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해전 (Battle of Midway)"은 "태평양 전쟁"의 일부로, "태평양 전쟁"의 결정적인 해전으로, "과달카날 전역"과 더불어 "태평양 전쟁"에 전환점을 마련한 전투이다. "진주만 공격"이 있은 지 6개월 뒤, "산호해 해전"이 있은 지 1달 뒤에 발생했다. 미국 해군은 일본 제국 해군의 공격함대를 "미드웨이 환초"에서 격퇴하였고, 일본군 함대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1. 미드웨이 해전 (Battle of Midway)ㆍ태평양 전쟁의 일부
"존 키건(군사 역사학자)"는 "해전 역사상 가장 놀랍고 결정적인 타격"이라고 불렀고, "크레이그 사이먼즈(해전 역사학자)"는 "전술적으로 결정적이었고, 전략적으로 영향을 남긴 살라미스ㆍ트라팔가르ㆍ쓰시마와 더불어 세계사에서 가장 중대한 해전 중 하나"라고 불렀다.
• 일 시 : 1942.06.04~07일 • 장 소 : 미드웨이 환초 인근 해상 • 지 휘 : 체스터 니미츠ㆍ프랭크 잭 플레처ㆍ레이먼드 A.스프루언스 / 야마모토 이소로쿠ㆍ나구모 주이치ㆍ야마구치 다몬ㆍ곤도 노부타케
• 군 대 : 미 태평양 함대(제16기동부대ㆍ제17기동부대)ㆍ미국 육군 항공대ㆍ미국 해병대 / 일본 제국 연합함대(제1함대ㆍ제2함대ㆍ제5함대ㆍ제11항공함대)
• 미병력 : 잠수함대 : 잠수함(20) / 미드웨이 기지 항공대 : 항공기(101)ㆍ비행정(31)ㆍ수상기(1) / 항공모함 타격부대 : 중형항공모함(3)ㆍ중순양함(7)ㆍ경순양함(1)ㆍ항공기(232)ㆍ구축함(15) / 급유대 : 구축함(4)ㆍ급유함(3) / 기 타 : 어뢰정(10)ㆍ방뢰-방잠망 부설선(1)ㆍ수상기모함(2)ㆍ구축함(1)ㆍ급유함(1) ㆍ개장 초계함(1)ㆍ예인함(1)ㆍ기타 함정(4)
• 일병력 : 잠수함대 : 잠수함(18)ㆍ잠수모함(2)ㆍ경순양함(1) / 기지항공대 : 항공기(389)ㆍ비행정(18) / 제1항공함대 : 중형항공모함(4)ㆍ전함(2)ㆍ중순양함(2)ㆍ경순양함(1)ㆍ구축함(12)ㆍ항공기(248)ㆍ수상기(16)ㆍ급유선(1)ㆍ특설급유선(7) / 미드웨이 공략부대 : 경항공모함(1)ㆍ전함(2)ㆍ중순양함(8)ㆍ경순양함(1)ㆍ구축함(11) ㆍ공작함(1)ㆍ급유함(2)ㆍ급유선(2)ㆍ항공기(24) / 선단부대 : 경순양함(1)ㆍ구축함(10)ㆍ초계정(4)ㆍ수송선(14)ㆍ급유선(1)ㆍ특무함(1) ㆍ특설소해정(4) / 항공대 : 수상기모함(2)ㆍ구축함(1)ㆍ초계정(1)ㆍ수상기(12) / 주력부대 : 경항공모함(1)ㆍ수상기모함(2)ㆍ전함(7)ㆍ경순양함(3)ㆍ구축함(21) ㆍ특설급유선(4)ㆍ항공기(8)
일본의 작전은 이전의 "진주만 공격" 때처럼, "태평양"의 전략적 강국인 미국을 제거하여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자유롭게 설립하는 것을 추구하였다. 일본은 사기를 저하시키는 또 다른 패배로 인해,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항복하기를 바랐고, 일본이 "태평양"에서 우세를 점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미 항공모함을 함정으로 끌어들여 "미드웨이"를 점령하는 것은 "도쿄"를 공습했던 "둘리틀 공습"에 대응하여 일본의 방어 교두보를 확장하는 전체적인 "장벽 전략"의 일부였다. 또한 이 작전은 "피지ㆍ사모아ㆍ하와이"를 공격하는 더 넓은 작전의 사전작업으로 여겨졌다.
작전은 미국의 대응을 잘못 가정하고, 초기에 일본 부대를 잘못 배치하여 불리하게 바뀌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 암호 해독자"들이 일본군이 계획한 공격의 위치와 날짜를 판단할 수 있게 되어 사전에 경고를 받은 미 해군이 매복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군 항공모함(4척)과 미군 항공모함(3척)이 전투에 참여했다. 일본제국 해군은 "진주만"을 공격했던 중형항공모함(아카기ㆍ가가ㆍ소류ㆍ히류)를 잃었고, 중순양함(미쿠마)도 이 해전에서 잃었다. 미 해군은 중형항공모함(USS 요크타운)과 구축함(USS 해먼)을 잃었다.
"미드웨이 해전ㆍ솔로몬 제도 전역의 소모전" 이후, 증가하는 사상자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일본은 "항공모함"을 비롯한 물자와 숙련된 조종사들과 같은 인원 대체 능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한편 거대한 산업 능력 및 부대 훈련방식 덕분에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입은 손실을 쉽게 대체할 수 있었다.
