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商ㆍ은(殷)ㆍBC 1765~1066)"나라는 현재 유적이나, "사료(은허 유적지)"에 의해,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중국 최초의 왕조로, "은허"는 "안동현 소둔촌"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곳은 "은 왕조"를 중흥시킨 "반경"이 이곳으로 도읍을 옮긴 후, "은"이 멸망할 때까지 200여 년 간 "수도"로 삼았던 곳이다. "구갑(거북 껍질)"과 "수골(길짐승의 뼈)"에 새겨진 글자를 비롯해, 당시의 문화를 나타내는 유적,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은허"가 발굴되기 전까지는 "사기"에 기록된 "은 왕조"의 역사 등이 모두 가공적인 것이라 여겼다.
1. 하 (夏): BC 2207~1766 ① 고조선 : BC 2333~ AD 108
전설에 의하면, "상고"의 "3황5제(三皇五帝)"의 평화시대를 거쳐, "하(夏)ㆍ상(商)ㆍ주(周)"의 3대(三代)가 계속되었다고 하며, 세 왕조가 잇달아 중국 본토를 지배하였다고 하나, "하 왕조"는 고전에만 기록되어 있을 뿐, 전설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 왕조 계보 (400여 년) : 우(禹)→ 계(啓)→ 태강(太康)→ 중강(中康)→ 상(相)→ 소강(少康)→ 저→ 괴(槐)→ 망(芒)→ 설(泄)→ 불항(不降)→ 경→ 근→ 공갑(孔甲)→ 고(皐)→ 발(發)→ 걸(桀)
2. 상 (商ㆍ은(殷)): BC 1765~1066
"사기"의 저자인 "사마 천(司馬遷, BC 145?~ 86?)"의 시대로부터, 천 수백 년 전의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사기"에는 30왕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으며, "은허"에서 출토된 "복사(점쟁이가 쓴 점의 기록)"에 기록된 왕의 대조해 볼 때, 몇 사람의 이름과 계통이 다를 뿐, 기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기"의 신빙성을 재인식시키고, 가치를 보다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시조는 "설"로서, 그의 어머니 "유융 씨"의 딸 "간적"이다. "간적"은 어느 날 3명의 친구와 강에서 목욕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제비가 날아오더니, 알을 떨어뜨리고 가 버렸고, "간적"은 무심코 알을 집어 깨어 먹었는데, 잉태하여 "설"을 낳았다.
"설"은 "우(禹)"를 도와, 치수공사에도 많은 공을 세웠으며, 그의 14대손 "천을(天乙)"이 덕이 높기로 이름 높은 "은"의 "탕왕"이다.
3. 주 (周): BC 1066~221 → 춘추 전국(春秋 戰國ㆍBC 770~221) 분열시대
• 서주 (西周): BC 1066~771 • 동주 (東周): BC 770~256
• 춘추 (春秋): BC 770~476 → 춘추오패 (5ㆍ진(晋)포함)
• 전국 (戰國): BC 475~221 → 전국칠웅 (7ㆍ진(秦)포함)→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활동시기
4. 진 (秦): BC 221~206 → "진시황제"에 의한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 "군현제" 실시로 중앙집권적 "전제정치" 확립 (중앙정부에서 임명한 관리가 통제) • "흉노" 토벌 : 만리장성 축조
• 법가사상 채택ㆍ도량형ㆍ문자ㆍ화폐 통일 • 분서갱유(焚書坑儒: BC 213~206?): "진나라 시황제"가 실시한 사상ㆍ언론 통제정책
• 분서 : "농서" 등을 제외한 각종 서적들(대나무로 만든 기록수단인 죽간)을 불태운 것ㆍ당시 "유학자"들이 "주"의 "봉건제도"를 지지하고, "진나라"의 "군현 정치"를 반대하자, "이설(異說)"을 탄압하기 위하여, BC 213년 "박사관(博士官) 소장의 서적ㆍ의(醫)ㆍ약(藥) ㆍ복서(卜筮)ㆍ농업 서적 이외의 민간 소장의 서적들을 모두 불태웠다.
