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오입 개헌 (四捨五入改憲)"이란, •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자유당"이 "사사오입(반올림)"을 내세워, 당시 "정족수 미달"이었던 헌법안을 통과시킨 "헌법 개정(제2차)"에 붙은 별칭으로, "자유당"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품으로, "이승만의 대통령 3선ㆍ자유당 장기 집권"이 목적이었다.
1. 사사오입 개헌 (四捨五入改憲) : 4이하는 버리고, 5 이상은 올린다.
1954.08.06일, "초대 대통령에 한정한 연임제한 철폐"를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11.27일 투표를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재적 의원 203명 중, 찬성(135)ㆍ반대(60)ㆍ기권(7)표로 부결되었다. 개헌정족수인 재적 2/3에서 1표가 부족했던 것이고, "국회 부의장"이 부결되었음을 선포하였다.
다급해진 "자유당"은 긴급대책회의 끝에, 203명의 2/3는 135명 하고도 0.33명인데, 0.33명은 1명의 인격으로 취급될 수 없기 때문에, 135가 203명의 2/3이라는 "수학적인 사사오입 개념"을 도입하여, 부결선포를 번복하고, "개헌안 통과"를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말이 안 되는 일을 우길 때마다, "사사오입"이라고 하였다.
"3선 개헌안"의 "사사오입" 통과 후, "자유당"은 1956년 당 대회에서 "이승만"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였으나, "국부 이승만 박사"는 무슨 이유에선지 "불출마" 의사를 밝히자, "자유당"에서는 그의 출마를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자 "조재천(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대한노총(현, 한국노총) 산하의 "우마차(牛馬車)조합"에서 수백 대의 우마차를 동원, 이박사의 재출마를 절규하는가 하면, 죽은 사람의 도장까지 연판장에 찍는 판이니, 이것은 "민의(民意)"가 아니라, "우마우의(牛馬牛意)", 심지어는 "귀의(鬼意)"까지 동원한 것이 아닌가."하고 꾸짖었다. 이 발언은 금새 "우마우의"라는 새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2. 개요
1954.05.20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 다수를 차지한 "자유당"은 "이승만의 종신 집권"을 가능케 하기 위하여,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앤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여, 09.08일 국회에 "제2차 헌법 개정안"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1954.11.27일, 국회 표결 결과 "재적의원 203명 중 2/3이 찬성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가결정족수(可決定足數)" 136명에서 1명이 모자란, 찬성(135)ㆍ반대(60)ㆍ기권(7)표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당시 "국회부의장 최순주(자유당)"는 부결을 선포했으나, 2일 후 "자유당"은 "이정재(감찰부 차장)의 동대문 사단"을 국회 방청석에 투입시켰고, "사사오입의 원리"를 내세워 이를 번복하였다. 원래 재적의원 203명의 2/3은 135.33…명으로서, "정족수"의 경우, 이 숫자보다 많아야 하기 때문에 보통 올림 한 숫자인 136명이 맞다.
그러나 "자유당"은 당시 "대한 수학회 회장"이었던 "최윤식 서울대 교수"까지 내세우며, "사사오입, 즉 내림하는 것이 맞다"는 해괴한 주장을 내세워, "정족수"를 135명으로 하여, 가결된 것으로 정정 선포하였다. "최윤식 서울대 교수"는 203명의 2/3이 135.33…명이므로, 반올림해서 135명만 찬성하면 된다고 "이승만" 측에 말해주었다. 당시 개헌에 필요한 1표가 모자랐던 상황에 "사사오입(四捨五入ㆍ4는 버리고 5는 올린다)"이라는 아이디어는 궤변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절차적인 면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헌법에 위배되는 위헌 헌법개정"이었고, 이 헌법 개정으로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또다시 재선을 하게 되었으며, 헌법을 불법적으로 개정하면서까지 장기 집권하려는 사례는 "장기집권ㆍ독재"를 하기 위해, 헌법을 마음대로 변개하는 취약성을 드러냈다.
※ 최윤식 (崔允植ㆍ1899~1960ㆍ61세ㆍ평북 선천)
수학자ㆍ1922년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 제1부 졸업ㆍ1926년 도쿄 대학 수학과 졸업ㆍ귀국하여, "휘문고등보통학교ㆍ경성공업학교" 등의 교사로 있었다. 194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교수"에 이어, "대한 수물학회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54년 "대한수학회"가 창립되자, 초대회장이 되었고, "대한민국 수학자"로서는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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