① 대본영 (大本營ㆍ1894~1945): 전시 중 설치된 일본제국 육군ㆍ해군의 최고 통수 기관
② 대동아공영권 (大東亞共榮圈): 1940.06.29일, 라디오 연설에서 선언
"일본제국 정부ㆍ일본군"에 의해 고안, 점령지의 아시아인들에게 동아시아보다 더 큰 영역에서의 "동북아시아ㆍ동남아시아ㆍ오세아니아"의 문화적ㆍ경제적 통합이라고 선전된 개념ㆍ이는 또한 "일본에 의해 주도되고, 서방 세력에 독립된 자급자족적인 아시아 각국의 블록"을 만들어내려는 욕망을 표현한 것
③ 둘리틀 공습 (Doolittle Raid) : 1942.04.18일
"중령 제임스 해롤드 둘리틀"이 지휘하는 "B-25 미첼 경폭격기 편대(16대)"가 "항공모함 USS CV-8 호넷"을 출발하여, "일본"을 폭격한 사건ㆍ "중령 둘리틀"의 지휘 하에 "도쿄ㆍ요코하마ㆍ요코스카ㆍ가와사키ㆍ나고야ㆍ고베ㆍ욧카이치ㆍ 와카야마ㆍ오사카" 등 일본 각지를 "B-25 미첼 폭격기(16대)"로 폭격하였다. 이 공습으로 사상자(363명), 군 시설과 공장 등 (약 350동)의 손해를 주었다.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불침의 하늘"이라 호언장담하던 일본의 군부, 특히 일본 해군 상부에 준 충격은 엄청났고, 비록 일본에 큰 피해를 입히진 않았지만, 미국인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④ 산호해 해전 (The Battle Of The Coral Sea) : 1942.05.04~08 (태평양 산호해)
일본군 전술적 승리ㆍ미군 전략적 승리ㆍ태평양 전쟁의 주요 전투 중 하나로, 일본군 해군과 미국ㆍ호주 연합해군 간에 벌어진 전투ㆍ양측 항공모함이 서로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고, 직후 서로를 향해 직접적인 공격을 가했다.
2. 일본의 작전 계획
미드웨이를 공격하기 위해, "알류산 열도"를 함께 공격하는 계획을 세웠다. "야마모토 제독"은 이 계획에 "M1 계획"이라는 암호명을 부여했고,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었다.
① "알류샨 열도"의 "애투 섬ㆍ키스카 섬"을 점령함으로써, "알래스카"를 거쳐 북쪽에서 일본을 위협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시선을 북쪽으로 돌려, 주 목표인 "미드웨이 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게 하려는 데 있었다. 따라서 "알류산 열도"에 대한 공격은 "미드웨이"에 대한 공격보다 앞서 이뤄지게 했다. ② 미드웨이 점령 : 섬을 점령하여 하와이 및 미국 본토 공격의 전진 기지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미국 해군의 작전 거점을 미국 본토로 철수시킴으로써 일본 본토에 대한 위협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③ 잔존 미국 태평양 함대의 전멸 : 미드웨이 공격에서 "야마모토"는 진주만 공격의 주 목표였지만 당시 놓쳤던 미국의 항공모함들을 침몰시키려고 했었다.
이를 위해 "미드웨이"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물론, "미 태평양 함대"가 출동하지 않으면 손쉽게 "미드웨이 섬"을 점령할 계획이었다. 자신감에 찬 일본군은 "미드웨이" 점령 이후의 작전 계획도 수립했다.
"미드웨이"를 점령하면 전함 함대는 일본으로 복귀하고, 나머지 항공모함ㆍ순양함ㆍ구축함으로 구성된 기동 함대를 그대로 남태평양으로 보내,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 섬ㆍ피지 제도"를 점령하고, "호주의 시드니ㆍ멜버른"을 폭격하고, 8월에는 하와이를 점령한다는 계획까지 수립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일본이 요구하는 협상안에 서명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야마모토"의 생각이었다.
이 작전은 본래 "일본 대본영"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반대한 작전으로, "둘리틀 공습" 이전에 수립된 계획이었다. "야마모토"는 "진주만 공격"이 성공한 후에도 태평양의 미국 항공모함들이 신경 쓰였고, 이들을 찾아내어 모두 침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본영"은 "진주만 기습" 이후 계속 "동남아시아ㆍ남서 태평양" 공력에 가용한 모든 자원을 투입했다.
애초에 전쟁 목적이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에 대한 대안으로, "동남아시아"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확보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레이시아 반도ㆍ싱가포르ㆍ파푸아뉴기니ㆍ필리핀ㆍ인도네시아" 등 "관동군 및 중국 침략군"을 제외한 병력을 모두 "남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위협적인 배후를 남겨둔 채, 계속 남쪽으로 진격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차였다. 이런 상황에서 "둘리틀 공습"이 벌어졌고, 미 항공모함들이 건재함을 과시하는 듯한 "산호해 해전"을 치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반대파들도 작전 결행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게 되었다.
3. 일본군의 암호가 해독되다
"진주만 공격"의 고통을 맛본 미 해군은 1942.04월, "블랙 쳄버(하와이 주둔 미국 해군 정보부의 암호 해독반)"은 일본군의 무전이 증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미 일본 해군의 암호 체계인 "JN-25"를 해독하고 있던 해독반은 "AF"라는 문자가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AH"는 "진주만"을 의미했다.
