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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물

3공 저항 : 박노해 (1957)ㆍ얼굴 없는 시인 (노동의 새벽)ㆍ사노맹결성

by 당대 제일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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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朴勞解ㆍ본명 : 박기평(朴基平)ㆍ1957~ )"는 1984년(27살)에 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었으며,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1991년, 사형을 구형받고 환히 웃던 모습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서 독서ㆍ집필을 이어갔고, 7년 6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1. 박노해 (朴勞解본명 : 박기평(朴基平)1957~ )

시인노동운동가사회주의혁명가평화운동가ㆍ사진작가

  출 생 : 전남 함평군     •  별 칭 : 얼굴 없는 시인노해 :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위하여를 줄인 것

•  학 력 : 선린상고(야간부)     •  경 력 : 1985: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중앙위원 1989: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결성 주도        종 교 : 천주교

•  저 서 : 노동의 새벽 (1984100만부)참된 시작 (1993)겨울이 꽃 핀다 (1999)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2010)우리들의 사랑 리들의 분노 (1989)민들레처럼 (1991)사람만이 희망이다 (1997)오늘은 다르게 (1999)

박노해

1957, "전남 함평군"에서 태어나, "고흥군 벌교읍"에서 자랐다16세에 상경, "선린상고(야간부)"를 졸업한 후, 섬유화학금속정비운수 노동자로 일했다1984,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내,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100만부 가까이 발간된 "노동의 새벽"은 당시 "잊혀진 계급"이던 1,000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고, 젊은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하면서 한국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1985, 결성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1989년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결성을 주도했다1991.03월 구속 후, 24일간 잔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국가보안법상 소위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19932번째 시집 "참된 시작", 1997년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냈다1998.08.15,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복역 8년 만에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2000"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홀로 세계의 빈곤 지역과 분쟁 현장을 돌며, 조용한 평화운동을 전개해 왔다2003, "미국의 이라크 침공 선언" 직후, 전쟁터로 날아가 반전 평화운동을 전개했고, "아체쿠르디스탄 발칸반도와 아시아 여러 나라팔레스타인레바논"에서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2010, 그동안 해외 분쟁 지역에서 평화운동을 하며, 촬영한 사진을 모아, 첫 사진전 "라 광야 전나 거기에 그들처럼 전(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은 사회의 이목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그는 인사말에서, "중동아랍지역은 사회주의 공백을 미국 패권주의가 뒤덮을 때 이를 견제하고 인류 약자의 정의를 지켜온 중요한 축이자, 희생자"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변함없는 진보적 가치에 대한 신뢰와 열정을 드러냈다국내외 현장에서 쓴 304편의 시를 엮어, 12년 만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현재 "생명평화나눔"을 기치로 내건 사회단체 "나눔 문화"를 중심으로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대안적 삶의 비전 제시와 "평화 나눔"활동과 사회 진보운동에 진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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