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소니"라고 불린 "이성순 (1916~1983ㆍ67세)"은 1949년 겨울쯤, "김동희 (김두한의 평생지기)"와 "서울 명동극장" 인근 공터에서 맞장을 떴다. 당시 "김동희"는 "김두한"과 함께, "명동극장" 옆 맥주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1. 당시 주먹세계
한반도의 주먹의 모태가 되었던 "서울 종로 뒷골목"에서는 노른자위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여러 강자들 간에 피비린내는 결투가 벌어졌다. 가장 큰 경제적 이권이 보장되는 곳인 "종로 뒷골목"은 내노라하는 주먹들이 모여들어서 자기만의 주먹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는데, 그들은 "김두한ㆍ구마적ㆍ신마적ㆍ김기환ㆍ김무옥ㆍ문영철ㆍ뭉치ㆍ김영태ㆍ휘발유"같은 진짜 주먹과 배짱이 강했던 당대의 걸출한 주먹들이었다.
1936년, 결국 고작 19세에 불과했던 청소년 주먹 "김두한"이 전설의 주먹 "구마적ㆍ신마적ㆍ뭉치" 등의 걸출한 오야붕들을 물리치고, "종로의 최고 오야붕"으로 등극하였고, 이어서 그는 "서울" 전 지역의 주먹들을 공략해서, "서울"을 대표하는 최고의 주먹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김두한"은 "신마적"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했는데, 마찬가지로 "시라소니"도 "신마적"과 맞대결이 이루어졌다면, "김두한ㆍ시라소니" 간의 간접적인 싸움 실력의 비교가 가능했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또한 그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전국의 각 지역마다 자신의 부하들을 진출시켜, 자신의 나와바리를 확대해나갔는데, "부산~ 평양"까지의 한반도 거의 대부분의 대도시들을 자신의 나와바리로 편입시키기까지 했다.
"김두한"이 나이 20세가 되었을 무렵, 이미 한반도의 대부분 지역들을 자기세력권으로 편입시켜 놓았는데, 바야흐로 "김두한의 주먹 천하"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반도"에서 최고의 주먹으로 호령했던 그도 복속시키지 못한 유일한 지역이 한 곳 있었는데, 바로 한반도 북쪽 끝에 있는 "신의주"였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신의주"만이 "김두한의 우미관 조직"에 복속하지 않았고 끝까지 대항하고 있었다.
당시 "평양 이화룡 조직"도 "김두한의 우미관"에 복속 당했지만, "신의주"가 끝까지 "김두한" 조직에 복속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신의주"에 북한 최고의 주먹이라고 불리는 걸출한 싸움꾼이 1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시라소니"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이성순"이었다. 1936년도 당시, 한반도의 주먹 판도를 좀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남한지역 최고 주먹은 단연 "김두한"이었고, 실제로 "김두한"은 자신과 부하들이 직접 남한 대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그곳의 토박이 주먹들을 물리치고는, 대부분의 남한 지역의 주먹들을 자기 휘하에 복속시켰다.
반면 같은 시기, 북한에서는 "시라소니"라는 대단한 싸움꾼이 출현해서, "신의주" 뒷골목의 막강한 주먹들을 모두 제압하고, "신의주"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했고, 그 후 "시라소니"는 "북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내노라하는 강자들을 모두 쓰러뜨리면서, "북한 최고의 주먹"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남한에서는 "김두한"이 "신마적(엄동욱)"을 꺾고, "경성" 최고의 오야붕으로 등극했을 당시에, 북한에서는 "시라소니"가 천하의 "박두성"을 제압하고, "함경도"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했던 것이다. 그렇게 같은 시기에, 남ㆍ북 각 지역에서 2명의 뛰어난 싸움꾼이 거의 동시에 "최고의 주먹 짱"으로 올라섰던 것인데, 이처럼 같은 시기에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매우 신기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두 사람이 각기 남ㆍ북의 최강의 주먹으로 올라섰던 1936년도이기에, "시라소니"는 나이가 21살로, 19살이었던 "김두한"보다 2살이 더 많았다.
