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질서란, "일군만민(하나의 왕과 그 아래 모든 백성)" 즉, "성군"이라 불리는 사람이 "왕"이 되고, "충성ㆍ의리"로 무장된 "사대부"가 "왕"을 보필하면서 "정치"를 행하며, "효성ㆍ어진마음"으로 단련된 "백성들"이, 이들을 믿고 따른다면, "전쟁이 일어날 이유도 없고, 정말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따르던 "제자들"에 의해, 발전된 것이 바로 "유학"이다.
1. 16C : "성리학"이 심화되는 시기로, "예학"이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 17C : "예학"의 시기
• 18C : "실학"의 시기 - 실학자 (노론 북학파) : 박지원→ 박제가→ 김정희→ 흥선대원군ㆍ박규수ㆍ효명세자 (헌종 친부, 고종 양부)
• 전국시대 : "맹자"로 대표되는 "내성파" 학문ㆍ"순자"로 대표되는 "숭례파" 학문
한나라ㆍ당나라 : 훈고학ㆍ경학 → 송나라 : 성리학 (주자학) → 명나라 : 양명학 → 청나라 : 고증학
※ 공자 (孔子ㆍBC 551~479ㆍ향년 71세)
"춘추 전국시대"의 전쟁 시기를 살았던 "공자"는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ㆍ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는지"를 연구한 끝에 내린 결론이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공자"가 말한 "질서"란, "일군만민(하나의 왕과 그 아래 모든 백성)" 즉, "성군"이라 불리는 사람이 "왕"이 되고, "충성ㆍ의리"로 무장된 "사대부"가 "왕"을 보필하면서 "정치"를 행하며, "효성ㆍ어진마음"으로 단련된 "백성들"이, 이들을 믿고 따른다면, "전쟁이 일어날 이유도 없고, 정말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공자"의 주장이었고, 따르던 "제자들"에 의해, 발전된 것이 바로 "유학"이다. "이러한 시기가 요순시대에 이미 펼쳐졌었는데, 그 이후 사람들이 그러한 질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혼란을 자초한 것이다. 따라서 질서를 회복하면, 요순시대와 같이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위해서 상고시대의 역사ㆍ문학을 우선적으로 공부하고, 인격을 수양해야만 한다."
2. 유학 (儒學)
"공자(孔子)"와 제자들의 가르침인 "경전"과 "경전"에 근거한 후세 학자들의 체계적인 학문ㆍ본래 "공자 학도"의 "교학(敎學) 내용"을 의미함으로써, "유교(儒敎)ㆍ유도(儒道)ㆍ유술(儒術)"과 같은 말로 쓰이며, 때로는 "유교"를 공부하는 사람의 의미로 쓰여, "유가(儒家)ㆍ유문(儒門)ㆍ유림(儒林)" 등과 통용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 인간의 삶 : 오륜(五倫- 父子ㆍ君臣ㆍ夫婦ㆍ長幼ㆍ朋友의 윤리)→ 규범 / 성품 : 오상(五常- 仁ㆍ義ㆍ禮ㆍ智ㆍ信)→ 선
"공자"가 창시하여, "맹자ㆍ순자"로 계승되어오다가, "한 무제ㆍ동중서"에 의해 국가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기 시작하여, BC 136년 "국교"로 선포되었다. "남북조 시대(386~589)"에 "신도교(新道敎, 도교의 각파)"가 융성하고, "불교"가 전파되면서, "유교"는 크게 쇠퇴했다. 그러나 이것이 "유교 전통"의 소멸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유교"는 "당(618~907)"의 "한유"에 의해 부흥되기 시작하여, "송(960~1279)" 대에 이르러 "호원ㆍ범중엄ㆍ왕안석ㆍ구양수ㆍ사마광" 등의 "사대부"에 의해, 본격적으로 부활되었다.
• "남송(1127~ 1279)" 대의 유학자 "주희ㆍ왕양명"을 거쳐, "명(1368~1644)ㆍ청(1644~1911)" 대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원(1279~1368)" 대에는 "쿠빌라이 칸"이 등용한 "허형"이 국가제도를 세우는데, "유교"를 바탕으로 했다. 19세기 이후 서양사상이 유입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유교"는 쇠퇴해갔다.
3. 예학 (禮學)
"예"의 "본질ㆍ의의ㆍ시비"를 탐구하는 유학의 한 분야ㆍ"유교"의 이념은 "예의 실천"을 통해 실현되므로, "예학"은 "실천 유학"이라 할 수 있다.
