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은 1914.07.28~1918.11.11 (4년 4개월 14일ㆍ사망 : 990만명)에 발생했으며, "2차 세계대전"은 1939.09.01~1945.09.02 (5년ㆍ사망 : 7,300만명)이 발생했다.
1. 세계대전 (1차) : 1914.07.28~1918.11.11 (4년 4개월 14일ㆍ사망 : 990만명)
① 결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터키)ㆍ합스부르크 제국의 멸망(독일) → "우드로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발표 (1918.01.08) → 국가 인정
② 3국 동맹국
프로이센ㆍ독일 (비스마르크 이후→ 빌헬름2세 황제등극→ 개인의사로 정책결정ㆍ영국과의 해군력 경쟁관계)ㆍ오스트리아 : 헝가리ㆍ이탈리아(→ 향후, 빠짐)
③ 3국 협상국 (연합국)
영국ㆍ프랑스ㆍ러시아(→ 향후, 빠짐 → 러일전쟁 패배ㆍ독일- 재보장 조약 갱신무산)
④ 발칸반도
"유럽의 화약고"ㆍ민족구성이 복잡ㆍ유럽 남부~ 지중해 동부에 돌출한 3각형의 반도 (면적- 50만 5000km2ㆍ동서길이- 1,300kmㆍ남북길이- 1,000km)
"발칸"이라는 명칭은, 반도 북동부에 있는 "산맥 이름"을 따른 것으로, 이 산맥은 "슬라브어"로 "스타라플라니나"라고 부르며, "카르파티아 산맥"이 "루마니아"에서 만곡(灣曲)하여, "철문(鐵門)"이라 부르는 "도나우의 협곡부"를 거쳐, 남쪽으로 뻗고 있는 부분에 해당한다.
"에게 해(海)ㆍ이오니아 해"에 둘러싸여 있다. 남ㆍ북의 2개 부분은, 자연조건ㆍ문화ㆍ민족적 전통 등에서 매우 이질적이다. 북쪽 부 : "도나우 강과 드라바 강"의 계곡에 의해, 대륙부와 밀접하게 결부 / 남쪽 부 : 복잡한 지형을 이룸
2. 진행 : 세계대전 (1차)
① 1701~1772 (프로이센 왕국(외공내왕))→ 1772~1918 (프로이센 왕국)→1918~1947 (프로이센 자유주)→ 1933~1947(독일)
독일의 빵 값 (한덩어리) : 1918년(0.5 마르크)→ 1923년(천억 마르크ㆍ100,000,000,000 마르크)
3국 동맹 (1882): 독일ㆍ오스크리아-헝가리ㆍ이탈리아 / 3국 협상 (1907): 프랑스ㆍ영국ㆍ러시아
② 1815 : "프로이센ㆍ오스트리아ㆍ러시아" 간의 "신성 동맹" 시작
1871 : "보불전쟁(독불전쟁)"에서 "독일"이 승리하여, 독일이 통일된 이후, 산업ㆍ경제력이 급상승 → 1873.10. : 독일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독일ㆍ오스트리아-헝가리ㆍ러시아" 사이 "3제 동맹" 체결→ "오스트리아-헝가리ㆍ러시아" 간에 "발칸반도"에 대한 정책 동의에 실패→ 1879년 "독일ㆍ오스트리아-헝가리", "3제 동맹"에서 탈퇴하여, "2국 동맹" 재결성ㆍ "오스만 제국"은 "발칸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면서, 반대로 "발칸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증가
1882 : "2국 동맹"에 "이탈리아 왕국"이 가입하면서, "3국 동맹"으로 전환ㆍ "비스마르크"는 "프랑스ㆍ러시아"와 "2개전선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독일ㆍ러시아"간의 동맹 유지 노력→ "빌헬름 2세"가 독일황제 즉위 후, "비스마르크"에게 퇴위 강요→ "비스마르크"의 동맹시스템은 점차 해체
1890 : "빌헬름 2세"는 "러시아"와의 "재보험 조약갱신" 거부ㆍ1890년대 중반부터, "빌헬름 2세"는 중요한 경제자원을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가 지휘하는 "독일제국 해군"에 투자하여, "영국해군"과 군비경쟁→ 각 국가들은 주력함을 더욱 많이 건조하기 위해 노력→ "영국ㆍ독일"의 군비경쟁은 모든 유럽 주요국이 유럽 전역의 분쟁에 필요한 무기ㆍ장비를 생산하는데 산업기반을 기울이면서, 유럽전역으로 경쟁 확장→ 1908~1913년까지 유럽국가의 군비 지출은 50% 상승하게 됨.
