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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알프레드 히치콕 (1899)ㆍ서스펜스의 대가ㆍ싸이코ㆍ새

by 당대 제일 202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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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 경 (Sir Alfred Hitchcockㆍ1899~1980ㆍ81세)"은 서스펜스의 대가ㆍ히치 (Hitch)ㆍ최초의 스타 감독으로 활동(1919~1980)했다. 영국ㆍ미국에서 활동한 영화감독(공포 영화 장르가 많다)ㆍ영화제작자ㆍ감독ㆍ제작ㆍ각본ㆍ편집ㆍ미술에 능했다. "히치콕 영화"는 감독 자신이 영화 속 어딘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것을 찾는 것 또한 한 재미가 된다. 영화의 등장방법은 지나가는 행인 등이나, 때로는 영화 속 신문기사에 등장하기도 한다.

 

1. 알프레드 히치콕 (Sir Alfred Hitchcockㆍ1899~1980ㆍ81세)

작품은 대부분 죄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으며, 이런 영화는 사소한 실수가 불러일으키는 것을 일깨우게 한다.  주로 "영국 탐정소설"을 읽었지만 "에드거 앨런 포(미국 작가)"에게 매료되어, 훗날 자신이 공포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포"의 작품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 대표작 : 싸이코ㆍ새ㆍ현기증ㆍ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ㆍ이창ㆍ오명  (대표작들은 아카데미상을 한 번도 받지 못하였으며, 작품상을 받은 작품은 "레베카"가 유일)            • 출 생 : 영국 런던 레이턴스톤             사 망 :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별 칭 : 서스펜스의 대가히치 (Hitch)             : 앨마 리빌 (1926~1980)

• 수 상 : 레베카(할리우드에서 첫 영화) - 아카데미상 작품상ㆍ촬영상ㆍ1955~1961 :"히치콕 극장" 시리즈로 1958년 그 해의 최고 방송시리즈로 "골든 글로브" 상을 수상ㆍ1980 : 대영 제국 훈장 2등급 (KBEㆍ작위급 훈장)             : 애너벨 리(Annabel Lee)도래까마귀(The Raven)             단편 소설 :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아몬틸라도의 술통황금충적사병의 가면극모렐라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구덩이와 진자성급한 매장도둑맞은 편지고자질하는 심장             편 소설 :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

평소 "과체중"에 음주가 잦았던 히치콕은 점차 건강이 악화되었고, 자신의 마지막 영화 "가족 음모(Family Plot)"를 발표했다. 그는 차기작을 준비할 생각이었으나, 더 이상 기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영화 일에서 은퇴했다. 1980.04.16일, "미국 영화연구소 시상식"에서 한 연설이 그가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같은 해 04.29일 LA 자택에서 사망했다.

※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ㆍ1809~1849ㆍ40세): 미국 작가ㆍ시인ㆍ편집자ㆍ문학평론가

미국 낭만주의의 거두ㆍ미국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는 작가ㆍ미스터리 및 마카브레 작품들로 가장 유명하며, 미국 단편 소설의 선구자ㆍ사인 : 자살ㆍ폐결핵ㆍ마약ㆍ광견병 등"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최초로 만들어냈다고 평가받으며, 나아가 "과학소설" 장르의 형성에 이바지했으며, "우주론ㆍ암호학" 같은 분야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 최초의 전업 작가이며, 이 때문에 생전에 심한 재정난과 생활고를 겪으며, 유년기를 제외한 평생을 불행하게 살았다.

2. 맥거핀 : 영화 기법

영화에는 "맥거핀"이라는 요소가 자주 등장한다. "맥거핀"이란 영화의 플롯 진행에 있어서 특정한 내용이나 인물에 관해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내용상 무언가 중요한 것 임을 암시하지만, 실상은 플롯의 진행에 있어 아무런 관련성도 없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맥거핀"을 관객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트뤼포"는 그에게 "맥거핀"에 대해 질문했고, 이에 대해 그가 든 예는 "오명"에서의 "와인병"이었다. 

그는 "맥거핀"이란 관객과 등장인물들의 "관심을 끄는 그 무엇"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레이터인 감독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와인병에 든 우라늄 가루"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그는 제작자들을 상대로 "맥거핀"이 되는 "우라늄 가루"에 대해 설득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프로듀서들은 원자폭탄을 만드는 물질이 왜 사랑이야기에 들어가야 하는지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결국 "오명"의 시나리오는 대부분의 프로듀서들로부터 거절됐고, 그는 이 영화의 제작과 "맥거핀"을 고집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서 제작비를 충원했다. "맥거핀"에 대한 히치콕의 신념은 확고했다. "맥거핀"은 관객이 중심이 되는 그의 영화에서 관객을 통제하는 장치였다. 따라서 "극의 서스펜스"를 위해서 "맥거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첩보활동을 위해, "나치 비밀조직"의 수장 "알렉스 세바스찬"과 결혼까지 불사한 "알리시아"는 안주인으로서, "세바스찬"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그녀는 저택의 거실 장식장에 있던 "와인병" 하나를 두고, "나치 조직원"들끼리 냉랭한 기류가 형성되는 것을 눈치 챈다. 이 "와인병"은 그들 사이에서도 "1급비밀"인 중대한 것으로 보인다.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데블린"은 "알리시아"와 함께, 와인창고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는 "알리시아"에게 "세바스찬"이 결혼 축하파티를 열도록 청하라고 종용한다. 파티 당일, "세바스찬"의 결혼기념 파티에 초대되어 온 "데블린"은 "알리시아"와 함께 지하창고에 잠입해 "와인병"을 찾는다.

