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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통령 ⑤ 35대 : J.F 케네디 ③ 암살 사건 (1963.11)

by 당대 제일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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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F 케네디 (John F. Kennedyㆍ1917~1963ㆍ46세)"가 "리 하비 오스월드"의 총에 맞아 암살당한 사건으로, 1963.11.22, "케네디 대통령""링컨 컨티넨탈 차(포드 자동차사 제작)"를 타고 "텍사스 주 댈러스시내"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PM 12:30"딜리 플라자"를 지나던 "케네디"의 차량에 보관창고 건물 6층에서 "리 하비 오스월드 (Lee Harvey Oswaldㆍ1939ㆍ뉴올리언스)"3발을 쐈다.

 

1. J.F 케네디 암살사건 

"케네디"는 목이 총알로 관통되었고, 목을 잡고 고통을 호소하다, 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보는 앞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그리고 텍사스 주지사 "존 코널리"에게도 부상을 입혔다. "오스월드"는 "케네디" 저격 후 도주했고, 1.6km 정도 도주했을 때, "J.D.티핏(텍사스 순찰경관)"  "오스월드"를 정지시켰다. 그러나 "티핏"은 PM 1:15분에 "오스월드"에게 리볼버 권총으로 살해당했다. PM 1:45분, "텍사스 극장"의 제보로 "오스월드"를 체포했다. 11.23일 새벽 1:30분에 "케네디 암살범"으로 공식 기소되었다. 11.24일 아침, "텍사스 경찰서" 지하에서 주 교도소로 호송 중, "잭 루비 (나이트클럽 경영자)"의 총에 맞아 암살되었다. 암살범은 "오스월드"라고 판명되었으나, 항간에서는 "쿠바의 보복설CIA의 음모설FBI의 개입설이스라엘 모사드의 개입설영국 황실에게 암살당했다는 설" 등이 많이 제기되었다.

• 일 시 : 1963.11.22일 12:30 p.m           • 위 치 :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딜리 프라자           • 수 단 : 이탈리아 카르카노 M91/38 볼트 액션 라이플 (6.5x52mm)           • 사망자 : F.케네디J.D.티핏           • 부상자 : 존 코널리제임스 태규           • 암살자 : 리 하비 오스월드 (Lee Harvey Oswaldㆍ1939ㆍ뉴올리언스)

2. 리 하비 오스월드: Lee Harvey Oswaldㆍ1939ㆍ뉴올리언스

17세가 될 때까지 22차례나 이사했고, 11차례나 학교를 옮겼다. 17세가 되던 해, 해병대에 입대해 "레이다 관측병"으로 일했다. 어린 시절 삶이 불우했다고 하며, 해병대에서 보낸 삶도 별 다를 바 없었다. 2차례 군사재판에 회부됐으며, 소지허가를 받지 않은 22구경 권총을 사용해 우발적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혀 강등됐다. 1960.10월 "소비에트 연방"으로 건너갔다. 해병대 근무로 얻은 기밀을 넘기는 대가로 따뜻한 환경을 받으리라 희망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스크바"에서 보내는 변변찮은 삶에 질려 1962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소문으로는 1963년 우파 육군 장성 "에드윈 워커"를 저격해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자신의 정치적 시각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 암살 시도는 실패했지만, 대통령 암살 시도는 성공했다.

3. 암살사건에 대한 의혹

① 비밀공작 설

CIA(또는 일부 과격한 요원)는 "케네디"가 "빨갱이에 굴복해 CIA를 해체하려 한다"고 불안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에 망명한 적이 있는 "오스월드"를 고용해 범행을 맡긴 것이라는 음모설이다. 심지어는 "오스월드"는 "위장"에 사용됐을 뿐, 실제로는 다른 장소에 배치된 저격수에게 "케네디"를 저격하도록 했다는 음모설까지도 있다. 그러나 "오스월드"는 전문 살인청부업자가 아니며, "위장용"으로 이용한다 해도 조금도 빈틈없이 준비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논리적인 허점이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데, "케네디"가 CIA의 어떤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제안이란, 미국 전역의 대도시에서 가짜 테러를 일으켜서 "쿠바와 공산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명분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케네디"가 이 제안을 거부한 지 1년 만에 그는 암살되었다.

