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1세ㆍNapoléon Bonaparteㆍ1769~1821ㆍ52세ㆍ168cm)"는 1815.06월 "워털루 전투(벨기에 근처)"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완전히 몰락하고, 영국령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간다. 이후 삶의 마지막 6년을 "남대서양" 외딴섬인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보냈다. 공식적인 사인은 "위암"이라고 알려져 있다. 유해는 1840.05월, "영국"의 동의를 얻어 "프랑스"에 반환되었으며, 현재 "파리 앵발리드"에 안치되어 있다. 한편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나폴레옹 모발"에서 "비소" 성분이 다량으로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 대 프랑스 동맹 >
① 1793~1797 : 제1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승리 (프랑스 혁명 전쟁 시작) ② 1798.12~1801 : 제2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승리 (프랑스 혁명 전쟁 종료) ③ 1805.04~1806 : 제3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승리 (나폴레옹 전쟁 시작)→ 에투알 개선문 건립 ④ 1806.10~07.07 : 제4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승리
⑤ 1809.04~09.10 : 제5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승리 (나폴레옹의 절정기) ⑥ 1812~1814 : 제6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패배(파리 함락)→ 나폴레옹, 이탈리아 "엘바 섬" 유배 ⑦ 1815.03~1815.07 : 백일천하 (제7차 대프랑스 동맹)→ 나폴레옹, 영국령 "세인트헬레나 섬" 유배
1. 1793~1797 : 제1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승리 (프랑스 혁명 전쟁 시작)
"프랑스 혁명ㆍ루이 16세의 처형"에 위협을 느낀 유럽 각국이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한 동맹ㆍ"프랑스ㆍ나폴레옹(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의 승리→ 많은 영토를 할양
• 일 시 : 1793~1797년 (4년) • 장 소 : 서부 유럽ㆍ서인도 제도 • 결 과 : 프랑스 제1공화국 설립ㆍ존속ㆍ프랑스의 종속국 및 위성 국가 설립ㆍ프랑스령이 됨 (오스트리아 령 네덜란드ㆍ라인 강 좌안 등)ㆍ바젤 조약 (1795.04.06, 프로이센과 조약→ "라인란트" 획득ㆍ캄포포르미오 조약 (1797.10.17, 오스트리아와 조약→ 많은 영토를 할양받음) • 동맹국 : 영국ㆍ프로이센 왕국ㆍ스페인 왕국ㆍ포르투갈ㆍ네덜란드 왕국ㆍ나폴리 왕국ㆍ교황령
2. 1798.12~1801 : 제2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승리 (프랑스 혁명 전쟁 종료)
"프랑스"의 세력 확장에 위협을 느낀 유럽 각국이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한 동맹ㆍ"이집트"에서 "영국 해군(넬슨)"에게 패배→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1799.11)ㆍ1800.05월, "나폴레옹"은 37,000명을 이끌고, "그랑 산 베르나르 고개"를 넘어, 북부에 진출했다.
• 일 시 : 1798~1802년 (4년) • 장 소 : 유럽ㆍ중동ㆍ지중해ㆍ카리브 해 • 결 과 : 프랑스군의 승리ㆍ프랑스 제1공화국의 존속ㆍ이전의 프랑스 영토가 공인됨ㆍ뤼네빌 조약 (1801.02.09, 오스트리아ㆍ이탈리아ㆍ네덜란드과 조약 → 프랑스 위성국 승인ㆍ 프랑스 라인란트 영유권 인정ㆍ아미앵 조약 (1802.03.27, 영국과 강화조약) • 동맹국 : 영국ㆍ오스트리아ㆍ러시아 제국ㆍ오스만 제국
① "그랑 산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자크루이 다비드 작)은 이때의 정경을 그린 것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노새의 등"을 타고, "알프스"를 넘어서, "이탈리아"로 갔다. 알프스 산맥 : 최고봉 몽블랑(4,807m), 스위스ㆍ프랑스ㆍ이탈리아ㆍ오스트리아에 걸쳐 있음. "그랑 산 베르나르" 고개 : 이탈리아ㆍ프랑스와 국경을 이루는 산악 지대
② "로제타 석 (이집트)"의 소유권(프랑스→ 영국)
1798년부터 약 3년간 "이집트"를 점령하여 지배했던 "프랑스"는 3년만인 1801년 결국 "영국ㆍ오스트리아ㆍ오스만 군"에게 항복을 하게 된다. 영국에 항복하는 문서에 조인한 프랑스는 그동안 수집한 많은 이집트 유물들을 영국에 넘겨주게 되었다. "로제타석" 또한 이때 다른 유물들과 함께 영국의 소유가 되어, 1802년부터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현재 "영국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물이 바로 "로제타 석"이라고 한다.)