그는 실수로 와인병 하나를 깨뜨리고 안에 들어있던 검은 색 모래입자들은 바닥에 쏟아진다. 숨 막힐 듯 조여 오는 서스펜스의 순간. 두 사람이 "우라늄 가루"와 병조각의 흔적을 치우는 동안, "세바스찬"은 하인을 데리고 파티에 쓸 술을 가지러 지하창고로 내려간다. 이 일로 "세바스찬"은 "알리시아"가 "나치 조직"의 비밀을 캐기 위해, 위장결혼한 "미국의 스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어머니에게 아내의 처분을 두고 의논하고, 결국 두 사람은 작당해서 "알리시아"를 독살하기로 한다.

이렇게 검정색 가루가 든 와인병은 사건이 진행되는 "모터"의 역할을 한다. 관객에게 관심사는 "데블린ㆍ알리시아"의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있다. 관객은 "와인병"에 호기심을 기울이게 되고, 나중에 "와인병"이 깨져 버리면서 사건은 더 발전하지만, 중요한 점은 관객은 더 이상 "와인병"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와인병"은 깨어져 관심을 끈 순간, 그것으로 본래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데, 꼭 필요한 우라늄 입자가 든 와인병"은 나치의 구체적인 계획과 미국의 첩보활동이라는 서브 테마에 관심을 두게 유도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병"은 이야기를 진전시키고, 중간에 사라져버리는 "맥거핀"이라 할 수 있다.

1958년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둔 작품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맥거핀"은 2가지가 있다. 

그것들은 관객과 등장인물들의 주의를 끄는 사람과 사물로 나타난다. 주인공 "로저 O.쏜힐(캐리 그란트)"은 악당들로부터 아무 잘 못 없이 "캐플란"으로 오인이 되어버린다. "쏜힐"은 "캐플란"이 과연 누구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UN빌딩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살인누명까지 쓰게 되고, 도주자 신분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는 미국을 횡단하며 갖은 모험을 겪게 된다. 그런데 "쏜힐"의 도주라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캐플란"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조직 내에서 일명 "교수"라 불리는 CIA 요원은 회의 중 "반담"이라는 악당의 조직에 잠입시킨 요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지어낸 인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캐플란"이 "맥거핀"이었다는 사실은 영화 시작 45분이 경과한 후, 간단하게 밝혀진다. 관객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쏜힐"이 "캐플란"을 만나기 위해 기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서스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기차 안에서 만난 "이브 캔달"이라는 묘령의 여인의 도움을 받아 경찰과 "반담"무리들의 눈을 속인다. "이브"는 "쏜힐"에게 "캐플란"의 전언이라면서 황야 한 가운데로 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면 "캐플란"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쏜힐"은 "캐플란"을 결코 만날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사용된 또 하나의 "맥거핀"은 손에 들 수 있는 "작은 고대 조각상"이다. 

이것은 "이브"가 "반담"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빼앗아서 도주하는 물건으로 나온다. 하지만 "반담"이 경매장에서 낙찰 받은 고가의 유물로만 나올 뿐, 구체적으로는 언급되지 않는다. "러쉬모어 산"으로 도주한 "이브ㆍ쏜힐"은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까지도 조각상을 악당들에게 넘겨 주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조각상"이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 관객은 그 안에 "마이크로 필름조각"이 들어있는 것을 보지만 그것은 잠시 화면에 잡힐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것이 "기밀 정보"를 담은 것이라는 암시에 그칠 뿐, 그 내용에 대해서 그는 영화에서 전혀 다루지 않는다. "쏜힐"은 "이브"를, "이브"는 이 "조각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사실 자체는 서스펜스를 낚는 미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3. 생 애

1899년, 농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의 막내 아들로 "영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은 어부 출신의 야채상인 "조지프"와 일용직 노동자 딸 "앤 머호니"의 9남매의 자식들 중 1명이었고, 어머니 "에마(Emma)"는 경찰관 "존 웰런"의 딸이었다. "히치콕"은 1910년부터 "스탬퍼드 힐"에 있는 예수회 소속 "성 이그나티우스"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이 학교의 엄격한 규율과 그에 따른 체벌은 10대 시절의 히치콕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13년, 학교를 마친 그가 아직 뚜렷한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버지 윌리엄이 1914년 신장염으로 사망했다. 그는 전신회사에서 기술자로 일하게 되었으나 이 직업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상관의 도움으로 광고부로 이직한 그는 영화와 문학에 심취했다. 주로 "영국 탐정소설"을 읽었지만 "에드거 앨런 포(미국 작가)"에게 매료되어, 훗날 자신이 공포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포"의 작품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영화계 입문

