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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 • 현대사)/이승만 • 김구 • 박정희 • 정당62

사건- 1952.01 : 평화선ㆍ이승만 Lineㆍ맥아더 Line "평화선 (Peace Lineㆍ이승만 Line)"은 1952.01.18일, "이승만"이 대통령령 "대한민국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의 선언"을 공표함으로써 설정된, 대한민국과 주변 국가 간의 수역 구분ㆍ자원ㆍ주권 보호를 위한 "해양 경계선"이다. 1. 평화선 (平和線ㆍPeace LineㆍSyngman Rhee Line)"한반도" 주변 수역 "50~ 100해리(93~ 185km)"의 범위를 가지고 있다. (현재, 12해리 (22km)) 이 경계선은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포함하고 있다.1952.01.18일,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령 "대한민국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의 선언"을 공표함으로써 설정된, 대한민국과 주변 국가 간의 수역 구분ㆍ자원ㆍ주권 보호를 위한 "해양 경계선"이다. 이.. 2022. 9. 22.
사건- 1925.03 : 이승만 탄핵 (임정 대통령) 1925.03.18일, "이승만 (李承晩ㆍ1875~1965ㆍ90세)"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탄핵 의결"로 대통령 직에서 면직되었다. 1921년, "UN에 위임통치를 청원한 사건"을 계기로, 임정 내 일부 독립 운동가들과 내부 대립ㆍ갈등하게 되었다. 1. 1925.03.18일 :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 탄핵 가결"이승만"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 됐고, 2~ 4기까지 유임했다. 유임하게 된 것은 "자유시 참변" 등으로 인해, "임시정부"내 공산진영이 이탈하면서 "이승만" 이외에는 대통령을 맡을만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했다.하지만 "이승만"의 독선적인 정부 운영과 무대책으로 실망한 "임시정부 국무위원ㆍ의정원 의원들"은 지도체제를 "대통령 중심제"에서 "국무위원 중심제(의원 내각제)"로 바꾸는 .. 2022. 9. 22.
이승만 ⑤ 정읍 (井邑) 발언ㆍ정치성향 "이승만 (李承晩ㆍ1875~1965ㆍ90세)"의 정치성향을 여실히 드러내었던 발언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인 1946.06.03일에 "전북 정읍"에서 "남측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이승만"은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조직해, 38선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에 호소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던 선언이다.1. 정읍 발언 (井邑發言)미군정기, "이승만"이 각지를 순회하는 도중, 1946.06.03일에 "전북 정읍"에서 "남측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을 말한다. 이는 향후 "이승만의 정치성향"을 여실히 드러내었던 발언이었다. (전문 참조)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공위가 재개될.. 2022. 9. 22.
이승만 ④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누가 처음 한 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이승만 (李承晩ㆍ1875~1965ㆍ90세)"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러나 이 말은 1776년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ㆍ1706~1790ㆍ전기 발견ㆍ피뢰침 발명)"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1.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이승만(초대 대통령)"의 명언으로 알려져, 정치적인 구호로 많이 사용했다.• 1945.10월, "여의도 비행장" 또는 방송에서, 이 정치적 구호를 사용했다고 한다. 해방된 지 2개월 만인 1945.10.16일, "이승만"은 미국에서 "여의도 비행장"으로 귀국했다. 1945.10.17일 저녁 8:30, "서울 중앙방송국"의 전.. 2022. 9. 22.
이승만 ③ 통치술ㆍ논란ㆍ 의혹ㆍ평가ㆍ비판 "이승만 (李承晩ㆍ1875~1965ㆍ90세)"은 "제주 4ㆍ3사건ㆍ여순사건"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대규모 양민학살ㆍ한국전쟁 중 벌어진 보도연맹 학살사건과 대한민국 국군에 의해 벌어진 "제노사이드 범죄 (Genocideㆍ집단학살)"에 이승만 대통령의 책임이 제기된다. 1. 통치술① 친일 경찰의 활용"제주 4ㆍ3사건ㆍ여순사건ㆍ반민특위 습격사건ㆍ장면 부통령 암살 사건" 등의 배후에는 친일 경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노덕술ㆍ이구범ㆍ최운하" 등은 일제 강점기부터 고문을 잘해서, 출세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반공"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공포를 심었다. 당시에는 "친일행위 청산"을 주장하면, "빨갱이"로 몰리기 쉬웠다고 한다. 이승만도 "친일파 청산 주장은 공산당과 연관성이 긴밀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 제노.. 2022. 9. 22.
