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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건- 상식 • 논쟁 (개화파 • 북학파)

조선 ③ 계유정난ㆍ중종반정ㆍ인조반정ㆍ사육신ㆍ생육신

by 당대 제일 202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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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 (癸酉靖難)"은  1453.11.10일 (단종1), "수양대군"이 "김종서ㆍ세종의 여러 대군ㆍ대신들"을 귀양 보내거나 제거하며, 마지막으로 "단종 (노산군(魯山君))"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정변이다.

 

1.  조선의 반정

1455: 세조찬위세조반정단종 폐위 사건

1455(단종3), "수양대군""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것ㆍ "한명회권람신숙주" 등이 "김종서 일파와 안평대군"을 제거하고, "단종"을 폐위시킨 뒤, 왕숙인 "수양대군(세조)"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1453: 계유정난 (癸酉靖難)

1453(단종1).11.10, "수양대군""김종서세종의 여러 대군대신들"을 귀양 보내거나 제거하며 마지막으로 "단종(노산군(魯山君))"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정변

부왕선왕인 "문종(세종1)"의 유명(遺命)에 따라, "김종서(좌의정)황보인(영의정)우의정 정분(우의정)" 등이 그를 보필하고, "집현전 학자들" 또한 협찬(協贊)하여 왔다 그런데 "세종(단종 조부)"에게는 왕자 18명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양녕대군(태종1)효령대군(태종2)"과 함께 종친들의 수장격인 "수양대군(세종2)"은 야망수완이 비범한 인물이었다 이때 모든 대군은 다투어 빈객을 맞아들여 세력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었는데, "수양대군"에게는 무인들이 모였다 "안평대군"의 주변에는 "집현전 학사들"이 많이 모여 들었는데, "수양대군" 역시 "집현전 학사들" 포섭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신숙주정창손김질정인지" 등이 "수양대군" 편에 서게 된다.

단종 (1441~145716)

조선 최초의 왕세손으로, 조선왕조 27명의 임금들 중 유일하게 국장을 제때 치르지 못한 왕ㆍ즉위하였을 때는 나이 겨우 12세에 불과하였고, 1455"숙부 세조"의 정변으로 양위하였다가, "세조" 측근들의 탄핵으로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로 유배되었다가, 사사 혹은 교살되었다 세종 장남인 문종의 외아들로, 폐위되어 죽어서, 시호를 받지 못한 채 "노산군(魯山君)"으로 불렸다.

사육신 (死六臣):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6명의 신하

성삼문 (成三問1418~145638): 훈민정음 창제 참여(집현전 학사(신숙주이개))

하위지 (河緯地1412~145644): 예조판서훈민정음 창제 반대(최만리정창손 등)

이 개 (李 塏1417~145639): 훈민정음 창제 참여(성삼문신숙주)종증손- 이지함

유성원 (柳誠源 ~1456 ): 집현전 학사자결

박팽년 (朴彭年1417~145639): 집현전 학사형조참판좌부승지

김문기 (金文起1399~145657): 삼중신(단종의 충신)가묘가 설치형조 참판

생육신 (生六臣) :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6명의 신하

김시습 (金時習1435~149358): 매월당불교 승려단종 폐위에 분개하여 은둔하다가 승려가 됨 : 일설에는 그가 사육신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노량진(현 노량진 사육신 공원)에 암장했다고도 한다.

