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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 남진 (1945~)ㆍ나훈아 (1947 (1951?)~) 비교

by 당대 제일 2022.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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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 (南鎭ㆍ김남진(金南鎭)ㆍ1945~)"이 부르는 트로트는 다른 트로트 가수들에게서 나오는 "뽕끼"가 덜해서 지금 들어도 중후하고 세련된 느낌이 들고, 나훈아 (羅勳兒)ㆍ최홍기(崔弘基)ㆍ1947 (1951?)~)는 "가창력"만큼이나 자타가 공인하는 장점은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무대 장악력ㆍ무대 연출능력"을 꼽을 수 있다.

 

1. 남진 (1945~)ㆍ나훈아  (1947 (1951?)~) 비교

남진1
남진2
남진3

2. 1972.07.04, "나훈아" 피습사건

"나훈아""서울시민회관"에서 리사이틀 공연을 하고 있는 중, "남진의 사주를 받았다"는 한 남자가 무대에 뛰어올라, "깨진 사이다 병" 파편으로 "나훈아"를 피습하였다. 갑작스런 습격으로 "나훈아"는 왼쪽 얼굴에 5cm가량의 큰 부상을 입었고, 72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 있다.

언론 매체들은 용의자가 당시 라이벌이었던 "남진의 사주를 받았을 것"이라고 몰고 가는 바람에 "남진 팬나훈아의 팬들"이 크게 대립해 긴장감이 조성되었었다 "남진""나훈아 피습사건"의 범인으로 낙인이 찍혔고, 루머가 당시엔 급속도로 퍼졌다 이후 "남진 측나훈아 측"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남진""몇 십 년 지나서 안 사실이다. 신성일 선배한테 그 괴한이 제일 먼저 갔더라. 다음으로 저한테 왔다. 아침에 인기척에 눈을 떴는데 머리맡에 모르는 얼굴이 있었다."면서 괴한이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남진"은 이를 거부했다면서  "(괴한이) 당신 라이벌을 해치면 돈을 줄 거냐고 말을 하더라. 정상이 아니구나 싶었다."고 덧붙여 좌중을 경악케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있다가 사고가 난 거다. 나중에 저희 목포 집에 와서 방화도 하고 그랬다. 어머니가 계신 집이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픈 게,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초상화가 탄 게 지금도 성질이 난다"고 고백했다.

3. 2008.01, "나훈아" 중요 부위 훼손 사건

"모 스포츠 기자"가 블로그에 "중견 가수가 젊은 여배우 K와 스캔들이 나서 야쿠자에게 중요 부위를 훼손당하는 보복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고, 이것이 부풀려져 "나훈아" 쪽으로 몰아갔다.

(일부 기레기들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여배우 " K1ㆍK2"라는 식으로 언질을 줬다. 이 때문에 "나훈아"는 기자회견에서 이 둘의 성명을 직접 언급하며, "자살을 안 한 게 천만다행"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일갈로, 기자들의 보도 작태를 강하게 질타했다.)  결국 "나훈아"가 직접 1시간짜리 기자회견을 열고,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기자회견을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제가 지금부터 이 위에 올라가서,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하더니, 입고 있던 정장 재킷을 벗고 단상 위로 올라갔고, 그 자리에서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서는 ", 지금 여러분들 중에서 대표로 얘기해 주십시오. 제가 내려서 5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며, 원한다면 아예 바지를 벗어 증명하겠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당연히 기자회견장은 그가 단상에 올라갈 때부터 술렁이고, 셔터가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 때 "나훈아" 팬들이 "나훈아를 굳게 믿는다."고 외쳐, 진짜 바지를 내리지는 않고 끝나게 되었다.

2014.10.08일 아내 "정수경""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했고, "나훈아"도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한다. 결국 "조정 절차"를 거쳐, "이혼"에 합의하였고, "재산 분할"12억을 지급했다.

"나훈아"는 다른 가수들이 자주 초대를 받는 고위급 인사들의 연회에 단 1번도 참석을 수락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는 보통 가수들이 그런 연회에서 3곡 정도를 부르고 나서, 3,000만 원 가량의 돈을 받는다는 것인데, 실제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한 마디로 딱 잘라서 거절했다고 한다.

