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삼 (1928~2006ㆍ78세)"은 "거지왕 "으로 불렸다. "김두한"을 동생으로 삼고, "이성순"과 대결해서 승리하고, "이정재"가 존경하며 도와주었다고 하나, 확인은 되지 않는다.
1. 김춘삼 (金春三ㆍ1928~2006ㆍ향년 78세ㆍ평남 덕천)
거지왕ㆍ거지 출신의 조직폭력배ㆍ사회운동가ㆍ예비역 육군 상사ㆍ1950대, "전쟁고아"를 수용하는 "합심원"을 전국 10여 곳에 세워, "부랑아 구제사업"에 나섰다. "청년기"에는 전국의 걸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지왕"으로 불렸으나, 실제는 "중부시장" 일대에서 "조직폭력행위"를 했고, "고아원"의 원생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 사 망 : 서울 강동구 둔촌동 서울보훈병원 • 사 인 : 폐질환ㆍ패혈증 • 묘 소 : 대전 현충원 사병묘역 •학 력 : 무학
• 처 : 1962 – 남윤자 (19살ㆍ조선대 상대ㆍ메이퀸에 뽑힐 정도의 미모)ㆍ김춘삼이 34살 때(15살 차), 지프를 타고 "조선대" 앞을 지나던 그가 그녀를 운명적으로 만나 첫눈에 반해 , 강제로 "무등산 속 산장"으로 데려가, 보름 만에 돌려보낸다. "납치결혼"을 한 게 사실입니까?" "기절시키지 않은 이상, "강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인연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 자 녀 : 2남 1녀 • 저 서 : 나는 왕이로소이다 (자서전) • 1950~ 1953 - 예비역 육군 상사 (한국전쟁) • 1969- 대한자활개척단 단장ㆍ한국무용단 창립 • 1994 - 공해추방국민운동중앙본부 총재 • 1996 - 신한국당 특임행정촉탁위원 • 1997 - 한나라당 입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 지원 • 2001 - 자유민주연합 특임행정촉탁위원
2. 고아구제 사회사업
"김춘삼"은 자신이 운영하던 "보육원"에서 자녀들을 함께 자라게 했다. 다른 원생들과의 "차별대우"는 일절 없었다. 사회적으로는 훌륭한 모습이지만, 정작 자녀들의 가슴에는 원망과 한으로 남았다. "그저 매 맞고, 기합 받았던 기억뿐입니다. 너무나 엄격해서, 늘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죠." 자녀들은 아버지를 이렇게 추억했다.
한 아들은 "커 오면서, 아버지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며, "속마음 터놓고 먼저 다가가 얘기하지 못했던 것이 제일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다들 "애틋한 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눈물이 날 줄 몰랐다"며, 오열했다.
1960년 "4ㆍ19혁명"이 일어나던 해의 10월. 그는 "왕십리"에 "합심원 분소"를 설치하고, "고아구제 사업"에 꾸준히 힘을 쏟는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개척단"을 조직해, 거지들의 삶을 위해 노력한다. "한국 합심 자활개척단"을 설립해, "초대 단장"이 되지만, 1961년 "5ㆍ16쿠데타"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1962.02.03일, 다시 "고려 자활개척단"을 설립하고, 1965년에는 "최석림"을 회장으로 하는 "대한 자활개척단"을 설립한다. 또한 "넝마주의들"의 삶에도 눈을 돌려, "개미회"를 창설하고, "1인 1개 저금통장 갖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69.05월, "대한자활개척단 단장"을 하면서, "고유 민속무용"을 보급하기 위해, 가칭 "한국무용단"을 창립했고, 1994년부터는 "공해추방국민운동중앙본부"를 세워,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졌으며, 1997.12월에는, "이회창 대통령 후보" 지원을 위해, "한나라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위ㆍ장"에 큰 수술을 받은 후유증으로 약을 먹어야 했으며, 수입도 딱히 없어, 옛 부하들의 도움으로 "망원동 12평 전세 연립주택"에서 부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2006.08월,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으며, "폐질환"에 "패혈증"까지 겹치면서, 중환자실에서 투병생활을 해 오다가, 별세하였다.
3. 거지왕 김춘삼 이야기
"경주 김씨"의 양반자손으로,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던 도중,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죽고, 어머니는 "대구"로 개가를 한다. "강원도 철원 외가"에서 누이와 살다가, 8살 때 "대구"로 개가한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걸인 생활을 시작했는데, 누이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 가던 중, "일인 사냥꾼들"에게 잡혀, "낚시밥 노릇"을 하게 되고, 누이는 죽게 된다.
하지만 목숨을 버려가면서 도와준 "털보 아저씨" 덕에 그는 탈출에 성공하고, "대구 역전다리 밑 움막"에서 15살의 두목 "발가락"의 부하 "멸치"가 된다. 그러나 "발가락"의 난폭함으로, 6살 "꼬마"가 맞아 죽자, 8살의 그는 "기차놀이"(철로위에서 오래 버티는 게임)를 통해, 두목 "발가락"을 몰아내고, 두목이 된다. 평생을 자신에게 충성하며, 좋은 친구가 되어준 "육손".
"김춘삼"은 그를 믿고 의지하며, "대전의 목척다리 움막"까지 습격하여, 두목이 된다. 하지만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만나, 새 아버지ㆍ형ㆍ여동생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지만, 평범한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목척다리 움막"으로 돌아온다.
청년이 된 그는 시야를 넓히려고, "서울 염천교"로 부하들과 진출하고, 11살에 "염천교 두목"이었던 "김빠"'를 부하로 삼는다. 이후 그는 "남대문" 일대를 점령하며, "김두한"을 만나 동생으로 삼고, 함께 "일인의 악행"에 맞서, 정의를 행하게 된다. 이때, 그의 첫사랑인 "순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가족이 모두 "일인"에게 죽고, "거지 소굴"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춘삼"을 지극히 간호하며 지켜주다가, 이후 "창녀"가 되어, "춘삼"과 이별한다.
"서울"에서 점차 영역을 넓히던 "춘삼"은 해방 후, 고아들이 넘쳐나자, "고아원"을 설립하고, "남대문ㆍ대전"에 "합심원"이라는 "고아원"을 설립하여, 거지ㆍ고아들을 교육시키며, 선도한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에 "춘삼"은 참전하게 되고, 죽을 고비를 넘긴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다시 스스로 거지로 돌아와, "서울ㆍ대전ㆍ대구ㆍ부산ㆍ광주"에 꿈이었던 "합심원"의 조직을 이루게 된다. "미국"의 구호단체로부터 원조를 받던 "춘삼"은 1956년 "고아원 협회 회장"으로 추대된다. 이후 세력다툼으로, "시라소니ㆍ동대문 상인협회의 이정재ㆍ이화룡"과 격투도 벌이게 된다.
1957년, "김두한"의 도움으로 "거지 왕"에 등극하고, 1959년에는 "미국 거지왕ㆍ필리핀 거지왕ㆍ 일본 거지왕(가네시루 쯔봉)"의 방문으로, 최초의 "국제거지 연합회 회장"이 된다. 이즈음 그는, "문둥병"에 걸린 "애자"와 사랑을 하게 된다. 그녀 오빠의 간청으로, 결혼식을 올린 "춘삼"은 "애자"의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게 되고, 3일간의 신혼생활을 하지만, 그녀의 "병" 때문에 떠나게 된다. "춘삼"과의 이별 후, "애자"는 자살하게 되고, "춘삼"은 평생 그녀를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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