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과 인간, 그 경계에서 빛나는 이야기 : 뮤지컬 ‘마리 퀴리’ >
“과학은 사람을 살리는가, 죽이는가?”
이 단순한 질문은 뮤지컬 ‘마리 퀴리 (Maria Curie)’의 출발점이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입니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한 명의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살아갔던 마리 퀴리의 삶을 그린 이 작품은 단순한 전기 뮤지컬을 넘어, 지식과 책임, 신념과 갈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관객에게 던집니다.
1. 실존 인물을 통해 조명하는 인간적인 이야기
뮤지컬 ‘마리 퀴리’는 폴란드 태생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의 실제 생애를 바탕으로 창작된 한국 뮤지컬입니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문의 문턱에서 수없이 좌절해야 했지만, 결국 라듐을 발견하고 방사능 연구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합니다.
작품은 단순히 그녀의 업적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학자로서의 성공이 불러온 윤리적 책임, 사회적 파장, 개인의 상처와 갈등을 중심에 두고 전개됩니다. 라듐이 의료계에서 희망의 빛이 된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죽음을 가져다준 독이 되었다는 사실은 과학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2. 극적인 구성과 섬세한 서사
‘마리 퀴리’는 1막과 2막을 통해 마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그녀가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되는지를 밀도 있게 따라갑니다. 1막은 라듐의 발견과 성공, 그로 인한 사회적 주목과 명성에 초점을 맞추며, 2막은 그 명성이 불러온 그림자, 즉 방사능에 노출된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집단 질병과 죽음, 그리고 이에 대한 마리의 내적 갈등과 책임의식이 부각됩니다.
특히 마리와 노동자 안느의 관계는 작품의 정서를 가장 진하게 드러냅니다. 안느는 라듐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여성으로, 처음에는 희망을 믿었지만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는 인물입니다. 마리는 그런 안느를 통해 자신의 연구가 초래한 결과를 마주하게 되며, 스스로의 존재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3. 음악과 무대의 조화
‘마리 퀴리’의 음악은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면서도 작품의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무게를 놓치지 않습니다. 대표 넘버 ‘라듐을 찾아서’, ‘모두 꺼져’, ‘그댄 내게 별’, ‘우린 이 도시의 빛’ 등은 등장인물의 심리와 서사를 아름답게 녹여냅니다. 특히 ‘모두 꺼져’는 마리가 사회적 비난과 개인적 상실 속에서 외치는 고독한 외침으로, 관객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무대 디자인 역시 극의 전개에 맞춰 실험실, 라듐 공장, 병원, 학회 등 다양한 장소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며, 빛과 어둠, 연기, 원형 무대 등을 활용한 연출로 과학과 감성 사이의 긴장감을 세밀하게 표현합니다.
4. 여성 서사의 힘
이 작품은 여성 중심 서사의 좋은 예시로도 평가받습니다. 주인공 마리 퀴리를 비롯해, 노동자 안느, 마리의 조력자 폴, 여성 기자 엘리 등 각각의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시선으로 묘사됩니다. 단순히 위인 마리 퀴리의 이야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녀가 겪은 차별과 사회의 편견, 책임을 짊어진 여성으로서의 고뇌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5. 한국 창작 뮤지컬의 자부심
‘마리 퀴리’는 2018년 CJ 스테이지업 리딩 공연을 시작으로 2020년 본격적인 초연 무대에 올랐으며, 이후 꾸준히 재연과 투어 공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뮤지컬 마니아뿐 아니라 1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폭넓은 관객층에게 사랑받으며, 한국 창작 뮤지컬의 수준과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2024년 여름 라이선스 공연이 실현되었는데, 웨스트엔드에서 현지 스태프·배우들과 영어로 장기 공연을 하는 최초의 한국 뮤지컬이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과학의 빛과 그 이면을 보여주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으로 빛나고 무엇에 의해 흔들리는지를 섬세하게 묻는 작품입니다. 지식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책임 없는 진보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며, 우리 모두의 삶과 연결된 질문을 무대 위에서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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