② 마피아 주도 설

"케네디"가 "대통령 선거ㆍ쿠바 피델 카스트로 암살ㆍ마릴린 먼로와 정사 스캔들 무마" 등에 범죄조직의 힘을 빌렸으면서도, 오히려 조직범죄 단속을 강화하자, "마피아"가 그를 배반자로 간주했다는 설이다. "오스월드"에겐 "마피아"에 숙부가 있었고, "루비"에게도 "마피아"에 친구가 많았다. 이들과 같은 "조무래기"를 이용하는 편이 조직의 개입이 드러나지 않아 유리하다고 생각한 "마피아 우두머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마피아 주도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대통령 암살이라는 위험한 일을 과연 "조무래기"가 맡으려 했을까? 어떤 방법으로 "루비"에게 "오스월드"를 살해하도록 설득했는지도 알 수 없고, 오히려 "루비"가 입을 열어 꼬리가 잡힐 위험도 있었을 것이다.

③ 쿠바음모 설- 1

"CIA"가 망명한 쿠바인들을 이용한 1961.04월의 "피그스만 침공 음모" 실패로 "케네디"에게 배반당했다고 느낀 "반(反)카스트로파 망명 쿠바인"의 계획으로 보는 음모설이다. "오스월드"는 "친 카스트로파"인 셈인데, 웬일인지 "반 카스트로파"가 된 갱 친구를 만나러 "쿠바"에 간 적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망명 쿠바인"들이 "공산주의"에 물든 "백인 오스월드"를 신용했을지, "오스월드"를 이용하는 복잡한 음모를 비밀리에 꾸미는 것이 그들만으로 가능했는지도 알 수 없다.

④ 쿠바음모 설- 2

"카스트로"는 "미국"이 사회주의혁명 이후, 반미 정책을 실시한 자신의 암살을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보복을 위해, "케네디 암살"을 지령했다는 설이다. 암살은 음모였다고 믿은 대통령직을 인수한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열심히 지지한 설이다. "오스월드"는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친 카스트로파"였다. 그는 암살 2개월 전, "멕시코 시티"의 쿠바 대사관을 방문했다. 그러나 암살지령을 내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고 "카스트로" 본인이 말한 적이 있다. 설령 상대가 신원이 탄로나기 쉬운 "오스월드"가 아니라 해도, 암살지령을 내리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⑤ 쿠데타 설

"영화 JFK(올리버 스톤 감독)"에서 제시한 이론(그보다는 픽션)이다. 미국 기성 체제의 악한들(베트남 철수를 저지하려 한 군부ㆍ무기상들)이 손을 잡고 "케네디 암살"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역사는 그들의 소망대로 진행된 듯하지만, 진상 "은폐협력자들(암살집행부대ㆍ검시팀ㆍ워렌 위원회 등)"이 이 정도 많았다면, 왜 일부러 치밀한 계획을 세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퍼레이드에서 암살할 필요가 있었을까?

⑥ 실수 설- 1

탄도학 전문가 "하워드 도나휴(메릴랜드 거주)"가 제기한 설이다. 후속 차에 타고 있던 경호원이 실수로 방아쇠를 당겨, 그 총알이 대통령에게 명중했다는 것이다. "도나휴"는 "오스월드"의 발포음을 듣고 경호원이 총을 꺼내들었을 때, 오발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 암살 현장은 발사음이 뒤섞이기 쉽기에 총을 쏜 당사자도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문제의 차에 타고 있던 당사자를 제외한 9명 중에서 발사음을 들었다고 증언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 문제다. 오발했다고 간주되는 당사자는 당연히 "도나휴"의 질문에 응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⑦ 실수 설- 2

"마리나(오스월드 처)"는 남편이 사실은 동승한 "존 코널리(텍사스 주지사)"를 저격하려 했는지도 모른다고 증언했다. 해병대에서 불명예 제대 처분당한 "오스월드"는 무사고 만기제대자에 수여되는 명예제대증을 신청했다가 기각되어 당시 해군 장군이었던 "코널리"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가 "루비"와 함께 "코널리 암살"을 모의하는 것을 엿들었다는 "댈라스"의 변호사도 있다. 표적을 벗어난 것치고는 "오스월드(또는 다른 누군가)"의 총탄은 너무나 정확히 "케네디"에게 명중했다. 사격이 서툴렀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⑧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개입 설