1892 : "3국 동맹"을 막기 위하여, "프랑스ㆍ러시아" 동맹 체결 → 1900 : 복잡한 정치ㆍ군사적 "동맹 네트워크"를 형성 → 1904 : "영국ㆍ프랑스" 협정 → 1907 : "영국ㆍ러시아" 우호 조약 체결ㆍ이 조약은 공식적으로 "영국ㆍ프랑스ㆍ러시아" 동맹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프랑스나 러시아"가 분쟁을 겪을 경우, "영국"이 참가하게 된다는 항목이 있었으며, 이러한 "양자 연동 협정"은 "삼국 협상"으로 알려졌다
1908~1909 : 보스니아 위기→ "세르비아 왕국"과 후원자인 "범슬라브주의 동방 정교회"의 "러시아 제국"을 화나게 함.
③ 1912~1913 : 제1차 발칸전쟁 발발 (발칸 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전쟁)
"런던 조약"에서 "알바니아" 독립, "불가리아ㆍ세르비아ㆍ몬테네그로ㆍ그리스"는 영토를 확대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감소
④ 1913.06.16 : 제2차 발칸전쟁 발발 (불가리아가 세르비아ㆍ그리스를 침공(33일간))
"불가리아" 패배→ "세르비아ㆍ그리스"에게 "마케도니아" 대부분을, "루마니아"에게 "남 도르부자"를 할양→ "발칸반도"가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됨.
⑤ 1914.06.28 : 보스니아 "사라예보 사건" 발발
"오스트리아" 영토인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검은손)" 7명(2명은 미성년자라 사형 안 됨)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부부(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 권총으로 암살→ "사라예보"에서 "반 세르비아 폭동" 발생→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핍박이 발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대도시로 확대
⑥ 1914.07.28 : "세르비아" 정부에 선전포고 (7월의 위기) → 1차 세계대전 발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게 의도적으로 전쟁을 자극할 10가지 요구사항으로 구성된 "7월 최후통첩" 송부→ "세르비아"는 10가지 요구사항 중 8가지만 수락→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전쟁 선포
1914.07.29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발칸 반도"의 영향력을 넓히는 것이 내키지 않고, "세르비아 왕국"의 오랜 지원국이었던 "러시아 제국"은 07.29일 "부분 동원령" 명령→ 07.30일 "총 동원령" 명령→ 07.30일 "독일제국"도 "동원령" 발동
1914.08.01 : "러시아"는 "총 동원령"을 해제하는 것으로 협상요구→ "독일제국"은 협상 거부→ "러시아"에 선전포고→ "독일제국"은 "프랑스에게 중립을 유지하라"고 요구→ "프랑스" 내각은 "프랑스" 국경에서 10km 밖으로 군대 철수
⑦ 1914.08.02 : "독일제국"은"룩셈부르크"침공
1914.08.03 : "독일제국"은 "프랑스"에게 선전포고→ 1914.08.04 : "독일제국"은 "벨기에"에게 선전포고→ "영국"은 "독일제국"에게 선전포고→ 1914.08.12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간에 "체르 전투ㆍ콜루바라 전투" 발발→ "세르비아" 침공 실패
1914.10 : "일본"은 "독일의 미크로네시아 식민지"를 장악ㆍ"칭다오 전투"를 통해, "중국 산둥반도"에 위치한 "칭다오" 점령→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칭다오"에 자국 "순양함 SMS 카이저린 엘리자베스"의 철수 거부→ "일본"은 "독일"뿐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도 전쟁선포
⑧ 1915.04 : "연합국"의 "터키 침공"에 자극받아, "이탈리아"는 "3국 협상(연합군)"에 가입
