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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슬람 ④ 어쌔신 (Assassin)ㆍ암살자ㆍ자객ㆍ청부살인

by 당대 제일 2022.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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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쌔신 (Assassin)"은 중세 아랍 지역에서 활동한 "하산 사바흐"의 암살자 집단에서 유래된 단어로, 마르코 폴로의 "산중 노인" 기록과 아랍인들의 각종 기록에서 "해시시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아랍어 "하사신)"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한마디로 "약쟁이"를 말한다.

 

1. 어쌔신 (Assassin)ㆍ아사신ㆍ 암살자ㆍ자객ㆍ청부살인

① 뜻 : 암살자ㆍ자객(刺客)ㆍ청부살인업자ㆍ(인격 / 평판)을 더럽히는 사람ㆍ아사신파(派)

"니자리 이스마일 파"라고도 부르며, "이슬람 시아파"를 원류로 하는 "이스마일 파" 가운데, 특히 "니자리 파"라고 불리는 교단, "몽골 제국"에 의해 파괴

② 유래 : "hashish (하시시ㆍ"인도 대마초 (인도 대마의 암그루의 수지로 만든 마약)"로 만든 환각제를 흡입하는 암살자 "하사신 (약쟁이hashashin (eater of hashish)"에서 유래되었다.

중세 아랍 지역에서 활동한 "하산 사바흐"의 암살자 집단에서 유래된 단어로, 마르코 폴로의 "산중 노인" 기록과 아랍인들의 각종 기록에서 "해시시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아랍어 "하사신)"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약쟁이"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워낙에 방탕한 생활을 하여, "마약을 먹은 것 같다"고 "하사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③ 활동 : "아사신"은 "페르시아(이란)의 아사신ㆍ시리아의 아사신"으로 나뉜다.

11~13C에 걸쳐 "이란ㆍ이라크ㆍ시리아ㆍ팔레스타인ㆍ이집트" 등지에서 활동 /  "시리아 아사신"의 근거지였던 "마시아프(Masyaf) 성"은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시리아 마시아프 십자군 성(Masyaf, Syria)" → 1273년, "맘루크 왕조"에게 패배

어쌔신

④ 알라무트 요새 (840 ~ 1256416년 동안의 1대 요새)

"이란"의 "카스피해" 남쪽 "알보르즈 산맥"에 위치한 요새로, 과거 "아사신파"의 성채가 있었던 곳이다.  "테헤란"에서 약 100km 떨어져 있다. 천연의 요새지로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알루 아무트 산(해발 2,100m)"의 정상에 위치하였다. 깎아지른 듯한 난공불락의 언덕 정상에 위치한 곳으로 840년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1090년, "하산 사바흐"는 자신을 따르는 "아사신 분파"를 이끌고, 이 요새를 기습 점령하여, 이곳을 "아사신"의 근거지로 삼고, 도서관ㆍ훈련소를 세우고 수많은 요새를 건설하였고, 이 때부터 "알라무트"는 "아사신파의 본부"가 되었다.

1256.12.15일, "훌라구"가 이끄는 "몽골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요새 자체는 함락되지 않았지만, "루크누드 딘 쿠르샤(알라무트의 지도자)"는 "훌라구"에게 자비를 빌며 항복했다. 그러나 "훌라구"는 요새를 파괴하였고, 그 안의 도서관을 불태우고, 수많은 "아사신"을 학살했다. "아사신"들은 그 후에도 계속 "알라무트"에 살면서, "이스마일 파"로 남아있었다.

