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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ㆍ골프ㆍ오락ㆍ취미

명마 ② 차돌ㆍ가속도ㆍ신세대ㆍ새강자ㆍ쾌도난마

by 당대 제일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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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강자 (거세마)"는 최초로 그랑프리를 제패한 국산마로,  전성기 때의 "새강자"는 힘이 좋아, 2코너 이후부터 서서히 치고 올라와, 선두권을 뺏은 뒤, 결승선까지 힘차게 뛰어주는 주행습성을 보여줬다 물론 상대에 따라, "선행ㆍ선입ㆍ추입" 등 모든 게 가능한 말이기도 했다.

 

1. 무적의 "차돌 (미국산89년 대상경주 3관왕)"라이벌 "평선 (미국산)"

1987~1994년까지 8년간 경주로를 달렸던 "차돌"은 520kg의 거구로 등장하자마자 첫해에만 12전 8승을 올리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경주 중 펜스 쪽으로 파고드는 나쁜 습관으로 슬럼프를 겪었다. 1989년 여름,  경마장이 이전하며 진로 방향이 반대로 바뀌자,  파죽지세로 "그랑프리"를 비롯해, "대상경주"를 3개나 휩쓸었다.

1989, "차돌""대상경주"를 싹쓸이하며, "한국 경마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불세출의 명마다당시는 "대상경주"라 해봐야, 기껏 5~6개 정도였기 때문에, "차돌""대상경주 4관왕 달성"은 질적인 면에서, "4관왕"을 이룬 "풀그림아담청파신세대"와는 분명 격이 다른 대기록인 것이다특히, "67~68kg"에 이르는 믿기지 않는 "부담중량"에서도 강적들을 물리치고, 정상에 군림했다는 실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황금 콤비를 이뤘던 "홍대유 기수"와의 감동적인 사연은 세월이 흘러도 경마 팬들의 기억 속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렇게 무적을 자랑한 "차돌"이지만, 그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상대가 있었으니, 바로 "수평선"이다"차돌수평선"19841985년에 태어난 "미국산" 마필로, 말하자면 "차돌"1살 형님뻘인 셈이다.

두 마필은 "포경선"이 천하를 통일했던 1986.12"국내"에 도입되게 된다당시 "수평선"은 태어난 지 20개월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여서, 경주에 데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다. 그러나 "차돌"은 이미 550kg에 이르는 완벽한 골격을 지니고 있어, 도입된 지 약 2달 만인 1987.02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1000m 경주에서 1063이라는 그저 그런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3연승을 달성하며, "왕방울"의 후계자로 지목되기 시작한다승승장구를 거듭하며, 12전 째 만에 첫 "대상경주"에 도전하는데, "5회 일간 스포츠 배 상경주""차돌"은 막강한 상대마들을 간단히 제압하고, 경마 팬들에게 "차돌 시대"의 개막을 알리게 된다.

"수평선"은 도입된 후, 착실히 전력을 보강한 끝에, 도입 7개월 만인 87.07월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데뷔전에서 2위를 차지한 "수평선", 이후 3연승을 거두고, 7전만에 2등급에 진출한 "수평선"은 주위의 지나친 기대 때문에 슬럼프에 빠져, 1등급으로 진출하기까지 상당한 고전을 하게 된다.

1987년이 "차돌수평선"에게 성장의 시기였다면, 1988년은 명마로 거듭나기 위한 진통의 시간이었다두 마필은 나란히 부진을 거듭하며, 강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1년이 흘러가게 된다하지만, 1989년 두 마필은 완성된 전력으로 잊을 수 없는 "명승부"를 연출하며, "뚝섬 시대"의 마감과 "과천 시대"의 개막을 화려하게 수놓게 된다.