2. 싸움 일화
① 김두환이 형님으로 모심 - 김동회 (김두한의 평생지기) : 시라소니와 맞장을 뜬 유일한 인물
1949년 겨울쯤, "김동희"는 "서울 명동극장" 인근 공터에서 "시라소니"와 맞장을 떴다. 당시 "김동희"는 "김두한"과 함께, "명동극장" 옆 맥주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동희"는 술자리에서 이북 사투리가 너무 시끄럽게 들리자, "시라소니" 일행에게 "야! 조용히 술 마셔"라며, 시비를 걸었다. 순간 "시라소니"가 "야, 뭐 어드레!"라며 고개를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라소니"는 약자가 건드리면,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김동희"는 약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큰 키에 딱 벌어진 어깨와 눈빛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싸움꾼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두한"은 두 사람이 싸울 것 같아 말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김동희"가 "한판 붙자"며, 대결을 신청했다. "시라소니"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동희"는 "시라소니"가 뛰어난 싸움꾼으로 소문나 있어, 사전에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시라소니"의 주특기인 "공중걸이 박치기"만 피한다면, 승산 있는 싸움으로 판단했다. 반면 "시라소니"는 "김동희"의 싸움 실력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당시 "유도"가 주특기인 "김동희"와 "공중걸이 박치기"가 주특기였던 "시라소니"와 싸움이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10여 분 동안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피 말리는 결투를 벌였다. 그러나 지존을 가리지는 못했다.
"김두한"의 중재로 싸움을 중단한 두 사람은 다시 맥주 집으로 자리를 옮긴 후 화해했다. "김동희"는 "시라소니가 워낙 유명한 싸움꾼이어서 결투를 벌이고 싶어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며, "시라소니는 정말 대단한 싸움꾼이었다."고 회고했고, "김두한"도 말로만 듣던 "시라소니"의 싸움 실력을 본 후, "시라소니"를 주먹 선배로 극진히 모셨다는 후문이다.
② 박두성 (당시 북한 최강 주먹)과 대결
"시라소니"가 북한 최고의 싸움꾼으로 불리우게 된 계기는, 당시 북한 최강의 주먹이라고 불리던 "박두성"을 1대1 대결에서 KO 시켰기 때문이다.
1936년, 21세에 불과했던 "시라소니 이성순"은 "신의주" 한 술집에서 "안주에 북한 최고의 주먹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자존심이 확 상한 나머지, 그 최강 주먹에게 도전하기 위해서 혈혈단신 혼자서 "평안도 안주"로 그를 찾아갔다. 씨름대회에 출전해 황소 10마리를 타냈을 정도로, 당시 북한지역에서 "최고의 씨름꾼"으로 명성이 높았던 "박두성"은 기골이 장대했고, 힘ㆍ완력이 쎄기로 당해낼 장사가 없었으며, 뒷골목에서 수많은 강자들을 쓰러뜨리고, "최고의 주먹"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주먹계의 대단한 강자였다. 씨름계에서나, 싸움꾼으로서의 관록으로나 명실공히 최강의 실력자였던 "박두성"에게 "신의주"에서 찾아온 신출내기 싸움꾼 "시라소니"는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느닷없이 "평안도 안주"로 찾아와서, "안주에서 가장 쎄다는 박두성이 어디 있소?"라고 말하는 "시라소니"를 보고는 천하의 주먹 "박두성"은 기가 찼고, 어이가 없었다. 몸무게 90kg에다, 키가 6척 장신이며, 기골이 장대한 "박두성"과 65kg에 175cm의 삐쩍 마른 몸을 가진 "시라소니"의 싸움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시라소니"는 "박두성"에게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두 주먹 간에 피 말리는 치열한 혈전을 벌인 끝에 "시라소니"는 자신의 "공중걸이 박치기"로 "박두성"을 기절시키면서 싸움의 승리를 거두었고, "북한 최강의 주먹을 쓰러뜨렸다."는 커다란 수훈을 세우고야 말았다.
