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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암살ㆍ학살ㆍ수용ㆍ살인

암살 ① 암살ㆍ처형ㆍ제거 (김구ㆍ이승만ㆍ김일성)

by 당대 제일 202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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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수" "미소공위" 참가 문제를 두고, "김구"와 갈등하였고, "한민당과 한독당의 통합"에도 앞장서서 반대하였다. 1947.12.02일 터진  "장덕수 (한국민주당 당수) 사건" 이후, 사이가 틀어진 "김구""이승만 암살"을 시도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1. 김구 : 암살

1922.02.06 : 김립 (김익용 (金翼容)1880~1922향년 41)사회주의 운동가이동휘 책사

범인 : 오면직노종균 (김구가 보냄)

1921, "한형권"등과 함께 "한인사회당"의 대표자로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참석, 1921.11"코민테른 회의"에서 "레닌"으로부터 "200만 루블"을 지원받고, 그 중 "한형권" 받은 "40만 루블""한인사회당"과 한국인 "사회주의" 청년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운반하던 중, "상하이"에서 1922"임시정부 경무국""김구"가 보낸 "오면직노종균"등의 총격을 받고 암살당했다 (당시 60만 금화 루블은 2012년 오늘의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약 600억 원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그러므로, 200만 금화 루블은 2,000억 원에 해당한다)

1945.12.30 : 송진우 (1890~1945향년 54)한국민주당 (한민당) 당수

범인 : 한현우(34평안남도 출신일본 유학파월남청년민족주의 광신자) / 유근배(21) 4 (백의사 "한지근"(여운형 암살자본명 이필형월남청년 출신)은 한때 "현우 형"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한민당"에서는 신탁통치를 놓고, "탁통치 반대론(김성수)""탁통치 불가피론(송진우)"이 있었다그는 "5개년 간 신탁통치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45.12.27"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 발표된 조선의 미소 양측의 5개년 신탁통치의 문제에 대해서 "김구"가 이끄는 "임시정부"와 견해 차이를 나타냄으로써 마찰을 빚었고, "송진우 암살" 배후로 "하지""김구"를 지목하였고, "장택상조병옥""김구""송진우 암살" 배후로 지목했다.

1947.12.02 : 장덕수 (1894~1947향년 52)한국민주당 (한민당) 당수

범인 (현장체포): 박광옥(한국독립당 당원미군정청 경찰관종로경찰서 경사) / 배희범(한국독립당 당원초등학교 교사)

"장덕수""미소공위" 참가 문제를 두고, "김구"와 갈등하였고, "한민당과 한독당의 통합"에도 앞장서 반대하였다. 1947.12.20, 배후로 "조소앙""정청 경찰" 연행되었고,  "김구" 역시 "군정청 재판"에 출두하였다.

 

2. 이승만 : 암살처형

1949.06.26 : 김구 (1876~1949향년 72)주석김창수

범인 : 안두희 암살 : 한주둔 미군방첩대(CIC) 정보원백의사 특공대원특무대장 김창룡의

1959.07.31 : 조봉암 (1899~1959향년 59)진보당 총재농림부 장관(1)국회부의장(2)

사인 : 교수형"박헌영"과 갈등계기로 사상 전향, "장택상윤치영"은 조봉암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증언

1960, "4대 대통령 선거" , "무소속 대선후보"로 출마, 30% 지지율을 얻어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1958"상인 양명산"을 통해, "북조선의 정치자금을 건네받았다"는 혐의로, "진보당 사건" 연루되어 재심결과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을 당하였고, 당대에도 "사법 살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3. 이승만 : 암살설 ? (이승만 제거 시도 : 항 참조)

1956.05.05 : 신익희 (1892~1956향년 63)국민대 설립중국육군 중장국회의원 (3)

사인 : 뇌일혈 및 심장마비암살(?)호남선 열차 안 (강경에서 이리로 향하던 호남선)

1956, "3대 대통령 선거" , "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

1960.02.15 : 조병옥 (1894~1960향년 59)경무부장김규식의 중등제자

사인 : 급사암살(?)미국 워싱턴 DC 월터리드 육군병원

1960, "4대 대통령 선거" , "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

 

4. 박헌영 암살설 ?

