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ㆍ1926~ 1962ㆍ36세)"는 사생아 출신으로, 세기의 섹스 심벌 (Sex Symbol)ㆍ금발의 상징 (Blonde Bombshells)이 되었다.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 스타로, 불우한 환경에도 최고의 스타가 되었고, 죽어서도 슬픈 여인이었다. 가수 "머라이어 캐리"는 "먼로"의 소문난 광팬으로, "뉴욕 양키즈의 데릭 지터"와 염문설을 뿌린 것도 흑백혼혈이라는 유사한 인종적 배경 외에, "조 디마지오의 대체자"로서의 이미지를 간구했는지도 모른다. 20세기 현대 미술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는데, "먼로"의 사진을 단순하게 다른 색깔을 여러 번 입혀서 "마릴린 먼로"라는 제목으로 출품했다. 깡통 캔과 더불어, 그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이며, 원작은 수십억 대를 넘는다.
1.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ㆍ1926~ 1962ㆍ향년 36세ㆍ166cmㆍ1945~1962 활동)
미국 배우ㆍ모델ㆍ가수ㆍ1950~ 1960년대 초,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많은 영화에 출연ㆍ"6ㆍ25전쟁" 때, 한국의 "주한미군 부대"를 방문ㆍ미국 영화 협회(AFI) 선정 가장 위대한 여배우 6위.
• 출 생 :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 • 사 망 : LA • 사 인 : 자살 - 수면제 과다복용 (신경안정제인 바비튜레이트) • 본 명 : 노마 진 모턴슨 (Norma Jeane Mortenson) • 타 명 : 노마 제인 베이커 (Norma Jeane Baker) • 결 혼 : 3번 (이혼) : 1942~1946 (4년ㆍ16~20세): 짐 도허티 (이혼ㆍ1926ㆍ동갑?): 항공사 정비공 / 1954~1955 (1년ㆍ28~29세): 조 디마지오(이혼ㆍ1914ㆍ12살 차) : 메이저 리그 뉴욕 양키즈 야구선수 / 1956~1961 (5년ㆍ30~35세): 아서 밀러 (이혼ㆍ1915ㆍ11살 차):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극작가ㆍ세일즈맨의 죽음
2. "금발의 백치미인" 컨셉ㆍ외모
① 입가에 있는 점이 매우 유명하다.
흔히 "애교 점"이라 불리는 그것은 "먼로 점"이라고 따로 불리게 된다. 키는 166cm로 당대 기준으로는 상당히 큰 키이다. 당시 한국 남성 평균 신장이 160cm, 미군의 평균 신장이 174cm였다.
② "금발"은 염색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헤어가 "짙은 갈색"으로 보이는 과거 사진들이 많은데, 아주 어렸을 적의 사진들을 보면 머리색이 밝다. 원래 머리색은 "금발"이거나, "금발"에 가까운 밝은 갈색이었던 걸로 보인다.
③ 좋은 노래실력
노래 실력도 좋아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sㆍBye Bye BabyㆍWhen Love Goes Wrong, Nothing Goes Right)", "뜨거운 것이 좋아 (I Wanna Be Loved by YouㆍThrough With LoveㆍRunning Wild)", "나이아가라 ( Kiss)", "돌아오지 않는 강 (River Of No ReturnㆍDown In The Meadow)" 등은 그녀가 영화 속에서 부른 노래로 유명하다. "재즈풍ㆍ뮤지컬 댄스풍"의 사랑스러운 가사와 매혹하는 듯한 목소리가 포인트이다.
④ "금발의 백치미인" 컨셉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실제로는 똑똑했다고 한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의 "백치미"적인 모습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공적인 자리에서는 "백치미 연기"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멍청한 금발 미녀"라고만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똑똑하면 안 된다"고 믿고 싶었던 기자들은 "먼로"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역할을 맡아 보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기자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스펠링은 아느냐?"고 질문했다.