"중령 조제프 로슈포르 중령(44세ㆍ암호 해독반 지휘관)"은 "AF"를 "미드웨이 섬"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의 정찰기가 "AF 근처를 지나고 있다."라는 내용의 무선 보고를 해독한 적이 있었던 "로슈포르 중령"은 정찰기의 비행경로를 추정한 결과, "AF가 미드웨이 섬"이라는 심증을 갖게 되었다.
"로슈포르 중령"은 "체스터 니미츠 제독"에게 일본군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것과 "AF"가 자주 언급된다는 점, 그리고 "AF가 미드웨이 섬"일 것이라는 보고를 한 후, "미드웨이 섬의 담수시설이 고장났다"는 내용의 가짜 전문을 "하와이"로 평문 송신하게 하자고 건의했다.
3월, "미드웨이 섬" 근처에 일본 해군의 비행정이 정찰 왔던 것을 알고 있던 "니미츠 제독"은 이 건의를 받아들였다. 사실 "미드웨이 섬"의 정수 시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일 후, 도청된 일본군 암호 중 "AF에 물 부족"이라는 내용이 해독되었다. 이로써 일본군의 다음 공격 목표가 "미드웨이 섬"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암호 해독으로 "알류산 열도"도 일본의 공격 목표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니미츠 제독"은 "순양함 (5척)ㆍ구축함(14척)"으로 구성된 "8 기동함대(TF 8)"를 파견했다. "항공모함"은 파견할 수 없었지만, 어차피 "알류샨 열도"는 양동 작전에 가까운 조공이었으므로 "니미츠 제독"은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워싱턴 해군 수뇌부"는 "알류샨 열도"가 주공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 섬"임을 확신하고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다.
4. 미국의 전략
암호 해독으로 일본의 작전 목표를 알게 되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니미츠 제독"은 객관적인 전력이 열세인 상황이 고민이었다. 전함 1척도 없이 "항공모함"을 제외하면 "중순양함"이 최대 전투함이었던 "미 태평양 함대"가 이른바 "악마의 군함"이라고 불리는 "야마토호(세계 최대의 전함)"을 비롯한 "항공모함(6척)ㆍ전함(11척)"을 주축으로 한 일본군 함대와 포격전을 벌이면, 미국은 전멸할 수도 있었다.
전체 함정 숫자에서 3:1의 열세였던 "니미츠"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미드웨이"로 접근하는 일본군 함대를 먼저 찾아내어 "함재기"로 기습하는 것뿐이었다. 여기에는 "미드웨이 섬"에 증강 파견된 "해병 항공대"도 동참해야 했다.
"니미츠 제독"은 함대의 집결지를 "미드웨이 섬" 북동쪽으로 지정하고, 일본군의 위치를 찾기 위해 "미드웨이" 북서쪽에서 남서쪽에 이르는 해역을 "부챗살 모양"으로 장시간 비행이 가능한 "PBY 카타리나 비행정"을 동원하여 찾도록 했다. 이 비행정들은 "미드웨이 섬"에서 발진했으며, 암호명을 "Strawberry(딸기)"라고 했다. 일본군은 "미드웨이 섬" 북서쪽에 집결할 예정이었다.
5. 작전에 투입된 일본군의 전력
"미드웨이" 공략은 역시 "나구모 주이치 제독의 항모 기동 부대"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주변 해역에 대한 제공권을 장악하고, "미드웨이 섬"의 항공 전력을 파괴하면, 이어서 "중순양함대"가 지상군을 상륙시켜, "미드웨이 섬"을 점령한다는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수립했다.
• 제1기동 부대 (나구모 주이치 중장): 항공모함 아카기ㆍ카가ㆍ히류ㆍ소류 • 알류산 공략대인 제5함대 (호소가야 보시로 중장): 항공모함 류조ㆍ준요 • 야마모토 제독의 주력 함대 : 연합함대 기함 야마토ㆍ전함 나가토ㆍ이세ㆍ무츠ㆍ휴가ㆍ후소ㆍ 야마시로ㆍ공고ㆍ히에이
대략 150여 척의 "대 함대"였고, 항공모함 함재기 조종사들은 진주만 기습 공격을 겪은 경험 많은 베테랑이었다. 이밖에 미드웨이 섬에 상륙할 병력으로는 일본 해군 육전대 2,800명ㆍ육군 3,000명 등 5,800명을 준비했다. 1942.05.27일, "나구모 제독"의 함대가 "순양함 나가라호"를 선두로 "히로시마 남쪽 하시라지마"에서 출발했다. 이틀 뒤인 05.29일 "야마모토 제독"의 함대가 출발했다. 함대는 공격 예정일로 잡힌 06.04일까지 작전개시 예정지역에 집결하기로 되어 있었고, "무선 침묵"을 유지하며 항해했다. 이 "무선 침묵"이 나중에 일본군 패배의 한 요인이 되었다.
6. 전 투
1942.05.26 : 미 해군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ㆍ호넷"이 "산호해 해전"을 마치고, "진주만"에 도착했다. "니미츠 제독"은 이들에게는 재보급을 마친 후, 즉시 "미드웨이 섬"으로 향하라고 명령했다.
05.27일, 일본 시간으로 "나구모 제독"의 함대가 일본을 출발했다. 이 날, 미 항공모함 "요크타운"이 "진주만"의 건선거(乾船渠)에 들어왔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기술자 1,400여 명이 즉시 응급 수리를 시작했다.