1947.07.19 : 여운형 (1886~1947향년 60)박헌영과 앙숙건국동맹농민동맹 창설

범인 : 한지근 (본명 이필형)5한지근은 김영철 (백의사의 집행부장)이 선정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

(백의사 "한지근 (여운형 암살범월남청년 출신)"은 한때 "현우(송진우 암살자) "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안창호의 "개조파"지지고려공산당 창립(이동휘)"볼세비키 당" 참여(레닌 면담)조선중앙일보사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겨루는 3대 일간지)사장

 

5. 김일성 처형

1950.10.18 : 조만식 (1883~195066)산학교 교장조선일보사장인공내각 재정부장

사인 : 맹산목장 (또는 산골 오지의 지방협동농장) 중노동

1953.07.02 : 허가이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헤가이1908~1953향년 44) 소련파 거두

사인 : 총상 (자살암살) 자신의 사무실인 "평양"의 지하 방공호

1954.07.30 : 리승엽 (1905~1954향년 48) 박헌영의 최측근노동운동가언론인(기자)

사인 : 처형 (평양 변방)

1955 (?) : 이강국 (1906~1955?향년 48) 김수임의 정인독일 베를린 대를 유학한 엘리트

사인 : 처형 (평양 변방)

보성고등보통학교(수석 졸업)한 소문난 수재,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재학

1956.12.15 : 박헌영 (1900~1956향년 53김일성과 12살 차) 마르크스주의자혁명가

사인 : 처형 (평양 변방 야산기슭)한국전쟁을 패전으로 몰고 간 미국제의 간첩 스파이반당종파분자

조선공산당 당수남조선로동당 당수"눈물 젖은 두만강" 노랫말의 주인공

1958.11 (?) : 김원봉 (1898~1958향년 59)의열단조선의용대 총대장한인애국단

사인 : 총살설자살설 (대동강 투신감옥에서 청산가리 자살)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겸 제1지대장 (1941~1945)최고액 현상금이 걸렸던 인물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가당시 현상금 100만원(, 320억 원)김구 60만원(, 190억 원)

19611963(?) : 김두봉 (1889~19611963(?)향년 7173(?)) 연안파 거두

사인 : 중노동 (맹산목장 또는 산골 오지의 한 지방협동농장)

한글학자 (주시경의 수제자)조선 제1대 국가수반 (최고지도자)김일성 종합대학 초대 총장(1946.10~1948.09)

 

6. 암살

1956.01.30 : 김창룡 (1920~ 1956향년 35) 군인(육군 소장)관동군 헌병육군 특무부대장

범인 : 출근길에 강문봉 (1923~1988)중장이 보낸 허태영 (1919~1957)대령 이진용 (1920~1991)대령송용고 (1925~1957)중령초식 (1927~1957)소령 등에 의해 피격

 

7. 박정희 암살설

1975.08.17 : 장준하 (1918~ 1975향년 56) 광복군회의원언론인(월간 사상계 창간)

약사봉 (경기 포천 이동면)에서 의문의 추락사

 

8. 백의사 (白衣社)

1945.11~ 1950 "625전쟁" "염동진"이 사망하면서 해산 /  "중국 국민당 장제스(蔣介石)" 휘하의 반공 결사단체 "남의사(藍衣社)"를 본뜬 것으로, "백의민족(衣民族)"을 상징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암살 : 1945.09.03- 현준혁 (조선공산당 평남지구당위원장1906~ 1945향년 38)

범인 : 백관옥 (대동단 (大同團, 백의사의 전신) 단원)에게 암살

개입 : 김구여운형장덕수 암살사건

 1946.09월 철도노조 파업1946.10월 대구 101사건

미수 : 1946, 김일성(金日成)강양욱(康良煜)김책(金策) 암살 미수사건

 

9. 이승만 제거 시도

미국의 시도

1952, "미국""이승만"을 제거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수립할 계획을 추진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반 휴전태도"를 고수하자, "미국" "이승만"을 제거하고, UN군사령부 주도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에버 레디 작전(Operation Ever ready)"을 수립했다.