생전에 이러한 이미지로 고착된 것은 "고아"로 자란데다가, 불행한 결혼생활로 그녀가 평생 동안 가지고 있던 정서불안ㆍ두려움ㆍ약물 중독에서도 기인했는데, "뜨거운 것이 좋아"를 촬영할 때는 서랍장을 열면서, "버번위스키 어디 있어요?"라는 단순한 대사를 무려 59번이나 NG를 내서, 결국 서랍 안에 대사를 적어놓았지만, 어느 서랍에 "컨닝 페이퍼"를 넣었는지 몰라, 모든 서랍에 넣은 후에야 대사를 말했고, "먼로"의 마지막 완성작 "The Misfits"에서는 번번이 촬영장에서 지각을 해서, "클라크 게이블ㆍ몽고메리 클리프트"가 불쾌해했다고 한다.
3. 사 망
"먼로"의 말년은 "질병ㆍ사적인 문제ㆍ명성의 추락" 등으로 어렵게 살아갔다. 1962.08.05일, "가정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그녀의 방 침대에서 "나체"로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 공식적으로는 "수면제 과다복용 (신경안정제인 바비튜레이트)"에 의한 사망으로 되어 있다. 사건 현장에는 "수면제 통"이 널브러져 있었으며, 전화기를 꼭 붙잡은 채 엎드려 있었다고 한다. 죽기 직전,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지인은 그때까지 그녀가 죽을 거라고 예상은 못했다고 한다. 사랑을 얻지 못해 방황하던 "먼로"는 자살하기 전, 많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녀의 호소를 듣고, 상황이 급박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 "존 F.케네디ㆍ로버트 케네디" 형제가 죽음에 연루?
대부분의 사건 전문가들은 그녀의 죽음을 누군가에 의한 "타살"로 보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당시 사건 현장이 지나치게 훼손되었던 점, 그녀를 처음 발견한 의사들이 도착한 지 30분이 돼서야 경찰에 신고한 점을 의문점으로 내세웠다. 여기에 현장을 최초 발견한 사람들의 증언 또한 수많은 의혹을 불러왔다.
① 클레멘츠 경사 (현장에 도착한 최초 경찰관)
처음부터 현장은 조작되었다. 약물 과다복용 자살인 경우, 몸이 경련으로 뒤틀리는데, 먼로의 시체는 너무나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최초 목격자인 "가정부 머레이"는 심문 당시 불안한 모습을 보였는데, 심문한 뒤에는 느닷없이 세탁실에서 세탁을 하고 있었다. 집주인이 죽었는데 세탁을 하고 있다는 게 정상적인 사람이 할 짓일까?
② 당시 검시관 (먼로 시신 부검)
그녀의 시신을 부검한 원본 파일이 사라졌으며, 자살설을 반박할 그녀의 마지막 메모와 증거물이 있었는데, 그 증거물과 관련 보고서 모두 사라졌다.
③ 구급대원 (현장에 도착한 대원)
일반적인 약물 과다 복용자와는 달리, 먼로는 구토도 하지 않았으며, 입에서 약물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의식만 없었을 뿐, 숨은 쉬고 있었다. 마릴린 먼로가 최종적으로 사망한 곳은 집이 아닌 병원이었다.
④ 재클린 케네디 (존 F. 케네디 부인)이 "그녀 사망에 연루되었다"는 이야기도 퍼져 있었다.
"존 F.케네디ㆍ로버트 케네디" 형제와 친밀한 관계였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녀의 죽음에 "마피아 조직"이 개입된 타살설도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실제로 "로버트 케네디"와는 정말로 친했다고 한다. 소문의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조 디마지오"는 이 소문을 사실로 믿었고, 평생 "케네디 일가"를 증오했다고 한다. 자신이 지켜줬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했다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다.
2014년, "기자 제이 마골리스ㆍ작가 리처드 버스킨"은 저서 <마릴린 먼로 살해 : 사건 종결>에서 "로버트 케네디"가 "정신과 의사 랠프 그린슨에게 독극물을 주사하게 하였다"고 주장했다. 2015.04월, "전직 CIA 요원"이었던 노먼 호제스"는 "상관 지미 헤이워스"의 지시에 의해, "다량의 넴부탈을 주사해, 먼로를 암살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입증된 바는 없다. "로버트 케네디" 의혹과 거리가 먼 "CIA의 자의적인 선택이었다."고 주장해, 혼란만 부추겼다.