• 갱유 : "분서"가 있은 다음 해, "진나라"의 정치를 비판한 유학자 460여 명을 구덩이에 묻었다고 하는데, "갱유"에 대해서는 후세 유학자가 꾸며낸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 중국 역사상 최초로 전국을 통일한 "시황제(始皇帝)"는 난폭하고 잔인하며 성격적인 결점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중국 역사상 뛰어난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기나긴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했기 때문이다. 무려 550년 동안이나 지속된 전쟁ㆍ올바른 통치자보다는 지긋지긋한 전쟁을 마무리하는 인물이라면 누구든 환영했을 것이다.
• "시황제"가 세운 대제국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지만, 그가 죽는 순간부터 기울기 시작했다. 천하가 통일된 지 불과 10여 년이 된 시점이었다. 간신의 대명사가 된 "법가"의 대가 "이사(李斯)", 환관 "조고(趙高)" 등의 힘을 빌려, 장남인 "태자 부소(扶蘇)"를 제거하고, 대신 차지한 막내아들 "호해(胡亥)"는 통치력이 결여된 인물이었다.
혼란이 시작되자, "진승(陳勝)"이라는 호걸을 필두로 패권을 노리는 인물들이 줄줄이 궐기했다. 산발적인 봉기가 점차 정리되면서, "유방ㆍ항우"는 천하의 패권을 두고 마지막 승부를 벌이게 되었다. (진승(? ~ BC 209)은 "진(秦)나라"의 반란 주모자로, 중국 최초의 농민 반란인 "진승ㆍ오광의 난"을 일으켜, "진나라"에 맞서 "장초(張楚)"를 세우고, 왕이 되어 "진나라"를 압박했으나, "장한"이 거느린 "진나라 토벌군"에 공격받아 전쟁에 패해서 죽었다. 후에, "한나라 유방"이 "진승"에게 "은왕(隱王)"이라는 시호를 내려주었다.)
5. 한 (漢ㆍ전한(前漢)): BC 206~220 ② 삼국시대 : BC 57~935
• 전한(前漢)ㆍ서한(西漢): BC 206~ AD 8 • 고구려 : BC 37~ 668 • 백 제 : BC 18~ 660
• 후한(後漢)ㆍ동한(東漢): AD 25~ 220 • 신 라 : BC 57~ 935 (992년간)
① 전한 (前漢ㆍ서한(西漢))
• 평민출신 "유방"이 호족출신 "항우"를 무찌르고, "장안(시안)"을 도읍으로 건국
※ 여태후ㆍ여후 (전한시대ㆍ폐후 여씨(廢后 呂氏)ㆍ여치ㆍBC 241~180ㆍ향년 61세) : 전한 황후, 전한 "고조(유방- 한고조)"의 황후, 전한 "혜제"의 어머니이다. 중국사상 최초 정식 황후, 중국 최초 "황태후"이자 "태황태후"이다. 남편인 "고조(유방)"의 사후, "황태후ㆍ태황태후"가 되어, "여후ㆍ여태후" 등으로 불린다. "중국 삼대 악녀"로 "당의 측천무후ㆍ청의 서태후"와 동급으로 취급한다.
② 후한 (後漢ㆍ동한(東漢))
• "한"의 외척 "왕망"이 건국한 "신"을 멸망시키고, "광무제"가 건국
• "광무제"의 중흥정치, "한말"에는 환관ㆍ외척의 횡포와 당쟁이 심했으며, 호족의 대토지 사유화에 따른 농민의 몰락→ 황건적의 난 • 문화 : 유교의 국교화(무제 때) • 역사 : 사마천 사기, 반고 한서 • 훈고학(訓誥學)의 발달 : "분서"로 인해 흩어진 "경전"을 모아 복원, 고서에 "주석"을 달아 읽기 쉽게 함.