그러나 "미국""이승만 정부"의 전복을 후원할 경우, 전쟁 수행에 대한 정당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미국"은 이 계획을 실행할 수는 없었다. 마땅한 대안자를 찾지 못하던 "미국""이승만"을 유지하되, 주변 측근들 중, "강경파"를 숙청하는 방안을 추진하였다.

"미 정부""이승만 제거"가 더 큰 혼란을 부를 수 있으며, "한국 민"의 민족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미국"은 그 계획을 완전히 폐기하지는 않았다.

그 후에도 "이승만"이 계속 "미국" 정책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일 때마다, "이승만"의 제거를 고려했다.

1950년대 말, 한때 "장면"을 대안으로 세웠으나, 실패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기붕(자유당 내 온건파)" 등을 통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추진하려 하기도 했다.

"윤치영"1950년대부터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하려고 공작을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1960"419혁명" 당시, "이승만 퇴진"에 대해, "미국 사람들이 앞장서서 한 짓이나 다름이 없다"라고 했다.

"윤치영""미 국무성의 음모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315 부정선거 규탄 데모로부터 변질되어, 이승만 박사를 기꺼이 하야하도록 만든 일관된 계략이 있었다." 의혹을 제기하였다.

"315 부정선거" 자체를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의 계략으로, 이 박사의 빛나는 독립투쟁의 적을 이 기회에 일거에 실추시키고, 어부지리를 얻으려 하고 있다는 모 측의 계획된 공작이라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구의 시도 : "이승만 암살 미수" 의혹

"장덕수 사건" 이후, 사이가 틀어진 "김구""이승만 암살"을 시도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1947.12.02 : 장덕수 (1894~ 1947향년 52) 한민당한국민주당 당수)

"안두희 공판 기"에 의하면, "김학규""홍종만(백의사 특공대원암살 하수인 관리자안두희가 조카 사위 뻘)"을 통해, "안두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김학규(1900~1967): 독립운동가한국광복군1948년 남북협상 반대김구와 갈등하던 중, 안두희를 김구에게 소개해 주었다가, "이승만 암살"을 도우려 했다는 혐의로 "징역 15년 형"을 언도받는다.

"김학규"와 만나기 전부터, "홍종만"을 통하여, "한독당"에 입당할 것을 이야기하여, 3, 4월경에 입당 절차를 았으며, "비서를 통하여 당원증을 내주게 했다"고 하며, "안두희""한국독립당"에서 동한 일은 없다고 한다. "김학규""안두희"가 만날 때마다, 한국에 대한 불평을 말하였으며, 때로는 듣기에도 위험한 이야기까지 하고, "김구"의 증명서까지 얻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김학규"는 그 후로, "홍종만"을 통해서 찾아주지 말기를 요구하며, "김구"의 암살 약 1달 전부터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김학규는 한국독립당에서 비밀당원증이란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진술과는 달리, "김구""경교장"에서 암살되던 날, "김학규""경교장"에 모인 한 측근에게 혈서를 하나 보여주었는데, 사건 직후, "경교장"에서 보좌진을 부른 "김학규"는 자신이 소지하던 손수건 "2장 크기의 하얀 천"1장 보여주었다.

그 천에는 "나는 미국제국주의의 주구, 이승만을 타도한다."는 혈서가 쓰여 있었다보좌진들이 "누가 쓴 것이냐"고 묻자, "김학규""안두희가 백범 선생 앞에서 쓴 것"이라며, 믿었던 "두희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분해하며, 부르르 떨었다고 한다이 사건 직후, "김학규""안두희"의 혈서를 그대로 불에 태웠다.

그러나 "김학규""안두희""김구"에게 소개해서, "이승만 암살"을 도우려 했다는 정보"이승만 정권"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는 애매한 혐의로 "징역 15년 형"을 언도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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