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백성을 위해, "토지 (사)ㆍ곡식 (직)의 신"에게 유교의 예에 따라 제사를 지내던 곳ㆍ1395.10월,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태조"는 가장 먼저 "종묘 (宗廟)ㆍ사직 (社稷)"을 건설하였는데, 유교 이념에 따라 궁궐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서쪽)에 "사직"을 다음 해에 세웠다.
◆ 3단 (三壇)
① 사직단 (社稷壇) : 백성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
② 참성단 (塹星壇) : "단군(檀君) 왕검"을 기리는 곳
③ 환구단 (圜丘壇ㆍ원구단 (圓丘壇) ) : 황제가 제사를 지내는 곳
1. 사직단 (社稷壇) : 백성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
토지를 주관하는 신인 "사(社)"와 오곡(五穀)을 주관하는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
• 위 치 : 서울 종로구 사직동 (서울 사직단ㆍ노변동 사직단(대구)ㆍ남원 사직단(전북)ㆍ보은 회인 사직단(충북)ㆍ산청 단성 사직단(경남)ㆍ창녕 사직단(경남)ㆍ진주 사직단(경남)ㆍ고성 사직단(경남))
왕이 백성을 위해, "토지(사)와 곡식(직)의 신"에게 유교의 예에 따라 제사를 지내던 곳ㆍ1395.10월,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태조"는 가장 먼저 "종묘ㆍ사직"을 건설하였는데, 유교 이념에 따라 궁궐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서쪽)에 "사직"을 다음 해에 세웠다.
고대 중국의 제도를 기록한 "주례- 고공기(考工記)"에 실려 있는 "좌조우사(左祖右社)"에 따라 중국의 여러 왕조는 도성(都城)을 건설할 때, 궁궐 왼쪽엔 "종묘"를, 오른쪽엔 "사직단"을 두었다. "사직단" 위에는 "오색토(五色土)"라 불리는 각 방위 주변에서 헌상한 오색의 흙이 뿌려졌는데, "오방사상"에 따라 가운데는 황색, 동쪽은 청색, 남쪽은 적색, 서쪽은 백색, 북쪽은 흑색으로 꾸며졌다. 이는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에 따라, "오색"은 만물 즉 천하의 모든 토지를 가리키며,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곳이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참성단 (塹星壇) : "단군(檀君) 왕검"을 기리는 곳
마니산(摩尼山) 꼭대기에 있는 제단으로, "단군(檀君) 왕검"을 기리는 곳
• 위 치 : 인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마니산 (摩尼山)
자연석으로 기초를 둥글게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네모꼴의 단을 쌓았다. 면적은 5,593m2이며, 하단 원형 기단의 지름은 4.5m, 상단 방형(方形) 제단은 1변 길이가 1.98m이다. 동서 방향에 21계단의 돌층계가 있으며, 돌과 돌 사이의 사춤에 아무 접착도 바르지 않았다. 총 높이는 6m에 이른다.
일제강점기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가 성립한 이후, "강화도"는 단군시대 정치중심지의 하나로 인식되고, "참성단"의 네모난 상단과 둥근 하단은 각각 땅과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으며, "마니산"은 음(땅)과 양(하늘)이 만나는 신성한 "수중산(水中山)"으로 이해되었고, "마니산" 기슭에 "단군사당"이 건립되었다.
상고 시대 "단군"이 쌓았다고 알려져 있다. 1639년(인조 17)ㆍ1700년(숙종 26)에도 고쳐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1716년(숙종 42) 강화유수 최석항이 "참성단"을 중수하고, 동쪽 봉우리에 이르는 중간에 세운 참성단 중수비가 남아 있다.
3. 환구단 (圜丘壇ㆍ원구단 (圓丘壇)): 황제가 제사를 지내는 곳
천자 (天子ㆍ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 (壇)이다.
• 위 치 : 서울 중구 소공동 (1912년, "일본"은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총독부 철도호텔"을 세웠으며, 이 건물은 1968년에 지금의 "조선호텔" 건물로 대치되었다. (반도호텔(1936년)→ 롯데호텔))
예로부터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은 둥글게, 땅에 제사지내는 "단"은 모나게 쌓았기 때문이다. 1897년(고종 34)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재설치ㆍ현재 "환구단" 터에는 "황궁우(皇穹宇)ㆍ석고(石鼓ㆍ돌로 만든 북) 3개ㆍ석조 대문"만 남아있다) "황궁우"는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의 8각 정자로, "환구단"이 조성된 2년 후인 1899년(광무 4)에 환구의 북쪽에 건립하여 "신위판(神位版)"을 모셨다. "황궁우"의 건물 내부는 통층(通層)으로, 3층은 각 면에 3개씩의 창을 냈으며, 천장의 "칠조룡(七爪龍)" 조 각은 황제를 상징한다. 1902년(광무 7), 고종의 즉위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황궁우" 앞에 "석고(石鼓ㆍ돌로 만든 북)"을 세웠는데, 이 북은 제천을 위한 악기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몸체에는 화려하게 조각된 용무늬가 있다.
983년(고려 성종 2) 정월에 처음 시행되어, 설치와 폐지를 계속 되풀이하다가 "조선" 초에 제천의례가 억제되자 폐지되었다. 1456년(세조 2)에 일시적으로 제도화하여 1457년에 "환구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1464년(세조 10)에 실시된 제사를 마지막으로 "환구단"에서의 제사는 중단되었다.
"환구단"이 다시 설치된 것은 1897년(고종 34)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부터이다. 1897년(광무 원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환구단"에 나아가 천지에 고하는 제사를 드린 후, "황제"에 즉위했다. 당시 "환구단"이 마련된 곳은 중국 사신들을 접대하던 "남별궁(南別宮)"이 있던 자리로, 이때 만들어진 "환구단"은 화강암으로 된 3층의 단이며, 중앙 상부는 금색으로 칠한 "원추형(圓錐形)"의 지붕이었다. "환구단"에는 "하늘ㆍ땅ㆍ별ㆍ천지만물에 깃든 신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동지나 새해 첫날에 제천 의식을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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