6. 삼국 (三國): 220~280
• 위(魏): 220~ 265 (45년간) → 조조ㆍ조비(조조의 3째 아들, 서자) (조위(曹魏)국)
• 촉(蜀): 221~ 263 (42년간) → 유비ㆍ관우ㆍ장비ㆍ제갈량ㆍ유선(유비의 아들)
• 오(吳): 222~ 280 (62년간) → 손견ㆍ손책ㆍ손권
7. 진 (晋ㆍ서진(西晋)) 16국(十六國): 265~439
• 서진(西晋) : 265~ 316 / 동진(東晋) : 317~ 420 → "사마예(진의 왕족)"이 "양쯔강 이남"으로 이주해 건국 / 16국(十六國): 304~ 439 → 5호(흉노ㆍ선비ㆍ저ㆍ갈ㆍ강)
• 진(서진) : "사마염(제갈량과 결전을 벌인 사마의의 손자)"가 "조환"에게서 "위"의 제위를 탈취 : 조조(위 태조)→ 조비(220~226)→ 조예(~239)→ 조방(~254)→ 조모(~260)→ 조환(~265)
사마소(부)ㆍ사마의(조부, 중달)ㆍ사마사(백부)
8. 남북조 (南北朝): 386~589
• 북조(北朝): 386~ 581 : 북위(北魏ㆍ386~534) → 동위(東魏ㆍ534~550) → 서위(西魏ㆍ535~557) → 북제(北齊ㆍ550~577) → 북주(北周ㆍ557~ 581)
• 남조(南朝): 420~ 589 : 송(宋ㆍ420~479) → 제(齊ㆍ479~502) → 양(梁ㆍ502~557) → 진(陳ㆍ557~589)
9. 수 (隋): 581~618
• 무리한 토목 공사, "고구려 원정" 실패로 30년 만에 망함
• "중국 남북조 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서진"이 멸망한 후, 분열했던 중국을 약 300년 만에 재통일한 국가로, "양제(2대 황제)" 때, 폭정으로 말미암아 약간의 혼란기를 거치고서 멸망하였다. 그 후 "당나라"가 중국을 재통일하였다.
10. 당 (唐): 618~907 ③ 발 해 : 698~926
• 태종 이세민(당의 실질 건국자, 2대 왕)의 "정관"의 치세는 후세에까지 훌륭한 정치의 귀감이 됨.
• 개원(開元, 현종의 개원년): 현종은 며느리로 책립했던 양귀비의 출현과 함께 총명이 흐려지기 시작, 양귀비에게 빠진 그는 결국 자신의 귀비로 삼았으며, 안록산의 반란으로 756년에 사망.
• 문학비교 (당ㆍ송) : 당 : 시와 부(문장)는 과거시험의 중요한 과목이었기에 발달ㆍ당의 문학 대표자(이백ㆍ두보ㆍ백거이), 서정적(抒情的)임 / 송 : 서민 문학 발달, 산문적 경향이 강했고, 시인 대부분이 정치가여서 역사인식이 많이 배어 있음ㆍ시보다 문장이 발달 (구양 수ㆍ소식ㆍ소철), 사(詞)- 악곡에 붙여 부르는 장편 시
※ 측천무후 (당나라ㆍ則天武后ㆍ무측천(武則天)ㆍ624?~705ㆍ향년 81세) : 당나라 "고종 이치"의 황후ㆍ"무주(武周)"의 초대 황제(당나라 7대 황제)"ㆍ최초의 "여성 태상황"ㆍ중국 역사에 나타난 2번째 여성 군주ㆍ음탕하고 간악하여, "황위"를 찬탈한 "요녀(妖女)"라는 비난과 민생을 보살펴서 나라를 훌륭히 다스린 "여걸(女傑)"이라는 칭송을 같이 받고 있다.