4. 성리학 (性理學ㆍ주자학(朱子學)ㆍ정주학(程朱學)ㆍ도학(道學))→ 양명학(陽明學)
"주희"는 자기의 교의를 "도학ㆍ이학ㆍ성학ㆍ실학ㆍ의리의 학"이라고 함. "주희"가 "지(知)"에 중점을 두어, 얘기한 "선지후행(先知後行)"의 학문이다.(양명학은 "지행합일")
※ 주희 (朱熹ㆍ1130~1200ㆍ호- 염계(濂溪): 위대한 성리학자ㆍ합리주의자ㆍ후에 주자란 극존칭
12C에 "남송(중국의 50%를 여진족(금)에게 빼앗김)"의 "주희"가 기존의 "유학 훈고학"에 나름의 해석을 하였고, 그 주희의 학문만을 따르는 것이 "성리학"이며, "주자학"이라 한다. 중국 사상가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사상을 정리한 "철학논문"으로서 제술된 것은 없으며, 주로 "경서의 주석ㆍ서간ㆍ좌담의 발언"을 통해서 표명되었다. 16C에 중국에서 조차 성리학을 버린다.
"성명(性命)"과 "이기(理氣)"의 관계를 논한 유교 철학 / "유교"의 심지가 되는 "천도(天道)와 인도(人道)가 합일되는 근거"를 천명하기 위하여 형성된 것 / "성리학"은 "명분론적 질서"를 합리화하는 사상체계였으며, "명분론적 질서"에 맞는 생활을 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도덕적 의무"라고 했다. 송나라(宋ㆍ960~1279) 때, "유학"의 한 계통, "유학"이 "성리학"으로 체계화되면서, "예학"도 발달했다.
"성리학"이라는 명칭은 "주돈이"의 제자 "정호(程顥)가 천리(天理)ㆍ정이(程이)가 성즉리(性卽理)"라고 말한 데서 기인하는데, 그 후 "주희"가 "주돈이ㆍ장횡거(張橫渠)ㆍ정명도(程明道)ㆍ정이천(程伊川)ㆍ 나종언(羅從彦)"의 학설을 계승하여, 대성했다.
"공자" 이후부터 논의되어지고, 계승되어온 각종 이론과 해석들이 중국 "주돈이(周敦頤ㆍ1017~1073ㆍ송나라 유학자)ㆍ장재ㆍ정이형제들"에 의해 정리되어진 학문을 "성리학"이라고 한다. 이것을 "주희(朱熹)가 집대성하여, 하나의 완전한 체계로써 만드는데, 이것을 "주자학"이라고 한다.
그 후, "명나라 때, "왕양명(王陽明ㆍ1472~1528ㆍ명나라 중기 철학자)"에 의해, "주자학"의 일부에 오류가 있다고 보고, 이론을 달리하게 되는데, 이것을 "양명학"이라고 한다. "지행합일"은 "지(知)와 행(行)이 모두 마음의 활용으로 하나"라고 하는 것인데, "주자"가 "지(知)에 중점을 두어, 얘기한 "선지후행(先知後行)"에 대립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주자학ㆍ양명학" 모두를 "성리학"이라고 부를 수는 있으나, "양명학"은 반대 입장을 취한 면이 많아, "주자학"을 "성리학"이라고 부른다.
"성리학"은 대체로 "태극론(太極論)ㆍ이기론(理氣論)ㆍ심성론(心性論)ㆍ성경론(誠敬論)"으로 구분된다. "태극론ㆍ이기론"은 "자연의 존재 법칙"을 연구하는 "우주론"이고, "심성론ㆍ성경론"은 당위(當爲)를 문제 삼는 실천 윤리로서, "인사(人事)"를 문제의 대상으로 삼는다. "고려" 때, "안향(安珦)"이 최초로 받아들였고, "정몽주(鄭夢周)ㆍ이색(李穡)ㆍ길재(吉再)"를 거쳐 "조선 조"에 이르러 크게 발달하였으며, 중기에는 "이황(李滉)ㆍ이이(李珥)"에 이르러,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① 이기론 (理氣論) : 이(理) = 이상세계ㆍ물질을 형성하는 기본ㆍ음양 / 기(氣) = 현실세계ㆍ만물을 구성하는 요소ㆍ오행ㆍ각종 변화요소
"이(理)ㆍ기(氣)"에 의한 세계의 파악이다. "기"는 우주에 충만한 가스 상의 연속적인 물질(물질을 형성하는 기본)이고, "이"는 거기에 내재하는 질서ㆍ법칙성인데, "주희"는 삼라만상이 착종하는 세계를 이 2가지 원리로 수렴함으로써, "우주에서 인간에 이르는 천지간의 일체의 현상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자연"과 "사회"의 발생ㆍ운동을 "이"와 "기"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의해 우주 만물이 생성되며,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기"에 의해 구성되는 우주 만물은 차별성ㆍ등급성을 가지며, 결국 "자연ㆍ인간ㆍ사회"가 모두 위계질서를 갖는 것이고, "이"의 개념은 "인간ㆍ사물"의 원리적 보편성을 설명하는 범주이다.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이"의 내용은 "삼강오상"을 비롯한 "유교적 윤리도덕"이었으며, "관료제적 통치 질서ㆍ신분 계급적 사회질서ㆍ가부장제적ㆍ종법제적 가족질서"를 포함하는 "명분론적 질서"였다.