"나는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사람 앞에서만 공연을 한다 내 공연을 보고 싶으면 당장 표를 끊어라." 이 일화는 "김용철 변호사""삼성을 생각한다."에도 등장하는데, "김용철"은 이 일화 덕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나훈아"라고 한다.

두 사람은 "어머님 생전에(1973)"같은 영화에 나란히 출연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남진"이 인기가 좀 더 많았지만, "나훈아"가 후에 부각되며, "라이벌"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에도 예술적인 곡을 많이 작곡작사를 한 "나훈아"는 가수예술가로서 확실한 자리를 잡는다.

당시 공연장에서는 "남진" 팬들은 "나훈아"에게 "소도둑놈 저리가라"고 외치고, "나훈아" 팬들은 "남진"에게 "돼지 멱따는 소리 치워라"라 외치며, 공방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남진 콘서트"도 매번 매진되지만, "나훈아 콘서트"는 티켓 발매를 개시하자마자 10초도 안 되어 동나기 때문에, "BTS이승환한국시리즈 7차전" 급으로 "티켓 예매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가수로서의 각자의 철학에 따른 것이기도 한데, "나훈아""저 하늘 위의 별"로서 본인을 포지셔닝 한 반면, "남진"은 어디까지나 "대중의 친구"를 지향했다.

4. 대표곡 

나훈아  :  콘서트에서 한 팔만 들면, 자기가 작사 또는 작곡한 노래이고, 작사작곡을 다 한 노래를 부를 때는 양 팔을 위로 올리는 퍼포먼스를 취한다.

천리길 : 첫 히트곡 (이 곡은 표절시비가 있었음

사랑은 눈물이 씨앗 : 가수로 부상시킨 곡

고향역 :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나훈아 무명시절을 날려 준 곡)

18세 순이 : 살구꽃이 필 때면, 돌아온다던 내 사랑 순이는        갈무리 :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몰라 건배 : 냉정한 세상, 허무한 세상,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세상        물레방아 도는데 :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대동강 편지 : 대동강아 내가 왔다. 을밀대야 내가 왔다        머나먼 고향 : 머나먼 남쪽 하늘아래 그리운 고향         무시로 : 이미 와버린 이별인데 슬퍼도 울지 말아요        사랑은 눈물의 씨앗 :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애정이 꽃피던 시절 : 첫 사랑 만나던 그날, 얼굴을 붉히면서        영영 :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울긴 왜 울어 : 울지 마. 울긴 왜 울어 고 까짓것 사랑 때문에      잡초 : 아무도 찾지 않은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해변의 여인 : 물위에 떠있는 황혼의 종이배

녹 슬은 기찻길 :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 잃은 서러움을 녹 슬은 기찻길아 (1972년 발표, 끊어진 "경의선 철길"을 표현해 실향민의 아픔을 드러냈다)

땡벌 : 흔히 "강진"이 부른 노래로 생각하는데, 실은 "나훈아"가 부른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나훈아 판""리메이크 판"은 가사 내용이 다소 차이가 있다.

사랑 : 이 세상에 하나 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아내들이 남편에게 듣고 싶어 하는 노래 1)

찻집의 고독 : 그 다방에 들어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젊을 때,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 괴한에게 흉기로 칼을 맞아 얼굴을 다쳐서, 이후로는 왠만한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그때가 생각난다 해서 잘 안 부른다.)

청춘을 돌려다오 : 발표 시, "신행일"의 노래로 녹음됐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80년대 "나훈아현철"이 다시 불러, 비로소 히트됨.

홍시 :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1992년 후배 "김지애" 앨범에 "석류가 웃는 이유"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김지애" 앨범에 레퍼토리로 자주 나왔음에도 뜨지 못했고, "나훈아" 본인이 리메이크하여 대박이 나자 "김지애"가 아예 수록곡으로만 치부했던 곡으로 새 앨범을 내서 활동 중이다. "나훈아"가 모친을 회상하여 추모하는 곡으로, 많은 이들이 이 노래를 듣고 떠나가신 어머니와 부모님을 생각해 눈물을 흘렸다는 댓글이 많이 나온다.)

 

남 진

1967 : 가슴 아프게우수           1971 : 마음이 고와야지           1972 : 님과 함께           1973 : 그대여 변치 마오            1976 : 어머님           1977 : 미워도 다시 한 번           1982 : 빈잔           1999 :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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