알라무트 요새

2. 개 요

• 1대 요새 : 알라무트 요새 (이란ㆍ840 ~ 1256 (416년 동안))→ "몽골"에 패배 후, 소실

 2대 요새 : 마시아프 요새 (시리아ㆍ? ~ 1273)→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이바르스"에게 패배

• 관련 인물 : 무함마드 1세ㆍ무함마드 2세ㆍ무함마드 3세ㆍ하산 2세ㆍ하산 3세 하산 에 사바흐ㆍ부주르구미드ㆍ루큰 알 딘 쿠르샤ㆍ라시드 앗 딘 시난ㆍ타즈 알 딘ㆍ알리 이븐 와파ㆍ알 하킴 알 무나짐ㆍ아부 타히르 알 사이

본래 "이슬람 시아파" 중, "이스마일 파"에서 갈라져 나온 "니자리 파"의 신도들이었다.

그러나 "셀주크 왕조"가 중동을 제압하면서 밀려나게 되자, 1090년 "하산 사바흐"의 인도 아래, 현재 "이란의 다이람산"에 "알라무트 요새"를 건설하고, "암살자 집단(Al Assas)"을 만들었다.

이들은 종교적ㆍ정치적 이유로 "셀주크 왕조"의 주요 인사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암살전을 펼쳤는데, 이는 사실 "시아파ㆍ수니파"를 가리지 않았다"십자군 전쟁"과 함께, 이들의 암살 대상에는 유럽인들도 포함되었고, "살라흐 앗 딘" 또한 주요 암살 대상이었다. 당시 "하샤신"의 지도자였던 "라시드 앗 딘 시난"은 또한 최초로 "산중 노인"의 이름으로 언급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하샤신"은 암살자의 대명사가 되어, 1276년 이 지방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를 통해 이 말이 유럽에 흘러들어가 "어쌔신"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최초의 언급은 그보다 100년 정도 앞서 이곳을 여행한 "투델라의 벤자민"의 여행기록에 "알 아사신(알 아사스의 일원)"과 그들의 지도자인 "노인", 그리고 이들의 거점인 "콰드모스"에 대해 짤막하게 나와 있다.

수차례 암살 위협을 당한 "살라딘"은 분노하여 여러 번 그들의 시리아 거점을 공격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살라딘"이 잠자는 막사에 어떤 남자가 홀연히 나타나, 독이 든 과자와 "당신은 우리 손 안에 있다"는 메모를 두고 사라졌다는 일화도 있는데, 이는 "하샤신"들 스스로 남긴 몇 안 되는 기록 중, 하나라서 신빙성이 낮다. (실제 몇 차례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모두 경비병들에게 저지, 살해당했다.)

"무슬림"이었지만, 때로는 이익을 위해 침략자인 유럽인들과 연합하기도 했다.

애초 "누르 앗 딘ㆍ살라흐 앗 딘" 이래, 중동의 이슬람 세계는 "수니파"가 대세를 이뤘기 때문에 같은 무슬림이라 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 이들은 서로를 "프랑크 인"들보다 더 싫어했다. 심지어 먹고살기 힘들어지니까,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고려하기까지 했었다. 다만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십자군"이 "하샤신 파"의 물품을 약탈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개종이 아니라, 보복으로 바뀌어버렸다.

이렇게 한때는 엄청난 위세를 자랑했으나, 이미 "살라흐 앗 딘" 시대쯤에는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다.

왜냐하면 하도 막장 짓을 많이 저질러서, "기독교ㆍ유대교"는 물론 같은 이슬람인 "수니파ㆍ시아파" 할 것 없이 만인의 증오와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이들도 활동을 위해서는 "밥ㆍ돈ㆍ사람" 등이 필요한데, 이것들을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알라무트"에서 자기네들끼리 조용히 살게 되었다.

수백 년에 걸쳐 행한 암살과 수많은 어그로로 인해 많은 적들을 만들었지만, 견고한 천연요새를 방패로 내세워 농성을 통해 버티고, 더군다나 주력인 "암살"로 적군의 사령관등 지휘관들만 죽여 반격을 가해, 침입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으며, 심지어는 "세말리크샤 1" "아사신 정벌군" 아내고, 후에는 수차례에 걸쳐 "칼리파" "술탄의 군대"도 막아내는 위세를 떨치나, 결국 아시아와 유럽을 무대로 최강대국의 길을 걷는 "몽골 제국"에게 짓밟히고 만다.