이승만 ② 가족ㆍ여자 (본부인)ㆍ친아들ㆍ성격 (7전8기) 이승만은 당시의 조혼 풍습에 따라 16세 되던 해인 1891년, 우수현 근처에 살던 "박승선(박춘겸의 딸)"과 혼인했다. 1899년, 옥중에서 아들 "봉수(鳳秀ㆍ아명- 태산(泰山))를" 얻었다. "이승만 (李承晩ㆍ1875~1965ㆍ90세)"은 1931년, "미국 워싱턴"에서 이승만은 자신의 측근이며, "임영신"의 기전학교 은사인 "이순길"을 통해, "임영신 (任永信ㆍ중앙대 설립자ㆍ미국 내 참모)"에게 청혼할뜻을 밝혔으나,거절당하였다. 아내가 될 것인가, 동지로 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던 "임영신"은 단독으로 이승만을 만나, 거절하였다. 1. 가족 관계ㆍ여자 문제일반적으로 "여자문제"는 깨끗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프란체스카"와 결혼한 것에 만족해했다.② 양자본부인 "박승선 (朴承善ㆍ1876~19.. 2022. 9. 22.
이승만 ① 초대 대통령 (1875~1965ㆍ 89세) "이승만 (李承晩ㆍ1875~1965ㆍ90세ㆍ호: 우남(雩南))"은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주석을 거쳐, 제1ㆍ2ㆍ3대 대통령으로 재임하였다. "황해도 평산군"에서 "양녕대군"의 방계 16대손으로, "독립신문ㆍ협성회회보" 주필, "독립협회" 활동 등 계몽운동을 하였고, "왕정 폐지ㆍ공화국 수립을 도모하였다"는 "반역의 죄목"으로 "한성감옥"에 투옥되었다.1. 이승만 (李承晩ㆍ1875~ 1965.07.19ㆍ향년 90세) : 제 1ㆍ2ㆍ3대 대통령• 출생 : 조선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대경리 능내동 • 사망 : 미국 하와이 주 호놀룰루 마우타네리아 요양원→ 국립묘지(가족장) • 본관 : 전주 (15대조 - 양녕대군 (태종 1째) 5남(서2남)인 "장평도정 이흔".. 2022. 9. 22.
김구 (백범) ⑤ 치하포 살인 사건 (1896.02) "치하포 (鵄河浦) 살인 사건"은 1896.03.09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의 한 주막에서 조선 청년 "김구"가 일본인 상인 "쓰치다 조스케 (土田譲亮)"를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끝내 살해한 뒤, 재물을 탈취한 사건이다. 사건 직후 "김구"는 피신했지만 6월 말,"해주부"에서 체포, "인천 감리서"에 구속된 상태로 심문을 받다가, 1898년 탈옥 후 재수감, 1899년 석방되었다. 1. 치하포 사건ㆍ수감 생활 (1896.02)"김구 (金九ㆍ1876~1949.06.26ㆍ향년 72세)"는 19세였던 1896.02월 "청나라"로 향했다가, "단발정지령" 시행과 "삼남 의병봉기" 소식을 듣고 1896.03.09일, "평안북도 안주"에서 길을 돌려 고향으로 귀환하던 중, "황해도 치하포"에서 "진남포"로 가는.. 2022. 9. 21.
