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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1789.07.14~27 : 프랑스 대혁명 ⑤ 역사란 무엇인가 (E.H.Carr)

by 당대 제일 2023.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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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라는 책은 역사학에 관한 "E.H.카(Edward Hallett Ted Carrㆍ1892~1982ㆍ90세)"의 저서로,  1961년, "케임브리지 대"의 "G.M. 트리벨리언 강좌"에서 "카"가 강의한 부분의 원고를 바탕으로 쓰였다. 제1판은 1961년 출간되었고 제2판은 ""의 사후인 1987년 출간되었다.

 

1.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E.H.Carr)

"카"는 "실증사관"과 "R.G.콜링우드 식의 주관주의 역사관"을 모두 비판하며, "역사는 사실 자체에만 함몰되는 것도, 역사가의 주관 속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한다.  "카"에 따르면,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 상호작용의 과정이자,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나타난 공포정치에 대한 이해는 각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이해나 학문적 입장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사실 "공포정치"라는 표현 자체만 하더라도 다분히 편향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국가 건설과 유지 과정에서 대대적 살육이나 폭력을 통한 공포를 동반하지 않았던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만약 "공포정치"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면 대부분 정치와 통치 행위에 적용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특정 시기의 어떠한 정치 행위에 대해 이 용어를 대명사처럼 사용하는 것은 이미 상당히 주관적 해석이다.

"프랑스 대혁명"기의 공포정치만이 아니라, 대부분 역사적 사건이 비슷한 운명을 겪는다. 역사학 분야에서 끊이지 않는 핵심 논쟁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석의 문제임은 이미 잘 알려졌다. 1830년대에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1795~188691엄밀한 사료비판에 기초를 둔 근대 사학을 확립한 독일 사학가)"가 주관적, 도덕적 가치판단을 개입시킨 역사 서술을 비판하면서 역사가의 임무는 단지 "그것은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 이래 상당기간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역사 서술이 지배적 역사관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곧이어 역사에 있어서 객관적 사실이라는 설정이 얼마나 허구적인지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에 비중을 두는 역사관이 대립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서 대안적 방향을 제시한다.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열렬히 주장한 실증주의자들은 사실 숭배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우선 사실을 확인하고, 사실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이러한 역사관은 로크로부터 러셀에 이르기까지 영국철학의 지배적 경향이었던 경험주의 전통과 완전히 일치했다.  오늘날 저널리스트들은 사실의 선택과 배열이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효과적 방법임을 알고 있다. 흔히 사실은 스스로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진실이 아니다. 사실은 역사가가 허락할 때에만 이야기한다.

어떤 사실에 발언권을 주고 서열이나 차례를 정하는 것은 역사가다. 콜링우드가 보기에 "모든 역사는 사유의 역사"며, "역사란 사유의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가 그 사유를 자신의 정신 속에 재현하는 것"이다. 그는 역사를 사실의 단순 편찬으로 간주하는 견해에 반대한 나머지 위험스럽게도 역사를 두뇌에서 직조된 것으로 보는 입장에 다가섰고, 따라서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다.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한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1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의 지속적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을 주장하는 관점은 경험주의 인식론에 기초한 역사 서술을 강조한다. 경험주의 인식론은 주체와 객체의 완전한 분리를 전제한다. 역사적 사실은 감각적 인상과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관찰자에게 부딪혀 들어오며 또한 그의 의식과는 독립해 있다. 역사가가 사실을 수용하는 과정은 수동적이어서, 자료를 수용하고 그것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정리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견해다.

하지만 주관적 해석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보기에 역사적 사실은 너무 빈약하거나 혹은 사실 자체가 이미 주관적 해석이 개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먼저 사실 자체의 빈약함을 살펴보면 오래된 과거로 갈수록 기록은 빈 부분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고대사는 알량한 유물이나 몇 가지 문서만으로 그 오랜 기간의 역사를 서술해야만 하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역사가의 상상력 없이는 기본적 체계조차 잡기 어려울 정도다. 또한 흔히 사료라고 불리는 역사적 사실은 특정 관점이 개입된 경우가 많다. 문서화된 형태로 남아 있는 기록은 대부분 당시 지배계급의 관점을 상당히 담기 마련이어서 심지어 왜곡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사실은 스스로 역사를 구성할 수 없기에 사실 숭배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고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카"는 주관적 해석을 중시하는 태도는 곧잘 또 다른 편향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비판한다. 특히 만일 역사가가 어떠한 사실 배후에 있던 사유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 사실은 역사가에게는 의미 없는 것에 불과하다는 콜링우드의 견해를 비판한다.

