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 (Islam)"에는 3대 성지(聖地)가 있으며, 그것은 "메카 (카바 신전ㆍ최고의 성지ㆍ사우디아라비아의 히자즈 지역)ㆍ메디나 (사우디아라비아의 히자즈 지역)ㆍ예루살렘"이다.
< 이슬람 3대 성지 >
• 메카 (카바 신전) : 이슬람 최고의 성지ㆍ사우디아라비아의 히자즈 지역에 있는 마카 주의 주도
• 메디나 (2번째 성지) : 무함마드의 사망지ㆍ최초의 이슬람도시ㆍ사우디아라비아의 히자즈 지역에 있는 마디나 주의 주도
• 예루살렘 (3번째 성지) : "바위의 돔 사원"의 바위 위에서 "무함마드"가 " 천사 가브리엘"의 인도로, 유일신 "알라"로 부터 계시를 받고 승천한 곳
1. 메카 (카바 신전) : 이슬람 최고의 성지·사우디아라비아의 히자즈 지역에 있는 마카 주의 주도
무함마드가 태어나서,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은 곳으로, "메카"는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꼭 가야 하는데, "메디나"는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
정방형 즉 큐브(cube)를 의미하는 단어로, 630년 무함마드가 메카를 점령하고 카바 신전을 정화할 때, 아랍인들이 받들던 우상 360여 개가 안에 있었는데 이를 모조리 끄집어내어 없앴다고 전해진다. 이슬람의 "오주(五柱)·5가지 의무 중 하루에 5번 예배하라는 것"이 있는데, 이때 반드시 "메카" 쪽을 향해야 한다.
"아브라함(이브라힘)"과 장남 "이스마일"의 얘기로, 뒤늦게 아들을 얻은 "사라(아브라함의 첫 부인)"의 질투로, 어머니 "하갈"과 함께 광야에 버려졌다. 수일간 물을 마시지 못해 죽어가는 "이스마일"을 살리기 위해 "하갈"은 샘을 찾아, 사파와 마르와 언덕 사이를 7바퀴나 돌았고, 노력을 가상히 여긴 하나님은 "이스마일"의 발밑에서 샘물을 솟게 하였다. 이후 모자는 그 부근에서 살았고, 후에 그들이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한 "아브라함"은 사막에서 운석을 구해와 "이스마일"과 함께 제단을 쌓고, 감사 예배를 올렸다. 이것이 오늘날 "카바"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그 후로 "이스마일"은 "아브라함"과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스마일"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했고 이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본 하나님은 "이스마일"을 구한다. 이때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일"을 바치러 간 곳이 바로 "메카"라는 것이다. "메카"는 "무함마드" 이전에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있던 데다가 당시 원시 아랍신앙을 신봉하고 있었던 "베두인" 종족들이 섬기던 우상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도시로 여겨져 있었다.
"무함마드"가 최초로 "이슬람"을 선언한 곳이며,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보기 때문에, "메카"를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도시"라 부르면 실례가 된다. 마찬가지로 "무함마드"를 "이슬람교의 창시자"라고 부르는 것, 역시 무슬림들에겐 큰 실례가 된다.
610년경, "메카" 동북쪽 "자발 앗 누르 (빛의 산)의 히라 동굴"에서 계시를 받은 "무함마드"는 613년부터 9년간 "메카"에서 포교하며 "다르 알 아크람" 등 사하바들의 집들을 떠돌며 모임을 이어갔다. 초기 "이슬람 움마 (공동체)"는 다신교적 성향이 짙던 "메카"의 쿠라이쉬 기득권층에 의해 박해를 당하였는데, 기존 다신교 신앙에 반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상을 없애면 성지순례로 먹고살던 기존 상인들이 먹고 살 길이 없어진다는 이유였다.
이에 "무함마드"는 자신을 분쟁의 조정자로 받아들인 "메디나(야스리브)"로 피신했는데(622년, 히즈라), 이때 그를 따른 메카의 초기 무슬림들을 "무하지룬"이라 부른다. 그 후 "메디나"를 기반으로 6년간 "메카"의 쿠라이쉬 세력과 전쟁을 치른 끝에 628년 "무함마드"는 무슬림들과 "메카 순례"를 시도하였고, 양측 간에 "후다이비야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629년 "메카"에서 이슬람이 공인되었고, 첫 "우므라"가 행해졌다. 그해 말엽, "메카"는 별 저항 없이 이슬람 군대에 정복되었고, "무함마드"는 "카바 신전"의 우상을 파괴하며 다신교의 중심이던 그곳을 이슬람의 새로운 중심인 "마스지드 알 하람"으로 바꾸었다. 632년 "무함마드"는 "메카"에 대한 2번째이자 마지막 순례인 "힛자툴 와다"와 인간 평등을 강조한 고별 설교인 "쿠트바툴 위다"를 행한 후, "메디나"로 돌아가 숨을 거두었다.
