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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고대 • 불가사의 (7대) • 로마 • 신화

고대 이집트 ③ 오벨리스크 (Obelisk) ① 방첨탑ㆍ 남자의 상징

by 당대 제일 202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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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 (Obeliskㆍ오벨리스코스ㆍ방첨탑(方尖塔)ㆍ쇠꼬챙이)"는 이집트 어로 "테켄(tekhen)"이라 불리는데, 이는 "보호ㆍ방어"란 뜻이며, 그리스 어로 "쇠꼬챙이"라는 뜻이다. 최대 높이는 32.2m로, "로마 바티칸 교황청"의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 세워진 것표면에 "상형문자"의 기록이 없어서, 어느 "파라오"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칼리굴라(BC12~41ㆍ로마제국 제3대 황제)" 시대에 "전차 경기장"에 세워졌다가, 1586년 "교황 식스투스 5세"에 의해, "베드로 광장"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하기 위해, 꼭대기에는 "청동제 십자가 조각"을 덧붙였다.

 

1. 오벨리스크 (Obeliskㆍ오벨리스코스)ㆍ방첨탑(方尖塔)ㆍ쇠꼬챙이

남자의 상징ㆍ"태양신 라 (Re호루스)"를 찬양하는 비문ㆍ고대 이집트 태양 숭배의 상징

→ 로마제국의 황제 권위를 자랑(아우구스투스(BC 63~ AD 14ㆍ로마제국 초대 황제)ㆍAD 31년 이집트 정복

"이집트 어"로 "테켄(tekhen)"이라 불리는데, 이는 "보호ㆍ방어"란 뜻이다. "그리스 어"로 "쇠꼬챙이"라는 뜻이다. "피라미드"를 비롯해, "고대 이집트"의 지명들은 곧잘 "그리스 어"로 불려졌다.  BC 332년, "알렉산드로스 황제(Alexandros, BC 365~323)"가 "이집트"를 점령한 이후, "이집트 지명"을 비롯한 대부분의 용어를 "그리스 어"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 입구에 세워진 "1쌍의 커다란 뾰족 기둥"

"기념 건조물"로 "하나의 돌(붉은 빛을 띠는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사각 기둥"으로, 맨 꼭대기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피라미드"를 높은 곳에 올려놓은 형상이다.  4개의 면을 지닌 "한 덩어리의 암석"으로 제작했으며, 밑바닥(정4각형이나 직4각형)을 널찍하게 만들고, 위로 올라갈수록, 높고 좁아지면서 점점 가늘어지게 하고, 꼭대기는 "피라미드 모양"이 되게 하였다.  가끔 꼭대기는 "호박 금"이라고 불리는 "금ㆍ은의 합금"으로 씌우기도 했다.

 맨 꼭대기 (정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

해마다 7~9월 사이, "나일강 홍수"가 끝난 후, 약간 높은 지역에 처음으로 새싹이 돋아나는 "원시언덕 벤벤(Benben)"을 형상화한 것으로, 피라미드 형상을 새김으로 "창조의 원시언덕"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기둥 몸체의 4면에는 주로 "태양신 라 (Ra)"에게 바치는 종교적 헌사나 왕의 생애를 기리는 내용을 담은 "상형문자"로 장식되었는데, "피라미드" 자체가 "태양신 라 (Ra)의 상징"이기 때문에, "오벨리스크"도 "고대 이집트의 태양 숭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승을 기념하거나, 왕의 위업을 과시하는 문장ㆍ모양을 새겼는데, "태양 숭 배(태양신 "라(Ra)" 혹은 호루스)"와도 관계가 있다. 다른 민족들(페니키아 인ㆍ카나안 인)도 "이집트 인"들을 따라, "오벨리스크"를 만들었으나, "1개의 돌덩이"로 만들지는 못했다. 이런 "돌기둥을 채석해 세웠다"는 사실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역학적 천재성과 무한한 인력 동원 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가 되고 있다.

 최초 : "이집트 아부시르(Abusir)"에 위치"제5왕조(BC 2494~2345)의 태양 신전" 마당에 세워진 것으로, 소규모의 사각뿔 탑이다.         가장 오래된 것 : 센우스렛트 1세(BC 1965~1920)  헬리오 폴리스(카이로 교외)의 "태양신 라(Re) 신전" 입구

 최대 : 높이 32.2m→ "로마 바티칸 교황청"의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 세워진 것표면에 "상형문자"의 기록이 없어서, 어느 "파라오"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칼리굴라(BC12~41ㆍ로마제국 제3대 황제)" 시대에 "전차 경기장"에 세워졌다가, 1586년 "교황 식스투스 5세"에 의해, "베드로 광장"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⑦ 높이 32m : 이탈리아 "라테라노의 산 조반니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툿트모세 3(BC 1504~1450 재위)"에 의해"카르나크"에 세워진 것  (높이- 32mㆍ밑바닥 4면체 길이- 2.7mㆍ꼭대기 4면체 길이- 1.88mㆍ무게- 약 230t)        ⑧ 높이 29.5m : 하트셉수트 여왕(BC 1479~1464): 카르나크(karnak)의 "아문 대신전"의 4번-5번째 탑문(pylon) 사이

 "라테라노의 산 조반니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 : "툿트모세 3세(BC 1504~1450 재위)"에 의해, "카르나크"에 세워진 것현존하는 가장 큰 오벨리스크(높이- 32m밑바닥 4면체 길이- 2.7m꼭대기 4면체 길이- 1.88m무게-  230t)

 이집트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의 오벨리스크를 세운 "파라오": 람세스 2세(BC 1279~1213) : 정확한 전체 수량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을 토대로 본다면, 적어도 10개 이상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2.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전 세계의 오벨리스크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높이 32.2m 이다.