05.28일, 항공모함 2척(엔터프라이즈ㆍ호넷)ㆍ순양함(6척)ㆍ구축함(9척)으로 이루어진 "스프루언스 제독의 16 기동함대(TF 16)"가 "진주만"을 떠나 "미드웨이"로 향했다. 예상되는 일본군 함대는 90여 척이었다. 속도가 느린 구식 전함은 미국 서해안을 경계하도록 뒤에 남겨졌다. "니미츠"는 상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로부터 현대 해전에서 항공력의 우위를 잘 배운 터였다.
05.30일, "도쿄 해군본부"는 "진주만"에서 "미드웨이"로 미국 항공모함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미군 조종사들의 교신을 청취했다. 즉시 해군본부는 이 사실을 "야마모토 제독"에게 무전으로 알렸다. "야마모토"는 "구로시마 가마히토 소장"에게 이 사실을 "나구모 중장"에게 알리라고 했으나, 무선 봉쇄를 풀면 "미군이 아군의 존재를 알게 된다"는 이유로 "구로시마 소장"은 반대했다. "나구모 함대ㆍ야마모토 함대"는 대략 555 km 가량 떨어져서 항해 중이었다. "구로시마 소장"은 "나구모 제독"도 그 전문을 수신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마모토"가 결국 무전을 강행할 것을 지시했지만, "구로시마 소장"은 독단적 판단으로 이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 "구로시마 소장"의 추측과 달리 "나구모 중장"은 "도쿄"로부터 오는 무전을 전혀 수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구모 중장"은 여전히 미 항공모함들이 "산호해" 근처에 있으며, "요크타운"은 피해가 너무 커서 수리 중일 것이라는 출항 전의 불분명한 정보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05.31일, 미 함대가 "진주만"을 출항했고, "미드웨이 섬"에서는 새벽에 "PBY 카탈리나 비행정"을 서쪽으로 최대 행동반경인 1,100km까지 정찰 비행을 하면서 일본군 함대를 찾았다. 최대 38대가 동원되었고, 일정한 비행경로를 따라 부챗살 모양으로 동시에 정찰 비행을 했다. 미군은 일본군 함대가 06.02~3일 사이에 "미드웨이 인근에 도착한다."고 알고 있었고, 먼저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06.01일, 일본 해군 잠수함들이 "진주만"을 정찰했다. 그러나 미 항공모함 기동 함대들은 전날 이미 출항한 상태여서 일본군 잠수함들은 항공모함을 비롯한 미 함대를 발견하지 못했다. 일본 해군 지휘부는 이 때문에 미 해군이 "미드웨이" 동북쪽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06.02일, "나구모 중장"은 "기함 아카기"에서 참모들과 전략 회의를 열었다. "구사카 류노스케 소장ㆍ겐다 미노루 중령" 등 "진주만 공격"을 입안하고 지휘했던 쟁쟁한 이력의 참모들이 "나구모 중장"을 보좌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정보로 분석해 보건대, "나구모"와 참모들은 미 항공모함 기동 부대는 없다는 전제 하에 공격 계획을 세웠다. "나구모"는 다음과 같은 2가지 전제를 세웠다. ① 미국은 일본의 계획을 모르며, 아군의 위치를 모른다. ② 근처에 미국 항모 기동 부대는 없다.
이러한 전제에 따라, "나구모"와 참모들은 다음과 같이 작전 계획을 세웠다. ① 미드웨이를 기습 공격해서 항공기와 활주로를 대파하고, 상륙 작전을 상공에서 엄호한다. ② 이후 미드웨이로 접근할는지 모를 미 해군의 항공모함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격파한다.
06.02일 아침, "잭 레이드(Jack Reid) 소위"가 조종하는 "카탈리나 정찰기"가 일본 함대를 발견했다. 1번째 보고는 정확한 함종(艦種)을 구분하지 못하고, 단지 적의 함대를 발견했다고 보고하여 지휘부의 애를 태우게 했고, 추가 정찰 보고를 통해, 함대 구성이 알려졌다. "레이드 소위"가 발견한 일본 함대는 "곤도 노부나케 중장"이 지휘하는 상륙 전대였다. "이치기 키요나오 대좌"가 지휘하는 "28 보병연대"를 주축으로 한 5,800여 명의 상륙 부대를 태운 수송선(12척)과 수송선을 호위하는 순양함(6척)으로 이루어진 함대였다.
"미드웨이" 동북쪽 500km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플레처 제독ㆍ스프루언스 제독"의 "16ㆍ17 기동 함대"는 침묵을 유지하며, "나구모 제독"의 항공모함 함대를 끈기 있게 기다렸다. 이날 저녁, "샌드 섬"의 비행정 기지에서 이륙한 "카틸리나 비행정 편대"가 어둠을 이용하여 엔진을 끈 채 활강하여 바다에 착수한 다음, "곤도 함대"에 어뢰 공격을 가했다. 이 공격으로 수송선(2척)에 약간의 피해를 주었으나, 항해에는 지장이 없었다.