11. 오대십국(五代十國): 907~979 ④ 고 려 : 918~1392
• 십국(十國): 902~ 979 : 오(吳ㆍ902~937)→ 남당(南唐ㆍ937~975) / 전촉(前蜀ㆍ907~925)→ 후촉(後蜀ㆍ934~965) / 오월(吳越ㆍ907~978) / 민(閩ㆍ909~945) / 형남(荊南ㆍ907~963) / 초(楚ㆍ907~951) / 남한(南漢ㆍ909~971) / 북한(北漢ㆍ951~979)
• 오대십국 (五代) : 후량(后梁ㆍ907~ 923) → 후당(后唐ㆍ923~ 937) → 후진(后晉ㆍ936~ 947)→ 후한(后漢ㆍ947~ 951) → 후주(后周ㆍ951~ 960)
• "당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송나라"가 십국을 통일한 979년까지,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화북"을 통치했던 5개의 왕조(5대)와 "화중ㆍ화남ㆍ화북의 일부"를 지배했던 여러 지방정권(10국)이 흥망을 거듭한 정치적 격변기
12. 요 (遼): 916~1125 : "거란족" 왕조
• "거란족 야율아보기"가 "중국 북부ㆍ몽골" 지역에 세운 왕조
• "몽골ㆍ둥베이ㆍ화베이" 일부를 차지하고, 10~11 C경에 동아시아 최강국의 위세를 자랑했다.
13. 송 (宋): 960~1279
• 북송(北宋): 960~ 1127 / 남송(南宋): 1127~ 1279
• 1127년 "금나라" 확장에 밀려, "장강" 이남으로 옮기기 전을 "북송", 이후 "임안(항저우)"로 도읍을 옮긴 게 "남송"이다.
• 멸망 원인 : 요ㆍ서하ㆍ금의 침입
• 960년 "조광윤(후주(後周)의 근위군 대장)"이 "오대십국" 시대의 "오대" 최후의 왕조 "후주(後周)" 최후의 황제로부터 선양 받아, "개봉(카이펑)"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웠다. "춘추시대 송ㆍ남북조 시대 송"을 구별하고자, 황실의 성씨를 따라 "조송(趙宋)"이라고도 부른다.
14. 서하 (西夏) : 1038~1227 : "탕구트 족(티베트의 분파)" 왕조
• "탕구트" 유목민들이 "간쑤 성ㆍ알라샨ㆍ오르도스"에 세운 나라ㆍ"탕구트 인"들은 "티베트 종족"에 속하였으며, 국교는 불교였고, 중국의 영향으로 문화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되어 있었으며, 한자에서 파생된 문자인 "서하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
• "탕구트 족" 중심 세력이자, "탁발 씨(拓跋 氏)"의 후예였던 "탕구트 족장 이계천(李繼遷)"의 직계 후손 "조원호"가 "송나라" 황실 귀족 세력의 포소(包所)를 배탈(背脫)한 직후, "이원호"로 개 성명(改 姓名)하여 창건하였고, 1227년 "툴루이"가 이끄는 "몽골군"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전성기에 북으로는 "고비 사막", 남으로는 "난주", 동으로는 "황허", 서로는 "옥문"에 이르는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15. 금 (金): 1115~1234 : "여진족" 왕조
• "여진족 완안부"의 "아골타"가 건국
• "금"은 "북송"을 멸망시켰고, "여진"의 공세를 피하기에 급급하였던 "남송의 "고종"은 1141년에 "금"에 보낸 "서표(誓表)"에서 자신의 이름 "구(構)"를 직접 사용하면서 신하를 자칭하고, 폐읍(弊邑)인 "송"이 상국인 "금"에 회하 이북의 땅을 할양하고, 황제의 생일과 신년을 하례하는 사절을 보내며, "세공(歲貢)"으로 매년 "은(銀) 25만량ㆍ비단 25만 필"을 보낼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16. 원 (元): 1279~1368 : "몽골 제국"의 국가
• "손자 쿠빌라이"가 "원"을 세운 후, "칭기즈칸"을 "태조"로 추증
• 13C 중반~ 14C 중반까지 "몽골 제국"이 중원을 지배하고 통치한 시기를 말한다. "몽골족"의 "원나라"는 "중국 대륙ㆍ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한 영역을 지배하다가, "명나라"를 건국하는 "주원장(朱元璋)"에게 쫓겨, 북쪽으로 이전한 뒤 "북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 "원"은 "송나라"를 멸망시킨 "이민족의 정복 국가"이며,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한족"을 유린하였다. "몽골인"에 의한 "한족들"의 "초야권 수탈"이 시작된 시기이도 하다.
17. 명 (明): 1368~1644: "한족" 왕조 ⑤ 조 선 : 1392~ 1910
• "주원장(朱元璋)"이 "원나라"를 몰아내고 세운 "한족 왕조"이다.
