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祖)ㆍ종(宗)"의 구분은 본디 임금이 승하하면, 창업을 한 왕에게는 묘호(廟號)로서 "조(祖)"를, "수성"을 한 왕에게는 "종(宗)"을 붙여, 승하한 임금의 위패를 "종묘"에 봉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공(功)"이 있는 왕에겐 "조(祖)"를 붙이고, "덕(德)"이 있는 왕에겐 "종(宗)"을 붙인다하여, 이를 이른바 "조공종덕(祖功宗德)"이라 한다.
1. "조(祖)ㆍ종(宗)"의 구분 기준ㆍ배경
① 사마천의 사기 : 덕치(德治)를 하면 "종(宗)"을 붙이고, 법치(法治)를 하면 "조(祖)"를 붙임.
② 반정(反正)이나 선왕의 적장자(嫡長子) 세자가 아닌 방계의 왕자ㆍ왕손이 계승한 경우 : 세조ㆍ선조ㆍ인조ㆍ영조ㆍ정조
본디 임금이 승하하면, 창업을 한 왕에게는 묘호(廟號)로서 "조(祖)"를, "수성"을 한 왕에게는 "종(宗)"을 붙여, 승하한 임금의 위패를 "종묘"에 봉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공(功)"이 있는 왕에겐 "조(祖)"를 붙이고, "덕(德)"이 있는 왕에겐 "종(宗)"을 붙인다하여, 이를 이른바 "조공종덕(祖功宗德)"이라 한다.
이 말의 어원은 "한나라 무제"때, "사마천"이 지은 "사기- 효문본기(孝文本紀)"에서, "문제(文帝) 임금(BC 203~157)에 의하여 "임금 중에서 공적이 있는 자는 "조(祖)"라고 하고, 덕망이 있는 자는 "종(宗)"을 붙여 사용한다.(조공종덕ㆍ祖功宗德)"고 한 것에서 비롯하였다. 또한 "반정(反正)"을 통해 왕위에 오른 경우나 "선왕의 적장자인 세자가 아닌 방계의 왕자나 왕손이 계승해, 왕실의 새로운 계통을 세웠을 경우, "세조ㆍ선조ㆍ인조ㆍ영조ㆍ정조" 등 사례처럼 "조(祖)"를 사후 "묘호(廟號)"로 사용하였다.
"태조 원년"에 "이성계"의 "4대조 존호"를 "종묘"에 봉안할 때, "묘호"를 정하는 원칙을 세웠으니, "태조실록 원년 11.06일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재되어 있다. "공(功)이 있는 이는 "조(祖)"로 하고, 덕(德)이 있는 이는 "종(宗)"으로 하니, 효(孝)는 부모를 높이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며, 시호로써 이름을 바꾸게 하니, 예의는 마땅히 왕으로 추존함을 먼저 해야 될 것이옵니다."
"태조 이성계"는 자신의 직계 조상 "4대"를 높여 "목조(穆祖)ㆍ익조(翼祖)ㆍ도조(度祖)ㆍ환조(桓祖)"로 각각 추존하였고, 이 때 세운 원칙은 역대 임금의 묘호를 정할 때마다 하나의 규범이 되었지만, 역대 임금의 사후 평가에 의해 추서되는 "조(祖)ㆍ종(宗)"의 묘호(廟號) 구분 기준이 실제로는 후대에 이를수록 그렇게 엄격하게 지켜지거나, 일관성 있게 적용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2. 대군ㆍ공주 / 군ㆍ옹주
① 대군ㆍ공주 : 왕의 정비 부인에게서 태어난 아들ㆍ딸 (ex)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수양대군"이라고 불러졌고, "문종"의 딸인 "경혜공주"
② 군 ㆍ옹주 : 왕의 "첩"에게서 태어난 아들ㆍ딸 (ex) "연산군ㆍ광해군"은 "왕"에서 폐위되어, "왕자" 때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는데, 두 왕 모두 "선왕의 3번째 부인의 자식"이었기에 "대군"이 아닌 "군"의 칭호만 붙여진 것
3. 대원군 (大院君)
보통 "대원군"이라고 하면, 고종 아버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을 지칭하는데, 왕위를 계승할 "적자손(嫡子孫)"이나, 형제가 없어 종친 중에서 왕위를 이어받을 때, "신왕의 생부(生父)"를 호칭하던 말.