1989.01.08일은 새해 첫 "경마일"이었다절기상으로는 "소한"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경마"를 관람하기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하지만 당대 최고로 평가받는 "차돌""수평선"의 첫 만남이 있었기에 경마 팬들은 설렐 수밖에 없었다마지막 11경주에서 만난 이들의 첫 만남은 "차돌"11/2마신 승리로 끝이 났다

이후 두 마필은 서로 다른 일반 경주에서 선전을 거듭하며, 9개월이 지난 1989.10.22"5회 마사회장 대상경주"에서 2번째 만남을 가지게 됐다두 마필은 이미 "한국 경마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고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는 볼거리였다일반 경주에서의 선전으로 "차돌"64kg, "수평선"59kg으로 출전하게 된다"수평선"설욕과 왕위 쟁취라는 2가지 목표가 있었고, "차돌"에게는 타이틀 방어전 성격이었다.

경주 전, 대부분 예상지들은 "차돌"의 근소한 우세를 점쳤고, 결과 역시 "차돌"2마신 차 승리였다하지만 두 마필에게는 2달 남은 "그랑프리 대상경주"가 다가오고 있었다두 마필은 "그랑프리"3주 앞둔 시점에서, 컨디션 조절을 위해, "3차전"을 치르게 된다경주에서 "수평선""그랑프리"에서의 설욕을 위해, "탐색"으로 일관한 끝에 4위에 그치고 만다.

1989.12.10일은 "그랑프리 대상경주(8)"가 열린 날이다"차돌수평선"의 재격돌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컸던 까닭에 혹한의 날씨는 문제가 못했다연승으로 인해 "차돌"의 부담중량은 67kg이었고, "수평선"58kg으로 출전해, 2달 전 대결 때보다 담중량 간격이 더 벌어져, "수평선"에게는 "33"의 치욕을 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하지만 570kg에 이르는 거구 "차돌"을 물리치기엔 "수평선"450kg은 너무 왜소해 보였다.

결국 "" 차이로 패배한 "수평선", 끝내 타도 "차돌"의 한을 풀지 못하게 된다두 마필은 1990년 혜성같이 등장한 "가속도"에게 밀려나며,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1989"과천시대" 막에 즈음하여, 펼쳤던 명승부는 아직도 경마팬들의 기억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차돌

2. 가속도 (씨암말): 그랑프리 2관왕13전 12승대적할 상대없어 "강제 은퇴"라는 신화

"가속도"는 그 이름만으로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질 만큼, 숱한 명승부를 남기고 간 전설적인 명마다"선행마"이면서도 "결승선"에서 무서운 추진력을 보여줬던 "가속도"경주 장면은 경마가 전해줄 수 있는 "감동" 바로 그것이었다.

1990년도의 경마장 판도는 누가 보더라도 "차돌"의 아성이 건재할 것으로 예견됐다그러나 무적을 자랑하던 "차돌"68kg이라는 "과중량" 때문에 어깨가 손상되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영원한 2인자 "수평선"도 무리한 경주스케줄로 난조를 보이자, 경마장 흐름은 "춘추전국시대"로 돌변했다"신우철 조교사"의 쌍두마차 "오성장군남대천"8세의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했고, "곰돌이홍학만세호" 등이 2강의 난조를 틈타, "꿈이여, 다시 한번"을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 군웅들이 할거하며, 정상급 판도가 혼미를 거듭하던 6월 말, 2세밖에 되지 않은 "가속도" 먼 훗날의 전설을 꿈꾸며,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40승을 기록하며, 정식기수에 1승만을 남겨 놓은 "김재섭 기수"가 기승해, "단독 선행"으로 간단하게 우승을 차지하며, 11연승의 서전을 장식하게 된다"김재섭 기수""가속도"의 첫 승과 함께, "수습" 꼬리표를 떼고, 정식기수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후 "가속도"1달 간격으로 승수를 추가하며, 그해 11, 66승이라는 전적으로 "1등급"에 진출하게 된다.  한편, 정상급 판도는 "차돌수평선"이 정상적인 컨디션을 찾아가자, "2"이 지배하는 본 궤도로 어들며, 차츰 안정을 찾아가게 된다"차돌수평선"의 강세와 "가속도의 급성장"으로 압축된 분위기 속에서, 1990년도의 왕중왕을 가리는 "9회 그랑프리 대상경주"1990.12.16일 열렸다.

