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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고대 • 불가사의 (7대) • 로마 • 신화

(신) 7대 불가사의 ⑥ 타지마할 (Taj Mahalㆍ찬란한 무덤ㆍ인도)

by 당대 제일 202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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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타지마할 (Taj Mahalㆍ찬란한 무덤)"은 "무굴 제국"의 5대 황제였던 "샤 자한 (Shah Jahanㆍ재위 1628~1658)"이 끔찍이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 (Mumtaz Mahal)"을 추모하여, "흰 대리석"으로 만든 무덤으로,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성된 직후, 공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손목을 잘랐는데, "타지마할"보다 더 아름다운 궁전을 만들려는 것을 막으려고 한 것이었다.

 

1. 타지마할 (Taj Mahalㆍ찬란한 무덤ㆍ인도)

건물 내부 1층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왕ㆍ왕비의 관"이 있지만, "유골이 없는 빈 관"이다. "샤자 한ㆍ뭄타즈 마할"의 육신은 "지하 묘"에 안장되어 있다.

"인도- 이슬람 예술"의 걸작, "타지마할"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페르시아- 터키- 인도- 이슬람"의 건축 양식이 잘 조합된 "무굴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로, 네 귀퉁이의 "미나레트 (H= 40m)"는 수직으로 보이나, 붕괴가 발생했을 때, 건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미세하게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

국가 재정에 영향을 줄 정도의 거액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인도에 위치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도"의 "아그라(Agra)"남쪽, "야무나(Jamuna)"강가에 세워졌는데, 기초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흑단나무"를 사용했는데, "자무나 강"이 완전히 마르면서, 지난 30년 동안 3.5cm가 기울었다고 영국BBC가 보도했다.

2. 구성

건물의 정면 마당에는 수로가 있는 전형적인 "무굴(Moghul)양식"의 정원을 두고, 좌우로는 회교사원ㆍ 회당을 둔 구조로 되어 있다. 뒤편에는 야무나야무나(Jamuna) 강이 흐르고 있는데, 높은 축대로 쌓여진 강 쪽의 뒷면을 제외한 "타지마할"의 3면은 모두 높은 담이 둘러져 있다. 동ㆍ서ㆍ남쪽에 "타지마할"로 들어서기 위한 1차 관문이 있고, 이 관문을 통과하면 널찍한 마당이 나오는데, "타지마할"은 이 마당을 건너, 또 다른 문을 통과해야 볼 수 있다. "타지마할"로 통하는 최종 관문으로 세워진 "붉은 사암"으로 된 문에는 아랍어로 "코란(Kolan)"의 경구들이 새겨져 있다.

 소재지 : 야무나(Jamuna) 강가         • 시 기 : 1631~1653 (22년간 대공사), "왕비"가 죽은 지, 6개월 후부터 건설을 시작, 완공에 22년이 걸렸음          건립자 : 샤 자한 (Shah Jahanㆍ재위 1628~1658)          책임자 : 우스타드 아마드 로하리          설계자 : 이란의 쉬라즈(Shiraz) 출신인 우스타드 이샤(Ustad Isa)에 의해 설계          기술자 : 무굴 제국외국 건축가전문기술자(이탈리아이란프랑스터키), 기능공 20,000          보석 (준보석) : 궁전 내외부를 장식한 보석 (준보석): 터키티베트미얀마이집트중국 등 세계에서 수입

• 자 재 : 최고급 대리석ㆍ붉은 사암- 인도 현지 조달 (건축자재운반을 위해 1,000여 마리 코끼리 동원)  "라자스탄"의 "마크라나(Makrana)"에서 채취된 대리석을 비롯하여 건물 안의 세세한 장식을 위하여, 러시아ㆍ중국 등지에서 수입했던 여러 가지의 돌이 사용되었는데,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준비 과정과 장인들을 동원하여 만든 타지마할의 건축비는 상당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3. 일 화

"무굴 제국" 5대 황제인 "샤 자한 (Shah Jahan)"의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은 17년의 결혼기간 동안,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낳고나서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죽었다거나 병이 나서 죽었다는 말도 있음) 그러자 "샤 자한"은 그녀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어 주기로 계획하였다. ("뭄타즈 마할"이 유언으로 자신의 무덤을 가장 아름다운 무덤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샤 자한"은 22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공들여, "흰 대리석"으로 "타지마할"을 만들었다. 국가 재정에 영향을 줄 정도의 거액이 투자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민심이 분노하였다.

당초 "샤 자한"은 부인 "뭄타즈 마할"을 위해 만든 무덤인 "타지마할"과 마주보는 "야무나(Jamuna) 강" 건너편에 비슷한 크기로 자신의 무덤을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고, "구름다리"로 두 무덤을 연결하려는 계획이었다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지만, 증명된 이야기는 아니다. "야무나 강" 건너편에는 "건물의 기단"을 조성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다.

4. 막내아들 "아우랑제브 (Aurangzebㆍ6대 황제)"의 반란

"타지마할"이 완공된 후, 10년 뒤인 1658년, 이러한 민심의 분노를 바탕으로, 40살의 막내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ㆍ6대 황제)"는 "샤 자한"의 총애를 받아, 왕위를 이을 아들 "가라 시코(Kara Shikho)"를 포함한 모든 왕자들을 죽이고, 1658년 아버지인 "샤 자한"에게서 왕위를 박탈한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마주 보이는 "아그라 요새(Agra Fort)"의 8각형 탑과 같은 형식의 구조물인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탑(언덕위의 하얀 집)"에 감금되어, 말년을 보냈다. 다행히도 "아그라 요새"에서는 2km 떨어진 "타지마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1666년 죽은 뒤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인 "뭄타즈 마할" 옆에 누워 영면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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