• 선조 아버지 : 덕흥군(德興君)→ 덕흥 대원군
• 철종 아버지 : 전계대원군 (전계대원군 = 은언군(사도세자 서자ㆍ정조 이복동생) 서자)
4. 추존왕 (죽어서 왕이 된 인물)
① 덕종 : "세조(수양대군)" 아들로, 세조1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 전에 죽었다. 인수대비의 남편ㆍ슬하에는 월산대군, 성종, 명숙공주 등 3명을 두었다.
② 원종 : "선조"의 5남ㆍ1627년에 왕으로 추존. "인조" 등 4남을 둠.
③ 진종 : "영조" 아들ㆍ사도세자 형ㆍ6세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 전에 죽었다. 양자인 "정조"가 즉위하자, "진종"으로 추존.
④ 장조 : "사도세자"로, "영조"의 2째 아들ㆍ"정조"의 아버지ㆍ1899년 "장조"로 추존. 부인은 "홍봉한"의 딸인 "혜경궁 홍씨(경의왕후 홍씨)" 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아버지 "영조"에 의해 죽음.
⑤ 익종 : "순조" 아들ㆍ"헌종"의 아버지ㆍ4세에 세자로 책봉되고, 19세 때(순조27) 대리청정으로 참정하였으나, 4년 만에 죽고 난 뒤에 "익종"으로 추존.
5. 임금의 묘호(廟號)
① 무력(武力)에 의해, 축출된 임금 : 단종(端宗)ㆍ연산군(燕山君)ㆍ광해군(光海君)
단종은 "적통(嫡統) 임금"이었지만, "계유정난"에 의해 정권을 잃고, 숙부에게 양위(讓位)하여 일시적으로 "상왕(上王)"이 되었으나, "사육신의 반정(反正) 시도"가 실패하는 바람에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멀리 "강원도 영월"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목숨을 잃어, 사실상 "쿠데타"로 실권을 당해 결국 왕위에서 물러난 왕이었다.
"종묘"에도 모셔지지 못했지만, 폐주(廢主)가 된 임금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양위"를 하고 물러난 왕이었으므로, 훗날 "숙종"때 복권되어, "단종"이라는 "묘호"를 뒤늦게 받아 종묘에 모셔지게 되었다. 이와 달리 "쿠데타"에 의해, 즉각 왕위를 잃은 "연산군"과 후궁 소생이지만 왕위에 올랐던 "광해군"은 "방탕ㆍ패륜의 임금"이었기에, 끝내 사후에 명예회복을 못한 임금들이 되고 말았다.
② 세조 (世祖)
"태조 이성계" 이후, "조(祖)"라는 "묘호"를 처음으로 받은 "세조"의 경우, 승하하여 "종묘"에 위패로 모셔질 때, 그가 형인 "문종"을 계승한 적장자인 조카 "단종 (노산군)으로 강봉당한 폐주 임금"을 대신하여 새로운 왕실 계통을 세운 것으로 보고, 아들 "예종"이 "세조"라는 묘호를 부왕에게 바쳤다.
③ 중종 (中宗)
"연산군"은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에 이어 2번째로 "폐주 된 임금"이라, "종묘"에 위패가 봉안될 수 없었으므로, 당연히 "묘호"가 있을 수 없었다. 그를 이어 왕이 된 "중종"은 "연산군"를 대신한 "부왕 성종"의 계승자로 자처했기에, 계통을 이은 것이 자연스러운 승계로 간주하여, 사후에 "중종"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④ 선조 (宣祖)
선왕 "명종"의 아들도 아니었고, "덕흥군(德興君ㆍ중종의 서자)"의 3남 "이균(李鈞)"으로 태어나, 평범한 종친의 신분으로만 지내다가, 평소 그의 인품이나 자질에서 왕재(王才)가 있음을 눈 여겨 두었던 "명종"이 마침 후사가 없이 승하할 때, 유교를 통해 "이균으로 하여 대통을 잇게 하라"하여 왕위에 올랐다.