7. 1942.06.04 : 전투 당일
02:45분, "나구모 함대"는 "미드웨이" 서북쪽 460km 해상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각 항공모함은 "함재기" 발진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공격대가 출격 준비를 하는 동안, "나구모 제독"은 공격대 발진에 앞서 정찰기를 보내 "미드웨이"와 인근 해역을 수색하기로 했다. 항모 "아카기ㆍ카가"에서 각 1기, 순양함 "토네ㆍ치쿠마"에서 제로수상정찰기 2대, 전함 "하루나"에서 1대 등 총 7대를 오전 04:30분에 출격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순양함 "토네"에서 발진 예정이던 정찰기는 사출기 고장으로 30분 지연되어, 오전 05시 정각에 출발했고, "치쿠마"에서 출발한 정찰기 1대는 엔진 고장으로 중도에 귀환했다. 나머지 정찰기들도 날씨가 좋지 않아 원래 예정했던 것에서 절반 정도만 정찰하고 복귀해야 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순양함 "치쿠마 호"에서 출발했다가 엔진 고장으로 돌아온 정찰기가 예정 경로로 정찰 비행을 했으면, "미 항공모함 함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나구모 제독"은 공격받기 전까지 미 항공모함의 존재를 모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가장 큰 패인이 되었다.
04:45분, 일본군 항공모함(4척)으로부터 "1차 공격대"가 출발했다. "나구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절반인 108대만 출격시키고, 나머지는 항모에 잔류시켰다. "공격대 지휘관"은 "진주만 공격"에도 참가한 "토모나가 죠이치 대위"였다. "1차 공격대"는 항공 엄호를 위한 "미쓰비시 A6M 영식 함상전투기(36대)ㆍ수평 폭격 임무를 담당하는 97식 함상 공격기(함공ㆍ36대), 99식 함상 폭격기(급강하 폭격기ㆍ36대)"로 구성되었다. 원래는 "항모 아카기"의 비행대장은 "진주만 공격"을 지휘한 "후치다 미츠오 중좌"였으나, 그가 출항 직전인 05.27일에 맹장염으로 "함"을 떠나면서 "토모나가 대위"가 지휘를 대신하게 되었다. "1차 공격대"의 임무는 "미드웨이 폭격"이었다.
05:45분, "토모나가 대위"가 지휘하는 공격대가 "미드웨이 섬"으로 향하고 있던 중, "미드웨이 섬"에서 새벽에 출발한 정찰기(1대)가 이 공격대를 발견했다(05시 20분). 공격대를 호위하던 일본군 전투기가 이 비행정을 발견하여 추격했고, "카탈리나 정찰기"는 즉시 구름 속으로 숨어 이른바 "고양이와 쥐 게임(Game of cat and mouse)", 즉 숨고 쫓는 숨바꼭질을 벌였다. 이 정찰기가 "미드웨이 섬"에 일본군 공격대를 보고한 것이 05:45분이었다. 보고가 있은 후, 10분 뒤인 05:55분 "미드웨이 섬"에 설치된 레이더에서도 이 공격대의 접근을 포착했고, 즉시 모든 전투기에 발진 명령이 떨어졌다.
"B-17 폭격기 편대"는 일본 전투기가 접근할 수 없는 고공으로 대피했다. 05:57분, 처음 "토모나가 공격대"를 발견한 정찰정이 다시 일본군 항공모함 함대를 "미드웨이" 서쪽 250km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보고를 했다. 06:05분, 정찰정으로부터 상세한 보고가 미 항공모함 함대로 보내졌다. 항모 "요크타운ㆍ호넷ㆍ엔터프라이즈" 등에서 드디어 정찰기를 발진시켰다.
06:15분, "미드웨이 섬"에 주둔하고 있던 "VMF 221" 소속 "브루스터 F2A 버팔로 전투기ㆍ그러먼 F4F 와일드캣 전투기"가 완전히 출격을 마치고, "미드웨이 섬" 상공에서 대기했다. 최초로 "토모나가 공격대"를 발견한 비행정은 일본군 편대 후방에서 어둠을 이용하여 추격하고 있었다. 아직 "미드웨이 섬" 주변은 동트기 전이라 어두웠다.
일본군 편대가 "미드웨이 섬" 55km 상공까지 접근하자, "카탈리나 비행정"이 조명탄을 투하해 "토모나가 공격대"의 위치를 알렸다. 이 조명탄을 신호로 고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팍스 소령"이 지휘하는 "미군 전투기(27대)가 일본군 편대를 덮쳤다. 이 기습으로 일본군 공격 편대 2대가 격추되고, 여러 대가 피탄 되었으나, 즉시 호위 임무를 수행하던 "제로 전투기 편대"가 반격에 나섰다. 나머지 폭격대는 계속 "미드웨이"로 향했다. 미군기(27대)중에서 "팍스 소령"을 비롯한 17대가 격추되고, 귀환한 10대 중 8대는 파손이 심해 폐기 처분되어야 했다. 남은 전투기는 겨우 2대였다.
06:35~ 07:00, "제로 전투기"와 미군 전투기가 공중전을 벌이는 동안 나머지 폭격기 편대는 "미드웨이 섬"을 폭격했다. 격납고 및 발전소를 비롯한 여러 부대시설을 폭격했으나, "토모나가 대위"는 "나구모 제독"에게 추가 공격이 필요하다고 타전했다. "1차 공격대" 피해는 "케이트 함상폭격기(2대)ㆍ발 급강하폭격기(1대)ㆍ제로 전투기(2대)"가 전부였다. "토모나가 공격대"는 방향을 돌려, 항모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07:05분, "엔터프라이즈ㆍ호넷"이 출격 준비에 들어갔다. "어뢰 공격기(29대)ㆍ급강하 폭격기(67대)ㆍ호위 전투기(20대)"가 1시간 내에 출격할 예정이었다. 이때 미군 함대와 일본군 함대 간 거리는 280km 였다. 준비가 끝난 "호넷"부터, "VT-8 어뢰공격 비행대(VT-8)소속 TBD 데버스테이터 어뢰 공격기(15대)ㆍ SBD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35대)ㆍ전투기(10대)"를 발진시켰고, "엔터프라이즈"도 "TBD 데버스테이터 어뢰 공격기(14대)ㆍ SBD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35대)ㆍ전투기(10대)"를 발진시켰다. 모두 119대였다.
