사람은 누군지 밝혀라"는 주문을 쏟아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도대체 어떤 도둑놈이 어느 도둑놈의 것을 훔친 것인지, 참으로 너나없이 모두가 도둑놈 세상"이라며 절망하지도 않았을 터다.
5. 1983.04.14일 오후 3시 : 대도 "조세형", 희대의 "대 탈주극"
"조세형"은 "서울 서소문 법원"에서 열린 자신의 "구형공판"에 출석한 직후, "법원 구치감 환기통"을 뜯어내고, 달아나는 "대 탈주극"을 감행했다. "무기징역"에 "보호감호 10년"이 구형된 그는 "구치소"로 이송되기 전, "구치감"에 잠시 머무르는 사이 수갑을 풀고, 포승까지 풀어, "교도관 책상" 위에 올려놓고, 환기통을 뚫었다.
영화에서 익히 본 것처럼, 작은 쇠붙이 하나로, 모든 포박을 풀어낸, "대도"다운 수법이었다. "환기통"을 뚫고, 법원 담을 넘어, 이웃 병원으로 들어간 그는 "구내세탁소"에서 윗옷을 갈아입은 뒤 유유히 번화가로 사라졌다. 그의 탈주가 성공한 지, 몇 시간 만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당장 법원의 허술한 경비 문제가 떠올랐다. "비상경계망"이 펴지고 합동수색작전이 벌어졌다. 거의 자지러진 당국과는 달리, 한편에선 "물방울 다이아" 같은 최고 보석류만 골라 턴 그의 수법과 그가 범행대상으로 삼은 "부호ㆍ관리ㆍ기업인들"이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또, 그가 탈주 전,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내용"도 항간의 화제로 등장했다.
1983.01.26일자, "탄원서"에서 "조세형"은 "나는 세상 사람이 화제로 삼는 물방울 다이아 등 도둑질을 많이 했으나, 피해자는 물론 다른 사람의 피 한 방울도 흘리게 한 적이 없다"며, "그런 내게 중형 구형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장발장은 18년 징역형으로도 교화되지 못했다"며,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16년 교도소 생활을 한 것을 참작해 달라"고 호소했다.
체포 당시, 언론이 그가 "대낮털이 대도"이면서도, "사람을 해치지는 않은 점, 이따금 불우이웃을 도운 점, 냄새나는 집만 턴 점" 등을 보도한 걸, 은근히 상기시킴으로써, "형"을 낮춰보려는 탄원이었다. 그가 도피생활을 하는 동안, 새로운 사실도 몇 밝혀졌다. 그는 그동안 10번 교도소를 들락거렸고, 1982.03월, "7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1982.11월, "동대문경찰서 형사대"에 체포될 때까지, 6회 이상, 10억 원대 물건을 훔쳤고, 재판을 받는 동안에도 다른 범죄사실이 속속 추가됐다. 범행현장에선 1번도 잡힌 적이 없으며, 장물을 처분하는 과정에서만, 꼬리가 밟혔다. 10월에, 정식 결혼을 했으며, 결혼식은 부자들만 가입할 수 있는 "사파리 클럽"에서 한 것도 밝혀졌다. 범행은 일부러 "부잣집"만 골라 했으며, 서울역 노숙자나 걸인 등에게 훔친 돈 일부를 주어왔던 것도 확인됐다.
6. "재 검거과정"에서 총을 맞고, "의적화"되기도
"법원 구치감"에서 탈주한 지 엿새. 정확히 115시간 만인 1983.04.19일 오전 10시. 그동안 꽁꽁 숨어있던 "조세형"은 "퇴계로 6가" 부근을 서성이다가, 그의 얼굴을 알아본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쫓기게 됐다.
그는 이때 그동안 알려졌던 것과 달리, 칼을 빼들고, "가까이 다가오면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자주 범행대상으로 삼아, 지리가 익숙한 "장충동" 쪽으로 달아났다. 담을 넘거나, 지붕을 타며, 달아나는 것을 경찰뿐 아니라, 시민들도 뒤쫓기 시작했고, 끝내 그는 "장충동"의 한 민가로 숨어들었다.
다급해진 그는 여기서 한 "대학생"을 인질로 삼아, 대치했다. 곧바로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와, 문을 열려고 했고, 그는 체념한 듯 언뜻 투항 의사를 비쳤다. 그러나 경찰은 인질을 잡고 있는데다, 흉기까지 든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먼저 "가스분사기"를 쏘고, 이어 "권총 2발"을 쏘아, 그를 쓰러뜨렸다.
7. "탈주범 조세형" 검거
달아나는 순간부터 "조세형"을 쫓아왔던 시민들은 이때 "항복하겠다는데, 왜 총을 쏘느냐? 물방울 다이아 주인 등 뭔가 새 사실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죽이려는 것 아니냐?"고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다행히 총을 맞은 그의 상태도 크게 위중한 것은 아니었다. 수술을 받고, "행형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그러나 엄청난 "귀금속류"를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국민적 지탄은 회복되지 않았다.
특히 "물방울 다이아"를, 그것도 "5캐럿 이상"이 되는 것을 가진 사람이라면, "장물이거나, 뇌물로 받았거나, 아니면 밀수한 것"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거기다 사회정화를 외치면서도, 내부 부정비리가 끊이지 않는 "전두환 정권"의 행태와 맞물려, "조세형"을 "의인ㆍ의적화"하는 분위기도 생겼다.
8. 끝내 밝혀지지 않은 "물방울 다이아"의 진실
당연히 "국회"에서는 이 문제가 최고 이슈가 됐다. "조세형"이 다시 잡힌 날, 열린 본회의에서 한 야당의원은 "도대체 물방울 다이아는 뭐고, 카르티에 시계는 어떻게 생겨먹은 것이냐?"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수억 수천의 귀금속을 집에 숨기고 사는 사람이 대도냐, 아니면 조세형이 대도냐?"고 총리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시중에선 "거대한 도둑, 거도가 대도 조세형에게 당했다고 하는데, 진실을 밝혀, 국민의 울분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9. "조세형"이 밝힌 "15년 전의 진실"
그럼에도 "물방울 다이아" 등 "원 소유주"에 대한 의혹과 소유 경위는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12ㆍ12쿠데타ㆍ광주민주항쟁 유혈진압ㆍ삼청교육대를 통한 철권정치로 서슬 퍼렇게 군림하던 신군부 정권이 뜻하지 않게 물방울 다이아의 저주를 받았다"는 얘기가 퍼져 나갔다.
"조세형"은 1998.11월 출소했다. 그는 한때 "다시는 범죄에 발 들이지 않고, 신앙인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며, 대학에서 범죄 특강을 하는가 하면, "사설 경비업체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그 역시 "물방울 다이아의 저주"를 받았을까, 2001년 "일본"에 건너가, "대낮 빈집털이"를 하다 붙잡혀 현지에서 수형생활을 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대도답지 않은 좀도둑질"과 "장물아비 짓"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2010.07월, 결국 "장물 알선죄"로 2년 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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