명백히 왕실의 계통을 "방계(傍系)"에서 내세운 셈이라, 처음 묘호는 "선종(宣宗)"이었지만, "국란극복의 공(功)"에 대한 사후 평가와 더불어 "묘호"에 대한 재론이 일어나 "선조(宣祖)"라는 "묘호"를 받았다. 생부인 "덕흥군"은 "덕흥대원군"으로 추서되었으며, 조선왕실 최초의 "대원군"이 되었다.
⑤ 인조 (仁祖)
수많은 왕손 중 1명에 지나지 않았던 "인조"는 "반정(反正)"을 일으켜 숙부인 "광해군"을 축출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사후에 처음에는 "열종(烈宗)"이란 묘호를 받았으나,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종묘사직"을 바로 세운 공과 "병자호란"의 국난을 극복하여 "사직"을 안정시킨 공으로 "조종공덕(祖功宗德)"의 논리에 의해, "인조"로 개명하여, 모셔지게 되었다.
"광해군"을 축출한 "인조반정"의 당위성에 대한 의문도 있고, "병자호란"의 국치를 자초한 임금으로, 후대의 사가들의 평가를 받는 왕이 바로 "인조"였지만, 당시에는 아들 "효종"과 당시 "조정"의 신하들 입장에서는 "인조"가 공을 세운 거룩한 임금으로 비쳐졌던 모양이다.
⑥ 영조 (英祖)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소생이었으나, 선왕이자 형 왕인 "경종"이 후사가 없어 그의 왕위를 계승하였으며, 역대 임금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고, "임진왜란" 이후, 가히 "르네상스적인 중흥"의 기틀을 마련한 임금이라, 사후에 처음엔 "영종(英宗)"이란 묘호로 불렸지만, 나중에 "조공종덕(祖功宗德)"의 규범을 적용하여, "영조(英祖)"라는 묘호를 다시 받게 되었다.
본디 "영종ㆍ정종ㆍ순종"였다가 "영조(英祖)ㆍ정조(正祖)ㆍ순조(純祖)"로 묘호가 바뀌게 된 것은 해당 임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도 원인이겠지만, 치세 앞뒤로 실제 임금 "위(位)"에는 오르지 못하고 죽은 임금, 즉 "추존(追尊)임금"의 묘호와 위패가 "종묘"에 "열성조(列聖祖)"와 함께 봉안되었기 때문에, 묘호가 바뀐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영조(英祖)→ 진종(眞宗ㆍ孝章世子)→ 장조(莊祖ㆍ思悼世子)→ 정조(正祖)→ 순조(純祖)→ 익종(翼宗ㆍ孝明世子)→ 헌종(憲宗)
⑦ 정조 (正祖)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로, 선왕의 적장자 신분이 아닌, 그것도 생부가 조부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뒤주에 갇혀 죽은 이후, 일찍이 "사도세자"보다 먼저 요절한 "효장세자(孝章世子: 추존 임금인 진종(眞宗))의 후사가 되는 형식으로 "조부 왕"의 어명에 의해 "세손"이 된 이후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서류상 정상적 왕위 계승이 아닌 새로운 승계 형식에 의해 즉위한 셈이 되었다. "세종"이래 "영조"에 이어, 조선왕조 최대의 문예부흥을 이룩한 치세를 보여 준 임금이라, 사후에 처음엔 "정종(正宗)"으로 추서되었지만, 다시 "정조(正祖)"로 종묘에 모셔지게 되었다.
⑧ 순조 (純祖)
"정조"의 2째 아들이자, "후궁 현목수빈 박씨" 소생으로, 이복 형인 "문효세자(文孝世子)"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부왕 "정조"가 급서하자, 11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임금이다. "순조"는 승하 후, 처음에는 "순종(純宗)"으로 추서(追敍)되었으나, 나중에 "순조(純祖)"로 고쳐 "종묘"에 모셔졌다.