"케네디"가 "연방준비제도의 발권력"을 무시하고, "합중국 국고폐"를 찍어 유통시키면서 "연방준비제도"의 권한을 약화시키려고 하자,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연방준비제도"가 "케네디" 암살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케네디"는 $100짜리 그린백을 찍어 유통시키려고 했으나, 그가 갑작스럽게 살해당하면서 그 지폐들은 유통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케네디"는 재임기간 동안에 재무부 장관에게 $1짜리 보증서를 찍어서 유통할 권한을 주었지만, 그가 죽고 난 뒤 대통령직을 승계한 "린든 B. 존슨"이 그 권한을 회수하고, "은 보증서"를 몽땅 "연방준비 은행폐"로 바꾸었다

⑨ 영국 엘리자베스 황실 가문 + 영국 첩보 기관 MI5/MI6 + 영국 보수당 정부의 케네디 제거 합작 설

"케네디"는 영국 황실ㆍ영국 보수당 관료들과 많이 충돌했던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 미국인이었다. "케네디"는 "아일랜드 가톨릭 공화파 민족주의 신 페인"을 지지하였으며, "아일랜드 더블린"에 직접 방문해서 "아일랜드 내전"에서 희생당한 "아일랜드 IRA 무장단체" 묘비에 "아일랜드 삼색기"를 덮어 추모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북아일랜드"에 있는 "민주연합당ㆍ영국 보수당 정부"의 강력한 반발을 산 적이 있었다.

특히 "영국 황실 가문ㆍ황실 집안"과 매우 사이가 가까운 "영국 보수당 관료들"은 "케네디"를 "아일랜드계 무장정파"로 간주해서 "케네디 집안"을 매우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속적인 "아일랜드 공화군"을 지원하면서, "북아일랜드" 영토를 침공할 거라는 "영국 보수당 행정부"의 불안함 때문에," 영국 국제 첩보 기관 MI5ㆍMI6"가 가장 관계가 긴밀한 "미국 친공화당 성향 로비스트"를 "CIA 국장"으로 매수해서 제거했다는 가능성도 있다.

4. 배 경

일종의 대선 개막전으로 "케네디"는 11월에 "플로리다ㆍ텍사스"를 방문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름대로 민권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취해온 터라, 남부 대다수 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 "플로리다ㆍ텍사스"를 겨냥해 각별히 공을 들이기로 했다. 11.18일, 그는 "탬파ㆍ마이애미"를 방문해 정계 노동계 인사들과 미중언론협회를 상대로 연설을 했다. 국내 경제ㆍ해외 정세, 특히 라틴아메리카와의 관계가 연설의 주제였다. "텍사스" 방문 기간에는 선거운동 자금을 갹출하고, 정치적 갈등을 봉합하고자 했다.

당시 "텍사스 주"의 주지사는 "존 코널리"였다. "케네디"는 벌써 몇 달째, "코널리"에게 "텍사스 주"의 부유층 기부자들과 만찬을 마련해달라고 채근해왔다. 하지만 1964년 주지사 재선을 노리던 "코널리"는 되도록 대통령과 혼연일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케네디"의 민권정책 때문에 "텍사스" 유권자 다수가 소원해져 있었던 것이다.

"텍사스" 출신이던 부통령 "린든 B. 존슨"도 "케네디"의 텍사스 방문이 썩 달갑지 않았다. "텍사스 민주당"이 주지사 "코널리"의 보수파와 연방상원의원 "랠프 야버러"가 주도하는 자유주의 개혁 진영 사이의 마찰로 분열상을 빚고 있었다. "존슨"은 "케네디"가 이 분열을 해소하는 데 그다지 큰 몫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케네디"의 방문이 도리어 갈등을 격화시키면서, "케네디" 스스로 당 내분 수습에 무능하다는 인상만 부각시키는 꼴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그 같은 "텍사스"의 정파 간 반목에도 "케네디"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텍사스"를 방문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는 의견도 있었다. 공공연한 "반 케네디" 우익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앞서 10.24일 "UN의 날"에 "스티븐슨"이 "댈러스"를 방문했을 당시, 극우 보수파 패거리가 떼로 몰려들어 "스티븐슨"에게 야유를 퍼부으며 신체적 의협까지 가한 전례가 있다. 때문에 대통령의 친지 중 몇몇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댈러스"를 방문해야겠냐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11.04일 "민주당" 전국위원회 "텍사스 주" 위원이던 "바이런 스켈턴"이 현지 신문 보도와 관련해 "바비"에게 전한 이야기가 있었다.