"이탈리아"는 "3국 동맹"의 일환으로, 1882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맹을 맺음→ 그러나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가 가지고 있던 "트렌티노ㆍ오스트리아 연안 지역ㆍ피우메 (현 리예카)ㆍ달마티아" 지역 확보에 욕심→ 1902년, "프랑스"와 비밀 조약을 맺어, "3국 동맹"을 무효화→ 전쟁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공격자라는 이유로 참전 거부→ 연합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에게 승리할 경우, "남부 티롤ㆍ오스트리아 연안 지역ㆍ달마티아 해안" 지역을 주는 조건으로 참전→ 1915년 "런던 조약"으로 공식화
1915.05.23 :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선전포고 → 1915.10.23 : "이탈리아"는 "독일"에게 선전포고
⑨ 1915.10 : 영국의 2중 Play : 맥마흔 선언 (1915.10월ㆍ아랍국) / 밸푸어 선언 (1917.11.02ㆍ유대인)
• 1916.12 : "독일"은 "루마니아" 공세를 성공적으로 끝내자, "연합군"과의 평화협상 준비→ 우드로 윌슨(미 대통령)이 조정자로 개입→ "독일"이 어떠한 특정 제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은 실패하고, "협상국"은 "독일"제안을 거부→ "윌슨"에게 "협상국"은 "동맹국"이 점령한 모든 "연합군" 영토에서 나오며, 손해 배상금을 물때까지 평화협상을 하지 않는다고 말함.
⑩ 1917.04.06 : "미국(중립국)" 참전 선언→ "미국 상선 침몰"로 인해 참전
"미국"은 전쟁 중, "영국ㆍ독일" 전쟁에서 중립적 입장을 표명→ 01.16일, "아서 치머만(독일 외무장관)"이 "펠릭스 폰 에카르트(멕시코주재 독일대사)"에게 보냈던 암호 전문 "치머만 전보"에서 "멕시코가 미국을 공격할 경우, 멕시코가 1848년에 미국에 빼앗긴 모든 영토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내용 때문에, "미국"은 참전 쪽으로 선회→ 얼마 후 "독일"은 "U-보트"를 이용해, "미국 상선"을 공격하였고, 탔던 많은 미국인들이 사망→ 04.06일, "윌슨 대통령"은 의회에서 "독일"에 선전 포고할 것을 제의→ 의회 승인
1917.12.06 : "미국"은 "오스트리아"에 선전 포고→ "이탈리아 전선"까지 확대ㆍ"미국"은 "독일"에 선전포고→ "연합국" 반격 개시→ 결국, "동맹국" 군대가 차례대로 투항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
⑪ 1917.03 : "러시아 혁명(1차)" 발생 (2월 혁명ㆍ부르주아 혁명ㆍ케렌스키 임시정부)
"피의 일요일" 사건 발생 : 1905.01.22.일, "러일전쟁"을 계기로, "러시아 정교회 사제" 주도로 개혁을 요구하는 민중운동이 발생→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 앞에서 비무장한 시위대를 상대로 "차르의 군대"가 발포, 하루에만 사망자 500~600명이 사망→ 1907년 즈음 가서야, 국민 불만이 진정 (한때 러시아는 연평균 7%의 산업성장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는 국내의 불만을 진정시키기 위해 많은 병력 파병을 결정→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자멸적인 대패(지휘관들 무능함)ㆍ많은 젊은이들이 군에 지원ㆍ노동력은 급격히 저하ㆍ민중의 복지용 국가예산이 전쟁에 사용ㆍ민중들의 생활은 궁핍
그럼에도 "니콜라이 2세"는 1915년부터 직접 전투지휘ㆍ국정은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맡기고, 황후를 등에 업은 "라스푸틴"을 중심으로 운영ㆍ국정은 파탄지경→ 전쟁에 대한 "러시아 정부" 불만 증가→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전쟁을 계속 끌면서, "러시아" 내부 불안상황 고조→ "알렉산드라 황후"의 무능한 통치로 시위 발생→ 1916년 말, "황후"가 사랑하는 "라스푸틴"이 살해→ 1917.03월 "페트로그라드"에서 시위 발생ㆍ군인 합세(페트로그라드 노동자ㆍ소비에트 병사)→ "니콜라이 2세" 퇴위→ "러시아 임시 정부(케렌스키 임시정부)" 탄생(부르주아와 사회주의자들의 연합정권ㆍ사회주의자들은 "부르주아 혁명"으로 판단하고, 정권을 장악하지 않았다.)