⑨ 철종 (哲宗)ㆍ고종 (高宗)ㆍ순종 (純宗)
방계 왕손 신분으로서 보위에 오른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소생 "강화도령 철종(哲宗)"과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아들인 "고종(高宗)"이 있다. 선왕의 직계 후손이 아닌 "방계(傍系)"로서 새로운 계보를 연 "세조ㆍ선조ㆍ인조"의 경우를 본다면, "철종ㆍ고종"에게는 "조(祖)"를 붙였어야 하는데, "종(宗)"이 되었다. 특히 "고종"의 경우는 "조선왕실"의 격을 높여, 최초로 "대한제국의 황제"에 오른 분인데도 "종(宗)"이 되었다. "고종"의 아들인 "순종(純宗) 황제"는 처음 묘호로 사용했던 묘호가 "순조(純祖)"를 "순종(純宗)"으로 다시 추서하였다.
"고종황제ㆍ순종황제"는 모두 "일제 치하"에서 "황제"가 아닌 "이태왕(李太王)ㆍ이왕(李王)"의 신분으로 격하되어, 망국의 한을 품고 승하하였기 때문에, "일제"의 압박에 의해 "고종(高宗)"이 되고, 조상께 일시적으로나마 추서하였던 "순종(純宗)"이란 묘호를 치욕적으로 다시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6. 왕조 기록
① 31년간 세자 : 순종 ㉗은 2세 때, 세자로 책봉, 31년간을 세자 신분으로 지냄
② 왕 등극 연령 : (최고령) 태조 ①→ 57세ㆍ(최연소) 헌종 ㉔→ 7세 (재위 15년에 22세로 사망)
③ 세자 책봉 연령 : (최고령) 정종 ②→ 42세ㆍ(최연소) 순종 ㉗→ 2세
④ 재위 기간 : (최장) 영조 ㉑→ 51년 7개월ㆍ(최단) 인종 ⑫→ 8개월
⑤ 생존 연령 : (최장수) 영조 ㉑→ 82세ㆍ(최연소) 단종 ⑥→ 16세
⑥ 자녀 수 : 29명- 태종 ③ㆍ28명- 성종 ⑨ㆍ25명- 선조 ⑭ㆍ22명- 세종 ④ㆍ자녀 무- 단종 ⑥/ 인종 ⑫/ 경종 ⑳/ 순종 ㉗
⑦ 아들 수 : 18명- 세종 ④ㆍ16명- 성종 ⑨ㆍ15명- 정종 ②
⑧ 딸 수 : 17명- 태종 ③ㆍ12명- 성종 ⑨ㆍ11명- 중종 ⑪/ 선조 ⑭
⑨ 부인(비ㆍ빈)수 : 11명- 태종 ③/ 성종 ⑨
⑩ 자식을 많이 낳은 왕비 : 8남2녀(10명)- 세종④비 소헌왕후 심씨ㆍ7남3녀(10명)- 성종⑨후궁 숙의 홍씨
⑪ 기묘한 관계의 왕 비: "장순왕후 한씨 (예종⑧비)"와 "공혜왕후 한씨 (성종⑨비)"는 "한명회"의 딸로, 친자매이기도 하나, "예종"이 "성종"의 삼촌이 되므로, "시숙모"와 "조카며느리"도 되는 기묘한 관계
⑫ 정비(妃)ㆍ후궁을 많이 배출한 성씨 : 22명- 김씨(정비 10/ 후궁 12)ㆍ8명- 윤씨(정비 6/ 후궁 2)ㆍ11명- 이씨(후궁-11)ㆍ7명- 한씨(정비 6/ 후궁 1)
⑬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 : 조선전기까지 "윤씨ㆍ한씨"출신 "정비"가 상대적으로 많았으나, 조선중기 이후로 "김씨"에서 많은 "정비"를 배출하게 됨.