문제의 기사는 전직 장성 "에드윈 워커"에 관한 것으로, "워커"는 극우 단체인 "존버치 협회"와 한통속이었다. "스켈턴"이 편지에 담은 충고는 다음과 같다. "케네디는 자유 세계에 부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능히 대통령을 해코지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순방 일정에 댈러스가 들어 있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아무쪼록 귀하도 이를 진지하게 고려해보시기 바랍니다." "바비"는 이 편지를 "오도넬"에게 전달했고, "오도넬"은 "편지를 대통령에게 보여드려도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스켈턴의 편지 때문에 순방 일정에서 댈러스같이 중요한 대도시를 제외할 것"을 건의하면 대뜸 "케네디"에게 "당신 미쳤냐"는 핀잔을 들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11.21일 아침, "케네디"가 "텍사스"로 떠날 채비를 하는 사이, "데이비드 파워스"는 대통령 집무실에 들러 그와 이런저런 의논을 했다. "파워스"의 회상이다. "미국 독수리를 한복판에 짜넣은 회녹색 카펫 위에 우뚝 서 있는데, 본래 키 약 185cm보다 더 훨씬 훤칠해 보였습니다. 늘 그렇듯이 허리가 아파서 애를 먹고 있었지만, 영락없이 건강의 화신처럼 보였어요." 그날 일정 역시 방문 일정을 소화하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우선 "앤드루스 공군 기지"에서 "샌안토니오"까지 3시간 30분 비행, 다음에는 "휴스턴ㆍ포트워스"까지 잇따라 45분씩 비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3곳 공항에서 각각 수백 명의 환영객과 인사를 나누었고, 차량 행렬 2시간 반 동안 도로 연변의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샌안토니오"에서는 항공우주 의료 시설 한 곳의 개관식을 치렀고, "휴스턴"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시민 연맹 앞에서 짤막한 연설을 했으며, "케네디"의 편이자 우주 사업 부문 예산 확보에 도움을 준 연방하원의원 "앨버트 토머스"를 대접하는 만찬에서 치사의 뜻을 전했다.

"영부인 재키가 나들이에 함께 나섰다!" 군중들이나 취재진에게서는 그것이 화젯거리였다. "코널리 편이라는 이유로 야버러가 존슨과 한 차로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이 같은 뉴스 보도로 "코널리ㆍ야버러" 양측의 노골적인 적대 관계가 뚜렷이 부각되었고, 대통령의 방문 의도를 둘러싸고 현지의 관심이 증폭되었다.

5. 암 살

"텍사스" 순방 기간에, 특히 "댈러스" 방문 경로에 발생 가능한 위협에 대비해 대통령 신변 보호 차원에서 취할 만한 보안 예방책은 취하고 있었으나, 대통령 경호 담당 "재무부 비밀 검찰국ㆍ FBI"는 극우 세력에 대해서는 과대 반응을, 급진 좌파의 암살 가능성에 대해서는 과소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 결과 두 기관 모두, "리 하비 오스월드"가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탐지하지 못했다.

"오스월드"는 그의 일터인 교과서 보관창고로 쓰이던 "댈러스" 중심가 "딜리 플라자" 건물 6층 창문에서 바로 아래 무개차에 몸을 싣고 지나가는 대통령을 겨냥해 3발을 발사했다. 2번째 발사된 탄환이 "케네디의 목" 뒤를 가격했다. 3번째 탄환은 "케네디의 후두부"에 치명타를 가했다. 중부 시각으로 오후 1시, 저격 순간에서 30분이 지난 시각, "댈러스 파클랜드 메모리얼 병원" 의료진은 영부인에게 대통령이 운명했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6. 오스월드의 체포