2. 메디나 (2번째 성지) : 사우디아라비아의 히자즈 지역에 있는 마디나 주의 주도ㆍ최초의 이슬람도시ㆍ무함마드의 사망지
• 예언자의 모스크 : "무함마드"가 "메디나"를 정복한 이후, 거주하기 위해 지은 자택 터. 632년, 자택 내의 "아이샤 (처)"의 거처에서 "무함마드"가 죽자, 죽은 그 자리에다 관을 넣었다. "무함마드 관"을 중심으로, "사각형 묘각 (작은 돔이 있는 묘각)"을 세웠다. "메카"에서 "무함마드"가 망명한 곳으로, "무함마드"의 사상은 "메디나"로 오면서 전에 비해 엄격하고 과격한 양상을 띠게 된다.
6C 들어, 기존의 동맹이던 "바누 아우스·카즈라즈"는 주도권을 두고 120년에 걸친 내전에 돌입하였다. "메디나(야스리브)"는 지속적으로 혼란에 시달렸다. 두 연합군은 4번에 걸쳐 크게 격돌했는데, 마지막인 617년 "부아쓰 전투"에서는 "바누 아우스" 연합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에 지친 "야스리브" 인들 중 일부가 620년 "메카 순례" 도중 "무함마드"를 만나 지도력에 감화된 후, 그를 전쟁에 지친 "야스리브"의 중재자로 초청하기에 나섰다. 622.07월 "무함마드"는 "메카"를 떠나 "야스리브"에 당도하였다. 이를 전후로 약 70여명의 초기 "무슬림(무하지룬)"들도 "야스리브로" 향하였다. "무함마드"는 "메디나 헌법"을 제정해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아부 아이유브 칼리드"의 도움으로 토지를 구매한 "무함마드"는 첫 모스크인 "쿠바 사원"을 세웠고 매주 토요일 오후에 방문하였다. 그 후 "야스리브"의 이슬람 군대와 "메카"의 쿠라이쉬 기득권층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624년의 바드르 전투에서 이슬람 군대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메카 군대를 격파하였다.
3. 예루살렘 (3번째 성지) : "바위의 돔 사원"의 바위 위에서 "무함마드"가 " 천사 가브리엘"의 인도로, 유일신 "알라"로 부터 계시를 받고 승천한 곳
• 알 아크사 모스크 : 이곳의 예배는 다른 모스크에서 행하는 기도의 천배 효력이 있다고 한다.
원래는 "동로마 제국"의 교회 건물이었으나, "동로마 제국"이 이슬람의 팽창으로 "예루살렘"을 빼앗긴 이후, 정통 "칼리파" 시대에 "우마르"가 "예루살렘"에 무혈입성하며 이슬람의 관리 하에 놓였다. "우마이야 왕조"의 "아브드 알 말리크"가 명령하여 691년 "모스크"로 개축하고 705년 완공했다. 초창기 "이슬람 모스크"로 "은색 돔"을 얹었고 내부도 "스태인드 글라스·타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 바위의 돔 : 이곳에서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으며,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만들어졌고,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사악(이슬람의 경우, 이스마일)"을 하느님에게 바치려 했던 장소로, 무슬림들은 이 곳에서 "무함마드"가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는다.
사원 내부에 바위 하나가 있는데, 이 바위 위에서 "무함마드(이슬람교 창시자) "가 "유일신의 계시를 받고 승천한 곳 "이라고 한다. "이슬람 제국 "이 바위를 기준으로 "사원 (이슬람식 모스크)"을 지은 것이다.
아랍-이슬람 세력이 정통 칼리프 시기, 즉 "제4대 칼리프 알리(초대 이맘ㆍ재위 656~661) "가 660년, "예루살렘"을 점거하고, "성전산"에 "바위의 돔 사원(이슬람식 모스크)"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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