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1ㆍ2차 세계 대전ㆍ독일ㆍ일본

인물 : 히틀러 ④ 에바 브라운 (14년간 동거부인)ㆍ33세ㆍ23살 차이

by 당대 제일 2022. 12. 19.
반응형

 

"에바 브라운 (1912~1945.04.30ㆍ향년 33세)"는 "히틀러"의 동반자ㆍ40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동안 부인이었다. (결혼당시 : 히틀러 56세 (23살 차이)) "히틀러"는 사귄 여자에게 무서울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고, "에바"는 이 때문에 누구보다 고생한다. 14년간 동거부인사진가현재 남아있는 히틀러의 많은 컬러 사진들과 영상들을 촬영했다.

 

1. 에바 브라운 (1912~1945.04.30ㆍ향년 33세)

에바 아나 파울라 히틀러 (Eva Anna Paula Hitler)독일 대중들은 그들의 죽음 전(1945.04.30)까지는 둘의 관계에 대해 알지 못했다

17세 때, "뮌헨"의 한 화방에서 "히틀러"의 개인 사진사의 보조ㆍ모델로 그를 만났으며, 그로부터 약 2년 후인 19세 때 만남을 자주 갖기 시작하여 "히틀러"의 애인이 되었다.  2차례(1932년(20세)ㆍ1935년(23세))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에바"는 바람을 용서하지 않는 여자였다. 자신을 두고, "히틀러"가 다른 여자와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격분하여 일을 저질렀다.

"히틀러"의 친밀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 중 핵심적 인물이었으나, 자매인 "그레틀"이 "히틀러"의 참모였던 "헤르만 페겔라인(SS 연락장교)"와 결혼한 1944년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공식 석상에 "히틀러"와 함께 나타나지 않았다.  1936년, "베르히테스가덴" 근처의 "베르그호프"의 집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 내내 외부와의 교류가 없이 살았다. 전쟁이 끝으로 가면서, "나치 독일"의 운명이 다해갈 당시 그녀는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베를린"에 함께 가서 "독일연방 수상관저" 밑에 있는 "지하 벙커"에 머물렀다.

"소련 붉은 군대"가 근처까지 쳐들어온 1945.04.29일, "히틀러ㆍ에바"는 "지하 벙커"에서 간결한 결혼식을 통해 혼인하고, "에바"는 그녀의 소원대로 "에바 히틀러"라고 서명을 할 수 있었다. 그 뒤 40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청산가리"로 음독자살하였고, "히틀러"도 곧이어 권총 자살하였다. "에바"는 자살하기 전 "히틀러"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그녀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는 당신을 어디든 따라갈 것이라고 맹세했습니다. 죽음까지도요.  저는 오직 당신의 사랑 때문에 살아갑니다."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ㆍ1889~ 1945.04.30ㆍ향년 56세) 23살 차이

나치독일 총통(대통령 겸 총리-1934.08~1945.04)ㆍ독일국 총리(1933.01~1945.04)ㆍ나치당 당수(1921.06~1945.04)노벨 평화상 후보(1939)ㆍ"독일 출신"이라는 설이 있기도 했지만,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임.

2. 자살 미수 사건 : 2차례 (1932년(20세)ㆍ1935년(23세)

"에바"는 바람을 용서하지 않는 여자였다.  자신을 두고, "히틀러"가 다른 여자와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격분하여 일을 저질렀다.

① 1932년 (20세)

아버지의 총을 훔쳐, 자신의 심장을 향해 발사하여, 자살을 시도했다.  "히틀러"가 진심으로 뉘우치게 하려면, 자신의 죽음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총알은 심장을 지나쳤다. 그녀는 아직 살아있음을 깨닫고 얼른 의사에게 연락했다.  일반적으로 이 일은 "히틀러"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과연 그것은 주효했다.  "히틀러"는 꽃다발을 들고 병문안을 왔고, "다시는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했다.

② 1935년(23세)

"에바"는 3개월 동안 "히틀러"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또 다른 여자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에바"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수면제 35알을 털어 넣었다.  이것은 당시 치사량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또 자살 미수에 그쳤다.  다시 "히틀러"는 꽃다발을 들고 병문안을 왔다.

3. "히틀러"를 사랑한 그녀의 비극

① 사람들은 "에바"의 죽음보다, "개 (블론디)"의 죽음을 더 애도했다.

총통 벙커에는 "히틀러ㆍ에바ㆍ몇 명의 최측근들" 외에도 "개(블론디)"가 있었다.  "에바"가 얻을 수 없었던 "히틀러"의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블론디".  "에바"에게 "블론디"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에바"는 "블론디" 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  벙커에 있던 사람들은 "시안 혼합물 캡슐"을 "블론디"에게 먹여, 그 효과를 확인했다.

강아지가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자, 모두 슬퍼하며 절규했지만, "에바"가 캡슐을 마셨을 때는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벙커에 있던 간호사는 "강아지의 죽음보다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간호사는 증언에서 "에바는 쓸모없는 소녀로, 누구에게나 멸시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② "히틀러"를 떠나라는 권고 거절

1943년, "헹리엿 테폰시러(독일 전국청년지도자의 아내)"는 "히틀러 곁을 떠나, 독일을 벗어나라"고 설득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1944년, "에바"는 "히틀러가 죽을 경우에는 자신도 죽을 것이다."라고 유서에 적었다.  "그가 홀로 남아도 난 끝까지 그와 함께 있겠습니다. 깊이 생각한 것입니다.  아무도 날 막을 수는 없습니다."

③ "히틀러"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히틀러"를 만났을 때, 그가 누구였는지 전혀 몰랐다.  1930년, "히틀러"는 권력의 정상에 올랐지만,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에바에게 "헬 울프"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다.  "히틀러"는 첫 눈에 그녀에게 반했다. 그리고 얼마 후, "헬 울프"의 정체를 주위로부터 알게 되었다.  "히틀러"는 영화나 식사 등에 그녀를 초대하였고, "에바" 또한 "히틀러"에게 점점 매료되어갔다.

④ "히틀러"는 둘의 관계를 숨겼다.

"히틀러"는 "에바"가 자신의 애인인 것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둘의 관계를 숨기기 위해, 그녀에게 굴욕적인 경험까지 겪게 했다. "히틀러"의 오랜 친구가 자택을 방문했을 때, "에바"는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고위 관리나 내각인 경우에는 침실 옆에 있는 내실에서 꼼짝없이 대기했다고 한다.

⑤ "히틀러"는 애인이 있었다 : 겔리 라우바루 (연인ㆍ자살한 외 조카ㆍ친 누나 "앙겔라 히틀러"의 딸)

"에바"와 관계가 시작되었을 때, "히틀러"는 "겔리 라우바루"라는 여자와 살고 있었다.  "히틀러"는 "겔리"를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그녀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1931.09월 "겔리"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비엔나"로 떠난다고 하여, "히틀러"를 격분시켰다.  두 사람은 밤새 격렬하게 싸웠고, 다음날 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겔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에바"는 슬픔에 빠져있는 "히틀러"를 위로했고, 둘은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그녀의 자살설로는 "히틀러"가 그녀를 버리고, "에바 브라운"을 가까이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녀가 자살하자, 당시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성적인 모욕을 주었다ㆍ히틀러가 비정상적인 행위를 강요했다는 설"이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