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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서양

고대 문명 ⑨ 나스카 지상화 (페루)

by 당대 제일 2022.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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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 지상화"는 "페루의 나스카시" 북쪽 사막 평원 위에 그려진 거대한 동물형상ㆍ기하학적 형태의 그림들로, 1939년항공기 운항중에 발견되었다. 세계유산 등록명으로는 "나스카와 후마나 평원의 선과 지상화"이다. 

 

1. 개요

위치 : 리마(페루 수도)에서 남쪽으로 400km 떨어진 나스카 일대 (크기최대 300m두께 30~40cm)

땅에 그려져 있는 거대한 그림들로 "거미고래원숭이벌새거인" 등의 그림이 30개 이상, "소용돌이직선삼각형"과 같은 곡선/기하학 무늬들이 140개 이상 그려져 있다.  그림은 최대 300m의 크기로 매우 거대하기 때문에 오직 하늘에서만 완전한 그림을 볼 수 있다.

BC 300년경에 그려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와 정교함 덕분에 오랫동안 초고대문명설의 근거로 주장해 왔다.

1939, "페루" 남부지역을 운행하던 비행기 파일럿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는데 그 이유인 즉, 워낙 큰 규모의 그림인 탓에 지상에서는 땅을 파낸 선 이외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은 오직 하늘에서만 가능했다 1948, "폴 코소크(Paul Kosok) 교수(미국 롱아일랜드 대학의 농업경제학자)"가 처음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그 뒤를 이어 전직 초등교사로서, "코소크"의 조수 역할을 한 독일인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가 홀로 연구를 계속하여 큰 성과를 내게된다.

나스카

2. 제작 방법  (지상화의 제작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스카 고원"의 지표는 "하얀 석회질 토양""검은 색 돌" 얇게 덮여 있는 형태이다 "검은 색 돌"을 치워, 바닥의 "하얀 흙"을 드러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선을 그을 수 있다.

이렇게 선을 그리는 것까지는 간단한데 이를 토대로 어떻게 저런 큰 그림을 그렸는가는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하학적인 지식만 좀 있으면 고대인이라고 못 그릴 것이 없는데, 한 예로 "확대법"이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우선 작은 그림을 그린다 그림의 바깥 편에 점 하나를 찍는다 그 점을 기점으로 하여 작은 그림의 각 부분()에 실을 연결한다 이로써 기점과 작은 그림의 각 점 사이의 길이를 알 수 있다 4배로 늘리고 싶다면 기점과 작은 그림의 각 점과의 길이에 4를 곱하면 된다.

 

3. 제작한 이유

다양한 문양과 선들로 구성된 거대 나스카 지상화를 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의견이 나왔다.

"마리아 라이헤""나스카 지상화가 나스카 인들에 의해 천문학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제 "나스카 지상화"로 유명한 새 그림과 거의 같은 새 문양이 나스카 인들이 사용하던 도자기에 남아 있다.

그러나 다른 의견들로는 "공중에서만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로 "외계인들의 우주선 착륙을 위한 표지판"으로서 세워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이 경우, 실제로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이상한 형상의 사람 그림과 활주로를 연상시키는 직선이 주장의 근거로서 제시되지만 허무맹랑하다는 것이 중론.

일각에서는 "나스카 인"들이 열기구를 발명했고, 이 열기구를 타고서 하늘에서 지상화 제작을 감독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하지만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따진다면, "페루" 일대에서 발전된 형태의 문자가 쓰이지 않아서, "나스카" 존속해있었을 시절의 문헌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 고대로부터 "페루" 등 서부 남미 지역은 "스페인"이 지배하기 이전에도 수천 년에 걸쳐서 문명이 발달해왔고, 수많은 국가들과 종족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해왔기는 했었고, 이 당시 고고학적인 유적이나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나 서사시를 볼 때, 분명 강대한 국가가 있음이 틀림이 없지만 발전된 형태의 문자가 사용되지 않아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기는 힘들고, 매듭을 엮어서 기록을 "키푸라"는 매듭을 역어 정보를 기록한 형태의 결승문자는 있었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문자체계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것도 대가 끊겨서 해독하기가 난망한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기구 설"이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가질 수 있는 건, "나스카 인들"이 뛰어난 직조기술을 가졌기 때문인데, 실제로 "나스카 인들"의 무덤에서는 미라를 싼 정교한 천들이 발견되곤 한다.

또한 지상화 주변에서 불을 피운 흔적이 종종 발견된다는 점도 근거가 되지만, 불을 피울 일은 열기구를 띄우는 것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다는 게 문제.

어쨌든 "나스카 지상화"는 미스터리로 아직도 많은 "초고대문명설" 주장자들의 이야기 거리가 되고 있다 "나스카 인들"이 어떤 종교역법의식의 차원에서 만든 것이라고 보는 설이 가장 큰 지지를 얻고 있고, "초고대문명설" 지지자들의 외계인들이 사용하는 "착륙장의 표식"이라는 주장이 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중 일부에서는 종교행사 중에 정해진 길을 따라서 단체로 걷는 과정이 있었는데, "나스카 지상화"도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4. 사라지지 않는 이유

사막 지역의 특성 덕분에, 이렇게 간단하게 그려진 그림이 "1만 년 정도"까지 추정되는 시간 동안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한류와 지형의 영향으로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바람도 약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모든 것을 붕괴시키는 인간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 남아 있을 수 있었다는 말도 있다하지만 1955"페루""나스카 지상화"를 죄다 수몰시키려고 했었다. 이에 독일 학자인 "마리아 라이헤(1903~1998)"가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막아낸 일이 있었다. 그녀는 1940년대부터 "페루"물러 살면서 "나스카 지상화"를 연구하고 지켜내는 데 평생을 바쳤으며, 1979년에서야 "페루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사후에는 생일이 "페루 국경일"로 지정될 정도로 위인으로 대우받았으며 그녀가 살던 집은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하지만 현재는 자동차도로의 건설 등으로 인해 "지상화"가 많이 사라져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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