 

3. "아사신 (Assassin)"이 암살한 주요 인물

① 1092년 : 니잠 알 물크 - "셀주크 제국"의 와지르 (재상)

20년 동안 셀주크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페르시아 인이자, 문관 출신"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술탄 말리크샤 1세"를 능가하는 권세를 누린 인물이다.  "니잠 알 물크"가 살해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말리크샤 1세"도 병으로 죽었고, 이후 "셀주크 제국"은 후계자 다툼과 내분으로 붕괴되었다. 물론 "니잠 알 물크"가 죽을 당시 70대의 고령이었으며 이후 제국이 쇠퇴한 원인은 그의 개인적인 권력과는 큰 관련이 없는 문제이지만, 생전 그의 위치를 보면, "아사신파"가 암살한 인물들 중 가장 거물이라 할 만하다.

② 1108년 : 이맘 아불 마하신 루야니

③ 1122년 : 알 아프달 샤한샤 - "파티마 왕조"의 와지르 (재상)ㆍ"아르메니아" 출신 맘루크의 아들

"1차 십자군" 당시, 실질적으로 "이집트"를 지배하던 인물이었다. "시아파(그중에서도 이스마일 파)"의 최대 종주였던 "파티마 왕조"의 이맘을 실권 없는 허수아비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사신파"의 분노를 산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가 실제로 "아사신파"에게 암살당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④ 1123년 : 아부 하라위

⑤ 1124년 : 이븐 알 카샤브 - "시리아 알레포" 출신의 카디(이슬람 율법 재판관)

"십자군"에 맞서 싸우는 "지하드"를 주창한 최초의 인물들 가운데 하나다. "알레포"의 셀주크 계 영주가 죽은 뒤, 실질적으로 "알레포"를 다스리면서, "아사신파"를 탄압해 원한을 샀다.

⑥ 1152년 : 레몽 2세 - "십자군" 출신 트리폴리 백작

아마도 "구호기사단"을 지원한 것 때문에 원한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⑦ 1192년 : 코라도(콘라드) - "이탈리아 몬페라토" 출신의 귀족이자, 이후 "몬페라토" 후작

"하틴 전투" 이후, "아이유브 왕조"가 "예루살렘 왕국" 전역을 석권하는 동안, 주요 도시인 "티레"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2차례 물리쳐 명성을 떨쳤다. 이후 명목상의 왕인 "기 드 뤼지냥"을 디스하며 왕위를 노렸고, "이자벨라(예루살렘 공주)"와 결혼한 뒤, "예루살렘 왕" 직위에 올랐지만, 1주일 뒤 "아사신파"에 의해 암살되었다.

⑧ 1271년 : 에드워드 1세 - "잉글랜드 왕(플랜태저넷 왕가)"ㆍ영국 최초의 국민적인 왕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다가, "아사신"의 습격을 받았으나, 부상만 입고 목숨을 건졌다.

 

4. 1대 요새 : 알라무트 요새 (이란416년 동안의 1대 요새)→ "몽골"에 패배 후, 소실

"알라무트 요새"는 몽골의 영향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2대 요새인 "마시아프 요새"는 흔적만 남아있다고 한다.

1256.12.15일, "훌라구"가 이끄는 "몽골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요새 자체는 함락되지 않았지만, "루크누드 딘 쿠르샤(알라무트의 지도자)"는 "훌라구"에게 자비를 빌며 항복했다. "훌라구"가 이끄는 "중동 원정군"이 당도해, "아사신 파"를 공격했으며, "아사신 파" 역시 암살을 시도해 반격했으나, 이전처럼 잘 되지 않았다.

