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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 역사ㆍ사건ㆍ인물

비단길 (緋緞路)ㆍ실크로드 (Silk Road)

by 당대 제일 2022.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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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길 (緋緞路)ㆍ실크로드 (Silk Road)"는 비단길은 3대 "간선"과 5대 "지선"을 비롯해, 수만 갈래의 길로 구성되어 있는 범세계적인 그물 모양의 교통로이다. 육상, 또는 해상을 통한 근대 이전의 "동서 교역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동(東)ㆍ서(西)라 함은 중국과 유럽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1. 비단길 (緋緞路)실크로드 (Silk Road)

"비단길"이라는 언어의 기원 자체가 중국의 비단이 로마제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비단길"은 역사를 통해서 더 다양한 교역품들을 전달하는 통로로 확대되었고, 더 나아가 문화가 유통되는 통로이기도 했다이러한 이유로 현대 중국 역사학교류사그리고 중앙아시아사에서 비단길 연구가 가지는 입지는 크다.

"비단길"은 단순히 동서를 잇는 횡단 축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남북의 여러 통로를 포함해 동서남북으로 사통팔달한 하나의 거대한 교통망으로 보아야 하며, 이에 따라서 비단길의 개념 또한 확대되게 된다

2. 3대 간선 : 서양과 동양을 횡으로 연결하는 길로 3개의 간선이 있다.

초원 길

중국 "한나라" 이전의 문명 교류의 주 통로로 사용되었던 길이며, 유라시아 북방 초원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길이다서쪽의 끝인 "카스피해"연안 혹은 "발트해"남단으로부터 "흑해"의 동북 편과 남러시아의 "카스피해" "아랄해"연안을 지나, "카자흐스탄""알타이 산맥"이남의 "준가리아 분지"를 지나, "몽골 고비사막" 북단 "오르혼 강"연안으로 이어진다이후 동남향으로 바꾸어 중국의 "화북 지방"에 이르러, 그 동쪽 끝에 이른다그러나 이 길을 연장하여 한반도까지 연결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일찍이 문명 교류의 처음을 연 "비너스상"1만 년 전에 이 "초원로"를 따라, 북방 "유라시아"초원지대에 동서로 널리 전파된 것으로 짐작된다BC 4~3천년 경에는 "채도 문화"가 이 길을 거쳐, 서아시아에서 중국 및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이 길을 "채도의 길"이라고도 부른다서아시아에 기원을 둔 "청동기"나 로마의 "유리"도 이 길을 따라 전파되었다일본 사학계의 "기마 민족설"에서 말하는 "고분문화기(3~ 5세기)""기마 문화""초원로"를 통하여 전달되었다고 여겨진다.

오아시스 길

"오아시스길"이란 중앙아시아의 "건조지대(사막)" "반 사막"에 점재하는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동서로 뻗은 길을 일컫는다사막을 비롯한 건조지대의 군데군데에 항상 물이 고여 있어 수목이 자라고, 인간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오아시스""오아시스"는 사막 인들의 생활의 보금자리일 뿐만 아니라, 교역의 중심지로서 거기에서 문물이 집산되고 교통이 발달되어 왔다.

"비단길" 중에서 가장 심장부에 위치한 "오아시스길"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역사시대" 전에는 "초원로"가 많이 이용되었으나, 이후에는 "오아시스길""동서 교류"의 주요 통로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서아시아 지대에는 이미 상당히 발단된 교통로가 만들어졌으나, "파미르 고원"이 장애가 되어 완성되고 있지 못하다가, 기원전 138~126"전한의 장건 (張騫ㆍ ~BC 114)""파미르 고원"을 지나, "대월지"에 이르는 길을 개척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길이 만들어졌다"한서 서역전"에는 남북 두 길의 노정을 밝히고, 그 길 위에 있는 주요 국가들의 중심지와 장안이나 서역도호부, 그리고 인근 국가들 간의 방위와 거리를 기록하고 있다.