표면에 "상형문자"의 기록이 없어서, 어느 "파라오"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칼리굴라(BC12~41ㆍ로마제국 제3대 황제)" 시대에 "전차 경기장"에 세워졌다가, 1586년 "교황 식스투스 5세"에 의해, "베드로 광장"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받침대"를 제외한 "순수한 오벨리스크"의 높이만도 25m이며, 약 300t의 무게인 이 건축물을 이전하려고, 동원된 근로자만 900여 명이었고, 그 밖에도 말이 140여 필, 이전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권선기 47대 등 당시로써는 엄청난 대공사였다고 한다.  난공사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진 "오벨리스크" 위에 "청동"으로 십자가를 제작해 올려놓았는데, 십자가 안에는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 원본의 일부가 들어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 "로마 교황들"은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의 상징이자, 로마제국의 황제 권위를 자랑하던 오벨리스크"를 재활용하여, "기념 교회들 앞 광장"에 새롭게 세웠다.  나아가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하기 위해, 꼭대기에는 "청동제 십자가 조각"을 덧붙였다. "성 베드로 광장" 한가운데, "해시계"처럼 우뚝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한 "오벨리스크"는 원래의 자리가 이곳이 아니라, "대성전 정면"을 바라보면서, 왼쪽에 있었다. 그곳은 "네로 전용의 개인 경기장"이 있던 자리인데, "오벨리스크"는 경기장의 장식을 위해 그 안에 세워져 있었다. 바로 이 경기장에서 "성 베드로"가 순교를 당했고, 이를 기념하여 훗날 그 자리에 "성 베드로 대성전"을 지었던 것이다.  "네로 경기장"은 "대성전"을 건립할 때 모두 철거되었지만, "오벨리스크" 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 두었고, 후에 "식스토 5세 교황"의 명령에 따라, 1586.04.30일 "이전 공사"를 시작하여, 130일 후인 같은 해 09.10일, 지금의 위치에 세우게 되었다.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양쪽에는 화려한 "바로크 문양"으로 장식된 "분수대(2개)"가 자리 잡고 있다.

"대성전"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오른쪽 분수대"는 지금의 "대성전 정면"을 설계한 "카를로 마데르노"의 작품이며, 왼쪽의 것은 "도메니코 폰타나"가 설계한 작품이다.  "분수대"는 광장의 아름다운 조화와 균형을 위해 건축했다고 하는데, 종교적인 의미로 생각한다면,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물로써 죄를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크다.  실제로,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대성전"에 순례 왔던 사람들은 모두 양쪽 분수대의 물을 손으로 떠서 머리 위에 먼저 뿌린 후, "대성전"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3. 재료ㆍ제작방법

① 재료ㆍ채석장 (아스완)

"오벨리스크"와 같은, 가늘고 긴 "석재 기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단한 돌"이 필수이다.  매우 단단한 "화강암"으로 제작ㆍ"이집트 화강암"은 "붉은 빛"을 띠는 "화강암 덩어리"이다.  "이집트"는 대부분은 비교적 "연한 석회암 지역"인데 비해, "아스완(남쪽 경계)"는 화강암 지역이다.

② 제작 방법 : "아스완 (남쪽 경계)"의 채석장에서 주로 만든다.

지금도 "아스완의 고대 채석장"은 돌을 잘라내기 위해, 원하는 선을 따라, 여러 개의 홈을 파고 "나무 쐐기"를 박아 넣은 흔적이 있다.  여기에 "물"을 부어, "쐐기"가 부풀리게 함으로써, 원하는 돌을 잘라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장에는 소위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남아 있는데, 길이 41.7m이며, 무게는 약 80t 정도다.  ("카르나크(karnak) 신전"에 있는 "하트솁수트 파라오"의 "오벨리스크" 아래쪽에는, 채석장에서 이 거석(巨石)을 깎아내는 데, "7개월이 걸렸다"고 새겨져 있다.)

"오벨리스크"는 현장에서 최종적으로 그 모양이 다듬어지고, "비문"이 조각된 것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나일 강"이 흐르면서, 수많은 바위섬을 만들었다.  또한 급류를 형성했기 때문에, 배를 타고 지나갈 수 없는 지역이다.  "테베"에 있는 "하트솁수트 사원"에는 "나일 강"을 통해 "나룻배"로 "오벨리스크"를 실어 나르는 장면이 나와 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인부들은 "흙"으로 만든 "경사로"를 이용해, 따로 떨어진 발판 위로 "오벨리스크"의 몸체를 들어 올리고, 그것을 좌우로 움직여, 자리를 잡아주었다.

4. 태양신 "라 (Ra)" : 이집트 창세 신화

① 태양신 : 라 (Ra)

"태양신"은 "아침에는 케프리ㆍ한낮- 라ㆍ해질녘- 아툼"이라 불리는데, 이집트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신이며, "창조"의 신으로서, "헬리오 폴리스(카이로 북서쪽에 위치)"의 주신이기도 하다.  입김으로 물과 공기를 만들었고, 하늘ㆍ땅을 떼어놓았으며, 1년을 365일로 만들었다.  오늘날 비록 단 1개의 "오벨리스크" 만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곳에 가장 많은 숫자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졌던 것으로 전한다.

 태양신의 상징 :  베누 (불사조 피닉스)

불사조 "베누"는 "눈부심 속에 일어서다"라는 뜻으로, 긴 머리 깃털이 있는 "해오라비 새"의 모습인데, 머리에는 항상 "해"를 상징하는 "둥근 공"을 올려놓고 있다. "베누"는 "그리스"로 건너가, "불사조 피닉스"의 전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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