"자신이 질 것"이라는 대부분 사람들의 냉소적인 진술과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시라소니"는 특유의 담력ㆍ날렵하게 빠른 몸놀림ㆍ신출귀몰한 싸움 기술을 발휘해서, 천하제일의 주먹 "박두성"을 보기 좋게 길바닥에 쓰러 뜨렸던 것이다. "시라소니"가 북한 최고의 주먹 "박두성"을 꺾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북한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비야흐로 "시라소니의 주먹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③ 중국ㆍ만주의 주먹 신화 : 신의주를 떠나, 중국ㆍ만주 일대 전전
• 천진 : "카네미야" 일당과의 40:1 대결 / 상해 : 칼잡이 "하야시 반장"과의 칼ㆍ맨손 대결 / 북경 : "구로야마(일본 야쿠자 두목)" 대결ㆍ마오(북경 쿵푸 대가) 대결 / 만주 봉천(심양) : "이상대" 부하들과 대결
"시라소니"는 "박두성"을 꺾고 북한 최고의 주먹으로 올라서고 난 후, "신의주"를 떠나 "중국ㆍ만주일대"를 전전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 이유는 "시라소니"가 조선인들을 못살게 굴던 "일본 형사"를 두들겨 팬 것이 이유가 되어, "신의주"에서 "시라소니 체포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시라소니"는 의협심이 강한 인물로서, 약한 조선인들을 괴롭히는 일본 형사를 두들겨 패 주었던 것인데, 그 때문에 "일경"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어 결국 "압록강"을 건너서 "만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37년, "시라소니"는 "압록강"을 건너 "중국ㆍ만주"로 건너간 이후, 해방될 때까지 거의 8년 동안 "중국ㆍ만주"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국제 주먹들과 대결을 펼치면서, "중국"에서 화려한 "싸움 신화"를 이룩해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를 "동양 최고의 주먹"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 천진 : "카네미야" 일당과의 40:1 대결
"카네미야" 패거리 40명과 싸움으로, 주먹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싸움 일화이다. 1945년경, "천진"에서 40명의 폭력배들에게 붙잡혀 있던 자신의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혈혈단신 혼자서 적진의 아지트로 쳐들어갔고, 실제로 40:1의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적도 있었다. 당시 "시라소니"는 40명 중 20명을 혼자서 쓰러뜨렸고, 나머지 20명은 "시라소니"의 신출귀몰한 싸움 실력에 두려움을 느끼고 물러났으며, "야쿠자 두목 카네미야"는 "시라소니"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고 말았다.
④ 신마적 (엄동욱) 조직과 만남
두 사람은 "북경"이 아닌 "만주 봉천"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만주 봉천(심양)"은 과거 "후금ㆍ만주국"의 수도였으며, "만주" 에서 가장 중요한 대도시로, "만주"의 경제ㆍ행정의 중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1937년 경, "시라소니"는 "만주"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인 "봉천"에 진출했으며, 그 당시 "봉천"의 유흥 지역인 "유조구 지역"을 "신마적" 주먹조직이 지배하고 있었다. "신마적"은 한때 "경성 종로지역"에서 큰 오야붕으로 군림했던 최강의 주먹이었던 "엄동욱"이다.
"종로"의 막강한 주먹으로 활동했던 "신마적"이 한참 후배인 "김두한"의 도전을 받고, "턱뼈ㆍ갈비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3개월간의 입원 치료를 받는 비참한 처지로 몰락했었다. 그렇게 "김두한"에게 패했던 "신마적"이 이듬해 봄 경에, "경성"에서 1,000km나 멀리 떨어진 "만주 봉천"의 유흥지역에서, 부하들 100여 명을 거느린 거대한 주먹조직의 오야붕이 되어 있었다. "신마적"은 "종로"에서 "김두한"과 대결에서 패한 후, 자신의 직계동생들인 "해학기" 등 7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곧바로 "경성"을 떠나 "만주 봉천"지역으로 굴러 들어왔던 것이다.