⑫ 1917.11.07 : "러시아 혁명(2차)" 발생 (10월 혁명ㆍ볼셰비키 혁명ㆍ마르크스주의 혁명)
"케렌스키 임시정부"는 힘도 약했고,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사회주의자"와 연대하여 겨우 유지→ 민생이 어려워진 원인인 "전쟁을 끝내 주길 바라"는 민중들의 열망 무시→ 한계를 드러내고, 동시에 경제파탄을 겪어, 민중 지지기반 이탈(전선ㆍ후방 모두혼란 가중)→ 망명지 스위스에서 "블라디미르 레닌" 급거 귀국→ "페트로그라드"에서 "임시정부"에 대한 불만ㆍ취약함으로,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 당"의 인기 상승→ 전쟁 중단 요구→ 1917.11.07일 오전 10시, "볼셰비키 당"의 무장 봉기 성공
"볼셰비키 군사혁명위원회(위원장 트로츠키)"가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볼셰비키 1,000여 명의 "적위대"를 이끌고 급습ㆍ"케렌스키 임시정부" 타도에 성공→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됐음을 선언
⑬ 1917.12 : "러시아"는 "독일"과 휴전 협상
1918.03.08 : "러시아ㆍ동맹국"과 "브레스트 - 리토프스크 조약" 체결ㆍ"핀란드ㆍ발트 3국ㆍ폴란드ㆍ우크라이나"의 대부분을 "동맹국"에게 할양하는 등 광대한 영토가 넘겨짐.(러시아 지역에서 독일 승리)→ 러시아 지역에 주둔한 독일군의 인력이 너무 많아, 이후 일어난 "춘계 공세"가 실패→ 식량ㆍ물자보급 난 발생→ "연합국"은 "독일"이 "러시아 자원"으로 팽창하는 것을 저지하고,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차르 측)"을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로의 소규모 침공 단행
⑭ 1918.11.11 : "독일"이 "프랑스 콩피에뉴의 열차 안"에서 "프랑스"에게 항복 선언
"황제"는 제위를 포기하고, "네덜란드"로 망명 → "독일"은 "군주제"를 포기하고, "공화정"으로 전환
⑮ 1919.06.28 : "베르사유" 조약 체결→ "독일"의 해외식민지를 "프랑스ㆍ영국"에게 할양
승전국들은 "베르사유 궁전"에 모여, 패전국에 대한 처리를 논의 → 전쟁 배상금 (1,320억 마르크(현, 205조 원) 지불 약속 (제2차 대전 발발 이유 중 하나)
⑯ 케이스의 경고 (영국 재무성ㆍ거시경제 창시자)
경제와 화폐를 파탄시키면, 야만이 살아나온다→ 무분별한 통화발행→ 물가상승ㆍ실업자 600만 명 (독일 빵1개- 1918(0.5마르크)ㆍ1928(천억 마르크)ㆍ1$= 4조 마르크)→ 좌파ㆍ공산당은 파업→ 독일이 엉망→ 반격 준비(제국주의자ㆍ자본가ㆍ보수세력ㆍ민족주의자)→ 1923년, 히틀러의 뮌헨 폭동(맥주 홀 폭동)ㆍ실패ㆍ체포ㆍ대중적지지→ 재판장을 선전의 장으로 만든 연설가→ "하나 된 위대한 독일"이란 환상 설파(국가민족사회주의) → 나치당이 선거에서 1당이 됨→ 히틀러가 연방총리 "지금부터 공익은 사익에 우선한다." 선언→ 당의 판단에 따른 통치시작→유대인 해고ㆍ아우토반 건설(사회부양책ㆍ대규모 토목공사로 취직 증대)→ 공산당ㆍ자유주의자 작살→ 사회가 조용→ 질서ㆍ활기→ 히틀러의 업적ㆍ선전에 심취→ 불안한 사회 속에서 그저 강인한 "우리"에 속하고 싶었던 무수한 보통 사람들→ 보통 사람들 마음은 한 정치인의 욕망을 이루는 "전체주의의 재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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