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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물 • 악녀 (10인) • 부덕 (6인)

3대 기생 ② 초요갱 (세종때 요부ㆍ막장기녀)

by 당대 제일 2022.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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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요갱 (楚腰䡖) "은 조선 최고의 "기녀"로, 박연(朴堧ㆍ1378~1458ㆍ문신ㆍ음악가)의 유일한 "궁중악" 수제자기녀(妓女) 출신ㆍ"경국지색"의 기생ㆍ조선 최고의 "요부"로 "한양" 최고 기생ㆍ"어우동황진이"와 함께그녀들 보다 더욱 뛰어난 기예를 갖춰"조선"을 뒤흔들었던 기생천한 "기생" 신분으로 "세종"의 "아들 3위 관료들"을 농락하였다

 

1. 초요갱 (楚腰䡖) :  "세종"의 아들들을 홀린 전설의 기생

허리가 잘록하고, 풍만한 엉덩이가 "초나라 미인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 "조선왕조실록"에 16번 거론된 "경국지색"의 기생ㆍ상대한 남자들이 대단한 인물들 : 단종실록(7번)ㆍ세조실록(5번)ㆍ예종실록(4번)

"세종 때""궁중 악무"를 유일하게 전승한 "초요갱"은 당시에도 "예인"으로서 대우를 받았으며, "경국지색"의 미모로 "왕자들"까지 푹 빠지게 했다결국 "세종의 7" 왕자인 "평원대군 이임""세종"의 반대를 무릅쓰고, "초요갱"""으로 삼았고, 왕실은 한바탕 난리가 난다하지만 "초요갱"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화의군 이영(6)계양군 이증(8)"과도 정을 통했다.

① 9: 평원대군 이임 (平原大君 李琳1427~1445ㆍ향 18세ㆍ천연두로 사망)의 기첩(妓妾ㆍ기생 출신 첩)ㆍ세종의 9남ㆍ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소생  "노비" 의심해, 결국 "노비"를 살해

6: 화의군 이영 (和義君 李瓔1425~ 146035)ㆍ세종의 서자영빈 강씨(令嬪 姜氏) 소생  이복동생 "평원대군"의 첩 "초요경"과 간통한 일로 피소 단종 복위 운동 가담

8: 계양군 이증 (桂陽君 李璔1427~ 146437)ㆍ세종의 서자신빈 김씨(愼嬪金氏) 소생  "초요갱" "내연남"을 살인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이복형 수양대군(2)의 편에 서서, 세조 반정에 참여 

 

2. "초요갱"이 선택한 남자는, 가장 높은 지위의 "평원대군 이임"

"평원대군 이임""초요갱"미모에 반하여, 자신의 ""으로 들이고자 한다. 하지만 "조선의 왕자"가 천하고 천한 "기생"""으로 들일 수는 없는 일이라며, 부친 "세종"은 허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세종"의 진노만 사고 쫓겨나게 된다.

그러나 "초요갱"을 포기할 수 없었던 "평원대군"은 결국 부친 "세종"의 반대를 무릅쓰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초요갱" 보쌈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어린나이에 "평원대군"은 절명한다이후, "초요갱"은 갖은 술수로 "평원대군"과 본부인 "강녕부부인 홍씨" 사이를 갈라놓았고, 결국 본부인 "홍씨" 심지어 소박까지 당하게 되었다.

"초요갱"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불안감이 깊어진 "평원대군"  극심한 "의처증(?)"으로 "초요갱"이 이복형 6"화의군 이영"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둘 사이를 의심했을 뿐만 아니라, "노비"까지 의심해, 결국 "노비"를 죽이게 된다"초요갱"을 향한 집착으로 살인을 저지른 "평원대군" 광기는 날로 심해졌다.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병까지 얻어, 목숨이 위급해진 "평원대군"  "평원대군"이 위중해지자, 8번째 아들 "계양군 이증"이 문병을 왔다"평원대군"이 죽은 후, 자신의 안위가 걱정스러웠던 "초요갱" 병문안을 온 시동생, 남편의 동생인 "계양군 이증"을 유혹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초요갱" "평원대군"이 죽기 직전, 남편의 이복형인 6"화의군 이영"도 유혹한다병중에 있는 "남편(평원대군)"을 두고, 남편이 죽은 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아주버님시동생"모두 유혹하였다그 사이에서 "초요갱"저울질을 한다.

