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기 (洪璡基ㆍ1917~1986ㆍ69세)"는 조선총독부 판사출신으로, 1959년 "법무부장관"에 재직 시, "조봉암의 사형 명령"에 서명함으로써, 바로 다음날 형장의 이슬로 보냈다. 1960년 "내무부장관" 시절, "4ㆍ19 혁명시위자"들을 향해, 발포명령을 내린 인물이기도 하다. 중앙일보사 회장이며,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인이기도 하다. (李健煕ㆍ1942~2020ㆍ78세ㆍ이병철(李秉喆ㆍ1910~1987ㆍ77세) 삼성 창업주 아들ㆍ1967년 결혼- 홍라희(洪羅喜ㆍ1945~ ㆍ라희(羅喜) = 전라도에서 얻은 기쁨))
1. 홍진기 (洪璡基ㆍ도쿠야마 신이치(德山進一)ㆍ1917~1986ㆍ향년 69세)
조선총독부 판사ㆍ관료(법무부장관ㆍ내무부 장관)ㆍ법조인ㆍ언론인( 중앙일보사 회장ㆍ동양방송 회장)ㆍ"4.19혁명" 뒤, "민주당 정권"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그 뒤 석방되었고, 또 "이병철"과 친분으로 사돈을 맺게 되고, "중앙일보 사장"을 역임했다.
장인 "김신석(총독부 중추원 참의ㆍ1936~1945)"의 딸 "김윤남(金允楠ㆍ1924~2013ㆍ89세)과 결혼ㆍ장인 "김신석(총독부 중추원 참의ㆍ1936~1945)"의 딸 "김윤남(1924~2013)과 결혼ㆍ"김신석"은 1944년, "경성일보"에 "조선의 부형들은 어린 딸을 여자 정신대로 안심하고 보내라"고 기고한다.
• 출 생 :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 호 : 유민 (維民) • 학 력 : 194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졸업→ 1940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
• 처 : 김윤남 (1924~2013ㆍ총독부 중추원 참의 역임한 김신석의 딸) • 자 녀 : 4남 2녀
• 수 상 : 1970-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 1986-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 경 력 : 1940.04월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수로 근무ㆍ10월 :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 → 1942.03월 : "조선 총독부 사법관시보 (일제 때, 조선총독부 판사) "로 "경성지방법원 및 검사국"에서 1년 6개월 간 근무 → 1943.12월 : "전주지방법원" 예비판사 → 1944.09월 : "전주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되어, 해방 때까지 재직
1954~1955 : 법무부 차관 (제7대) → 1955~1958 : 해무청장 (제2대) → 1958~1960 : 법무부 장관 (제9대) → 1960~1960 : 내무부 장관 (제19대, 4ㆍ19혁명 때, 최인규 후임) → 1964~1968 : 중앙라디오방송주식회사 사장 → 1968~1971 : 중앙일보사 대표이사 사장 → 1971~1974 : 주식회사 동양방송 대표이사 → 1974~1980 : 중앙일보ㆍ동양방송주식회사 사장 → 1980~1986 :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2대)ㆍ중앙일보사 회장
당시 "천재"라 불렸으며, "일제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문은 일본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940년,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최종 합격하였음에도, 임용 원서를 내지 않고 2년 동안 계속 모교 조수 직에 있으면서 계속 교수의 꿈을 키웠다. 특히 1942년 쓴 논문 "주식회사의 합병에서의 교부금"이 경성제국대학 "법학회논집 (제13책 1호)"에 게재되면서 꿈이 이뤄지는 듯 했다. 다른 논문은 모두 "경성제대 법학과"의 쟁쟁한 교수들이 쓴 것이었고, 교수가 아닌 저자는 그가 유일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개전 후, "전시동원체제"로 돌입하며, "법문계 고등교육기관"을 축소시키던 일본제국에서 "법문학부 조수"를 감원하고 조선인을 추가 임용하지 않는 등 여러 사정에 부딪혀 부득이 꿈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꿈인 "교수"가 될 수 없었고, 이후 "전주"에서 "판사"를 역임하였다.