실제로 "몽골군의 천호장ㆍ백호장" 몇 명이 습격당해 암살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아사신 파"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암살자들을 빠른 기동력과 엄청난 실전경험, 은밀하고 교묘한 추격술을 사용해 "저승의 귀신들"이라는 이명까지 가진 "몽골의 척후대"에게 뒤를 잡혀 본거지를 들켜버린 것이다. 이후, "몽골군"은 차례차례 아사신의 요새를 격파하며 마침내 최초로 1256년 12월 5일에 아사신파의 본거지인 알라무트를 점령한다. 이때 "몽골"의 공격으로 인해, "알라무트의 도서관"이 불에 타버려, 아사신파의 교리가 담긴 경전, 이 때까지의 암살 기록 등 중요 문서가 불타, 영구 소실되었다.

"죽음이 우리를 낙원으로 이끈다."는 믿음 아래, "아사신" 광신도들이 요새를 되찾기 위해 항전했으나 결국 모두 죽어, 한동안 "알라무트 요새"에 까마귀 소리가 멎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5. 2대 요새 : 마시아프 요새ㆍ마시아프 십자군 성 ( Masyaf(시리아Syria))

"마시아프 성"은 "시리아 암살단"의 근거지로 아직도 그 성체가 남아 있다.

"마시아프 성"은 "살라딘"과 "십자군"과의 전쟁의 역사이다.

"살라딘(1137~1193)"은 "티크리트"에 있는 "쿠르드" 귀족가문 출신으로 "다마스커스"에 보내져서 교육받았으며, "십자군"을 "예루살렘"에서 몰아내고, "이집트ㆍ시리아"에 "쿠르드계 아유비드 왕조"를 건국한다. 1164년ㆍ1169년 사이, "팔레스타인"에서 출병한 "십자군"과 치룬 3차례 전쟁에서 "이집트의 파티마 군주"들을 도와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에 1169년 "시리아" 군 최고 사령관이 되고, "이집트 총독"으로 임명된다. "살라딘"은 "모스크ㆍ대학ㆍ병원ㆍ요새"들을 지었다.

1192년, "사자왕 리챠드 1세"와 "라믈라 휴전조약"을 맺음으로서, "티레(Tyre)부터 야포(Yafo)"까지의 "팔레스타인-시리아" 해안의 "기독교 왕국"을 인정하는 대신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영토"로 인정받는다. 이후 1273년, "시리아의 마시아프 지부"가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이바르스"에게 깡그리 쓸려버렸다. 이때 "시리아 아사신"들은 "맘루크 왕조"에게 충성하는 조건으로 살아남았고, 이들이 "암살 비용을 술탄과 흥정했다"는 기록이 14C에 있으며, 다른 공식적인 역사 기록 속에서는 사라졌다. 이후에도 한동안 권력자들에게 붙어서 생존했다.

"페르시아 아사신"들 중에서는 "니자리파"가 분열해, "무함마드 샤히ㆍ카심 샤히"의 혈통으로 나뉘다가 "무함마드 샤히" 계열의 "이맘"이 19C 말에 혈통을 남기지 않고, "인도"에서 사망하면서 이들의 대다수는 "카심 샤히" 혈통만 남아, 현재는 "아가 칸 4세"가 "아사신파의 이맘" 직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사신파"들은 현재도 미미하게 남아 있다.

행여나 "아사신파"가 남아 있다고 해서, 옛날처럼 "암살자 양성소 분위기"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겠으나, "아가 칸 4세"를 따르는 이들은 "이슬람 시아파" 산하 "이스마엘파" 산하의 "니자리파"이며, "하쉬샤신파" 신도들, 즉 옛 "아사신"들은 1095년에 "니자리파"와 흡수 합병 식으로 교리를 하나로 뭉친 것이다.

현대의 "니자리파"는 전 세계적으로 1,500만 명이 믿는 종교적 분파이다. 또한 "이맘 아가 칸 4세"는 "이맘"이지만, 동시에 프랑스에서 최상위급 규모의 경마장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 국적의 사업가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신의 저서 "도덕의 계보학"에서 "기존 사회의 정의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초인"에 대해서 말했는데, 그중에서도 "어쌔신"을 좋은 예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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