• "청나라"의 거듭되는 침략과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ㆍ"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복한 후, "명나라의 주원장" 후손들은 모두 노예가 되거나 죽음을 당하였고 "명나라" 궁실 귀족 여성들은 전부 기생이 되었다. "명나라"를 받들던 지방의 "한족(漢族)귀족들"도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각 지방의 행성들은 "만주족 귀족들"로 대체되었다.
18. 청(淸): 1635~1911 ⑥ 한일합방 : 1910.08.29~ 1945.08.15
• "만주(여진족의 후신)ㆍ여진"의 "누르가치"가 건국
• 1616년 "여진국"이 성립되고, 1618년, "여진"의 영명한(英明汗)이었던 "누르가치"가 건국한 "대금"을 근간으로, 아들 "태종 숭덕제"는 "대금"에서 "대청"으로 국호를 바꾼 뒤, 중국 대륙의 제국이 됐다. "만주족"이 통치한 제국, 중국 역사에서 "근대식 공화정 수립" 이전 마지막 "전제군주정"으로 본다.
• "청" 초기에는 훌륭한 "황제들(강희제ㆍ옹정제)"가 통치했다. "한족"의 중국 "명나라"뿐 아니라 주변의 "몽골ㆍ위구르ㆍ티베트"를 모두 정복하여, "원나라"보다 큰 영토를 이루게 되었다. "도광제(8대) 부터 말대 "선통제(12대ㆍ푸이)" 대에서, 서구열강 세력 등의 영향으로 국력이 약해져 1912년 "선통제"가 퇴위하였고, 1924년 공식적으로 황실이 해체되어, 제국의 종말과 동시에 중국 역사에서 2,000년 넘게 이어졌던 "봉건 왕조"가 끝나게 된다.
※ 서태후 (청나라ㆍ西太后ㆍ1835~ 1908.11.15ㆍ향년 73세) : 청나라 말기의 독재 권력자ㆍ함풍제의 3번째 황후ㆍ동치제의 생모ㆍ광서제의 이모ㆍ47년 간 정치의 실권을 쥐었고, "광서제"의 이복동생인 "부의"를 옹립하고는 "다시는 자신처럼 여인이 정사에 관여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유지를 남기고, 이튿날인 11.15일 죽었다. "서태후"의 장례는 120만 냥에 달하는 금액을 들여 성대하게 치러졌고, 수천 명의 사람이 장례에 동원되었다. 이후 청나라는 "신해혁명"에 의해 1912.02.12일 종말을 고했다.
19. 중화민국 : 1912~1949 ⑦ 총선거 실시(제헌국회 구성ㆍ38선 이남): 1948.05.10
• 1911.10.10일, "쑨원의 신해혁명" 이후, "청나라"를 멸하고, 중국 내륙에 세워진 공화국
• 건국 초기에는 내분ㆍ외침 등으로 불안하였고, "국공 내전"으로 쫓겨나, 현재는 "타이완" 등 몇 개의 도서 지역만을 통치하게 되었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영토 중 가장 큰 섬인 "타이완(Taiwan)ㆍ대만(臺灣)이라 불린다.
20. 중화인민공화국 : 1949.10.01 ~ ⑧ 대한민국 : 1948.08.15.~ (1948.07.17. 국호 사용)
• 1949.10.01일, "국공 내전"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중심인 "마오쩌둥"이 승리하여 건국되었고, 초대 국가주석이 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일당제"로 통치되고 있으며, 건국 이후 크게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약진 운동"과 수많은 국가적 피해와 민간인 피해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 "문화대혁명" 등이 벌어지고,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중국이었으나, "덩샤오핑"의 지도로 개혁개방(1979~1994)을 시행하면서 현재 국내 총생산 기준으로 세계 2위 규모이다.
• 수도는 "베이징(北京)", 최대 도시는 "상하이(上海)"이다. 주요 도시는 "베이징ㆍ상하이ㆍ광저우ㆍ난징ㆍ시안ㆍ푸저우ㆍ칭다오ㆍ충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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