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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건ㆍ전쟁ㆍ혁명ㆍ학살

혁명- 1917.10~1922 : 러시아 내전ㆍ적백내전ㆍ소비에트 연방

by 당대 제일 2023.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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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백내전ㆍ러시아 내전"은 1917~1922년 (5년간)까지 "옛 러시아 제국"에서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벌어진 직후, 발생한 여러 파벌 간의 전쟁이다. 이는 "러시아"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여러 파벌들이 다투면서 발생했다. "러시아 내전"은 "유럽"에서 발생한 전쟁 중, 가장 큰 "국가적 재앙"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700~1,200만 명의 사상자가 전쟁 중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대부분이 민간인으로 추측된다.

 

1. 적백내전ㆍ러시아 내전

2개의 규모가 큰 교전단체가 있었는데,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사회주의 볼셰비키"를 위해 싸우는 "붉은 군대"와 "군주제ㆍ자본주의ㆍ사회주의의 민주주의ㆍ반민주주의 세력"이 연합하여 형성된 "백군"이 있었다. 이에 더해, 이념이 없는 "녹색 군단"과 "사회주의"에 대립하는 여러 군벌들이 "볼셰비키ㆍ백군"에 맞서 싸웠다. "연합군"의 "러시아 내전 개입"으로 "러시아 내전"에 참여한 "연합국 8개국ㆍ친독일파 군벌ㆍ독일 제국"도 이 내전에 개입했다.

• 일 시 : 1917.10.25~1922.10월 (5년간)          장 소 : 러시아몽골페르시아투바           결 과 : 볼셰비키의 승리러시아 제국 멸망소비에트 연방의 성립 / 발트 3국ㆍ핀란드ㆍ폴란드의 독립ㆍ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 지휘관 : 붉은 군대- 소련 블라디미르 레닌 / 백군- 러시아 제국 알렉산드르 콜차크           병 력 : 붉은 군대- 300만 명 / 백군 계 265만 명백군 240만 명동맹군 25만 명           피 해 : 700~ 1,200만 명의 사상자붉은 군대- 120만 명 사상백군- 사상 150만 명 사상

• 교전국 :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SFSR/1917~1922)ㆍ소련(1922~)ㆍ사회혁명당 좌파ㆍ녹색 군대 (1919~1920)ㆍ검은 군대(1919~1920)  /  러시아 제국 백군ㆍ연합국(영국/미국/캐나다/프랑스/일본 제국/이탈리아 왕국/중화민국 북양정부/인도 제국/그리스 왕국/루마니아 왕국/세르비아 왕국/오스트레일리아/체코슬로바키아)ㆍ친독일파(독일 제국/WRVA/발트 향토방위군/자유군단)ㆍ녹색 군단(1920)ㆍ우크라이나 혁명 반역군(1920~1921)ㆍ크론시타트 반군ㆍ신생국가(북캅카스 산악공화국/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민주공화국/벨라루스/조지아 민주공화국/핀란드/폴란드/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ㆍ바스마시 운동(바스마시/부하라 칸국/히바 칸국)ㆍ오스만 제국

1919년, "붉은 군대"는 "우크라이나"에서 "남 러시아군"을 격파했고, "시베리아"에서 "알렉산드르 콜차크"가 이끄는 군대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남아있는 "백군"은 "표트르 브랑겔"이 지휘했지만, 1920년 말, "크림 반도"에서 패배했고, 이후 이곳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전쟁은 약 2년간 더 이어졌고, "붉은 군대"와 "백군" 잔여 세력 간의 충돌은 "러시아 극동"에서 1923년까지 이어졌다. 1923년, "붉은 군대"가 "소련"을 수립하면서 전쟁은 사실상 끝이 났지만, "중앙아시아"에서는 1934년까지 "반군"이 활동했다.

"러시아 내전"에서의 독립운동은 "러시아 제국"의 붕괴 이후 등장하였고, 독립 세력은 전쟁에 참전했다. "러시아 제국"의 옛 영토였던 "핀란드ㆍ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ㆍ폴란드 제2공화국"이 독립 전쟁과 내전 이후 독립을 획득했다. "구 러시아 제국"의 남은 영토는 그 이후, "소련"에 합병되었다.

2. 러시아 내전→  1917~ 1922.12.30일 "소비에트 연방" 탄생

"10월 혁명" 이후의 내전은 기본적으로 황제를 지지하는 "백군"과 혁명을 지지하는 "적군" 사이의 내전을 말한다. 이는 표면적인 것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내전은 "레닌" 주도의 공산주의 혁명 세력 및 혁명을 지지하는 "러시아 국민들"과 백군과 백군을 후원하는 영국프랑스미국일본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전쟁이다.

내전 초기의 "적군" "혁명 국가 (볼셰비키 정권)"은 완성되지 못했으며, 혁명 러시아의 국가 체제나 군대 체계는 매우 엉성한 상태였다. 반면에 "백군"은 제정 시대의 장교들의 통솔력과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후원받은 강력한 무기로 인해 상대적으로 내전 초기에 적군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특히, "알렉산드르 콜차크안톤 데니킨레오니드 유스포프라브르 코르닐로프"가 지휘하는 "백군" "볼셰비키 정권"을 심각하게 위협했었다.

하지만 "백군"은 공산주의 혁명에 반대하는 구체제로 구성된 귀족출신들이나 장군들이었고, 이들에게 뚜렷한 제도나 정책이 없었다. 이들의 목표는 단순히 "볼셰비키 정권"을 무너뜨리고, 구체제로 회복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백군"을 후원하는 세력들의 뒤에는 귀족들이나 자본가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농민들이나 노동자들은 "백군"에게 등을 돌려, "볼셰비키 정권"을 지지했다. 그렇게 됨으로써, "러시아 공산당"의 끈질긴 저항과 인민들의 지지로 인해, 1922년부터는 "백군" 세력이 "혁명 러시아"로부터 완전히 밀려나가게 되어 패망했으며, 1922.12.30일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였다. "러시아 내전"은 이후, "혁명 러시아"의 미래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공산주의 혁명을 지지했던 많은 노동자 계급이 전쟁 속에서 죽거나 다쳤다. 이는 이후 혁명 러시아의 본래 목적과 이상향이 변질되는데 큰 영향을 준다.          혁명 러시아에 제정 형태의 군사 제도, 사회 제도가 도입된다.  처음에 이것은 내전기의 일시적인 정책으로 시작하였으나, 내전이 끝난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며, 내전기에 들어온 제정 시대의 군인, 관리 계층이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의 반혁명 시도를 돕게 된다.          내전과 무관하게 적군에 반대했던 무정부주의적 농민, 노동자 집단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내전 이후 공산당에 반대할 대항 세력의 몰락을 뜻했다.          내전으로 인한 극심한 사회 혼란과 경제력 파괴는 이후 혁명 세력으로 하여금 신경제 정책"네프(NEP)", 즉 일정 부분 자본주의 도입을 허용하게 된다이 요소도 이후 소련시기에 "스탈린의 반혁명(反革命)" 시도에 일조하는 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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