07:10분, "나구모 제독"은 "토모나가 대위"의 보고를 읽고 있었고, 상공에는 함대를 엄호할 "제로 전투기"가 비행 중이었으며, 갑판에는 "무라다 시게하루 소좌"가 지휘할 "2차 공격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무라다 소좌 편대"는 혹시 모를 미 해군의 항공모함이나 전함에 대비해 어뢰를 장착한 상태였다. 이때 폭탄 대신 어뢰를 장착한 "B-26 폭격기"와 해병 항공대의 "TBD 데버스테이터" 어뢰 공격기들이 일본군 항공모함에 공격을 가해왔다. 이들은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항공기였다. 이들의 공격은 대기 중이던 "제로 전투기"들에게 쉽게 격퇴되어 모두 격추되었고, 어뢰는 쏴보지도 못했지만, "나구모 제독"은 "토모나가 대위"의 보고가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07:15분, "나구모 제독"이 결정적인 명령을 내렸다. "2차 공격"을 위해, "무라다 소좌"의 공격대가 장비하고 있던 어뢰를 빼고 다시 폭탄을 달라고 명령한 것이다. 아직 정찰기들로부터는 어떠한 보고도 없는 상태였다. 재무장은 30분이 소요되었다. 이 무렵, 미 항공모함들은 모든 함재기를 출동시키고 있었다.
07:30분, "토네"에서 30분 늦게 출발했던 정찰기가 미군 함대의 존재를 보고해 왔다. 그러나 보고는 불확실해서, 항공모함이 있는지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나구모 제독"은 즉시 항공모함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무전으로 내렸다.
07:55분, "미드웨이 섬"에서 출동한 "로프톤 핸더슨 소령"이 지휘하는 해병 항공대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항모 히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핸더슨 소령"이 지휘하는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편대(16대)"는 전투기 호위도 없이 "히류"에 돌진했으나, "아카기ㆍ히류ㆍ전함 기리시마" 등 주위 함정에서 쏴대는 대공 포화와 전투기 편대에 의해 10대가 격추되고 6대가 겨우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핸더슨 소령"은 피탄 되자, "항모 카가"에 충돌을 시도했으나, "카가"에 못 미쳐 바다에 추락했다.
08:10분, "토네 정찰기"가 순양함(5척)ㆍ구축함(5척)으로 이루어진 미군 함대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08:15분, 고도 20,000ft 상공에서 비행하던 "B-17 폭격기 편대"가 일본군 항모를 공격했지만, 폭탄을 명중시킨 폭격기는 하나도 없었다. 08:20분, "토네 정찰기"가 다시 미 항모로 보이는 함정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때 "미드웨이"에서 날아온 해병 항공대 소속의 폭격기(11대)가 다시 일본 항공모함을 공격했지만 역시 소득은 없었다.
08:25분, 미 해군 "잠수함 노틸러스 호"가 일본군 전함을 목표로 어뢰를 발사했다. 그러나 속도가 느린 미군 어뢰를 일본 함대는 회피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와중에 "토모나가 대위"의 "1차 공격대"가 함대로 돌아왔다. 연료가 떨어져가던 "토모나가 대위"의 공격대는 항모에 착함해야 했다. "나구모 제독ㆍ켄다 미노루 중좌ㆍ구사카 류노스케 소장"은 고민에 빠졌다.
현재 일본군 항공모함 비행갑판에 대기 중인 전투기들은 육상 공격용 폭탄을 장착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토모나가 공격대"를 착함시키려면 갑판에 현재 대기 중이던 전투기들은 모두 갑판 아래 격납고로 내려 보내야 했고, "미드웨이 공격"도 당연히 늦춰질 수밖에 없다. 착함한 전투기 대신 공격대를 내보내려면 반대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미 항공모함들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폭탄을 빼고 어뢰 등으로 무장을 교체해야 했다. "히류"에 탑승하고 있던 "야마구치 제독"은 갑판에 대기 중인 폭격기와 전투기들을 이륙시켜 장착 중인 폭탄으로 항공모함을 공격하자는 의견을 보내왔다.
08:35분, 결국 "나구모 제독"은 기존 육상 공격용 폭탄을 장착하고 갑판에 대기 중이던 폭격기들을 도로 격납고로 내려 보내고, "토모나가 대위 공격대"를 착함시킬 것을 결정했다. "토모나가 대위 공격대"가 착함하고 연료를 재보급 받는 동안, 기존 공격대는 다시 어뢰로 바꾸어 다는 작업을 하고 항공모함 공격을 준비하도록 했다. 연료 재보급과 어뢰 재장착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다시 모두 출격시켜 미국 항공모함을 잡겠다는 계획이었다.
"함상 공격기"는 800kg 육상 공격용 폭탄을 빼고 833kg 어뢰를 다시 장착하고, "함상 폭격기"는 250kg 함선 공격용 폭탄을 다시 장착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토모나가 대위 공격대"가 항모에 착함하기 시작한 것은 08:37분이었다.