공식 성명은 "텍사스" 교과서 맞은 편에 있던 "하워드 브레넌"이 보관소 건물 6층 모퉁이에 있는 창문에서 한 남자가 소총을 발사하는 모습을 봤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격 후 몇 분이 지나기 전, "브레넌"이 경찰에게 가서 자신이 본 광경을 알렸다. 보관소 5층에 근무하는 직원 "해럴드 노먼"이 "브레넌"의 말에 힘을 보탰다. "노먼"은 위층에서 총소리와 탄창이 빠지는 소리를 들었다. 바닥을 설치하는 중이어서, 6층은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 "댈러스" 경찰이 두 사람의 제보를 토대로 오후 12:30~ 12:50분 사이에 보관소 건물을 봉쇄했다. 오후 01:03분 무렵, 보관소 직원을 대상으로 인원 점검이 실시됐다. 이 조치로 "소비에트 연방"에 망명하려 한 적이 있으며, 오후 12:33분까지 건물 안에 있는 모습이 목격된 보관소 임시 직원 "리 하비 오스월드"가 자리를 비웠음이 확인됐다.

인원점검 실시 후, 9분 만에 수사관이 6층 동남쪽 창 근처에서 빈 탄과 탄피 3개를 발견했다. 오후 01:22분 "칼 데이"가 상자 사이에 숨겨진 수동식 노리쇠가 있는 "만리허-카르카노 소총"을 찾아냈다. 그 사이인 오후 01:15분 "댈러스" 경찰관 "J.D 티핏"이 "오크클리프" 지역 이스트 10번가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총을 든 남자가 범죄현장에서 달아나 표를 사지 않고 그대로 "텍사스 극장"으로 숨어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제보에 따라 경찰관이 극장 안으로 잠입했고 극장에서 용의자 인상착의에 들어맞는 한 남자가 극장 뒤쪽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맥도널드 경관"이 근처로 다가가자 용의자가 자리를 박차고 "올로 경관"에게 몸을 부딪힌 뒤, 권총을 뽑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벤틀리 경관"이 뒤에서 용의자를 붙잡자, 다른 경찰관들이 용의자를 제압하고 수갑을 채웠다. 지갑에서 나온 내용물로 붙잡힌 남자가 조금 전 교과서 보관소에서 다른 사람과 달리 자리에 없었던 직원, "리 하비 오스월드"임이 확인됐다.

6. 잭 루비의 오스월드 사살

체포된 "오스월드"는 오후 07:10분 "경찰관 티핏"을 살해한 혐의로 정식 기소됐다. 다음날 오전 1시에는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혐의가 추가됐다. 11.24일 아침, 지방 감옥으로 호송되는 도중, "오스월드"가 "댈러스 경찰서" 본부 지하 주차장에서 숨어 있던 사람에게 기습공격을 당했다. 나이트클럽 운영자 "잭 루비"가 코앞에서 쏜 총알이 "오스월드"의 복부를 관통했다. "루비"는 하나씩 번갈아가며, 자신이 "오스월드"를 암살한 이유를 댔다. 우선 전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괴로운 재판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게 하기 위함이고, 2째는 자신이 "오스월드"에게 화가 났기 때문이며, 3째는 "댈러스"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루비"는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유죄 판결은 나중에 번복됐지만, "루비"는 새 재판이 시작되기 전 "폐색전"으로 철창 안에서 사망했다.

8. 여 파

"부통령 린든 B.존슨"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 2시간 8분 뒤, "에어 포스 원"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존슨"이 미국을 지휘하던 초기, "댈러스"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존슨"은 재빨리 암살사건을 조사할 "워런 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을 만족시켰다. 10개월에 걸친 조사가 끝난 뒤, "워런 위원회"는 암살은 "오스월드"가 단독으로 저지른 사건이며, 교과서 보관소 창문에서 수동식 노리쇠가 있는 "만리허-카르카노 소총"으로 8초 안에 3발을 발사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3발 모두 뒤쪽에서 발사되었으며, 1번째 발은 빗나갔고 2번째 발은 대통령 어깨 뒤쪽을 뚫고 들어가 목으로 빠져나왔다. 마지막 총알은 머리 뒤쪽에 박혀 대통령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대중은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1979년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특별히 구성된 "미국 하원 암살사건 특별조사 위원회"는 "린든"이 구성한 "월런 위원회"와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워런 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에 대부분 동의하기는 했으나, "하원 조사위원회"는 "오스월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4번째 총을 쐈다"고 결론지어, "음모론"을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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