"약물 과용"으로 인한 사망이란 점 탓에 그녀의 죽음이 자살인지, 사고인지 분명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경찰은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공식 발표하며, 사건을 종결지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정의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공식적으로는 "가능성 있는 자살"로 분류되고 있지만, "우연적인 과다복용"이나 "살인"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사후, 마릴린 "먼로 묏자리의 윗자리"가 70대 여성에 의해 경매 매물로 놓였고, 2009년 "먼로 묏자리의 윗자리"에 묻힐 수 있는 권리가 450만 달러(약 56억 2000만 원)에 낙찰되었다.
⑤ "대통령 케네디 家"가 죽음의 배후에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설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1962.05.19일, "먼로"가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케네디 대통령"의 45번째 생일 파티에 참석한 이후, "워싱턴 정가"에서는 "케네디 대통령ㆍ로버트 케네디(동생)ㆍ먼로" 사이의 은밀한 관계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먼로"는 2명의 "케네디 형제"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현직 대통령인 "존" 보다는 동생인 "로버트"에 더욱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먼로ㆍ로버트 케네디"는 자연스럽게 "연인 관계"로 발전했지만, "로버트"는 끊임없는 "먼로"의 집착에 부담을 느꼈고, 사무실 개인 전화번호를 바꾸며, "먼로"와의 관계를 마무리하려 했다. 이에 심술이 난 "먼로"는 "만약 그가 계속 나를 피한다면, 내가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고, 이에 "로버트 케네디"가 "먼로의 살인을 지휘했다"는 것이 이 타살설의 내용이었다.
한동안 루머로 치부되었으나, 2014년 "제이 마골리스(탐사보도기자이자, 먼로 전문가)ㆍ리처드 버스킨(논픽션 베스트셀러작가)"가 내놓은 책 "마릴린 먼로 살해 : 사건 종결"이 "로버트 케네디"의 관여와 관련한 상세한 정황ㆍ증거를 내세우게 되면서, 다시금 탄력을 받게 되었다. (취재를 통해, 당시 병원에 실려 온 "먼로"를 담당한 의사가, "로버트 케네디"의 사주를 받은 "랠프 그린슨"인 것으로 확인했고, 그가 약물을 투여해, 마지막까지 숨을 내쉬던 "먼로"를 사망시켰다고 주장했다)
5. 일 화
① "먼로"는 평생 자기를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은 "백치미 컨셉"에서 벗어나, 진정한 연기력을 키우고 싶어 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왕자와 무희 (1957년 작)"의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ㆍ비비안 리의 남편)" 또한 "먼로"가 자신이 이제껏 공연한 여배우들과 비교해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재능과 열정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래 이 영화는 "로렌스 올리비에 (1907)ㆍ비비안 리 (1913)" 부부를 주연으로 하려 했지만, 막판에 나이든 "비비안" 대신 상대적으로 어린 "먼로"에게 기회가 돌아간 것인데, "먼로"의 매력에 위기감을 느낀 "비비안 리"가 영화 촬영 기간 내내 현장에 머물면서 감시를 했지만, 결국에는 "비비안 리"마저 먼로의 인품ㆍ지적 매력ㆍ유머 감각에 감탄했다고 한다.
② 영국에서 "왕자와 무희 (1957년 작)"을 찍을 때, 감독인 "로렌스 올리비에" 밑에 조수로 일했던 "콜린 클락"은 "먼로와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경험을 2개의 책을 썼는데, "The Prince, the Showgirl and MeㆍMy Week With Marilyn"이며, 전자는 드라마 화되기도 했고, 후자는 2011년 동명의 이름으로 영화화되었다. 둘 사이의 관계는 전적으로 "콜린 클락"의 주장이기에, 이를 그대로 믿는 건 곤란하다.
③ 의외의 "지성미"를 가졌던 그녀
"육체파 스타"의 이미지가 강하게 베여있지만, 사실 "먼로"는 의외의 수준 높은 지성을 가진 스타였다. 초기 작품들이 그녀의 "금발 백치미"를 강조한 탓에, 주변인들이 자신을 "머리 빈 미녀"로 인식한 탓에 "지성 콤플렉스"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배움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며, 스타가 된 이후 "자신의 지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강행했다. "UCLA 대학"의 문학 강좌를 듣고, "톨스토이ㆍ도스토옙스키ㆍ밀턴" 등 당대 최고 문호들이 남긴 수백 권의 책을 읽는가 하면, "베토벤"의 음악을 주로 들으며, 나름의 감성을 키우려 했다.