① 초상도 끝나기도 전, 난투극까지 벌인 "아주버님- 화의군 이영 (6째)ㆍ시동생- 계양군 이증(8째)"

"기생" 하나 때문에, 왕자들의 난투극이 벌어진다. 이를 알게 된 세종의 2남 "수양대군"은 근친 간의 불륜을 저지른 "초요갱"을 눈엣가시로 여기게 된다.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시대", "근친 간 불륜"은 "사형" 받을 만큼의 중죄로, "실록"에도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 세조실록 31권, 1463.07.04일 (윤) :  "초요갱"은 어려서, "평원대군 이임"의 사랑을 받다가, "평원대군"이 졸 하자(사망하자), "화의군 이영"과 사통하였는데(중략), "계양군 이증"과 또 사통하였다.

② "세종" 뿐만 아니라, "수양대군"에게도 눈엣가시였다.

그로부터 몇 년 뒤인 1455년, "조선 7대 왕"으로 등극한 "세조". 왕위에 오른 "세조"는 가장 먼저 눈엣가시였던, "초요갱ㆍ화의군"을 잡아 들였다. 1455년 (세조1), 죽은 동생인 "평원대군"의 "첩"과 사통을 저지른 "화의군"은 왕자의 신분을 박탈하고 "강화도"로 귀양 보내고, 태형을 받게 된 "초요갱"은 죽을 때까지, 곤장을 맞는 벌에 처한다.

"초요갱"은 곤장 80대 (곤장은 100대 까지만 때릴 수 있음)라는 어마어마한 중벌을 받는다.그런데, 이때 기지를 발휘한 "계양군 이증(세조 반정에 참여)" 도움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사회생한다. "초요갱이 비록 중죄를 짓기는 했으나, 박연이 유일하게 궁중 악을 전수해준 예술이 아니옵니까? 그녀가 죽으면, 조선 궁중악의 명맥도 끊기게 됩니다."

③ 하지만 한 남자에게 만족하지 못한 "초요갱"은 다른 남자들과 밀회 나누다가, "계양군 이증"에게 들키고 만다. 그녀는 생명의 은인인 "계양군"마저 농락한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계양군 이증"은 "초요갱의 내연남"을 죽이며, 결국 "세종"의 아들이 살인자가 된다. 즉, "왕자"가 "기생" 때문에 "정승"을 죽인 것이다. 이에 분노한 "세조"는 다시 "초요갱"을 잡아들여, 결국 "평양 관기"로 보내, 죗값을 치르게 한다. "평양 관기"로 내쫓김 당한 후에도, 숱한 염문 뿌리고 다녔으며, 유배 간 "평양"에서도 "최고의 기생"이라 불렸다고 한다.

• 세조실록 31권, 1463.07.04일 (윤) : "판사 변대해"가 몰래 "초요갱"의 집에 묵었다가, "계양군 이증"에게, 맞아 죽었다 

④ 신자형 (좌의정 신개의 아들)과 안계담 (신자형 7촌 조카)

"세종" 때, "좌의정"까지 지낸 "신개"의 막내아들 "신자형"이 "초요갱"을 보고 반하여, 안방에 있던 "본부인"을 내쫓고, "초요갱의 방"으로 만들어 버린다. "초요갱"에게 얼마나 심하게 빠져 있었는지, "초요갱"의 말만 듣고는 여종 2명을 친히 때려죽인다. "세조"가 이 사실을 알고는, "신자형"을 불러 호통을 쳤지만, "개국공신"이라 용서한다.

"안계담(신자형 7촌 조카)"이 "초요갱"을 차지하겠다고, "초요갱의 방"을 들이닥쳐 겁탈하려 했으나, "초요갱"이 없어 실패하였고, 나중에 "신자형"에게 제대로 혼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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