이러한 견해대로 가면 사실에 대한 주관적 해석은 무한하므로 특정 역사적 사실에서 끌어낸 어떠한 의미가 다른 의미보다 더 올바르지 않다는 극단적 상대론에 빠진다. 카는 어떤 산이 보는 각도를 달리할 때마다 다른 형상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 산은 객관적으로 전혀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거나 무한한 형상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해석이 사실 확정의 필수라고 해서 그리고 현존하는 어떠한 해석도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 해석이나 저 해석이나 매한가지이며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객관적 해석을 내릴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 필수적이기 때문에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 상호작용 과정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사실과 해석 사이에서 어려운 항해를 해야 하는 역사가의 곤경은 인간의 본성을 반영한다. 인간은 환경에 완전히 매몰되거나 예속되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 환경에서 완전히 독립적이거나 환경의 무조건적 지배자일 수도 없다.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은 서로 주고받는 평등한 관계여서, 사실의 잠정적 선택과 그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 해석에서 출발한다. 연구 과정에서 사실과 해석은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보완해나간다.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며 사실은 과거에 속한다는 점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결론이 어찌 보면 허무해 보인다. 사실과 해석 사이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긴장감을 상호작용이라는 말로 안이하게 뭉뚱그려놓은 느낌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어느 것이 중심이고 우선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둘 다 중요하다"는 맥 빠지는 답을 접한 느낌이 들기 십상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는 고민이기는 하다. 역사 서술에서 사실 숭배의 한계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흔히 승자의 역사라는 말을 상식처럼 사용할 정도로 사실을 담았다는 사료 자체가 지배 세력에 의해 왜곡됐을 가능성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역사가에 의한 해석의 당위성이나 다양성을 웬만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인정한다.

2. 문제의 발생과 해결

①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인정이 곧바로 어떠한 해석이 다른 해석보다 정당하거나 타당하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상대성 논리로 바로 치달아버릴 가능성이 생긴다. 만약 같은 역사 사건에 대한 모든 해석을 다 인정한다면 역사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공통의 교훈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은 허망한 시도로 전락한다. 역사에 대한 고민이나 논의가 학문으로서의 자격을 잃고 그저 입담을 자랑하는 수다의 장으로 변질할 수도 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 벌어진 사실을 모아놓은 잡동사니 창고가 아닐뿐더러 다른 한편으로 자기 구미에 맞게 지식을 자랑하거나 변명하는 웅변장도 아니다. 과거를 다루는 역사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모색이다. 의사가 환자 개인과 가족의 병력을 알아야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듯이, 인류 역사에 대한 이해도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진단과 처방의 필수 전제다. 사회 구성원 다수가 공감을 통해 획득한 공통의 역사적 교훈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역사는 미로 속에서 제 역할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결론이 나름의 의미가 있다.

남은 문제는 이와 같은 상호작용을 통한 다수의 공감 획득이 과연 가능한가의 문제다.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1859~193879)현상학의 체계를 놓은 철학자)"은 상호주관성이라는 설정을 통해 공감 가능성을 모색한다. 상호주관성은 각 주체의 주관적 해석 가능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독립된 주관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주관에 공통적으로 성립되는 것, 즉 하나의 주관을 초월하여 다수의 주관에 공통적인 것을 향한 지향이 인간의 인식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에서 상호주관성 혹은 공동주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연속적으로 흐르고 있는 지각 작용 속에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다른 인간과 연계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세계는 개별화된 인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에 대해서도 존재하며, 더욱이 단적으로 지각에 합당한 것을 공동체화 함으로써 존재한다. 공동체화 함에서는 서로 간의 정정을 통해 타당성 변화도 끊임없이 일어난다. 더 나아가 대체로 개별적인 점에 관해서 타당성의 상호주관적 일치가 표준으로서 뚜렷이 나타나고 그래서 타당한 것의 다양성 속에서 상호주관적 통일이 성립한다는 것, 게다가 상호주관적 불일치의 경우에도 상호 토의와 비판을 통해 일치가 성립되고 적어도 모든 사람에 대해 그것을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미 확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드문트 후설"에 의하면 인간의 인식은 세계의 사물이나 현상을 존재하는 그대로가 아니라 주관적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러한 주관적 인식조차도 개별적으로 이루어지지만은 않는다. 인간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른 사람의 삶에 관여한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집단적 방식으로 인식한다. 공동체 속에서 서로의 경험과 지각이 연계된다. 특히 인식의 반성 작용을 통해 광범위한 보편적 공감을 획득한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필요하고 타당한 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인식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주관을 가진 주체 사이의 공통분모가 형성된다. 확실히 인간은 경험과 경험을 통한 인식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나가는 능력이 있다. 개인의 반성에서 출발하든 아니면 상호 비판과 토론의 과정을 통해서든 교감을 넘어 공감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시대정신"이라는 표현과 내용을 수용하기도 한다.

"시대정신"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 다수가 공감하는 판단 기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상호주관성의 성과다. 예를 들어 추상적인 면이 다분하고 세부적으로는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과 민주주의의 옹호, 침략전쟁에 대한 반대와 평화의 지향, 민족의 독립성과 자주성 유지, 사회적 소수와 약자의 보호, 절대빈곤의 해결과 빈부격차의 완화 등은 상당한 공감을 형성한 시대정신에 속할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공포정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기준 형성이 가능하지 않을까?

당시 절대왕정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주변 국가의 침략, 왕당파의 반혁명 준동과 이에 "지롱드파"가 동조하거나 적어도 동요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혁명의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폭력 조치가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를 모든 혁명 과정에서 불가피한 현상으로 정당화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의식적으로 폭력을 조장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오래 걸리더라도 비교적 평화적으로 사회 변화에 이르는 길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우선 선택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 하더라도 공감의 확대 가능성에 어느 정도 희망의 자리를 마련해두는 성숙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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