당시 "김두한"이 "한반도" 전체로 진출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두한"에게 패한 악몽을 모두 씻어버리기 위해서, "신마적"은 동생들을 데리고 "한반도"를 벗어나서, "만주 봉천지역"으로 이주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신마적"에게는 "김두한"에게 패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는 가장 끔찍한 악몽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만주"로 굴러들어온 지, 불과 3개월 만에 "신마적"은 "만주"의 커다란 유흥지역에서 자신의 거대한 주먹조직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당시 "만주"에서 가장 거대한 주먹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봉천 두목 이상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상대"는 원래 "평양"사람으로, 일본인들의 횡포가 싫어 "조선"을 떠나서 "만주"로 표류해왔던 인물이었다. "이상대"는 워낙 힘이 장사고, 주먹이 쎌 뿐 아니라, 포용력ㆍ리더쉽을 모두 갖추고 있었는데, "만주"에서 텃세를 부리던 중국 깡패들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조선인들을 모아 거대한 주먹조직을 만들었고, 자신의 조직을 더욱 키워 1930년대 후반에는 "만주"에서 가장 큰 주먹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다.
1937년, "이상대"의 나와바리인 "봉천지역"으로 이주해온 "신마적 엄동욱"도 같은 "평양"이 고향이라, "신마적"은 지인의 소개로 어렵지 않게 같은 고향 출신인 "이상대"를 만날 수가 있었고, 두 사람은 서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상대"는 한때 "경성" 오야붕이었던 "신마적"을 크게 우대해주었고, "신마적"에게 돈ㆍ인력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어, "신마적"이 "봉천" 유흥가인 "유조구 지역"에서 주먹조직을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만주" 최고의 주먹조직 두목인 "이상대"의 도움으로, "만주지역"으로 거의 쫒겨오다시피한 "신마적"은 수개월 만에 100여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는 중급 규모의 자신의 주먹조직을 만들 수가 있었고, "봉천 유조구 거리"에서 제2의 주먹 인생을 활기차게 펼쳐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신마적"이 "만주 봉천"에서, 새로운 신흥 주먹조직을 만들어 활동해 나가고 있을 때, 느닷없이 "시라소니"라는 방랑자가 나타났던 것이다.
"봉천지역" 최고의 유흥가인 "유조구 거리"에 "시라소니"가 나타났는데, 이 지역을 자신의 관할 지역으로 삼고 있었던 "신마적"과는 어떤 형식으로든 1번쯤 조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라소니"가 갑자기 "유조구 거리"에 나타났던 이유는 고향 친구인 "김 씨"가 "봉천지역"에서 포목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신마적" 부하들이 그의 가게를 들이닥쳤고, 무리한 세금을 요구했다.
친구 "김 씨"는 하는 수 없이 "신마적" 부하들에게 세금을 냈는데, 그로부터 몇 일 만에 다시 찾아와서 또 다른 세금을 요구했다. 이렇게 무도하게 계속해서 세금을 요구해오자, 친구 "김 씨"는 완강히 거부했고, 그 대가로 "신마적" 부하들에게 엄청나게 맞았던 것이다. 친구가 얻어맞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시라소니"는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신의주"에서 며칠 만에 "만주 봉천"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타국에서 장사를 하면서 간신히 먹고사는 사람을 조직폭력배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돈을 빼앗으려고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를 들은 "시라소니"는 엄청난 분노감이 치밀어 올랐다. "시라소니"는 "낮설은 타국에서 같은 동포들끼리 서로 도와주고 살지는 못할망정, 돈을 뜯어먹고 죄 없는 사람을 두들겨 패다니, 신마적 패거리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구만!"이라고 말하면서 손을 보기로 결정했다.