08:30분, "플레처 제독"이 지휘하는 "TF 17의 요크타운 호"에서 급강하 폭격기(17대)와 어뢰 공격기 (12대)가 출격했다. 08:34분, 미 공격 편대가 일본군 항공모함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해상에 도착했을 때 바다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격대 지휘관들은 몰랐지만, "나구모 함대"는 "요크타운" 쪽으로 북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호넷"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미드웨이" 방향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2개 어뢰 공격기 편대는 북쪽 수평선에서 연기를 발견했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이 방향은 일본 항공모함들의 항로 후방에 해당했다. 미군의 공격은 전혀 협력이 되지 않았다.
09:10분, "호넷ㆍ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어뢰 공격대가 "나구모 함대"를 발견했다. 09:20분, 일본군은 항공기들이 갑판에서 폭탄 재장착과 연료 보급을 받는 도중, 미 공격기들을 발견했다. 09:25분, "CV-8 호넷"에서 발진한 "TBD 디베스터 어뢰 공격기"로 구성된 "VT-8 어뢰 공격 비행대"가 공격을 시작했다. 그들은 전투기의 호위를 전혀 받지 못했으며, 저속ㆍ저공으로 일본군 항공모함에 접근했다. 상공에서 초계 비행 중이던 일본 전투기들에게 그들은 아주 쉬운 목표였으며, 미군 어뢰 공격기들은 1대씩 격추되었다. 15대 공격기와 30명으로 구성된 이 공격대에서 "조지 H.게이(George H.Gay) 소위"만 살아남았다. 그날 "게이 소위"는 구명조끼에 의존하였다가, 30시간 뒤 "미군 PBY 정찰기"에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09:40분, "호넷"에 이어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VT-6 어뢰 공격 비행대"가 일본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5기가 전장에서 살아남아 이탈하여, 1기는 착함했으나 손상이 심해 폐기되었다.
09:45분, "CV-6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일본군의 "구축함 아라시"를 발견했다. 비록 공격대는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찾지 못하고, 연료가 떨어져가던 중이었지만 편대장 "웨이드 매클러스키 중령ㆍ맥스 레자일"은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뒤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이 일본군 구축함은 "전함 키리시마" 공격에 실패한 "SS-168 노틸러스"와 추격전을 벌이다가 끝내 격침시키지 못하고, 최고 속도로 "나구모 제독"의 항모 기동 함대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미 비행대는 일본군 구축함을 뒤따라,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비행하기 시작했고, 얼마 뒤에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발견했다.
10:00분, "CV-5 요크타운"에서 발진한 "VT-3 어뢰 공격 비행대"가 3번째 공격에 나섰다. 이들 역시 초계 비행 중이던 일본군 "제로 전투기"의 요격에 2기 만이 살아남아 이탈했으나, 그 2기도 귀환 도중 착수하여 전멸했다. 그러나 이들의 등장으로 전투 초계중이던 일본군 전투기들은 전투 초계를 "항모 기동 함대"의 남동쪽으로 옮겼고, 높은 하늘을 무방비 상태로 남겨두었다.
10:25~ 10:30분, 일본군 항공기들이 자리를 비운 틈에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대ㆍ요크타운의 급강하 폭격대"가 일본군 항공모함 중 "아카기ㆍ가가ㆍ소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웨이드 매클러스키(Wade McClusky) 해군 소령"이 공격에 나서, 약 4,419m 상공에서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들이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의 항공모함에는 재급유ㆍ재무장을 위해, 항공기ㆍ정비 요원ㆍ연료ㆍ어뢰ㆍ공격기에서 떼어낸 폭탄이 즐비했다.
제일 먼저 폭탄을 맞은 "가가"는 폭탄 4발이 연료탱크에 맞아 폭발을 일으켰고, 함교까지 폭발해 함장이 숨지고, 함장 임무는 항공장교가 인수했다. "나구모의 기함 아카기"는 비행갑판에 1발, 함수 엘리베이터에 1발을 맞았는데, 엘리베이터에 맞은 폭탄은 그곳을 관통해 기관실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비행갑판에 떨어진 폭탄은 갑판을 완전히 불지옥으로 만들어, 그 자리를 베테랑 조종사들의 화장장으로 바꿔버렸다. "소류"는 화재가 발생하여 엔진이 멈춘 후에 미 잠수함이 어뢰를 쏘았지만 침몰시키지는 못했다. 전투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을 때, "야마모토 제독"이 이끄는 주력 함대는 "항공모함 기동 함대"로부터 대략 55km 떨어진 후방에서 "미드웨이"로 향하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야마모토 제독"은 후퇴냐 전진이냐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11:00분, 회의를 소집한 "야마모토"는 공격을 계속할 것을 결심했다. 아직 일본군에는 1척의 항공모함이 있었으며, "야마모토의 주력 함대"와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또, "알류샨 열도"로 파견된 공격 함대에도 "항공모함 2척(류조ㆍ준요)"이 남아 있었다. 이들 항공모함으로 공격을 계속할 것을 결심한 것이다.
10:40분, 항공모함 "히류 (비룡이라는 뜻)"의 1차 반격
일본군 어뢰 공격기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요크타운"이 공격에서 "항공모함 히류"는 제때 회피기동을 한 덕분에 공격을 받지 않고 혼자 살아남았다. "히류ㆍ소류"가 소속된 "제2항공전대"는 "야마구치 다몬 소장"이 지휘하고 있었다. 공격을 피한 일본 호위함대는 "히류"를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살아남은 함재기들도 "히류"에 착륙했다.