김구 (백범) ④ 임정봉대론ㆍ임정법통론 "임정봉대론(臨政奉戴論)ㆍ임정법통론(臨政法統論)"이라는 것은, 해방 직후, "충칭(중경) 임시정부가 유일한 정권 수임기관이 되어야한다"는 논리로, "한민당계 및 임정계열 인사들"이 추진한 운동이다. 1. 임정봉대론 (臨政奉戴論)해방 직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를 제의받자, "송진우"는 "총독부"가 연합군에게 정권을 인도하기를 기다리고, "중경 임시정부"를 정통으로 환영 추대할 것을 주장하였다."송진우"는 "38선 이남"에 대한 미군의 진주가 알려진 직후인, 1945.09.01일 "임시정부 및 연합군 환영 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임정봉대"를 주장하였다.당시 국내 정치세력은 "인민공화국(좌파)ㆍ독립촉성중앙협의회(이승만)ㆍ한민당" 등이 있었으나, "김구 ㆍ임정세력"은 환국과 함께, "조소앙".. 2022. 9. 21.
김구 (백범) ③ 부인ㆍ자녀ㆍ손자ㆍ사돈 "김두봉 (金枓奉ㆍ1889~ 1961ㆍ1963(?), 향년 71ㆍ73세(?))"은 "백범 김구"의 부인(최준례)가 사망하자, 친히 정성껏 그녀의 묘비명을 대가 없이 지어주었다. 최준례의 묘비명은 숫자나 한자(漢字)를 쓰지 않고, 순 한글로 묘비명을 써서 화제가 되었다. 비문은 "ㄹㄴㄴㄴ해 ㄷ달 ㅊㅈ날 남, 대한민국 ㅂ해 ㄱ달 죽음"으로 "순 한글체"였다. 1. 김구 (金九ㆍ1876~1949.06.26ㆍ향년 72세) : 2남 3녀 (딸 3명은 조졸)독립운동가ㆍ통일운동가ㆍ교육자ㆍ종교인(승려)ㆍ주석ㆍ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ㆍ최고액 현상금이 걸렸던 인물ㆍ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가ㆍ당시 현상금 60만원(현 200억 원)ㆍ약산 김원봉 100만원(현 333억 원)• 모 : 곽낙원 (郭樂園ㆍ1858~19.. 2022. 9. 21.
김구 (백범) ② 안중근과 사돈지간ㆍ생애 "김구 (金九ㆍ김창수ㆍ1876~1949.06.26.ㆍ72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상하이(上海)"로 망명,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였고, "신민회ㆍ한인애국단" 등에서 활동하였다. 1926.12~1927ㆍ1930~1933년까지 "임시정부 국무령"을, 이후 "국무위원ㆍ내무장ㆍ재무장" 등을 거쳐 1940.03~1947.03까지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을 지냈다. 1. 김구ㆍ안중근의 가문은 "사돈지간"① 안우생 (安偶生): 안공근의 아들 (안중근 2째 동생)ㆍ김구의 영문비서ㆍ김구가 암살 후 홍콩망명② 안미생 (安美生): 안정근 의 딸 (안중근 1째 동생)ㆍ김구의 비서ㆍ김구의 1째 "김인"과 결혼③ 안공근 (安恭根ㆍ요한ㆍ1889~1940?ㆍ50세)ㆍ안중근 2째 동생ㆍ한인애국단 단장6개 국어에 능통했.. 2022. 9. 21.
김구 (백범) ① 주석ㆍ국무령 (1876~1949ㆍ72세) "김구 (金九ㆍ김창수ㆍ1876~1949.06.26.ㆍ72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대일 의열단체 "한인애국단"을 이끌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하였다. 양반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실패, 이후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였고, 한때 "불교 승려"로도 활동했다. 1. 김구 (金九ㆍ김창수ㆍ1876~1949.06.26ㆍ향년 72세) 독립운동가ㆍ통일운동가ㆍ교육자ㆍ종교인(승려)ㆍ주석ㆍ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ㆍ최고액 현상금이 걸렸던 인물ㆍ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가ㆍ당시 현상금 60만원(현 200억 원)ㆍ약산 김원봉 100만원(현 333억 원) • 조선(1876~1897)→ 대한제국(1897~1910)→ 중화민국(1919~1945)→ 대한민국(1948)• 출 생 : 황해도..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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