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혹과 선택, 인간 내면의 이중성을 그리다 : 뮤지컬 ‘더 데빌’ >
뮤지컬 ‘더 데빌’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닌, 인간 내면의 욕망과 선택의 갈림길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전쟁을 무대로 올린 이 작품은 2014년 초연 이후 독특한 구조와 강렬한 음악, 실험적인 무대로 많은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1.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적 해석
‘더 데빌’은 독일 문호 괴테의 고전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하되, 배경을 현대의 뉴욕으로 옮기고 인물과 구도를 과감히 재구성했습니다. 주인공 존 파우스트는 뉴욕의 유능한 변호사로, 승소율 100%의 명성을 자랑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공허함과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의 아내 그레첸은 헌신적이지만, 남편과 점점 멀어지는 관계 속에서 갈등을 느낍니다.
이들 앞에 나타난 존재가 바로 X-White와 X-Black입니다. 이들은 각각 선과 악을 상징하는 캐릭터이자, 인간 내면의 양면성을 구현한 인물들입니다. X-Black은 존을 유혹해 그가 감춰둔 욕망과 어두운 본성을 드러내게 하며, 반대로 X-White는 그를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분투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단순한 선악 대결이 아닌, 진정한 선택과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2. 흑백의 상징성과 미니멀한 무대
‘더 데빌’의 무대는 흑백의 대비를 강렬하게 사용해 시각적으로 선과 악의 이중 구조를 표현합니다. 세트는 비교적 단조롭지만, 조명과 소품, 배우들의 의상을 통해 극의 상징성과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특히 X-White와 X-Black의 대립은 무대 위에서 철저히 색감과 동선으로 구분되어, 관객에게 인물들의 상징성을 직관적으로 각인시킵니다.
무대 위에는 끊임없는 움직임과 긴장감이 흐르며, 심리극적인 요소가 강한 만큼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매우 중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3. 록과 재즈, 블루스가 뒤섞인 음악적 실험
뮤지컬 ‘더 데빌’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음악입니다. 기존 뮤지컬과 차별화되는 록 기반의 강렬한 넘버들은 작품의 분위기를 주도하며, 캐릭터의 감정선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특히 X-Black의 넘버들은 자유롭고 도발적이며, 그레첸과 존의 듀엣은 애절함과 갈등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대표곡으로는 ‘언톨드(UNTOLD)’, ‘플레이(PLAY)’, ‘미드나잇(Midnight)’, ‘쉐도우(Shadow)’ 등이 있으며, 이 곡들은 각각의 캐릭터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극적으로 풀어냅니다. 사운드트랙 전체가 한 편의 록 오페라처럼 구성되어 있어, 관객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음악의 여운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됩니다.
4. 연기와 가창력을 모두 요구하는 배우 중심의 뮤지컬
‘더 데빌’은 철저히 배우 중심의 작품입니다. 극의 중심을 잡는 존, 그리고 극의 전개를 이끄는 X-White와 X-Black의 삼각 구도는, 배우 간의 호흡과 에너지 교환에 따라 공연의 색깔이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X-Black은 단순한 악역이 아닌, 인간의 본성과 자유의지를 꿰뚫는 복합적인 캐릭터로, 배우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인물로 재탄생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더 데빌’은 재관람율이 높은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즌마다 다른 캐스트가 보여주는 색다른 해석과 무대 연출은 관객들에게 또 다른 감상을 선사합니다.
5.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
‘더 데빌’은 뚜렷한 메시지, 독특한 구조, 세련된 음악, 강렬한 캐릭터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단순한 서사 중심의 전개가 아닌, 인간의 내면과 철학, 정체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 무대 진출 가능성 또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뮤지컬 ‘더 데빌’은 자극적인 갈등이나 뚜렷한 권선징악의 구조보다는, 복잡하고 모호한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데 집중합니다. 유혹은 늘 달콤하고, 선택은 언제나 어려우며,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흔들립니다. 그 이야기를 음악과 무대를 통해 정교하게 풀어낸 ‘더 데빌’은 오늘날 관객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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