⑤ 총을 든 "신마적 (엄동욱) "과 맨손의 "시라소니" 대결
한 때 "신마적"은 "경성"의 최고의 오야붕으로 군림했던 최강의 주먹이었는데, 이젠 "만주 봉천"으로 건너와, "경성"에 있을 때보다 더 큰 100여 명의 조직원들을 거느린 "거대 주먹조직의 왕초"로 군림하고 있었고, "종로" 시절보다도 더욱 기세가 등등해져 있었다. 그런데 감히 조직도 갖지 못한 일개 싸움꾼 1명이 자신의 내노라하는 실력자들을 처참하게 모조리 아작을 낸 것이어서, "신마적"은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신마적"이 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신마적"의 위상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신마적"의 주먹조직은 와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신마적"은 "시라소니"에게 복수를 하기로 작정했는데, 당시 "신마적"이 취한 행동은 일반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매우 이상한 행동을 취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신마적"이 진정한 싸움꾼이었다면, 그가 "시라소니"에게 당당하게 1:1 맞대결을 신청했어야 하는 것이 옳았다고 본다. 자신이 아무리 조직원 100명을 거느린 "거대조직의 보스"라 하더라도, "시라소니"는 항상 혼자서만 싸웠기 때문에, "신마적"이 진정한 협객이라면, 마땅히 혼자 "시라소니"에게 도전장을 던졌어야 옳았다.
그렇지만 "신마적"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자신의 부하 80명을 이끌고, 그것도 몇 명의 중간보스들에게는 "소총"까지 지참시켜서, "시라소니"에게 쳐들어 갔던 것이다.
"만주 봉천"에서 "이상대 조직"에 이어 2번째로 커다란 조직을 거느렸던 "신마적"이 자신의 부하들의 복수를 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예전의 "경성 최고의 주먹"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신마적"은 겁 먹었던 탓인지, 진짜 비굴하게도 "시라소니" 1명을 상대하기 위해서, 부하들 80명을 데리고 "시라소니"에게 쳐들어 갔던 것이다.
"시라소니"가 신출귀몰한 싸움 실력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신마적"이 "시라소니"에게 대단히 겁을 집어먹었던 것일까? "해학기"가 "시라소니"에게 얻어맞은 지 3일이 지난 후, "시라소니"가 "봉천" 교외에 있는 야산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첩보를 전해 들은 "신마적"은 부하 80명을 이끌고 그 야산으로 쳐들어갔으며, 그곳에서 몇 명의 일행들과 술을 먹고 있던 "시라소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때 "신마적"은 "권총"을 차고 있었고, "시라소니"를 발견하자, 권총을 겨누면서 위협을 가했다고 한다.
"시라소니"를 발견한 "신마적" 일행이 "시라소니"를 뺑 둘러서 포위했고, "신마적"은 권총을 꺼내어 "시라소니"에게 겨누고, "네놈이 내 동생들을 처참하게 두들겨 팼다며!, 내가 네놈을 오늘 아주 황천길로 보내버리겠어!"라고 말하면서, 권총을 "시라소니"의 얼굴을 향해서 겨누고 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시라소니"는 "당신이 그 유명한 신마적이로구만, 당신의 부하들이 하도 못된 짓을 많이 하기에 내레 손 좀 보아주었는데, 그것이 못마땅하다면 우리 한번 붙어 보자우!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싸워 보자우! 권총은 안돼지비, 권총은 비겁한 겁장이들이나 사용하는 것이지 않갔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즉, 80여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쳐들어온 "신마적" 일당이 총까지 겨눈 상황에서 "시라소니"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신마적"에게 맞대결을 권했던 것이다.