• 5명- 청주 한 : 덕종(소혜왕후(추존))ㆍ예종(장순왕후ㆍ안순왕후)ㆍ성종(공혜왕후)ㆍ인조(인열왕후)
• 4명- 여흥 민 : 태종(원경왕후)ㆍ숙종(인현왕후)ㆍ고종(명성황후)ㆍ순종(순명황후) / 파평 윤 : 세조(정현왕후)ㆍ성종(정현왕후)ㆍ중종(장경왕후ㆍ문정왕후)
• 3명- 청송 심: 세종(소헌왕후)ㆍ명종(인순왕후)ㆍ경종(단의왕후) / 안동 김: 순조(순원왕후)ㆍ헌종(효현왕후)ㆍ철종(철인왕후) / 경주 김 : 정종(정안왕후)ㆍ숙종(인원왕후)ㆍ영조(정순왕후)
• 2명- 반남 박 : 인종(인성왕후)ㆍ선조(의인왕후) / 청풍 김 : 현종(명성왕후)ㆍ정조(효의왕후) / 거창 신 : 연산군(폐비 신씨)ㆍ중종(단경왕후)
7. 왕조 계보 : 덕치 (德治)를 한 왕은 종(宗)ㆍ법치 (法治)를 한 왕은 조(祖)
① 태조 (太祖 이성계): 1335~1408(73세)ㆍ재위 1392(57세)~1398(6년)ㆍ8남5녀ㆍ정2(신의왕후 한씨/신덕왕후 강씨)ㆍ본관 : 전주(全州)ㆍ함남 영흥(永興) 흑석리 출생
② 정종 (태조2남): 1357~1419(62세)ㆍ재위 1398(61세)~1400(2년)ㆍ15남8녀ㆍ정(정안왕후 김씨)
③ 태종 (태조5남): 1367~1422(55세)ㆍ재위 1400(33세)~1418(18년)ㆍ12남17녀ㆍ정(원경왕후 민씨)ㆍ무인정사(戊寅靖社) : 1398년 무인년에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1차 왕자의 난→ 1400년 1차 왕자의 난
④ 세종 (태종3남): 1397~1450(53세)ㆍ재위 1418(21세)~1450(32년)ㆍ18남4녀ㆍ정(소헌왕후 심씨)
⑤ 문종 (세종1남): 1414~1452(38세)ㆍ재위 1450(36세)~1452(2년)ㆍ1남2녀ㆍ정(현덕왕후 권씨)
⑥ 단종 (문종1남): 1441~1457(16세)ㆍ재위 1452(11세)~1455(3년)ㆍ없음ㆍ정(정순왕후 송씨) → "단종복위 운동"이후 사사됨 ※ 1456년(세조2) "단종복위 운동"을 도모ㆍ발각되어 죽은 신하,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산 충신 : • 사육신 : 성삼문ㆍ박팽년ㆍ하위지ㆍ이개ㆍ유응부ㆍ유성원 • 생육신 : 김시습ㆍ원호ㆍ이맹전ㆍ조려ㆍ성담수ㆍ남효온(또는 권절)
⑦ 세조 (세종2남): 1417~1468(51세)ㆍ재위 1455(38세)~1468(13년)ㆍ4남1녀ㆍ정(정희왕후 윤씨)ㆍ계유정난(癸酉靖難): 1453년(단종1)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 세력이자 원로대신인 황보 인·김종서 등 수십 명을 살해,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
⑧ 예종 (세조2남): 1450~1469(19세)ㆍ재위 1468(18세)~1469(1년)ㆍ2남1녀ㆍ정2(장순왕후 한씨/안순왕후 한씨)
⑨ 성종 (덕종2남(세조1남 의경세자)): 1457~1494(37세)ㆍ재위 1469(12세)~1494(25년)ㆍ16남12녀ㆍ정2(공혜왕후 한씨ㆍ정현왕후 윤씨)ㆍ폐(폐비 윤씨)
⑩ 연산군 (성종1남): 1476~1506(30세)ㆍ재위 1494(18세)~1506(12년)ㆍ4남2녀ㆍ정(폐비 신씨)ㆍ중종반정: 1506년(연산군12) 성희안·박원종 등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세운 정변
⑪ 중종 (성종2남): 1488~1544(56세)ㆍ재위 1506(12세)~1544(38년)ㆍ9남11녀ㆍ정3(단경왕후 신씨/장경왕후 윤씨/문정왕후 윤씨)