② 퇴계 이황ㆍ율곡 이이
※ 이 황 (李 滉ㆍ1502~ 1571ㆍ향년 68세ㆍ이이와 35살차)ㆍ도산서원(경북 안동)ㆍ예안 향약
"훈구파(윤원형 등)"에게 실망하여, 27번 관직제수가 들어왔음에도 관직을 맡지 않고, 1568년에 "성학십도(聖學十圖ㆍ성리학에 이룰 수 있는 10가지 그림)"를 "선조"에게 바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 이기이원론 (理氣二元論ㆍ이가 기보다 우위에 있다) • 이존기비 (理尊氣卑ㆍ이는 존귀하고, 기는 비천하다) • 이기호발 (理氣互發ㆍ이와 기, 모두 각자 발할 수 있다) • 성학십도 (聖學十圖ㆍ왕이 주체적으로 수양하라)→ 왕권중시
※ 이 이 (李 珥ㆍ1537~ 1584ㆍ향년 46세ㆍ이황과 35살차)ㆍ자운서원(경기도 파주)ㆍ해주 향약
과거를 통해 관직생활 진출 후, 죽을 때까지 관직생활을 한다.→ "조헌ㆍ김장생"에게 영향을 준다. • 이기일원론 (理氣一元論ㆍ이와 기는 하나다) • 이통기국 (理通氣局說ㆍ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된다) • 이발이승일도설 (氣發理乘一途說ㆍ기는 발현되면, 이는 그것에 편승한다) • 성학집요 (聖學輯要ㆍ뛰어난 신하의 말을 경청하라)→ 신권중시
"중국 주자학"에서 언급되었던 철학적인 요소는 "이황"에 의해 더욱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된다. 들어도 잘 모르던 상태에서 "이황"에 의해 "아~ 그렇구나" 하는 수준으로 더욱 발전하여, "중국ㆍ일본"에까지 전파되어, "이황"이 높이 받들어지는 것이다.
• "이황"은 현실을 논함에 있어서, "이기 이원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理)= 이상세계ㆍ기(氣)= 현실세계"라 하였다. 당시 "조선"의 현실은 "이상세계"가 아니니, "백성을 꾸준히 교화하여, 저마다 도덕군자로 만들면 이상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반면 "이이"는 "이기일원론"을 주장하였다. "이상"과 "현실"은 별도가 아니라 한가지이니, "조선의 현실을 "이상세계"로 만들기 위해서, 학문의 발달뿐만이 아니라, "부국강병"이라는 노력을 가미한다면, 백성들이 편안한 "이상세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그 때문에 "10만 양병설"이 나온 것이다.
• 훗날, "이황"을 추종하는 무리가 "서인"이 되고, "이이"를 추종하는 무리가 "동인"이 되었다. 서로 의견대립을 보이고, 이것이 다시 "노론ㆍ소론" 다시 "남인ㆍ북인" 등으로 갈라지는데, 이것이 "조선의 당파"의 효시인 것이다.
다시 "한(漢)나라"가 무너지고, 각종 혼란한 시기를 겪게 되고, 다시 "수ㆍ당나라"로 통합되다가, 다시 분열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불교ㆍ도교"에 심취하게 된다. "불교"는 "출가"라는 명분으로 속세를 떠나고, "도교"는 "은둔"이란 명분으로, 역시 속세를 떠나서 살고자 했는데, 명맥을 잇고 있던 "유학자"들은 이들을 무척 싫어한다. 그 이유는 결국 "속세"를 떠나 살면, 그 자신만은 편하게 살 수 있지만, "현실 세계의 혼란은 바로잡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던 중, "유학자"들은 그동안 배우고 익히던 자신들의 "학문"에 의구심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즉, 태어나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왕에게 충성하기를 강요당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불교ㆍ도교"처럼, 사람은 어떻게 해서 태어나고, 죽은 뒤에 어떻게 되는지, 또한 세상의 만물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등, "철학"과 관련된 부분들은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대부 계층"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유학"을 어렵게 생각하고, 멀리하는 이유라고 인식하고, 이를 보완하고자 새로이 이론을 추가한 것이 바로 "성리학"이란 학문이다. 즉, "이(음양)ㆍ기(오행ㆍ각종 변화요소)"에 의해, 세상만물이 창조되고 소멸하는데, 같은 빨간색이라도 "짙은 색ㆍ옅은 색"이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사람 역시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이ㆍ기"의 조화가 각기 달라서 "왕"이나,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세상 모든 만물"에는 이러한 이치가 숨겨져 있으며, 이 모두를 통달한 "공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해도, "법"에 걸릴 것이 없었던 경지에 오른 "성인"이었다고 보았다. "공자"를 "신"적인 존재로 격상시키고, 그에 의해 창안되고,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 모든 "예의범절ㆍ질서체계"를 엄격히 지킬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기존의 "유학"이라는 학문이 "종교적"인 차원으로까지 발전시킨 것이 "성리학"이라는 학문이다. 따라서 "성리학"이란 쉽게 말해, 이러한 "모든 이치"를 "각종 수양ㆍ공부"를 통해서, "먼저 깨닫고, 나중에 행할 것"을 주장한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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