3. 1805.04~1806 : 제3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승리 (나폴레옹 전쟁 시작)→ 에투알 개선문 건립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 제국"의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이 결성한 연합ㆍ1806년, "나폴레옹"은 "나폴리 왕국"을 정복하고,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나폴리 왕"에 즉위시켰다. "나폴레옹"은 "친 프랑스 라인 동맹"을 결성하여,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시켰다. "프랑스 혁명" 후, "프랑스"에 대항하는 것으로는 3번째이지만,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성립 후, 대항하는 것은 1번째 동맹이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프랑스 제국"의 성립 후, 최초의 전쟁이기 때문에 이 전쟁을 기준으로 "프랑스 혁명 전쟁ㆍ나폴레옹 전쟁"을 구분한다. 1805.12.02일, "나폴레옹"의 대관식 1주년에, "모라비아의 아우스터리츠" 교외 "프라트 고지"에서 "프랑스 군"과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이 격돌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우세한 적을 대해, 후세에서 예술로 평가되는 지휘를 펼친다. 아군의 약점을 일부러 드러내어, "적의 중앙부"에 틈을 만들고, 집중 공격으로 돌파, 완승을 거뒀다. 이 전투는 "프랑스 황제(나폴레옹 1세)ㆍ러시아 황제(알렉산드르 1세)ㆍ신성 로마제국 황제(프란츠 2세)"등 3명의 황제가 1개의 전장에 모였기 때문에 "삼제회전(대규모 작전)"라고도 불린다.
• 일 시 : 1805~1806년 (2년) • 장 소 : 중부 유럽ㆍ이탈리아ㆍ대서양 • 결 과 : 프랑스군의 승리ㆍ신성 로마 제국의 멸망ㆍ프랑스 제1제국의 영토 확장ㆍ영국은 해전에서만 승리 : "피니스테레 곶" 해전ㆍ"트라팔가" 해전(영국 넬슨 제독의 최후) 프레스부르크 화약 (1805.12.26, 오스트리아와 강화조약→ 연맹에서 탈퇴) • 동맹국 : 영국ㆍ오스트리아 제국(신성 로마 제국)ㆍ러시아 제국ㆍ나폴리 왕국ㆍ스웨덴
① 에투알 개선문 : 프랑스 역사의 영광의 상징으로, 높이는 50m이다.
