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근 (李亨根ㆍ1920~2002ㆍ82세)"은 대한민국 "군번 1번"이다. 국군 초기 창군 주역이자 원조(元祖)이며, 육군대장(2호)로 예편했다. (2번째 대장, 백선엽이 육군대장 1호ㆍ1954.02.14일 "정일권 장군"과 같이 진급) "이승만 정권" 시, "백선엽ㆍ정일권"과 "군 3대장 파벌" 구도를 형성했으며,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10대 미스터리"를 제기한 인물이다.
1. 이형근 (李亨根ㆍ마쓰야마 다케오ㆍ1920~2002ㆍ향년 82세)
일본군 포병 대위ㆍ외교관ㆍ정치가ㆍ초대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李應俊)"의 사위ㆍ대한민국 군번 1번 : 국군의 상징인 "군번 1번"인데, 당시 군번은 UN유엔군사령부에서 각국의 참모들의 의견들을 받아들여 엄격히 정해진 것으로, "최고 사령관의 1번"을 의미하였다. 문제는 그의 군번 "1번" 때문에, 자신이 "군번 1번"이 되고 싶었던 "채병덕"과 원수지간이 되기도 했다.
• 출 생 : 충남 공주군 • 호 : 청재 (靑哉) • 학 력 : 일본 육군사관학교 (56기)ㆍ일본 육군야전포병학교 → 군사영어학교 (1기) → 미국 육군보병학교ㆍ 미국 육군참모대학교
• 처 : 상산 이씨 (이응준(초대 육군참모총장)의 딸) • 자 녀 : 2남 4녀
• 가 족 : 장인 : 이응준 (李應俊ㆍ1891~1985) 초대 육군참모총장 / 처남 : 이창선(李昌善ㆍ1921~1996ㆍ육사2기ㆍ육군 대령) / 동생 : 이상근(李尙根ㆍ1922~1950ㆍ육사2기ㆍ한국전쟁 시 전사)
• 경 력 : 1946.05 : 조선 경비사관학교 교장 (초대) → 1954.02 : 합동참모총장 (초대) → 1956.06 : 육군참모총장 (9대) → 1961.06 : 재향군인회 회장ㆍ주영대사ㆍ주필리핀 특명전권대사

194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56기)"를 졸업하였고, "일본 육군야전포병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군 포병 대위"로 복무하다가, "태평양 전쟁" 종전을 맞았다. 1946.01.15일 "군사영어학교 (1기)"로, 대한민국 육군 사상 최초로 "대위"로 임관하였다. 임관 후, 그는 남조선국방경비대 제2연대장을 맡았다. 1946.05.01일에 초대 조선경비사관학교 교장을 맡았다. 1948.08월, 국군으로서는 최초로 "미국"에 건너가 군사시설을 시찰한 바 있다.
한국 전쟁이 발발직전인 1950.06.18일, 후방(대전)인 "육군 제2사단장"에 임명되었고, 부대 순시를 마치기도 전인 06.25일 8시에 전쟁 발발 소식을 접했다. "김백일 대령(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으로부터 "지금 적이 전면남침하고 있으니, 병력을 끌고 빨리 올라와 달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1951.09월, "초대 휴전회담 대표"로 참여하였고, 북진을 계속하던 1952.01월에는 "육군 제1군단장"을 맡았다. 유명한 "351고지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휴전당시 동부휴전선을 38선에서 북쪽으로 훨씬 밀어 올려둔 것도 그의 공이 컸다.
진급을 거듭한 끝에, 종전 후인 1954.02.14일 "정일권 장군"과 같이 "4성 장군"이 되었다. 초대 대장인 "백선엽 장군"의 뒤를 이어, 2번째의 "대장"이 된 셈이다. 1954.02월, "초대 합동참모총장", 1956.06월에 "육군참모총장(9대)"이 되었다가, 1958.05월에 스스로 물러났다. 1959.08.06일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제8대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장"으로서 예비역 군인들을 지도하였고, 1961.06월 "주 필리핀 특명전권대사ㆍ주영대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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