이같은 "시라소니"의 당돌한 태도에 "신마적"은 기가 막혔고,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신마적"은 자신이 부하들과 함께 포위하고 총까지 겨눠서 위협하면, "시라소니"가 무릎을 꿇고 항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시라소니"는 자신의 코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혀 겁을 먹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1:1 맞대결을 신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라소니"는 정말 싸움만 잘하는 싸움의 천재일 뿐만 아니라, 배짱 또한 대단했고, 담력ㆍ용력이 엄청나게 쎈 사람이었으며, "신마적"의 위세를 누를 만큼 기세등등했다. "신마적"은 "시라소니"의 이 대담한 담력ㆍ배짱에 할 말을 잃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80명이 포위한 상태에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신마적"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길 긴박한 찰나, 그때 언덕 아래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이봐, 신마적! 시라소니를 죽이면 안돼!, 그는 진정한 거물급 주먹이야!" 라고 소리치면서 달려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만주 봉천"의 최고의 주먹조직의 보스였던 "이상대"였다.
"이상대"는 "만주지역"에서 가장 큰 주먹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던 "만주"의 진정한 오야붕이었다. 그는 "만주 봉천"에 본거지를 마련하고, "만주 일대"에 퍼져있던 조선인들을 모아서 자기 조직원으로 만들어서 "만주"에서 가장 큰 주먹조직을 형성하였는데, 그의 조직원들은 500여 명이나 될 정도로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만주"에서 그의 아성에 도전할 사람이나 세력은 전혀 없었고, 심지어 조직원들은 소총ㆍ권총ㆍ장검까지도 소지하고 있었는데, 떼로 몰려다니면서 도적질을 일삼던 "마적 떼"들도 "이상대" 조직과 전투를 벌여서 패퇴한 적이 여러 번 있을 정도였다. "만주"에서 "마적 떼"들도 두려워했을 정도로 가장 거대한 주먹조직을 거느렸던 최고의 보스가 "이상대"였고, "신마적" 조직도 "이상대"의 휘하에 있던 별동조직이나 다름없었다.
"만주" 주먹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이상대"가 "시라소니ㆍ신마적"의 싸움에 개입했고, 그의 화해주선으로 더이상 싸움을 중단하고는 전격적으로 화해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로써 조선 최고의 주먹을 가릴 수 있는 "시라소니ㆍ신마적"의 싸움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상대"의 주선으로 원수지간이나 다름없었던 "시라소니ㆍ신마적"은 극적으로 화해를 했고, 그 후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상대"가 두 사람간의 화해를 주선한 것은 "이상대"가 "시라소니"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상대"는 "평양"에서 살았던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일본인들의 횡포에 분노한 그가 "일본인ㆍ일본 경찰"을 두들겨 패고 난 후,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버리고 "만주 봉천"으로 망명왔던 것이다. 그리고 출중한 싸움 실력과 리더쉽을 바탕으로 "만주"에서 생존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주먹조직의 보스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항상 혼자서 협객처럼 싸워나가는 "시라소니"의 의협심과 당당한 태도에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고, "시라소니"가 자신의 부하들을 두들겨 팬 후에도 "이상대"는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었던 그런 관계였다.
"시라소니"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처지를 돌보지 않고, 상대방이 몇 명이 있는지도 전혀 따지지 않고, 혼자서 처들여가서 그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마는 그런 대단한 용력ㆍ 배짱ㆍ의협심을 지닌 싸움꾼이다. 그런 "시라소니"의 의협심을 "이상대"는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즉, "이상대"는 "시라소니"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약자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인간적인 무한한 호감을 느꼈던 것이고, 그래서 "이상대"는 "시라소니"와 친해졌고, 서로 호형호제하는 친밀한 관계가 되었 다. "시라소니"의 성정을 잘 알고 있던 "이상대"는 "시라소니와 신마적 조직" 간에 전쟁이 벌여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시라소니"가 의협심이 발동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다급히 이곳을 찾아와서 난처한 입장에 처한 "시라소니"를 구출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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