"샹젤리제 거리"의 서쪽, "샤를 드골 광장"에 위치해 있다. "고대 로마"의 "개선문" 모범을 따온 것으로, "신고전주의"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1806년 "나폴레옹"의 명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었고, 그의 사후인 "루이 필립의 왕정복고 시대"인 1836년에 준공된 매우 거대한 "개선문"이다. "나폴레옹"은 "개선문"이 완공되기 전에 이미 사망하고, 그가 이 문을 지나간 것은 1840년 "파리"로 이장할 때였다. "개선문"의 바로 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이 "파리"를 점령했을 때, "나치 독일 국기"가 걸렸고, "히틀러"가 전차로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4. 1806.10~07.07 : 제4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승리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 제국"의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이 결성한 연합ㆍ개전 후. 불과 19일 만에 "나폴레옹"은 "베를린(프로이센의 수도)"에 입성했다. 1807년, "나폴레옹"은 "프로이센"에서 할양했던 영토에, "베스트팔렌 왕국"을 건국하고, "동생 제롬 보나파르트"를 "왕"으로 즉위시켰으며, "폴란드"를 독립시켜, "바르샤바 공국"을 건국했다. 1808년, "대륙봉쇄령"에 불참한 "스웨덴"에 대해,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를 시켜, "러시아-스웨덴 전쟁"을 일으키게 했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중 유럽ㆍ동 유럽ㆍ북유럽"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
• 일 시 : 1806~1807년 (2년) • 장 소 : 작센ㆍ프로이센ㆍ폴란드ㆍ동 프로이센 • 결 과 : 프랑스 연합군의 승리ㆍ프로이센이 영토의 반을 잃음. 바르샤바 공국 성립ㆍ프랑스-러시아 동맹ㆍ대륙봉쇄령의 시작ㆍ틸지트 조약 (1807.07.09일, "프로이센ㆍ러시아"과 강화조약→ 연맹에서 탈퇴) • 동맹국 : 영국ㆍ프로이센 왕국ㆍ러시아 제국ㆍ작센 왕국ㆍ스웨덴
5. 1809.04~09.10 : 제5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승리 (나폴레옹의 절정기)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 제국"의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 "영국ㆍ오스트리아"이 결성한 동맹ㆍ1810년, "마리 루이즈(오스트리아 황녀)"와 정략 결혼하였고, "오스트리아"에게서 광대한 영토를 할양받았고, 이 영토 변화로, "오스트리아"는 전체 인구의 1/5가량 되는 300만 명이 넘는 국민을 잃었다. 이 무렵, "나폴레옹 패권"은 "네덜란드, 함부르크, 로마" 등을 합병하고 "프랑스 제국"의 지배 아래 있는 "이탈리아 왕국ㆍ스페인(형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왕)ㆍ베스트팔렌 왕국(동생 제롬 보나파르트가 왕)ㆍ나폴리 왕국(시동생 뮈라가 왕)ㆍ스위스 연방(동맹)ㆍ라인 동맹ㆍ바르샤바 공국(폴란드 독립)"에 이르러, "나폴레옹의 절정기"로 평가된다.
• 일 시 : 1809.04~10월 (7개월) • 장 소 : 중부 유럽ㆍ이탈리아ㆍ네덜란드 • 결 과 : 프랑스 연합군의 승리ㆍ나폴레옹과 마리 루이즈(오스트리아 황녀)와 정략결혼ㆍ프랑스-오스트리아 동맹ㆍ반도 전쟁의 시작ㆍ서부 "갈라시아"가 "바르샤바 공국"에 편입ㆍ쇤브룬 조약 (1807.10.14일, "오스트리아"와 강화조약→ 광대한 영토를 할양) • 동맹국 : 영국ㆍ오스트리아ㆍ스페인ㆍ포르투갈
6. 1812~1814 : 제6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패배(파리 함락)→ 나폴레옹, 이탈리아 "엘바 섬" 유배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 제국"의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 "영국ㆍ오스트리아"이 결성한 동맹ㆍ"러시아 원정"에서 큰 손해를 입은 "프랑스 군"은, 사방에서 다가오는 연합군에 압박을 받게 되고, 1814.04.06일, "나폴레옹"은 퇴위의 위기에 몰려,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1달 후, "부르봉 왕가의 루이 18세"가 즉위하였다.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추방되었고, 승리한 "군사동맹국"들은 "빈 회의"에서 유럽의 재편을 모색하였다.
"러시아 원정"에서 "프랑스 원정"에 이르는 최종 국면에서, 250만 명의 병력이 전쟁에 참가했고, 그 중 200만 명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러시아"에서만 100만 명 사망하였으며, "스몰렌스크 전투ㆍ보로디노 전투ㆍ드레스덴 전투ㆍ라이프치히 전투"는 "나폴레옹 전쟁" 중에서도 특히 규모가 큰 전투였으며, 이후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서구에서 이렇게 대규모 전투가 계속해서 일어날 수 없었다.