그 덕분에 "먼로"는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제작사"를 설립하고, 할리우드의 명작가 "링컨 스테펀스"와 친분을 유지하며, 영화인들과의 지적인 만남과 관계를 이어나갔다. 1956년 출연한 "버스정류장"은 코미디와 오락 영화에만 출연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감성 연기에 도전한 작품으로, 의외의 열연을 펼쳐 평단의 호평을 받게 되었다.
④ "마릴린 먼로가 <율리시스>를 읽다"는 유명한 사진에는 그녀가 "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읽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다.
진짜로 읽었는지 궁금했던 한 "영문과 교수"가 기자에게 문의한 결과, 진짜였다고 한다. 물론 이 책을 읽는 것이 똑똑함의 척도가 될 수는 없지만, 영미문학계에서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권위와 책이 가진 난이도를 생각하면, 이 책을 완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집념과 교양은 대단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⑤ 정치적 탄압
FBI에 의해, "친 소련인사ㆍ공산주의자ㆍ사회주의자"로 분류되었고, 지인 중에 "미국 공산당"의 당원들이 상당수 있었다. 이로 인해 멕시코를 여행했을 때, 그 행동들이 보고서에 기록되어 "에드거 후버(FBI 국장)"에게 제출 될 만큼 정치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했다.
⑥ 철학자적인 면모
"먼로"는 당대 유명한 연기 코치들로부터 연기술을 배우고, 타고난 감성과 지적 열정으로 자기 혁신을 끊임없이 시도한 배우였고, 배우는 기계가 아니라,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자서전 "마이 스토리"에서 실체와 환상 사이에서의 정체성 혼란을 언급하고, "섹스 심벌이나 백치미"라는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게, "인조 영웅"도 만들어내는 대중의 심리를 꿰뚫으며, "사람들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자신들의 음란한 생각을 본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나를 멋대로 지어낸다. 그러고는 자기들의 환상이 깨지면, 내 탓으로 돌린다. 내가 자기들을 속였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지나(영화평론가)"는 "세상을 유혹한 여자, 마릴린 먼로(칼 롤리슨의 저서)" 서문에서 "우리는 먼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고 자신하지만, 사실은 편견에 가득 차 있다. 먼로는 자아도취와 자기혐오라는 극단적인 인지부조화 속에서 결국 죽음으로 자신을 내몰 정도로 순수하게 자신과 직면한 사람, 연기를 통해 자기혁신을 꾀한 자아실현의 의지를 갖춘 철학적인 시인 같은 지성파 배우, 고독을 친구 삼아 철저히 자기준비를 했던 프로, 대중이 만들어준 스타의 공익적 기능을 간파한 동시에 장식품이 되길 거부한 지성이다"고, 평가했다.
⑦ 기 타
애정 결핍과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무시하고, "몸뚱이"로만 보던 영화계의 시선 때문인지,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려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친절했다고 한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당시에도 유색인 팬들이나, 유색인 국가 방문 시에도 예의바른 태도로 좋은 말을 들었다. 심지어 당시 후진국 중에서도 후진국이던 "한국"에서도 잘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위문"차 방문했으며, 당시 "먼로" 방문환영 현장에서 한국 영화인 대표로 나선 "최은희"와 팔짱 끼고 추운데서 벌벌 떠는 "먼로"의 사진과 한국인 팬이 보여주는 자신에 대한 신문기사를 즐겁게 보는 "먼로"의 사진이 남아 있다.
그녀의 위탁 부모들 중, 한 가정이 "흑인 지역"을 출입하는 우체부였기에 자연스럽게 흑인들과 어울렸던 "먼로"는 영화계 데뷔 후에도 "흑인 아이들"과 한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이고, "양부모"에게 성추행당한 과거를 고백하며, "여성운동"에도 많이 관심을 가지는 등 "모든 인간은 타고난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당대 사회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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