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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역사 • 사건 • 인물

사건- 40.08 : 대동아공영권 (일본제국)ㆍ일만지 (日滿支)

by 당대 제일 202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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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공영권 (大東亞共榮圈)"이라는 것은, "일본에 의해 주도되고, 서방 세력에 독립된 자급자족적인 아시아 각국의 블록" 들어내려는 욕망을 표현한 것으로, "일본"이 국책요강으로 "대동아 신질서 건설"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1940.08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아시아 대륙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정치 슬로건이다. 

 

1. 대동아공영권 (大東亞共榮圈): 1940.06.29, 라디오 연설에서 선언

"일본제국 정부ㆍ일본군"에 의해 고안, 점령지의 아시아인들에게 동아시아보다 더 큰 영역에서의 "동북아시아ㆍ동남아시아ㆍ오세아니아"의 문화적ㆍ경제적 통합이라고 선전된 개념

• 대동아 (大東亞) : 동아시아(동아(東亞)) + 동남아시아

• 일선만 (日鮮滿일본조선만주) 블록 → 일만 (日滿일본만주) 블록 → 일만지 (日滿支일본만주중국) 블록 

• "조센징 (조선인)"은 어디에 있건 "내선일체 (內鮮一體)"의 원칙이 적용되고, 징병의 대상이 되었다. "불령선인(후테이센진ㆍ不逞鮮人)"- 조선총독부에 항거ㆍ저항했던 조선인을 일제가 부정적으로 지칭한 말

2. "아시아 대륙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정치 슬로건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한 직후인 1941.12.10일에는 이 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부르기로 결정하였으며, 12.12일에는 전쟁 목적이 "대동아 신질서 건설"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대동아공영권"에서 "일본"이 한 일은 "피점령국"의 주요 자원ㆍ노동력을 수탈하는 것이었으며, 이 목적을 위하여, "식민지ㆍ점령지"의 독립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함으로써, 허황된 슬로건으로 끝났다. 

1931년, "일본"은 "만주(중국의 둥베이 지방)"을 침략하기 직전,

"일본ㆍ조선ㆍ만주ㆍ중국ㆍ몽골"의 "5개 민족이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일본과 만주가 블록을 결성해야 한다."는, "일만(日滿) 블록" 같은 슬로건을 선전하고 있었다.

 1933년, "일만(日滿) 블록 슬로건"은 "만주"를 점령한 후에,

"중국"을 합한 "일만지(日滿支) 블록"으로 발전하였다.  1938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일본ㆍ만주국ㆍ중국"이 주도하여, "동아 신질서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1940.08.01일, 일본 외상 "마쓰오카 요스케"는 담화를 발표해,

처음으로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했다. 그 요지는 "아시아 민족이 서양 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본을 중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을 결성하여, 아시아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동아공영권의 결성"이란,

"일본ㆍ중국ㆍ만주"를 중축(中軸)으로 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ㆍ타이ㆍ말레이시아ㆍ보르네오ㆍ네덜란드령 동인도ㆍ미얀마ㆍ오스트레일리아ㆍ뉴질랜드ㆍ인도"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의 "정치적ㆍ경제적인 공존ㆍ공영"을 도모하는 블록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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