신예 강호 "가속도""파죽의 6연승"을 기록하며, 5개월이라는 최단 기간에 "1등급"으로 진출했지만 "복승식" 인기 순위에서는 관록의 2"차돌수평선"에게 열세를 면치 못했다그도 그럴 것이 "가속도"1900m 우승기록이 2094로 평범한 수준이었기에, "파죽의 6연승" 평가절하된 것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가속도"의 잠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메가톤급 파워"였다"정태문 기수"가 기승한 "늘벗"에게 출발과 함께 선두를 내줬지만, 2코너를 지나며 선두를 빼앗은 후,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지칠 줄 모르는 주폭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흥미로운 상황은 2위 자리를 놓고, "차돌수평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치열한 접전 끝에, 다시 "차돌""목 차이"로 승리한 것이다"정년 퇴직"을 눈앞에 둔 "수평선""권인덕 조교사"는 끝내 "타도 차돌"의 한을 풀지 못하게 된다.

"가속도"우승과 함께 갖가지 기록을 쏟아내게 된다. "최연소(3) 그랑프리 우승무패전적 우승데뷔 후 최단기간 그랑프리 우승" 등을 기록하며, "" 그녀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게 된다.

해를 넘겨, 1991년에도 "가속도"의 연승신화는 계속된다우승을 차지할 때마다, 1kg의 부담중량이 증가했지만, "차돌"과의 리턴매치에서도 완승을 거뒀고, 파죽의 5연승을 거두면서, "2의 가속도"로 급부상한 "개선장군"도 간단히 제압하며, 11연승을 기하게 된다그러나 연승에 대한 기록이 짐이 됐던지, "가속도""12전 째"에 유일한 패배를 당하게 된다.

우승을 "보은"에게 내준 채, "이성일 기수"가 기승한 "영웅호걸"에게 시종일관 견제를 당하며, 어이없이 5위로 주저앉고 만다. 일부에서는 "가속도의 시대가 끝났다"는 성급한 판단도 나돌기 시작했다하지만 2달 후에 펼쳐진 "10회 그랑프리 대상경주"에서, "2번의 실수는 없다"는 필승의 각오로 내달려 2위 마 "경지"7마신 차이로 따돌리고, "포경선" 이후 "그랑프리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특히, "암말"임에도 56의 부담중량으로, "차돌경지청심대"등 막강한 도전자들을 여유 있게 물리쳤기 때문에, 더 이상 "적수가 없음"을 확실히 인식시켰다당시 경마장에는 "가속도"라는 명마의 출현으로, "가속도 신드롬"이 나타났다. "가속도"의 부마인 "엔게이지먼트 (Engagement)의 새끼말" 들이 수입되자, "2의 가속도" 열풍이 몰아치게 된다"가속도"의 배다른 동생뻘인 이들 말은 "가속호가속력"이라는 마명으로 활약했지만, "가속도"의 능력과는 한참 차이가 나, 경마는 "혈통 게임"이라는 통설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가속도""그랑프리 2연패 후, 더 이상 상대가 없다"고 판단한 "홍순철 조교사""자의반 타의반"으로 은퇴를 결정, 결국 92.035만여 경마 팬 앞에서 화려한 "은퇴식"을 갖고, "씨암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가속도"가 배출한 자마는 "가속질주가속왕" 등을 비롯해 여러 마리가 활약했거나, 활약 중이지만, 엄마인 "가속도"의 풍미를 자아내지 못해, 경마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가속도

3. 신세대 : 43승이라는 역대 최다우승 말 (784321134)

통산 43승에 빛나는, "역대 최다승 말". 490Kg대의 좋은 체구에 뛰어난 "선행력"을 가진 말이었다한창 때는 누가 기승하더라도 고삐만 잡고 있으면, 알아서 들어올 정도였으니, 대단한 말이었다.

70여전을 치룬 만큼, "기승 기수"도 많았지만, 그래도 "신세대" 하면 "이성일 기수"를 연상시킬 만큼, "이성일 기수" 좋은 호흡도 보여주었다 "거세마"여서인지, 아니면 능력이 출중해서인지, "신세대"11세까지 "경주로"에서 뛰었고, 11세 되던 2003.03월 마지막으로 승리하고, 그 후 3경주를 더 치루고, 은퇴하게 된다.