• 일 시 : 1812~1814년 (3년) • 장 소 : 유럽 전역 • 결 과 : 반(反)프랑스 연합군의 승리→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엘바 섬" 유배ㆍ부르봉 왕정복고ㆍ유럽 각국의 영토 변화ㆍ빈 회의 개최ㆍ"나폴레옹" 복권 이후, 전쟁 재발ㆍ퐁텐블로 조약 (1807.09.10.14일, "오스트리아"와 강화조약→ 광대한 영토를 할양) • 동맹국 : 영국ㆍ오스트리아ㆍ프로이센ㆍ러시아ㆍ스페인ㆍ포르투갈ㆍ네델란드
① 엘바 섬 (Elba)
"이탈리아 북부 토스카나 주"의 섬으로, 해안의 "그로세토"로부터 10km 떨어져 있다. "토스카나 제도"에서 가장 큰 섬으로, "이탈리아"에서 3번째로 큰 섬이다. "퐁텐블로 조약"에 의해,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가 "엘바 섬"으로 유배되었다. "나폴레옹"은 "황제"의 지위를 유지한 채, 이 섬에서 9개월 21일을 머물렀다. 1815.02.26일, "영국군"의 감시를 피해, "엘바 섬"을 벗어나 03.20일 "파리"에 입성한다. 그러나 이 백일천하는 곧 끝나고, "나폴레옹"은 다시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된다.
② 세인트헬레나 섬 (Saint Helena)
"영국"의 해외 영토로, "아프리카 남쪽 앙골라" 서쪽 해안으로부터 2,800km 떨어진 "남대서양" 가운데에 있다. "나폴레옹(1769~ 1821ㆍ52세)"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사망한다.
1815.06월 "워털루 전투(벨기에 근처)"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완전히 몰락하고, 영국령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간다. 이후 "나폴레옹"은 삶의 마지막 6년을 "남대서양" 외딴섬인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보냈다. 특히 "세인트헬레나 섬"의 총독인 "허드슨"으로부터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그는 무례하게도 자부심 강한 "나폴레옹"에게 "보나파르트 장군"이라고 부르며, 썩은 포도주를 따라주는 등 철저하게 조롱했다. "나폴레옹"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치의를 본국으로 귀국시켰다. 그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져 매일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1821년 세상을 떠났다. 공식적인 사인은 "위암"이라고 알려져 있다. 유해는 1840.05월, "영국"의 동의를 얻어 "프랑스"에 반환되었으며, 현재 "파리 앵발리드"에 안치되어 있다. 한편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나폴레옹 모발"에서 "비소" 성분이 다량으로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7. 1815.03~1815.07 : 백일천하 (제7차 대프랑스 동맹)→ 나폴레옹, 영국령 "세인트헬레나 섬" 유배
1815년, "나폴레옹"이 "엘바 섬(이탈리아)"에서 빠져나와, "파리"에서 도착한 기간과 그 동안의 사건을 말하는데, "제7차 대프랑스 동맹"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간에 "워털루 전투ㆍ나폴리 전쟁"이 있었다. "백일천하"라는 문구는 "사브롤 백작(파리의 경찰청장)"이 "왕"을 맞이하는 연설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 일 시 : 1815.03.20~07.08일(100일 간) 나폴레옹이 파리에 도착~ 루이 18세 복위 • 장 소 : 프랑스ㆍ벨기에(워털루 전투)ㆍ이탈리아 • 결 과 : 반(反)프랑스 연합군의 승리→ "나폴레옹"의 영국령 "세인트헬레나 섬" 유배ㆍ나폴레옹 전쟁의 종결ㆍ부르봉 왕정복고ㆍ제2차 파리 조약(1815.11.20일, "나폴레옹 전쟁"을 종결시킨 조약)ㆍ파리 조약(1814년) • 동맹국 : 영국ㆍ오스트리아ㆍ프로이센ㆍ러시아ㆍ스페인ㆍ포르투갈ㆍ네델란드ㆍ스웨덴ㆍ오스만 제국
① 워털루 전투 (Waterloo)
1815.06.18일, "벨기에 남동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과 "웰링턴ㆍ블뤼허"가 이끄는 "영국ㆍ네덜란드ㆍ프로이센" 등이 포함된 연합군이 싸워, "연합군"이 "프랑스 군"을 격파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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