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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물

교수 : 김옥길 (1921)ㆍ이화여대 총장(1961~1979)ㆍ김동길 누나

by 당대 제일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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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길 (金玉吉ㆍ1921~1990ㆍ69세ㆍ독신)"은 이화여대총장(1961~1979)ㆍ문교부 장관(1979~1980)이다. 1943년, 모교인 "이화여자전문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시작, 1952년부터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61년 "김활란 총장(金活蘭ㆍ1899~1970ㆍ71세)"의 후임으로 "총장(제8대)"에 선임된 이래 18년간 총장직을 역임하였다.

1. 김옥길 (金玉吉1921~1990향년 69독신)

이화여대 총장(1961~1979)문교부 장관(1979~1980)ㆍ김동길의 누나ㆍ김병두(원남면장)의 장녀

•  출 생 : 평남 맹산군 원남면 향평리    •  사 망 :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92번지 (, 김옥길 기념관)     •  사 인 : 직장암

•  학 력 : 이화여자전문학교 (1943)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미국 템플대학교 대학원

김옥길

1943,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근무하다가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유학갔다. 여기서 기독교 문학을, "템플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행정을 공부한다.  1952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조교수부교수문과 학무과장"을 역임하였다 1961, 40세의 젊은 나이로 "이화여자대학교 총장(8)"에 취임하였고, 동 대학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면서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였다1979.12, "문교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1980, "517 내란" , 무장 군인들이 "중앙청"의 전화선을 끊어버리고, "중앙청"을 포위하는 상황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 전국확대"에 반대하였으나, 당시 "주영복(국방부 장관)"이 밀어붙여서 해당 반대는 무산되었고, 이후 "문교부 장관"에서 경질되었다.

2. 일 화

"유신반대" 시위 때도 학생들의 맨 앞에서 시위대를 보호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이때 "총학생회장"이 숨을 곳이 없자, "김옥길 총장"이 나서서 숨겨주었는데, 그에 감동받았던 "총학생회장"은 후에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김선욱 총장 (14))"이 된다.  

대강당 채플이 끝나자, 4,500여 학생들이 "유신 결사반대구속 학우 석방"을 외치며 교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초겨울임에도 엄청나게 추운 날씨였다김 총장은 시위 행렬의 맨 앞에 서서 학생들을 보호하고 있었다그 전해 10월 대규모 시위에서도 그는 정문을 뚫고 나가려는 학생들에게 "나가려거든 먼저 나를 밟고 나가라!"고 소리쳤었다.

이화사()"남기고 싶은 말"로 기록된 이 한마디는, 학교 밖으로 맹진하려던 행렬의 속도를 일시에 중단시켰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민주화를 쟁취하는 일은 민족 감정의 분출이었고, 이를 이룩하려는 학생들의 각오는 목숨을 건 사투였다시위 행렬은 순식간에 "이화교"를 벗어나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내달렸다학생들이 기승을 부릴수록 경찰은 난폭하게 최루탄과 곤봉을 휘둘러대었다.

총장은 경찰의 진압을 온몸으로 막으면서 벌써 5시간째 학생들의 아우성과 격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밤이 깊어지자 "이제 대강당으로 가서, 철야기도를 하자"고 학생들을 달랬다그리고 밤 9시가 넘어서야 지칠 대로 지친 긴 대열을 이끌고 학교로 돌아왔다"철야기도"를 내세운 총장의 순발력은 벼랑 끝에 서 있던 학생들에게 돌파구를 찾아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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