성담수 (成聃壽? ~ ? ): 단종 폐위에 분개하여 벼슬을 사직

원 호 (元 昊1397~146366): 단종 폐위에 분개하여 관직을 버리고 은거

이맹전 (李孟專1392~148088): 종 폐위에 분개하여 관직을 버리고 은거

조 려 (趙 旅1420~148969): 단종 폐위에 분개하여 관직을 버리고 은거

(1) 남효온 (南孝溫1454~149238): 단종 폐위에 분개하여 세상을 등지고 유랑 생활

(택1) 권 절 (權 節1422~149472): 단종 폐위에 분개하여 세상을 등지고 낙향

1506: 중종반정

1506.09.18, "연산군"이 폐위되고, "진성대군 이역(李懌)"이 옹립된 사건

"연산군""무오사화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제거하였다 또한 "경연(왕에게 유학의 경서(經書)사서(史書)를 진강(進講)논의(論議)를 받는 학술제도)폐지신언패(愼言牌)실시성균관의 연락(宴樂)장소 화도성 밖 30리 내의 민가 철거언문 도서의 폐기"등 폭정을 일삼았다 그리고 "원각사"를 폐하여 "연방원(聯芳院)"으로 고치고, 흥청(興淸)들과 기거를 함께하며, 채청사(採靑使)를 각 지방에 보내 미녀를 끌어들이고, 유희안락으로 세월을 보내며 국정을 도외시하자, 이에 "훈구 세력"을 중심으로 반정의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성희안(전 이조참판)"박원종(지중추부사)유순정(이조판서)신윤무(군자감부정)"등과 함께 "왕이 장단(長湍) 석벽(石壁)을 유람하는 날"을 기하여 거사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왕의 행차가 취소되면서 거사에 차질이 생겼고, 이때 호남 지역에서의 "연산군 폐위 거사 격문"이 서울에 나돌게 되면서 결국 당초 계획을 강행하였다.

그리하여 09.01, "박원종·성희안·유순정"을 비롯하여, "장정(전 수원부사)박영문(군기시첨정)홍경주(사복시첨정)" 등은 훈련원에서 무사를 규합한 뒤, "신수근(왕비 신씨 오빠)아우들인 신수겸신수영임사홍" "연산군 측근"을 제거한 뒤,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경복궁에 들어가 "자순왕대비"의 윤허를 받아 "연산군"을 폐위하여 "강화도 교동(喬桐)"에 안치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진성대군""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오르니 그가 "중종(11대 왕)"이다.

1623: 인조반정

1623.04.11, "서인 일파""광해군대북"을 몰아내고 "능양군 이종"을 옹립한 사건

"광해군"은 당론의 폐해를 통감하고, 이를 초월하여 좋은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원익이항복이덕형" 등 명망 높은 인사를 조정의 요직에 앉혀, 어진 정치를 행하려 했으며, "명나라후금"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실리를 취하는 중립외교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이첨정인홍" "대북파"의 무고로 "임해군(선조 장자광해군 동복 친형)"을 사사했으며, 1613(광해군5) "계축옥사"가 일어나, "영창대군(이복동생)"을 죽이고, "인목왕후(선조 계비영창대군 친모)" 폐비시켜 "서궁(덕수궁경운궁)"에 유폐하였다. 이와 같은 "광해군"의 패륜 행위를 명분삼아, 서인 "김류김자점이귀이괄심기원" 등은 "반정"을 일으켰다. 1620(광해군12) "김류신경진" 처음으로 반정을 모의하기 시작했고, "이서이귀김자점최명길최내길(최명길 형)" 등이 이에 동조했다

1623.04.11일 밤, "능양군(인조)" 주축으로 한 "서인" 세력이 반정을 일으켰다 "이이반"이 도중에 밀고하였으나, 예정대로 거사는 실행에 옮겨졌다 "능양군(인조)이서신경진이귀이괄김류김자점심기원구굉구인후최명길최내길" 등은 2,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창의문(자하문)"으로 진격해 성문을 부수고, "창덕궁"에서는 미리 포섭되어 있던 "훈련대장 이흥립"의 내응으로 훈련도감의 군사가 궁궐 문을 열어주어 반정에 성공했다.

2. 조선시대 공신 (功臣)

"공신"이란 국가나 왕실을 위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주던 칭호이며, 이는 중국의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 "신라시대"에 이미 "녹공(錄功, 공신으로 봉해진 사람의 기록한 문서나 공로의 기록)"을 했다는 기사가 있다.

고려 때, "왕건"이 개국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3등급으로 구분하여, 각각 공을 세운 정도에 따라 상을 내렸으며, "공신당()공신각()"을 두어, 12등 공신의 화상을 벽에다 그려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이라 일컬었고, "훈전(勳田)"을 내려 대대로 그 자손을 관직에 등용하였다이러한 공신들에게 초기에는 "녹권(錄券)"을 주어 "공신증명"으로 하였으나, 말기의 "중흥대신"에게는 "녹권" 이외에 따로 "교서"를 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태조"를 도와 조선개국에 공을 세워, 공신에 녹훈(錄勳) "개국공신정사좌명공신"을 비롯한 28종에 이르는 공신이 있었다이러한 공신들에게는 공을 세운 정도에 따로 등급을 나누어, "영작(榮爵)토지노비" 등을 지급하고, 자손들에게는 "음직(蔭職, 과거가 아닌 조상의 공으로 하는 벼슬)"을 주었다공신에 대한 사무는 "공신도감(功臣都鑑)충훈부(忠勳府)공신상훈교서(功臣常勳敎書)"에서 맡았다.

공신에게 지급하는 문서인 "녹권" "공신축(功臣軸)철권(鐵券)"과 별칭하여, 공신 전체의 공적상전을 기록한 "공신도감"이 발급되며, "교서(敎書)"는 수사자(受賜者) 개인의 공적상훈을 기록한 개별문서이다.