영화사에서 자막을 도안하는 일을 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였고, 그곳에서 영화 제작 기술을 익혔다. 1922년, "시모어 힉스(Seymour Hicks)"와 함께 공동으로 영화 "항상 부인에게 얘기하세요(Always Tell Your Wife)"를 감독했고, 본격적으로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첫 작품 "기쁨의 정원(The Pleasure Garden)"과 2번째 "마운틴 이글(The Mountain Eagle)"은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평범한 일상 속에 갑작스럽게 악이 침투한다."는 특유의 설정을 바탕으로 한, 3번째 영화 "하숙인(The Lodger)"에 이르러서 히치콕은 자신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영국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신인 감독으로 자리 잡은 그는 1926.01.02일 "앨마 리빌(영화 편집자)와 결혼했고, "브리티시 인터내셔널 픽처스"에 스카웃되었다. 이 회사에서 만든 1번째 영화 "링(The Ring)"은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이전의 영화들과는 달리, "히치콕ㆍ엘리엇 스태너드(Eliot Stannard)"가 시나리오를 집필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실험적인 기법이 도입되었다. "링"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으나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후 "유성영화 시대"가 열리면서, 연극 대본을 원작으로 하는 자신의 영화 "협박(Blackmail)"에서 부분적으로 소리를 집어넣었고, 이 영화는 평단과 관객 양쪽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는 영화제작사 측의 "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연극작품을 영화화하려는 경향"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부인 앨마 리빌ㆍ밸 밸런타인(Val Valertine)"이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집필한 "부자와 이방인(Rich and Strange)"과 본인이 제작한 영화 "캠버 경의 여인들(Lord Camber's Ladies)"의 연이은 실패로 히치콕은 "브리티시 인터내셔널 픽처스와" 결별했다.

 범죄 스릴러

"고먼트 브리티시(Gaumont-British)" 사와 재계약한 그는 자신이 바라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일련의 "범죄 스릴러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ㆍ39계단ㆍ비밀 첩보원(Secret Agent)ㆍ사보타주(Sabotage)ㆍ젊음과 순수(Young And Innocent)" 등 히치콕의 영국에서 만든 영화 중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미국 진출

1930년대 후반, "미국 진출"을 결정 지었고, 1938.07월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인 미국의 제작자 "마이런 셀즈닉(Myron Selznick)"의 동생 "데이비드 O.셀즈닉"과 계약했다. 감독들에게 일일이 세세한 부분까지 지시를 내리는 "셀즈닉"과의 공동 작업은 곧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에서의 첫 영화 "레베카"는 "아카데미상 작품상ㆍ촬영상"을 받으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자신의 장기인 서스펜스 영화 "의혹(Suspicion)ㆍ의혹의 그림자" 외에도, 코미디 "스미스 부부(Mr.& Mrs. Smith)ㆍ첩보 영화 "파괴 공작원(Saboteur)" 등 제작자 측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패러딘 부인의 사랑(The Paradine Case)"을 끝으로 히치콕은 "셀즈윅"을 떠났다.

 영화사 설립

제작자로부터 독립해, 자신의 영화 제작사 "트랜스애틀랜틱 픽처스(Transatlantic Pictures)"를 세워 첫 컬러 영화 "로프(Rope)"를 발표했고, 이어서 "염소자리 아래서(Under Capricorn)"를 만들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영화사는 문을 닫았고, 인기 배우를 기용하여 제작한 다음 작품 "무대 공포증(Stage Fright)"도 실패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그는 주식ㆍ부동산 투자ㆍ각종 방송ㆍ강의에 출연함으로써 부ㆍ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그는 신인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판권을 사들여,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만들어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즈음부터 그는 "다이얼 M을 돌려라ㆍ이창ㆍ현기증ㆍ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ㆍ싸이코ㆍ새" 등 그의 대표작들을 발표했다. 이후에 발표한 "찢어진 커튼(Torn Curtain)ㆍ토파즈(Topaz)"는 이전만큼의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히치콕은 70세를 넘긴 나이에 다시 메가폰을 잡고, 1972년 "프렌지(Frenzy)"를 발표해 흥행했다.

 TV드라마 사회

"히치콕 극장" 시리즈 (Alfred Hitchcock Presentㆍ1955~1961)의 사회ㆍ작품의 원작ㆍ주제 선정ㆍ감수를 맡았는데, 이 프로그램은 1958년 그 해의 최고 방송시리즈로 "골든 글로브" 상을 받았다. 후에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자, 1961년부터 방영 시간이 30분에서 1시간으로 늘어났다. 제목도 "Alfred Hitchcock Hour"로 바뀌었다. 영화업계가 새로운 매체인 TV와의 경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히치콕은 TV시리즈에 출연함으로써 자신의 인기를 높이고,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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