⑫ 인종 (중종1남): 1515~1545(30세)ㆍ재위 1544(29세)~1545(1년)ㆍ없음ㆍ정(인성왕후 박씨)
⑬ 명종 (중종2남): 1534~1567(33세)ㆍ재위 1545(11세)~1567(22년)ㆍ1남ㆍ정(인순왕후 심씨)
⑭ 선조 (중종서손ㆍ덕흥군(중종 서자)3남): 1552~1608(56세)ㆍ재위 1567(15세)~1608(41년)ㆍ14남 11녀ㆍ정2(의인왕후 박씨ㆍ인목왕후 김씨)
⑮ 광해군 (선조서자): 1575~1641(66세)ㆍ재위 1608(33세)~1623(15년)ㆍ1남1녀ㆍ정(폐비 유씨)ㆍ인조반정: 1623년(광해군15) 서인 일파가 광해군·집권당인 대북파를 몰아내고 세운 정변
⑯ 인조 (선조서손ㆍ정원군(선조서자) 1남): 1595~41649(54세)ㆍ재위 1623(28세)~1649(26년)ㆍ6남1녀)ㆍ정2(인렬왕후 한씨ㆍ장렬왕후 조씨)
⑰ 효종 (인조2남): 1619~1659(40세)ㆍ재위 1649(30세)~1659(10년)ㆍ1남1녀ㆍ정(인선왕후 장씨)
⑱ 현종 (효종1남): 1641~1674(33세)ㆍ재위 1659(18세)~1674(15년)ㆍ1남3녀ㆍ정(명성왕후 김씨)
⑲ 숙종 (현종1남): 1661~1720(59세)ㆍ재위 1674(13세)~1720(46년)ㆍ3남6녀ㆍ정4(인경왕후 김씨ㆍ인현왕후 민씨ㆍ인원왕후 김씨ㆍ희빈 장씨)
⑳ 경종 (숙종1남ㆍ장희빈): 1688~1724(36세)ㆍ재위 1720(32세)~1724(4년)ㆍ없음ㆍ정2(단의왕후 심씨ㆍ선의왕후 어씨)ㆍ숙빈 최씨
㉑ 영조 (숙종서자ㆍ숙빈최씨): 1694~1776(82세)ㆍ재위 1724(30세)~1776(52년)ㆍ2남7녀ㆍ정2(정성왕후 서씨ㆍ정순왕후 김씨)
㉒ 정조 (영조손자): 1752~1800(48세)ㆍ재위 1776(24세)~1800(24년)ㆍ2남1녀ㆍ정(효의왕후 김씨)
㉓ 순조 (정조서자ㆍ수빈박씨): 1790~1834(44세)ㆍ재위 1800(10세)~1834(34년)ㆍ1남5녀ㆍ정(순원왕후 김씨)
㉔ 헌종 (순조손자ㆍ효명세자(순조1남)1남): 1827~1849(22세)ㆍ재위 1834(7세)~1849(15년)ㆍ1녀ㆍ정2(효현왕후 김씨ㆍ효정왕후 홍씨
㉕ 철종 (강화도령): 1831~1863(32세)ㆍ재위 1849(18세)~1863(14년)ㆍ1녀ㆍ정(철인왕후 김씨)ㆍ전계대원군 서자 (전계대원군 = 은언군(사도세자 서자ㆍ정조 이복동생) 서자)
㉖. 고종 (흥선대원군2남): 1852~1919(67세)ㆍ재위 1863(11세)~1907(44년)ㆍ9남4녀ㆍ인평대군(인조 3남)의 7대손ㆍ정(명성황후 민씨)ㆍ영친왕(엄상궁 아들)
㉗ 순종 (고종2남): 1874~1926(52세)ㆍ재위 1907(33세)~1910(3년)ㆍ없음ㆍ정2(순명효황후 민씨ㆍ순정효황후 윤씨)
※ "명성황후"는 "순종"을 포함하여, 4명의 아들을 낳았으나, 모두 어릴 때 병에 걸려 죽었음. "순종"도 태어날 때, 몹시 허약했다고 하였으며, "명성황후"가 몸이 약했는지 모르겠으나 "명성황후"의 자식들은 모두 허약했다. "고종"은 정실부인인 "명성황후"에게서 아들은 1명밖에 얻지 못했으니, 그 아들이 "순종"임. 나머지 왕자들은 다 후궁에게서 얻은 아들임. "순종"은 1874년생, "의친왕"은 1877년생, "영친왕(엄상궁 아들)"은 1897년생임. "순종"이 태어나기 전, 고종의 1째 아들인 "완화군(후궁인 "귀인 이씨" 소생)"이 있었으며, "흥선대원군"에게 총애를 받았으나, 병으로 일찍 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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