광복 후 1945.09월 "미군정청 법제부 법제관", 10월 "법제부 사법요원양성소 교수"를 거쳐, 1946.10월 "사법부 법률조사국 법무관"이 되었다. 1948.11월, "법무부 조사국장"으로 "대한민국 법전편찬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49.06월, "법무부 조사국장 겸 대검찰청" 검사, 1950.04월 "법무부 법무국장 겸 대검찰청" 검사에 임명되었다. "한일회담"이 전개되었던 1951~1953년까지 한국 측 대표 "재산청구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54.02월 "법무부" 차관, 1955.10월 제2대 "해무청장"으로 취임했으며, 1958.02월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해방 이후, 미국ㆍ일본의 주도로 진행되던" 대일강화조약"에서 "조약이 한국에 불리하다"고 파악하여 정부를 설득 "대일강화회의 준비 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하였다. 이후 "구보타 망언 사건"에서도 한국 측 대표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반박하여, "미일조약"에 한국 내에 있는 귀속재산의 처리와 일본에 있는 한국 국민에 대한 인권 등에 대해 명시될 수 있도록 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미ㆍ일간 협약"에서 "일본" 측으로 귀속되는 상황이 오자, 이에 대한 "국제법 논리"로 대처하였으며, 이후 "독도"에 접안시설과 태극기 계양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1960.03월,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재직 중, "4ㆍ19혁명"을 맞았으며, "4ㆍ19혁명"을 "공산당의 사주에 의한 사건"으로 모는 등, "이승만 독재정권" 부역 행위와 "3ㆍ15 부정선거 및 4ㆍ19혁명 발포명령의 책임자"로 체포되었다. 1961.12월 "혁명재판소 상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63.08월 석방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했던 경력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2. 가문ㆍ자녀 (4남 2녀)
① 1 녀 : 홍라희 (1945~ )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 사위1 : 이건희 (1942~2020) 삼성전자 회장 / 외손자 : 이재용 (1968~ ) 삼성전자 회장 / 외손녀 : 이부진 (1970~ ) 호텔신라 사장ㆍ삼성애버랜드 사장ㆍ삼성물산 고문 / 외손녀 : 이서현 (1973~ ) 제일모직ㆍ제일기획 부사장ㆍ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 위원
② 1 남 : 홍석현 (1949~ ) 중앙일보 회장 / 손 자 : 홍정도 (1977~ ) JTBC 사장
③ 2 남 : 홍석조 (1953~ ) 보광훼미리마트 사장ㆍ전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 손 자 : 홍정국 (1982~ )
④ 3 남 : 홍석준 (1954~2011) 삼성SDI 부사장
⑤ 4 남 : 홍석규 (1956~ ) 보광 대표이사
⑥ 2 녀 : 홍라영 (1959~ ) 삼성문화재단 상무 / 사위2 : 노철수 (1956~ ) 애미커스 회장ㆍ부친- 노신영 국무총리
3. 홍석현 (洪錫炫ㆍ1949~) : 중앙일보 회장
경기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산업공학 석사ㆍ경제학 박사ㆍ아내 : 신연균 (申硯均) 신직수의 딸ㆍ장남 : 홍정도(洪正道ㆍ1977~ )
• 2005.02월 : 주미 대사로, 사건과 관련된 논란으로, "주미대사 직"을 중도에 사퇴 → 2006.12.27 : "중앙일보 회장"으로 복귀 → 2007년 현재 : "중앙일보" 지분의 43.79%를 소유하고 있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가 지주회사가 된 이후에는 "중앙일보" 지분이 29.40%으로 줄었다.
① 탈세 사건
1999.06.29일, "보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가 있었고 → 그 후 10.02일 "홍석현"은 "특가법상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다. 1심에서는 징역 3년ㆍ집행유예 5년ㆍ벌금 38억 원을 선고받았고 → 2000.05.26일, 대법원에서 징역 3년ㆍ집행유예 4년ㆍ벌금 30억 원 판결을 받았는데 → 2000.08.15일, 광복절특사로 사면 복권된다. 보름 후, "중앙일보 회장"으로 복귀한다.
1999.09.30일, 검찰 조사를 받으러 대검찰청에 도착할 때, "중앙일보 기자" 40여명이 도열하여, "홍 사장, 힘내세요"라고 외친 일은 기자와 언론 사주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로 남았다.
② 보광그룹
"홍진기 회장이 "중앙일보"와 함께, TV 브라운관 생산을 위해, 자본금 20억 원으로 설립한 "(주)보광"이 그 모태다. 이후 유통ㆍ종합레저ㆍ전자ㆍ광고대행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독립적인 기업 집단으로 성장했다. 현재, 그의 자녀들이 "그룹 내 주력 계열사"의 경영권을 이어 받은 상태다.
1983년,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이 설립한 "TV 브라운관 부품업체"를 모기업으로 출발하여 → 1989년, "훼미리 마트"로 편의점사업 진출 → 1990년, "휘닉스 파크" 설립, 1994년 "비바 백화점" 인수 등 사업영역을 확장해 왔다. 1999년,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되었다
③ 장인 : 신직수 (申稙秀ㆍ1927~2001ㆍ74세) 검찰총장(11대)ㆍ법무부 장관(22대)ㆍ중앙정보부장(7대)
1963.07월부터, "중앙정보부"의 2인자인 중정차장(5개월)ㆍ검찰총장(7년6개월)ㆍ법무부장관(2년6개월)ㆍ중앙정보부장(3년) 등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잇따라 지낸, "박정희 대통령"의 심복 중의 심복이었다. "법무부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만들어 종신독재를 시작했고, 그가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유신 폭압정치"는 극에 달했다. 그가 가장 총애한 검사 중 한사람이 바로 "김기춘 비서실장 (金淇春ㆍ1939~ ㆍ검찰총장ㆍ법무부 장관ㆍ3선 국회의원(15ㆍ16ㆍ17대)"으로, "유신독재헌법"을 만들 때, 검사로 파견돼 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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