10:40분, "야마구치 소장"은 "고바야시 미치오 대위"에게 "발 급강하폭격기(18대)ㆍ제로 전투기(6대)"를 이끌고, "미 항공모함을 공습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중 절반은 원 소속을 잃어버린 "소류ㆍ가가ㆍ아카기"의 기체였다. "히류"에서 발진한 "발 급강하폭격기"들은 "요크타운"을 발견하여 공습을 개시했다. 공습이 시작될 무렵, "요크타운"은 "급강하폭격기"들을 착함시키면서, 전투기들에게는 연료 등을 급유하고 있었다.
일본 비행기들의 접근을 레이더로 알아낸 "요크타운"은 즉시 전투기들을 이함하고, "급강하폭격기"들은 다른 배로 보내고 대공 전투를 준비했다. "호넷ㆍ엔터프라이즈"에서도 전투기(28대)가 "요크타운"을 지원하기 날아왔다. 항공모함(3척)에서 발진한 전투기들과 수상함들의 대공 사격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급강하폭격기들은 "요크타운"에 2발의 폭탄을 명중시키며 치명타를 입혔다. 그러나 "요크타운"은 아직 "함"을 조종할 수 있었다. 오후 2시까지 기관실 등의 응급 수리가 마무리되어, 18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비행갑판도 수리된 상태였다. 일본군 급강하 폭격기(18대) 중 13대는 격추되었으며, 공격대 지휘관 "고바야시 대위"도 전사했다.
12:45분, 항공모함 "히류 (비룡이라는 뜻)"의 2차 반격과 두 항공모함의 최후
이 무렵, "항공모함 소류"에서 몇 시간 전에 발진했던 정찰기가 "항모 히류"에 착륙했는데, 조종사가 상황을 보고했다. "야마구치 소장"은 "미드웨이 1차 공격대"를 지휘했던 "토모나가 대위"에게 "어뢰 공격기(10대)ㆍ제로 전투기(6대)"를 이끌고 미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위는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비행기 왼쪽 날개의 연료탱크가 파손되었지만 수리하지 못했다. 그의 어뢰 공격기는 왼쪽 연료 탱크가 파손되어 오른쪽 연료 탱크에만 급유를 받은 뒤 이륙했다.)
12:45분, "토모나가 대위"는 "히류"에서 출격했다. 미 항공모함을 찾던 일본군은 "요크타운"을 발견했으나, 수리가 끝나 호위함에 둘러싸인 "요크타운"을 다른 항공모함으로 착각했다. "야마구치 소장"은 폭탄 명중으로 "요크타운"이 대파되었다고 추측했지만, "요크타운" 수리반의 능력은 "야마구치 소장"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토모나가 대위"는 공격을 명령했고, 어뢰 2발이 "요크타운"에 명중했다. 폭탄에 이은 어뢰 2발이 "좌현 연료탱크"에 연이어 맞으면서 "요크타운"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토모나가 대위" 자신은 "요크타운" 갑판에 충돌했다.
16:00분, "토모나가 공격대"가 "요크타운"에서 물러갈 즈음, 미군 정찰기가 "히류"를 발견했다. "플레처"는 즉시 "히류" 공격을 명령하여, "엔터프라이즈"에서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 (20대), "호넷"에서 16대가 이륙했다.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20대 중 10대는 원래 "요크타운의 함재기"였다.
16:30분, "토모나가 공격대"의 생존기들이 "히류"에 착함했다. "야마구치 제독"이 재공격을 명령하여 일본군은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남은 전력은 "전투기(6대)ㆍ어뢰 공격기(4대)ㆍ급강하 폭격기(5대)"가 전부였다. 17:00분, 미 급강하 폭격기들이 "히류"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폭탄 4발이 갑판에 명중했고, "히류"는 폭발과 함께 "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공격대기 중이던 나머지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목표를 바꿔, "전함 하루나"를 공격했다.
17:30분, 현장에 도착한 "호넷 공격대"는 "하루나와 순양함 치쿠마"를 공격했다. "히류"가 치명타를 입어 더 이상 공격을 할 필요가 없다고 미군은 판단했던 것이다.
1942.06.05 새벽 02:30분, "야마구치 소장"은 퇴함을 명령하고, "가쿠 도메오(히류의 함장)"은 침몰하는 "히류"에 남았다.
자신의 기함인 "히류"로 미 항공모함 "요크타운"을 격파하는 등 수훈을 올렸고, 미군의 공격으로 "히류"가 침몰할 때, 병사들을 퇴함시키고 탈출할 것을 권유하는 "이토 참모장"에게 "소장 군기"를 건네고, 자신은 "히류"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운명을 달리한다. 곧 구축함이 와서 생존자들을 수용한 후, 부채꼴 형태로 어뢰를 발사했지만, "히류"는 곧바로 침몰하지 않았다. 08:20분, "히류"는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14:55분, 왼쪽으로 26도 기울여진 "요크타운"은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엘리엇 벅마스터 함장"이 퇴함을 명령했다. "요크타운"은 06.06일에도 그 상태로 바다에 떠 있었고, "니미츠 제독"은 "요크타운"을 "진주만"으로 예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척의 항공모함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 일본 잠수함 "이-168"이 "요크타운"을 공격했고, 06.07일 아침에 배가 뒤집히며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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