4. 새강(거세국산마) : 최초로 그랑프리를 제패한 국산마역대 최고 수득상금

"새강자"는 도입할 때도 순탄한 편은 아니었다많이 알려진 대로 "새강자"가 어린 시절 워낙에 "장난"이 심해, "몸에 상처가 많았다"고 했다그래서 "생산자"가 안면이 있는 "마주"에게 싼값에 넘겼는데, "마주" 입장에선 대박을 터뜨려주었고, 역대 "최고 수득상금" 말이 아닐까 싶다.  1999년 "그랑프리 경주"에서 외산마들을 따돌리고 국산마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국산마가 외산마와의 동등한 경쟁 가능성을 처음 확인시켜줬다. 노령인 9세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오랜 시간 "주로의 강자"로 군림했다.

전성기 때의 "새강자"는 힘이 좋아, 2코너 이후부터 서서히 치고 올라와, 선두권을 뺏은 뒤, 결승선까지 힘차게 뛰어주는 주행습성을 보여줬다 물론 상대에 따라, "선행선입추입" 등 모든 게 가능한 말이기도 했다.

1999.12.12"8경주"는 많은 경마 팬에게 감격적인 날이었다. 국산 3세마 "새강자""그랑프리 경주" 참가해서, 당대의 강자들을 제치고, "국산마"로 처음으로 "그랑프리"를 제패했기 때문이다당시 국산마였기에 많은 경마 팬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 인기투표에서도 1위를 했고, 배당에서도 그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스타트"에서 후미 그룹에 있던 "새강자"2코너를 지나면서 서서히 치고 올라와, 3코너부터 선두권에 모습을 드러냈고, 4코너 이후, 직선주로에서 지칠 줄 모르게 쭉쭉 뻗어 나오며, 그대로 결승선을 통과하였다.

"새강자"1998.09월에 데뷔했는데, 비록 데뷔전에선 34세 말과의 대결에서 7마신 차이로 3착을 했지만, 그 후 "마주협회장배"에서 패배할 때까지 15연승을 기록했다6세를 고비로 버거워진 "부담중량나이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신예마"들에 의해, 조금씩 전성기 때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9세 때도 2승을 거두긴 했지만,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신세대"처럼 11세까지 뛰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하긴 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2005.06 마지막 경주를 끝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된다.

새강자

5. 쾌도난마 (새강자 뒤를 이은 국산마)

"잘 드는 칼로, 헝클어져 뒤엉킨 삼 가닥을 단번에 잘라 버린다."라는 뜻으로, 복잡한 사안을 명쾌하게 처리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 성어이다1998년 태어났으며, 전성기 시절의 "쾌도난마""선행형 마필"로 지구력도 괜찮은 마필이었다.

2세 때 데뷔하지 않고, 3세가 되어서, 경주로에 모습을 드러냈다데뷔 초, 연속 3회의 2착 후에 4전만에 첫 승을 기록했고, 7전을 치루는 동안 3승에 24회로 복승율 100%를 기록하며, "쾌도난마"라는 이름을 경마 팬들의 머리 속에 각인시키기 시작한다.

8전 째, 처음으로 "뚝섬 배 대상경주"에 도전하였으나, 같은 3세마였던 "에스빠스"에게 패하며, 4착에 그치고 말았다. (그때는 뚝섬배가 3세 이상 경주였다절치부심한 "쾌도난마"는 이후 연속된 "대상경주" 출전에서 2연승을 거두며, "국산 강자"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YTN "에서는 첫 대상경주에서 패배를 안겨주었던 "에스빠스"에게 설욕을 한 것은 물론이다"YTN " 이후, "그랑프리"에서 착순권 밖으로 밀릴 때까지, 8연속 입상을 기록했다.

연속 입상기간 중, "마사회장 배뚝섬 배"에서는 당시 "국산마" 최강이던 "새강자"를 거푸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국산마 지존"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새강자"가 전성기에서 약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해도 "대단한 사건"이었다.

"새강자""쾌도난마"의 나이 차이는 2살이었고, 마령으로 이정도 차이면, 세대교체가 되는 나이라고 봐도 될듯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쾌도난마"9세가 되었고, 은퇴무대인 "SBS배 대상경주"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인 "3"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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