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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 • 현대사)/인물

군인 (4명의 친구) : 정일권ㆍ윤동주ㆍ문익환ㆍ장준하

by 당대 제일 2022.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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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인생을 살다 간, "정일권 (丁一權1917~1994.01.1777)장준하 (張俊河1918~1975ㆍ57)문익환 (文益煥1918~1994.01.18ㆍ76세)윤동주 (尹東柱ㆍ1917~1945ㆍ28세)""광명 중학교 (용정 소재)" 친구들이었다.

 

1. 친구 :  정일권ㆍ윤동주ㆍ문익환ㆍ장준하

광명 중학교 (용정 소재)친구들 :  앞줄 (정일권)뒷줄 왼쪽으로부터  (장준하문익환윤동주)

 정일권 (丁一權1917~1994.01.1777)

만주국 일본군인ㆍ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파ㆍ박정희의 군사쿠데타를 도와 외교관ㆍ간도헌병대 대대장 (일본군 중령ㆍ최상위계급 조선인)ㆍ군인(육군대장ㆍ군번5번)ㆍ국회의원(3선ㆍ8~10대)ㆍ국회의장ㆍ국무총리(9대)ㆍ외교관(주미 대사 3대/ 5대)ㆍ외무부장관(11대/ 13대)ㆍ이승만 정권 시, 3대 파벌 구도형성(백선엽ㆍ이형근)ㆍ"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숨은 주역이다. 1950년, "육군참모총장(5대)" 재직 시, 국군 총사령관을 겸임하여 육ㆍ해ㆍ공군을 지휘하였으나, "국민방위군 사건ㆍ거창민간인 학살사건"으로 사퇴했다. 총리 재직 중, 자신의 아이를 낳은 "정인숙 암살사건"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빚자, 총리 직을 사퇴했다. 1970년, "공화당 총재" 상임고문을 지냈으며, 1971년부터 8ㆍ9ㆍ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73년부터 "국회의장"을 지냈고, 1980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장준하 (張俊河1918~1975ㆍ57)

김구 비서한국광복군민족청년단(이범석)활동국회의원(7)언론인(월간 사상계잡지 등불)교사(정주군 신안소학교)족주의자1공화국 공무원 (서기관문교부 국민정신계몽 담당관문교부 국민사상연구원 기획과장2공화국 공무원 (문교부 대학교육심의회 의원국토건설단 기획부장국토건설단장)통일당 최고위원3공화국 시절, 민주화운동 참가로 10여 차례 투옥ㆍ"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하던 중, 1975년 의문의 등산 사고(약사봉(경기도 포천군)에서 의문 추)로 사망

 문익환 (文益煥1918~1994.01.18ㆍ76세)

목사 (성서학자한국기독교장로회)한신대학교 교수통일운동가사회운동가 (7번의 옥고11년 간 감옥생활로 인한 고문후유증이 심했음)시인작사가ㆍ문재린 목사의 아들배우 문성근 (3남)의 아버지박용길 장로(부인)와 문동환 목사(동생)도 함께 민주화 운동에 헌신늦은 나이에 운동권에 참여하면서, 호를 "늦봄"이라고 지었고, 첫 사회 활동인 1976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당시 이미 58세였다. "장준하(친구이자, 사회운동가)"의 의문사를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이전까지는 미국 유학을 이후, "한신대 신학교수" 재직하던 전형적인 개신교 목사였다. "성서학자"로,  "이현주 목사(감리교)"와 함께, "공동번역성서 번역" "개신교 측 번역자" 참여했으며, 구약성서를 "다윗사무엘" 등의 영웅들에게 가려진 민중의 관점에서, 알기 쉽게 설명한 "히브리 민중사"(삼민사)를 저술하기도 했다.

 윤동주 (尹東柱ㆍ1917~1945ㆍ28세)

일제 강점기 후반, 양심적 지식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ㆍ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사촌이자 친구인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1990년대 후반, 창씨개명 "히라누마 도슈"가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본 유학에 뜻을 둔 그는 도일을 위해서 성을 "히라누마(平沼)"로 창씨 개명하게 되었다. 민족 저항 시인(활동1932~1945)작가간도 이주민 3세ㆍ국적 논란 : 1917, "북간도 명동촌" 1932 "만주국"에 편입되었으니, "북한"이라고 보면, 당시 국적은 "조선"이다. 그러나 사망시 국적은 공식적으로는 "대일본제국"이었다.

2. 용정촌 (龍井村)ㆍ룽징 (Longjing)

일제 강점기, "북간도" 일대는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토지(박경리 소설)"의 무대ㆍ"시인 윤동주"의 고향ㆍ영화 "아리랑"을 제작한 "나운규"가 다니던 "명동 학교"가 있던 곳이다.  "용정촌"에는 지금도 "서전서숙"을 세운 "이상설"의 이름을 딴 정자 "이상설정"이 서 있다.  "용정"에 있던 "서당(3개)"가 힘을 합해, 근대식 민족교육기관 "명동서숙(명동학교 전신)"을 세우는 주춧돌이 됐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 조선족 자치주(延边 朝鲜族 自治州)에 있는 도시"두만강"의 지류인 "해란강(海蘭江)"이 시내를 가로질러 흐른다. 문화유적 : 비암산의 일송정(一松亭)ㆍ윤동주 묘지ㆍ3ㆍ13 반일의사의 묘지, 한왕산고성(汗王山古城 )유적백두산 관광기지로도 큰 몫을 한다.

3. 명동촌 (明東村) : 용정의 이웃 마을로, 버스로 15분 거리

1910~1920년대, "중국 북간도" 일대의 대표적인 한인 촌락 "안중근 의사" "명동촌 선바위"에서 사격 연습을 했다고 한다. "명동학교" 졸업생은 99%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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