바닷길

기원후 "후한"은 서아시아와의 교류에 관심을 나타냈고, 전성기에 접어든 "로마제국""남해로"를 통한 도서 교역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로마의 시장에는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각지의 명산물이 큰 인기를 끌었다.

1세기 중엽에 로마의 항해사였던 "히파루스(Hipalus)"가 아라비아인들로부터 인도양 계절풍의 비밀을 알아낸 후, "아테네"로부터 "홍해"를 지나 "인도양"으로 향하는 직항로를 개척함으로써, 로마의 동방 원거리 무역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비로소 중국에서 인도로 반출된 "비단"이 인도 서해안으로부터 "해로"로 로마에 운송되기 시작하였다3세기 중엽에는 로마의 배가 "인도차이나""광동성"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카티가라(Kattigara)"까지 항해하는 상선도 나타났다.

3. 5대 지선

남북을 연결하는 길로 "지선"이라 부르고 있지만, 문명 교류와 교역에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그 노선 또한 대단히 복잡하다. 중세에 있어서의 남북로는 다음과 같은 5개로 나눌 수 있다.

마역로

"남북로"의 맨 동쪽에 있는 길로 "초원로"의 동쪽 끝인 "막북""오르혼 강" 유역에서 "카라코룸" 지나 "장안"이나 "유주"와 연결된다여기에서 다시 "화남"을 그대로 뻗어, "항주""광주"에 닿아서 바닷길과 접한다북방 "유목"민족과 "()" 민족 간의 동아시아 쟁탈을 위한 싸움길이였다.

라마로

북쪽 끝은 "준가리아(Dzungaria) 분지"에서 시작해서, 고창 서북부 "투르판(Turfan)""타림 분지" 동편에 있는 "자루기루꾸(러잔)"를 지나, "티베트""라사"를 거쳐, "히말라야 산록"을 따라 북인도의 "시킴"에 이른 후, 다시 남하해 인도 "갠지스 강" 어구에 있는 "디무라리프데"까지 이어진다이 길은 기원후 5세기부터 "토욕혼"에 의해 이용되다가, 7~ 9세기부터는 티베트가 이 일대를 장악하게 되었다.

"""티베트"간의 화친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당의 사신이나 구법승들이 이 길을 따라 인도에 내왕하였다"준가리아 분지"에서 통일제국을 이룩한 "타타르"가 이 길을 따라, "티베트""중국 서북"지방을 공략하기도 하였다이 길을 따라 "티베트"에서 발생한 "라마교"가 북상하여, 멀리 몽골에까지 전파되었다.

불타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출발하여, "타슈켄트""사마르칸드"를 거쳐, 동서남북 십자로 상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북부의 "발흐(Balkh)""페샤와르(Peshawar, Gandhara)"를 지나, "인더스 강" 유역을 따라 중인도 서해안의 "바루가자(현재 Surat)"까지 줄곧 남하하는 길이다이 길은 동서남북 교통로의 중심 교차점에 자리하고 있어, 동서문명 교류와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기원전 2000년에 "아리안인"들을 비롯해 후세의 "알렉산더""티무르"등의 외래 민족의 대인도 침략이 이 길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불교는 이 길을 따라 북상한 다음,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방에 전파되었으며, "법현","현장"같은 많은 수법승이 이 길로 "천축(인도)"에 가서 수도하였다.

메소포타미아로

"흑해""카스피해" 중간지대에 있는 "카프카즈(Kavkaz 일명 Caucasus)"북부를 기점으로 하여, "트빌리시(Tbilishi)""타브리즈(Tabriz)"를 경유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따라 펼쳐진 "메소포타미아"를 관통한 후, "페르시아 만""바스라(Bastah)"까지 이르는 길이다일찍이 "메소포타미아"문명이 개화한 지대를 지나는 이 길은 고대문명 전파에 크게 기여하였다.

호박로

북방의 "발트해"에서 시작해, "모스크바""키예프"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접지인 "콘스탄티노플" "에페수스(에베소, Ephesus)"를 지나 지중해 연안을 따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까지 남하하는 길이다이 길은 "페니키아"시대부터 중요한 "호박"의 무역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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