3. 공신 종류

① 개국 (開國)공신 : 1392년(태조 원년) 태조가 "수창궁"에서 즉위하면서 조선 개국에 공이 많은 신하들에게 3등급으로 공신 책록

② 정사 (定社)공신 : 1398년(정종 즉위년) "이방원"이 "정도전ㆍ남은" 등을 주살한 신하들에게 2등급으로 공신 책록

③ 좌명 (佐命)공신 : 1400년(태종 원년) "회안대군의 난"을 평정시킨 신하들에게 4등급으로 공신 책록

④ 정난 (靖難)공신 : 1453년(단종 원년) "수양대군"이 "황보인ㆍ김종서ㆍ안평대군" 등을 주살하여 "세종의 충신"을 제거한 공으로 책록

⑤ 좌익 (左翼)공신 : 1454년(세조 원년) "정인지ㆍ한명회ㆍ권남" 등이 "단종"을 폐하고, 세조를 추대시킨 공으로 책록

⑥ 적개 (敵愾)공신 : 1467년(세조13) 길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공신 책록

⑦ 익대 (翊戴)공신 : 1468년(예종 즉위년) "남이ㆍ강순" 등을 반역 혐의로 처단하는데 공을 세운 "한명회ㆍ신숙주" 등에게 내린 훈명

⑧ 좌리 (佐理)공신 : 1469년(성종2) "한명회ㆍ신숙주" 등의 신하들에게 임금을 잘 보좌하고, 정치를 잘하였다는 공으로 내린 훈명

⑨ 정국 (靖國)공신 : 1506년(중종 원년) "박원종ㆍ성희안" 등이 "연산군"을 폐출하고, "진성대군"을 추대하여 "중종반정"을 이룬 공으로 책록

⑩ 정난 (定難)공신 : 1507년(중종2)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책록

⑪ 위사 (衛社)공신 : 1546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를 일으키고, "윤임" 등 "대윤파"를 몰아낸 공으로 내린 훈명

⑫ 평난 (平難)공신 : 1589년(선조22) "정여립"의 모반 기미를 "박충간"이 알아채고 상소하여,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책록

⑬ 광국 (光國)공신 : 1590년(선조23) "종계변무(宗系辨誣, 명나라 역사에 이성계가 "이인임(고려의 권신)의 아들"로 되어있어 고쳐달라고 주청한 일)의 성공으로 내렸던 훈명

⑭ 호성 (扈聖)공신 :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책록

⑮ 선무 (宣武)공신 :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문무대신이 나라의 중흥을 협찬한 공으로 책록

⑯ 청난 (淸難)공신 : 1596년(선조29) "이몽학"이 일으킨 반란을 "홍가신"이 평정한 공으로 책록

⑰ 정운 (定運)공신 : 1612년(광해군4) "소북파 유영경" 등의 제거에 공을 세웠던 사람들에게 내려진 훈명

⑱ 위성 (衛聖)공신 : 1613년(광해군5) "임진왜란" 중, "광해군"을 호종한 공으로 "유몽인"에게 내린 훈명

⑲ 익사 (翼社)공신 : 1613년(광해군5) "이이첨ㆍ정인홍" 등이 합작하여, "임해군ㆍ영창대군ㆍ김제남" 등을 살해한 공으로 내린 훈명

⑳ 형난 (亨難)공신 : 1613년(광해군5) "대북파"가 "소북파"의 세력을 없애려고 "김직재" 등을 모반 혐의로 처형시킨 공으로 책록

 정사 (靖社)공신 : 1623년(인조원년) "김류ㆍ이귀" 등이 "광해군"을 폐출하고, "능양군"을 옹립하여 "인조반정"을 결행한 공으로 책록

진무 (振武)공신 : 1624년(인조2) "이괄"이 일으킨 난을 반란한 공으로 책록

 소무 (昭武)공신 : 1627년(인조5) "이인거"가 일으킨 난을 적발한 공으로 책록

 영사 (寧社)공신 : 1628년(인조6) "유효립정심" 등을 죽이는데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책록

 영국 (寧國)공신 : 1645년(인조22) "심기원"의 역모사건을 평정한 공으로 내린 훈명

 부사 (扶社)공신 : 1723년(경종3) 임인의 옥사을 일으키며 노론을 제거한 공으로 내린 훈명

 분무 (奮武)공신 : 1728년(영조4) "이인좌ㆍ정희량"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오명항" 등에게 내린 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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